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여행의 시작
20 년 만에 찾아 온 뉴욕
2006 년 5 월 4 일 일요일
오늘은 미국 여행길을 떠나는 날. 마음을 진정 시킬 겸, 매일의 일정에 따라. 반달이(우리 강아지)를 데리고 집 뒤 숲을 거닐었다. 날씨는 포근하고 황사가 가볍게 끼고 옅은 안개가 드리운 주위의 풍경이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두 달여 동안 이 정겨운 풍경과는 헤어진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마음 졸이며 계획하고 기다리던 미국 대륙 횡단 여행이 드디어 시작 되는 것이다.
일본 항공 JL-952 편은 오후 1시 45 분의 원래 스케줄보다는 30 분 늦게 출발했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바꾸어 탄 뉴욕 행 JL- 48 편도 25 분 늦게 출발하여 보조를 맞추었다. 일본 여객기가 30분 이나 연착을 한다는 것이 낯설게 느끼어 졌다.
지루한 비행 끝에 JFK 공항에 도착했다. 20년 전의 모습과는 다르게 건물도 새로 지었고, 공항 전철(Air Trail) 이 설치되어 공항 내 각 시설들 간을 양방향으로 무료 운항하고 있다. 렌트카 회사는 ‘Station-C’ 에 몰려 있다. 예약한 Hertz 에서 빌린 차종은 크라이슬러사의 PT Cruiser. 빨간 색의 유럽형 모형으로 앙증스럽고 귀엽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알 카포네가 타던 차형이라고 해서 제법 팔린 중형 차종이라고 한다.
뉴욕에서 렌트한 크라이슬러사의 PT Cruiser.
Van Wyck Express 와 Velt Parkway, 벨라자노 브리지를 건너 NJ 로 넘어갔다. 어둠속에서 호텔 진입로를 찾는데 한 시간 여를 헤맸다. Howard Johnson Newark Hotel, 호텔 비용을 줄이려고 한국에서 예약해 둔 것인데, 숙박비 외에 주차비를 따로 받아 공연한 짓을 했다 싶었다. 방에 들어 말린 누룽지를 끓인 물에 말아 요기를 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여기 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었다.
5 월 5 일 월요일
새벽 1시 넘어 침대에 누웠는데 초반에 긴장이 풀려 깜박한 것 외에는 2 시가 넘어서도 정신이 말똥해지기만 했다.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보기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견디다 못해 3 시경에 아주 일어나서 오늘 Manhattan 관광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여행 책자를 들척이며 정리하고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비용이 크게 드는 여행이다. 우리 가족이 1,500 만원 수준을 이 여행경비로 예상하고 있으니 - 실제 비용은 항공료 포함 1,200 만원이었다, - 어정쩡한 젊은이의 1년 연봉 수준이다. 공연한 외화의 낭비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미안함이 눈꺼풀 밑으로 스멀스멀 기어든다. 1 년 여행수지 적자가 120 억불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여행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일탈하고 싶은 것은 일에 지친 젊은이들이나 갖는 백일몽 같은 것이 아닐까. 아 ! 어쨌거나 이 거대한 신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간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 누우면 정신이 맑아지고 일어나 앉으면 눈꺼풀이 가라앉는다.
뉴 저지 주 Fort Lee 인근의 한아름 마트 전경
집사람과 양형 부부를 깨워 아침은 먹지 않고 Fort Lee 로 향했다. I-9 north 를 타고 북상한다. 이 길은 링컨 터널로 연결되어 있고 G.W. Bridge 도 연결되어 있다. 출근 시간이라 길은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 Fort Lee에서 내려 시내로 들었다. 한국어 간판들이 많이 보인다. 한 50 % 수준이 한국인이라고 하던가. 운전석에 앉아있는 옆 사람들도 한국사람 인 것 같다.
Fort Lee 의 옛 모습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바뀐 것일까 내 기억이 지워진 것일까. 지나는 교민에게 물어 ‘쇼브 라이트’를 찾았다. 여행에 필요한 일상용품도 사고 아침요기도 하고 싶었다. 한 구석에 간단한 식사코너가 있었다. 요기를 하던 한국인 한 무리가 우리가 한국에서 갓 온 것을 알고는 반색을 한다. 예순이 넘었을 남녀와 40대 중반의 여인인데 특히 40 대 여인이 관심을 갖고 식사주문도 도와주는 등 호의를 보였다. 처음에는 다소 과잉 친절이라고도 느껴졌는데 나중에 보니 교회에 다니며 나이든 분들의 말벗이 되어 주는 등 봉사를 하는 분이었다.
