음악/음악감상실

하이든 / 교향곡 제45번 '고별'

박연서원 2019. 9. 23. 07:14

Symphony No.45 in F#  minor, Hob.I:45 'Farewell'

하이든 / 교향곡 제45번 '고별'

Franz Joseph Haydn, 1732-1809



유머와 위트를 즐긴 ‘파파 하이든’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의 초상화를 보면 선이 굵은 엄부(嚴父) 인상이어서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딱 어울려 보인다. 그런데 하이든에게는 ‘파파 하이든’이라는 또 다른 애칭이 있다. 품성으로나 음악으로나 두루 너그럽고 온화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게다가 하이든은 유머와 위트가 넘쳐 주위 사람들이 다들 좋아했다. 그러한 하이든의 기질은 작품에도 곧잘 나타나는데, 교향곡 94번 ‘놀람’과 오늘 소개하는 교향곡 45번 ‘고별’에서의 그의 유머와 위트는 대표적이다.

하이든은 교향곡 94번 2악장에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이 느린 악장에서 청중들이 지루해하리라는 걸 미리 계산해 두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연에서 하품을 하거나 졸고 있던 청중들은 약박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강력한 포르테시모의 음향에 깜짝 놀라고 만다. 그런 연유로 이 교향곡은 그 후 ‘놀람’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자, 그러면 교향곡 45번에는 왜 ‘고별’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일까?

1772년 여름, 헝가리 귀족 가문 에스테르하지의 니콜라우스 후작은 여느 해처럼 풍광이 수려한 노이지트라 호숫가의 별궁으로 휴가를 떠났다. 악장 하이든도 관현악단을 이끌고 공작을 수행했다. 그런데 평소 6개월이던 휴가 기간이 두 달이 더 지났는데도 후작은 본궁으로 돌아갈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관현악단 단원들은 남겨두고 온 처자식이 그리워 무척 애를 태웠으나 후작은 전혀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단원들의 읍소(泣訴)를 들은 하이든은 어떻게든 공작에게 사정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에스테르하지 대공 니콜라우스 1세


드디어 새 교향곡을 발표하는 연주회 밤이 왔다. 교향곡이 시작되어 경쾌한 1악장, 느리고 조용한 2악장, 우아한 3악장으로 이어졌다. 하이든은 후작에게 ‘색다른 교향곡’을 만들었다고 장담했는데, 그때까지 이전 교향곡과 별반 다름없이 진행되자 후작의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4악장에 이르자 곡이 갑자기 쓸쓸해졌다. 하이든 특유의 경쾌함은 그림자도 없었다. 템포가 더욱 늦추어지더니 제1오보에와 제2호른이 악보를 닫고 촛불을 끄더니(18세기에는 보면대에 촛불을 켜 놓아야 했다) 벌떡 일어나 악기를 안고는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후작을 비롯한 청중들은 깜짝 놀랐다.


변괴가 벌어진 ‘색다른 교향곡’ 연주회

후작의 벌어진 입이 채 다물어지기 전에 변괴는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바순 주자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이어 제2오보에와 제1호른, 그리고 콘트라베이스가 나가버렸다. 청중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새어 나오는 가운데 첼로가 나가고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모습을 감추었다. 휑하니 텅 빈 무대. 마지막 남은 바이올린 둘만이 조용히 연주를 마치고는 촛불을 끄고 무대를 떠났다. 연주가 끝났다. 그러나 후작과 청중들은 이 느닷없는 변괴에 아연실색하여 한동안 박수를 치는 것도 잊고 있었다. 후작은 어리석지 않았다. 하이든이 ‘색다른 교향곡’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곧 깨달았다. 이튿날 후작은 귀가 명령을 내렸고 관현악단 단원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에피소드가 전해진 뒤 교향곡 45번에는 ‘고별’이라는 부제가 붙게 되었다.


00:00 I. Allegro assai

07:08 II. Adagio

21:36 III. Menuetto. Allegretto

26:22 IV. Finale. Presto - Adagio

Charles Mackerras, cond.

Orchestra of St. Luke's

Telarc: 1989


0:24 I. Allegro assai

9:17 II. Adagio

17:34 III. Menuetto. Allegretto

21:27 IV. Finale. Presto - 24:25 Adagio

Andrzej Kucybała, cond.

Stanisław Moniuszko School of Music Symphony Orchestra

in Bielsko Biała, Poland


00:05 I. Allegro assai

05:48 II. Adagio

15:13 III. Menuetto. Allegretto

20:16 IV. Finale. Presto - Adagio

Pablo Casals (1876-1973), cond.

Puerto Rico Casals Festival Orchestra

Rec. Summer 1959, in Puerto Rico (Live Recording)


Conrad van Alphen, cond.

Sinfonia Rotterdam

Live recording on 9 February 2018 in the Nieuwe Kerk in The Hague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Fürst Nikolaus Esterhazy 재위 1762~1790)


1악장 Allegro assai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다. 시작은 단순하지만 압도적이다. 곡은 총주에서 강하게 하강하는 펼침화음의 제1주제로 시작된다. 이 제1주제는 4마디씩 대비를 이루고, 전채는 16마디로 되어 있다. 이어 이 주제의 반복으로 경과부로 들어가며 새로운 경과 악상도 더해져 병행조의 가장조로 이행된다. 그리고 제1주제가 갑자기 가단조로 다시 나타나고, 경과부의 제2부분으로 들어간다. 이후 제2주제가 나타나는데, 제2주제는 선율적 요소가 거의 없으며, 제시부의 종결도 겸하고 있다. 발전부에서는 처음에 제1주제와 제2주제가 나타났다가 딸림음으로 반종지하면, 휴지부를 거쳐 새로운 선율이 D장조로 나타나면서 마친다.


