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의 작품 목록에 포함돼 있지만, 원 작곡가는 로만 호프시테터(1742~1815)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하이든의 현악4중주 작품3(Op.3)에 수록된 6곡 중 5번째 곡으로 분류돼 있다.
하이든의 작품은 오푸스(Op)와 더불어 네덜란드 음악서지학자 호보켄(A.V.Hoboken)이 분류한 호보켄(Hob)번호로 표기한다. 호보켄은 장르별로 작품을 분류했는데 로마자 I(=1)은 교향곡을, III(=3)은 현악4중주를, VII(=7)은 협주곡을 가리키는 식이다. Hob.III:17은 호보켄(Hob)이 분류한 전체 현악4중주(III)의 17번째 곡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하이든의 현악4중주 작품3에 수록된 6곡(호보켄 번호 3:13~18)은 정황상 하이든의 작품이 아닌 위작(僞作)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작품3의 1, 2번곡의 경우 악보 동판에선 호프시테터의 작품이란 문구가 판독됐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호프시테터(Roman Hoffstetter·1742-1815)는 음악적 재능이 있었던 수도원 수사로, 평소 하이든을 흠모했다고 한다.
현악4중주는 제1,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첼로로 편성되는데 오늘 감상할 곡은 제1바이올린이 2개의 주제를 안단테 칸타빌레(천천히 노래하듯)로 연주하면, 나머지 현악기는 피치카토(현을 튕겨 낸 소리)로 반주를 한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은 기악곡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는 화성적인 단선율 음악 구성에 크게 성공했고 2개의 대립되는 테마를 제시하여 그것을 발전시키고 다시 테마를 반복하는 소나타 형식을 완성시켰다. 그의 음악 생활은 8세 때 교회의 소년 합창 대원으로부터 시작되어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 (P. A. Esterhazy) 공작 가의 악장으로 30년간이나 있으면서 작곡에 전념하였다. 하이든은 자유의 몸이 된 후 58세 때 독일 태생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영국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는 잘로몬 (J. P. Salomon 1745-1815)의 초청을 받아 영국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6곡의 신작 교향곡을 발표했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때 G장조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그 후 이것을 옥스퍼어드 교향곡이라 부른다. 하이든은 다시 영국을 방문하여 6곡의 신작 교향곡을 연주했다. 모두 12곡의 교향곡을 일명 ‘잘로몬 교향곡’이라 하며 그 중에도 '놀램','군대','시계','큰북 연타' 등이 유명하다. 영국에서의 성공으로 그의 이름은 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수입도 많아 여생을 행복하게 지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국가를 작곡하였으며 헨델의 메시아에 감명을 받아 오라토리오 '천지 창조','사계' 등의 명작을 만들었다. 하이든은 모짜르트, 베토벤과 함께 비인 고전파의 황금시대를 이룩하였다. 그는 기악의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교향곡만도 104개이다.
String Quartet No.3 in C major, Op.76 Hob.III:77 'Emperor Quartet'
하이든은 1792년 빈에서 베토벤을 만나 그를 지도하였고, 1795년 에스테르하지가(家)를 위해 궁정 악장직을 다시 맡고 니콜라우스 2세와 그의 부인을 위하여 6편의 미사를 작곡하였다. 그밖에도 몇 편의 현악 4중주와 종교음악, 영어로 된 6편의 시편송을 작곡하였고, 1797년에는 '황제의 찬미가'로 알려진 'Emperor Quartet'를 작곡하여 황제의 생일에 헌정하였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국가로 사용되다가 1922년에 민네징거의 시에서 채택된 새 가사가 붙여졌고, 히틀러 통치 기간에는 나치당의 파티 노래로 쓰였으며 1990년에는 또다른 가사를 붙여서 독일 연방 공화국의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신교도 찬송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의 선율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작품은 1796년경에 작곡한 오스트라아의 국가 [신은 프란츠 황제를 보호한다]의 유명한 선율을 사용하여 변주곡 형식으로 제 2악장을 엮은데서 황제라는 이름으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