그 여자 분의 권유로 ‘쇼브 라이트’를 나와 “한아름 마트” 라는 한국인쇼핑 몰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샀다. ‘쇼브 라이트’ 보다 더 큰 규모의 한국인 운영의 쇼핑 몰이라니 20 년 전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이다. 슈퍼마켓과 각종 전문 상점이 모여 있는데, 상점주는 한국교포이고, 한국교포와 미 현지인들이 그 고객이란다.
West Point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바라보는 허드슨강 상류 방향 조먕
Palisade Interstate Parkway 를 타고 미 육군 사관학교 West Point 로 향했다. 5월초의 신록은 아름답고, 황사가 없는 하늘은 맑고 아스라했다. 밤과 낮의 바뀜과 어제 한 시간 밖에 자지 못한 때문에 가끔 아득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파크웨이 드라이브는 정말 좋았다. West Point 는 전과 다르게 - 아마 911 영향인 듯 - 자유 출입이 통제 되고 관광객은 비용을 내고 투어버스를 타고 가이드 안내를 받아야 했다.
George Washington Bridge 의 NJ쪽 다리 밑에 있는 Palisade Cliff Park : 멀리 보이는 것은 맨하탄
귀로에 Fort Lee 의 한국 식당에서 쌈밥으로 점심요기를 했다. 마침 식당주인이 천주교인이라 노 방지거 씨를 연결하여 만날 수 있었다. NJ 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우리 부부가 미국 근무 시절 함께 주재원으로 근무하다가 이곳에 정착한 분으로 집사람과 Mrs 노와는 기도 모임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어 그들 부부가 한국에 올 때는 기도 모임 부부들이 함께 모이곤 한다. 반갑게 인근을 안내해 주며 20 년 전의 주위의 기억들을 소생시켜 준다. 그의 도움으로 뉴욕 재직 시에 살았던 Jewish 센터 인근의 13th St. 의 옛집을 찾아 낼 수 있었고, Palisade Cliff 허드슨 강변 공원에서 웅장하게 허공에 걸린 G.W.Bridge 와 Manhattan 의 원경을 바라보며 젊었던 시절을 다시 회상 할 수 있었다.
6시쯤 헤어져 호텔로 돌아와 양형 부부와 포도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11 시쯤 잠이 들었다, 전날 못잔 잠을 다음날 6시까지 푹 잘 수 있었다.
5 월 6 일 토요일
휴일이라 Manhattan 이 덜 붐빈다. 아침 시간인데도 가는 길은 어제에 비하면 정말 운전 할 만 했다. 그래도 잠깐 아차 하는 사이에 원래 의도하였던 링컨 터널은 놓치고, 북상해서 G. W. Bridge 를 건너 Manhattan 으로 건너가 Hudson 강변로인 Hudson Parkway West 를 타고 남하하여 Battery Park 까지 단숨에 달려 내려왔다. 터널 입구를 놓친 것이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20 년 전 출근길을 더듬는 감회가 새로웠다.
맨하탄 다운타운 Battery Park 내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
Battery Park 는 N.Y. 근무 시절에는 자주 오지 않았던 곳이다. 자유의 여신상, Liberty Island, Staten Island , N.J., Brooklin 등이 만을 건너 아름답게 보이는 맨하탄 최남단. 이곳은 미국 초기 역사와 미국의 영광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곳일 터이지만, 서울 사람이 서울 구경 제대로 하지 못하듯, 당시 근무 시절에는 한국에서 손님이라도 와야 관광안내를 위해 따라 나서던 곳이다.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대도시에 걸맞지 않게 맑은 공기와 햇볕을 즐기며 해변을 따라 걸었다. Battery Park 중심부 잔디밭 한가운데 사다리꼴 판석에 완전 군장한 병사의 모습을 역 실루엣으로 깎아내고 한국과 미국 그리고 참전국의 국기가 새겨진 예쁘고 균형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처음이라도 본 듯 가슴이 철렁인다.