Adam Fischer, cond.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


2악장 Adagio


제2악장은 전체적으로 현악을 주체로 진행되고 오보에나 호른 등의 관악기는 가끔 보조성부 역할을 할 뿐이며, 약음된 바이올린의 은근한 음색이 확실하게 지배한다. 먼저 약음기를 단 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조용히 연주하면 다른 현악기가 조용히 반주한다. 제1주제 연주 다음 E장조의 제2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조용히 연주된다. 전체의 구성은 제시부, 발전부에 이어 충실한 재현부로 들어가는 소나타 형식이지만, 1악장과 대조적으로 조용하고 온화하다.


Adam Fischer, cond.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


3악장 Menuet. Allegretto


제3악장은 미뉴엣 알레그레토 템포로 부드럽다. 트리오에서는 3도로 겹쳐진 2대의 호른이 연주된다. 특히 3악장의 미뉴엣 중 가장 아름다은 미뉴엣으로 알려진 악장이다.


Adam Fischer, cond.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


4악장 Finale. Presto-Adagio


제4악장은 2/2박자로 2개의 부분으로 되어있는 문제의 ‘고별’ 악장이며 소나타 형식이다. 초연 시에 하이든의 지시에 따라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보면대의 촛불을 끄고 악기를 가지고 퇴장했다. 곡의 구성은, 먼저 제1부분은 빠른 템포이고 이 프레스토의 피날레에서 제1주제가 나타나고 짧은 경과구 다음 제2주제가 나온다. 제2주제 다음은 조바꿈되며 휴지부를 거쳐 아다지오로 들어간다. 마지막은 앞에 프레스토가 F#단조의 딸림음으로 종지한 뒤 곧바로 A장조로 시작된 후 코다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A장조의 주요부분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처음 31마디는 모든 악기가 참여하지만 이후 ‘고별’이 시작된다. 먼저 제1오보에와 E조의 제2호른이 보면대의 촛불을 끄고 퇴장한다. 이어 10마디의 중간악절 다음 재현부로 이어지는데, 주제 재현의 6마디에서는 바순이 퇴장하고, 그 다음 7마디 후에는 제2오보에가 퇴장하고, 다음 마디에서 A조의 제1호른이 퇴장한다. 제2부분의 마지막에는 콘트라베이스가 퇴장한다. 그리고 코다로 들어가는데, 여기에서는 4부로 나누어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현악기 주자만 남게 된다. 이 중 첼로는 코다의 10번째 마디에서 퇴장하고, 8마디 후에는 2부로 나누어진 2명의 제2바이올린이 퇴장한다. 비올라는 다시 8마디 후에 퇴장하고, 마지막 14마디는 2명의 제1바이올린만 남아 조용히 연주를 계속하는 가운데 사라지듯이 전곡을 마친다.


Adam Fischer, cond.

Austro-Hungarian Haydn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

Wiener Philharmoniker

Wiener Musikverein, Jan 2009


Joseph Haydn, 1732-1809



하이든의 교향곡 제45번 <고별>은 1772년 완성되었다. 이 교향곡에 관한 에피소드는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 오케스트라단의 휴가와 관련이 있다. 하이든이 음악감독으로 봉직한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화려한 夏궁을 노이지트라 호반에 건축하고, 여름이 되면 악단원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지냈다. 그런데 새로 지은 별궁은 공간이 작아, 가족과 함께 지내는 단원은 하이든을 포함 4명뿐이었다. 따라서 악단원들은 가족들과 같이 지낼 수 없었고, 가족들은 멀리 떨어진 에스테르하지궁에서 지내야 했다. 매년 하절기마다 6개월씩 떨어져 지내야 하는 악단원들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는데, 1772년에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는데도 아이젠슈타트의 본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이든은 단원들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곡을 만들어 에스테르하지 후작에게 단원들의 심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곡을 쓴 것이다. 즉, 이 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모두 자기의 연주를 끝내면 촛불을 끄고 조용히 퇴장하는 방식인데, 최후에는 바이올린 두 사람만 남는 것이 이 곡의 구성이다. 다행히 지혜(?)로운 후작은 악단원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다음날 즉시 휴가를 주어 후작을 향한 무언의 시위는 성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곡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화가이며 하이든의 전기작가인 디즈(Albert Christoph Dies, 1755-1822)와 외교관으로 역시 하이든의 전기작가였던 그리징어(Georg August von Griesinger, 1769-1845)가 하이든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알려졌다. 그리고 당시 이 곡의 에피소드가 알려지자, 곡도 덩달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는데, 동시대 작곡가인 슈페르거(Johannes Matthias Sperger, 1750-1812)는 하이든의 교향곡(고별)을 의식(?)하여 훗날 자신이 작곡한 교향곡의 이름을 <도착>으로 발표하였다고 한다. 이 교향곡의 친필악보는 현재 부다페스트의 국립 세체니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