911 테러 현장 : 특별한 기념 조형물을 만들지 않는 연출이 기막히다.
주차 위반 딱지를 끊었다. 벌금은 115 불 비싼 Battery Park 관광이 되었다.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고 인근의 911 테러 현장을 찾았다. 별 기념 조형물도 없이 공사현장 같이 칸막이 판넬이 설치되어 육상에서는 내부를 볼 수가 없고, 인근 건물에 들어가서야 조금 높은 위치에서 내부를 관망 할 수 있게 한다. 참사 현장을 과장하거나 숨기지 않는, 무덤덤한 처리는 그들의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일까.
근무 시절에 자주 이용하였던 Park Ave 와 58st. 인근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Tiffany 보석상과 Bergoodman 백화점을 구경하고 Long Island의 선호 집으로 향했다. 선호는 나의 고등학교 동창. 치과의사인 그는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이주를 했다. 내가 우리 큰딸 아이를 갖게 된 날 그의 결혼과 미국이주 소식을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 딸아이의 이름을 그의 앞자와 그녀의 이름 보영의 뒷자를 따서 선영이라고 지었었다. 원래는 저녁 약속이었지만 낮에 만나는 것이 그동안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찍 출발 했다.
선호와 선호집 앞에서
선호의 집은 롱아일랜드 Great Neck 으로 고급 주택지에 위치해 있었다. 크지 않았지만 예쁜 모습이고 뜰도 잘 관리되고 있었다. 선호는 한국에 올 때 가끔 보았지만 부인은 20년 만이다. 세월이 겉모습은 다소 바꾸어 놓았지만 쾌활한 옛 모습은 그대로였다. 부인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은 선호가 롱 아일랜드 해변 드라이브를 하자고 제안해서 따라 나섰다. 중도의 쇼핑몰에도 둘러 나는 여행 중에 신을 샌들을 구입했다. 마침 할인 매출 기간인데 원래의 할인 가격에 오늘만을 위한 15 % 추가 할인 행사가 겹쳐, 내부는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한다. 90 $ 짜리 Timberland 여름 샌들을 66불에 샀다.
저녁 대접을 받고, 저녁 10시에 선호 집을 나와 호텔로 돌아 왔다.
5 월 7 일 일요일
오늘 계획은 오전에 Circle Line 탑승과 센트럴 파크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내일 RV 인수와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8 시에 호텔을 나와 링컨 터널을 건넜다. 오늘 다시 보니 링컨 터널 진입로를 마치 좁은 골목길 입구처럼 만들어 놓았다. 진입로가 적어도 2 차선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어제 길을 놓친 이유인 것 같다. 링컨 터널은 편도 2차선인 좁은 터널로 차선을 넘지 않을까 조바심을 하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여야 했다. 통행료는 6불, Manhattan 방향은 통행료를 받고 뉴저지 방향은 통행료를 받지 않는다.
Battery Park 의 선착장 풍경
Circle Line 관광은 Manhattan 섬을 유람선을 타고 한 바퀴 도는 3시간 코스와 서안 Mid Town 에서 남안을 돌아 동안 까지 갔다 다시 뒤 돌아 나오는 2 시간 코스가 있다. 20년 전 N Y 근무 때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들과 함께 라운드 코스를 돌았을 때, 후반 한 시간여를 지루하게 느끼었던 기억이 있어 2 시간 코스를 하고 싶었는데 2 시간 코스의 오전 출항은 이미 출발하고 없어서 11 시 30 분 출발인 3 시간 코스를 택했다. 티켓 파는 곳에서 집사람과 Mrs 양이 한국관광객 한분과 안면을 텄다. 한전 자회사에 근무하는 분으로 자재 수입차 1주일 출장을 왔는데 일요일이라 관광을 하고 있다 해서 동행 했다.
Circle Line 관광의 핵심은 역시 자유의 여신상, Governor's Island, 맨하탄의 스카이라인 등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섬의 남해안 구간이다. 전에도 본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29 불 요금이 아깝지 않은 빼 놓을 수 없는 관광 코스라고 생각했다.
Circle Line 선착장에서의 풍경
차를 Circle Line 주차장에 주차하여 놓고 지하철 West Central Park 선을 타고 Central Park 으로 이동을 했다. 5월의 태양은 따스하고 하늘은 더 없이 맑았다. 자연사 박물관 쪽 입구로 들어가 중앙 호수와 잔디 광장에서 마치 뉴요커라도 된 듯 자리를 깔고 앉아 햇볕을 즐기다가 - 그들처럼 웃통까지 벗지는 못했지만 -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Manhattan 섬 관광을 끝냈다.
Central Park 풍경
귀로에 여행 중 사용할 기본 식품들을 사려고 Fort Lee 에서 그제 들렀던 ‘한아름 마트’ 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 저리 한참을 헤매다가 옆을 걸어가는 60 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할머니는 차를 태워 달라고 하더니 여기 저기 길을 지시하여 상당한 거리를 달려, 그제의 그 ‘한아름 마트’가 아닌 다른 ‘한아름 마트’에 데려다 놓고는 슬그머니 가버리려 한다. 깜짝 놀라 할머니의 귀로를 걱정 했더니 아는 한국 사람을 만나면 돌아 갈 수 있다고 극구 사양을 하며 황급히 마트 안으로 사라졌다. 할머니가 걷던 거리에서는 3 마일은 족히 떨어진 거리여서 상황판단이 서지 않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사람 정이 그리워서였을까 아니면 그 마켓에 친지라도 있는 것일까.
쌀 등 장기간 사용할 식품을 사가지고 호텔로 돌아와 호텔방에서 오랜만에 소고기와 삼겹살을 구워 상추에 싸 먹는 호사를 누렸다. 포도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9시 조금 넘어 침대에 들었다. 오늘은 Circle Line 갑판위에서 깜박 했고, 집사람과 Mrs 양이 Shopping 하는 참에도 차안에서 눈을 붙였었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또 잠이 쏟아진다.
Circle Line 선상에서
RV를 타고 메인 주를 향하여
5 월 8 일 월요일
캠핑장에서 안착한 우리의 RV.
오늘은 El Monte 사로부터 RV를 인수하는 날이다. 이번여행이 실제로 시작 되는 날이다. Hertz 사로부터 빌린 PT Cruiser 를 반납하고 RV를 인수 받아 첫 목적지인 Newburgh 까지 옮겨야 한다. 첫 경험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그런지 새벽 1시반경에 깨어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묵주기도를 5단이나 바치고 심호흡을 하면서 잠들어 보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RV 를 픽업하기로 예약 된 시간은 오후 1 시, 그러나 Linden 시에 미리 도착하여 Elmonte사의 위치를 확인하고, 승용차를 반납 할 수 있는 인근의 Hertz 의 Linden 사업소를 찾아 두면 하루의 행동반경이 단출해지리라는 생각으로 아침식사 후 출발하여, 우선 Hertz 사무소를 찾아보았지만 안내서에 나온 현지 사무소가 나타나지를 않는다. 안내 책자가 업데이트가 안 되었던 걸까? 10시까지 헤매다 포기하고, Hotel 로 돌아 와 호텔 체크아웃 후, 다시 Linden 으로 가서, 1시에 RV 를 인수 한 후 승용차는 Newark 공항의 Hertz 지사에 반납하고 나니 4시가 되었다.
Newark에서 첫 기착 캠핑장인 Newburgh 까지는 약 100 마일 정도. 95번을 타다가 280 - 80 - 287 - 87 을 거처 87 번 도로의 exit 17 에서 빠져 나가는 노정, 중간에 밀리는 구간이 있어 Newbough KOA 캠핑장에는 6시 40분경에 도착했다.
마치고 나니, 나는 이번 여행 계획의 정말로 실현 되었구나 하는 만족감에 뿌듯했다. 함께하는 양형 부부는 Linden 에서 길 찾기, Newark 에서 승용차 반납, Newbough 까지의 길 찾기 등이 순조롭지 않고, 그리고 믿고 따라온 나의 허둥거리는 모습에 지쳐 이 여행에 대해 엄두가 나지 않아서인지 의기가 많이 소침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어둠이 깃든 캠핑장안의 숲길을 걸으며 정말로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던 일을 이렇게 해낼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주님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시간에 쫓겨 RV 안을 어수선하게 쌓아 두었던 여행 가방들과 구입한 식품 등 보급품들을 대충 구석구석에 처박고는 일찍 자리에 들었다. 오늘하루 나에게는 정말 지치고 뿌듯한 하루였다.
5 월 9 일 화요일
오늘은 캠핑장에서 하루 쉬기로 마음먹었다. 여행 초기의 긴장감과 피로감을 해소해야 하고 아무렇게나 차안에 쌓아 놓은 짐들도 정리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RV의 기능들을 익혀야 한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새벽 캠핑장 경내를 산책했다. 이 캠핑장은 숲이 우거지고 영역이 넓으며 관리실 앞에는 제법 넓은 연못이 있어서 캠핑 첫날의 기분을 북돋아 주고 있다. 새벽 숲은 새들의 소리로 시끄럽다, 각기의 양기를 과시하듯 시끄럽게 울어댄다. 자연도 조용한 곳만은 아니다. 검고 긴 목의 회색 야생 어미오리가 나를 보고는 흘낏거리며 새끼를 몰고 연못 가운데로 이동한다.
집사람이 청경채로 김치를 만들었다. 그제 ‘한아름 마트’ 에서 김치를 샀는데 덜 익고 싱거워서 입맛이 돌지 않았었는데, 청경채김치는 집에서 가져온 까나리 젓을 넣어서인지 혀끝에 착 달라붙는다. 당장 필요하지 않을 짐들을 RV 외부 짐칸에 정리 해 넣고 RV 사에서 빌린 식기 따위도 깨끗이 세척하여 실내의 제자리들에 정리해 놓고 나니 차안이 훨씬 품위가 있어 보이며 어수선하던 마음도 정리 되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 힘차게 튀어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5 월 10 일 수요일
필그림(보스톤 지역 최초 백인 이주민들)이 상륙한 지점을 기념하는 Plymouth Rock 기념관
Plymouth 박물관 정원의 인디안 추장 동상. 안내 동판에는 Pilgrim 의 상륙 시
호의를 베풀었던 인디안에 대한 그 후 백인들의 가혹 행위를 반성하고 있었다.
8 시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캠핑장을 떠났다. 전날의 정리로 차안도 정결해졌고 마련해온 식품들도 제자리를 잡았다. Newburgh 에서 87N 를 타고 Albany 쪽으로 진출하다, 90E 로 갈아타고 매사추세츠 주 경계를 넘어 Springfield, Worcester를 지나 495 S를 타고 다시 Plymouth 로 연결되는 44W 도로 입구에 있는 Middleboro 의 KOA 캠핑장에 도착하려는 여정이다.
첫 번째 만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었다. 1 Gallon 에 3.32 불이다. 반쯤 빈 탱크에 가득 채우는데 80 불이 들었다. 일부러 Full Service Booth 를 선택했다. 60 세는 족히 되어 보이는 영화에라도 나올 법한 멋쟁이 백인 신사가 나와 " Do you need check oil. Sir ? " 하며 정중하게 물어 온다. 차제에 엔진부분에서 Break oil, Power steering oil, Engine oil dip stick, Transmission oil dip stick, 냉각수, Washer 액 탱크 등의 위치 등을 설명 듣고 tip 75 센트를 주었다.
495번 도로상에는 휴게소가 없다. 쇼핑몰 표지가 있는 Exit 에서 나와 보급품을 다시 준비했다. 여자들은 천부적으로 먹을거리와 집기들을 준비하는데 과감하다. 쇼핑카트 가득히 채우고는 카운터 앞에 선다. 미국 여행 중에는 T/C 보다는 신용카드가 더 유용한 것 같다. 환율도 하향 추세라서 T/C를 받아 주는 곳에서는 우선 T/C를 써 버리기로 했는데, 카운터의 10 대 점원이 T/C 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모르는지 우물쭈물하다 옆 동료에게 물어보고는 하더니 결국은 전화기를 집어 들고 상사에게 업무 처리방식을 묻는다. 차라리 신용카드로 결제 할까하고 의향을 물었더니 자기가 T/C를 처리할 줄 몰라 상급자를 불렀다며, " You know what I mean ?"하고 얼굴을 붉힌다. 젊은이들이 일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런 곳에서는 ‘ 아! 이곳은 건강한 사회로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Middleboro 캠핑장에 등록을 하고 Plymouth 에서 Plymouth Rock, 모조품인 Mayflower Two, Plymouth Plantation 을 방문 했다. KOA 캠핑장의 시설이 Newburgh 것보다 부실했다. Hook-up 의 규격이 맞지 않아 RV 를 앞뒤로 운전하여 움직이다 간단한 접촉 사고를 냈다. Mayflower Two,- 필그림이 사용한 Mayflower 호 복제 선박- 앞에서 제 2 편 메인에서 프로리다 까지
아카디아 국립공원
5 월 11 일 목요일 Middleboro 의 KOA 캠핑장은 여러 면이 Newburgh 에 미치지 못했다. Plymouth 와 Cape Code 라는 좋은 관광지가 인근에 있음에도 이렇게 밖에 투자 할 수 없나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시설이 노후했고 경영자의 관심도 없는 듯 모든 것이 상큼하지 않았다. 8 시에 캠핑장을 나섰다. 오늘은 Boston 을 95 번 도로로 외곽으로 돌아 뉴햄프셔를 거쳐 메인 주 해안에 있는 Acadia Nat'l Park 가 목표이다. Middleboro 에서 올라 탄 495 N 은 출근시간대여서 인지 붐볐다. 495번 도로는 보스턴의 외부 외곽 순환도로이고, 95번 도로는 내부 외곽 순환도로 이다. 보스턴 시내 통과를 고려해 보았으나 오래된 도시인 보스턴 시가지가 운전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그냥 내부 외곽순환도로로 택했다. 뉴햄프셔 주에 진입해서 Information Center에서 Road-map 을 얻고 곧 Maine 주의 Kittery 에 있는 Information center 에서 Maine 주의 것을 얻었다. Information center 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공통점은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라는 것과, 무심한 듯 앉아 있다가도 가까이 다가가 물어볼라치면 바싹 다가붙으며 곰살궂게 성심을 다한다는 것이다. 캠핑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접수를 보는 직원은 모두 60 대로 보이는 여성들이며 특유의 느긋함과 꼼꼼함으로 조급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시간을 끌며 일처리 하지만 은근한 미소는 잃지 않는다.
직원은 Maine 주 경계에서 Acadia 국립공원까지 예상외로 4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한다. 거리가 240 mile이다. 실제로 우리는 95번으로 Bangor 까지 달려 그곳에서 1A 도로를 타고 3번 도로를 거쳐 Acardia 국립공원 입구의 KOA 캠핑장에 4시 반경 도착했다. 캠핑장은 바닷가에 있으며 시설도 산뜻해 보인다. 우리 싸이트를 확보하고 RV 를 몰고 국립공원을 드라이브 하였다. 비시즌이라서인지 시간이 늦어서인지 매표소에도 Visitor Center 에도 사람이 없었다.
공원 내 Bar Harbour 의 한 식당에서 바다 가재 요리를 먹었다. 1. 1/4 파운드 로브스터를 삶아 버터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인데 종업원의 설명을 들으며 껍질을 기구로 깨어 신기하게 다 먹어 치웠다. 1인당 24불. 아카디아 캠핑장
뉴햄프셔와 메인 주 도로를 달리면 길옆으로 호수와 강과 어울리는 숲의 풍경을 자주 접한다. 짙은 숲과 깊은 녹색 호면의 정경은 오래된 유화의 그것처럼 품위 있고 아름다웠다. 밤에는 조금 쑥스러운 일이 있었다. 저녁 7시쯤 빨래를 하겠다며 나간 집사람과 Mrs 양이 9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밖은 비가 약간 뿌리며 하늘은 칠흑같이 어둡고 주위에 듬성듬성 있는 RV들은 커튼사이로 희미한 불빛만 새어낼 뿐 음산한 주위 환경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차를 나와서 사무실, 매점, 화장실, 샤워장들을 돌아 다녔지만 세탁실은 보이지 않고 모두 문이 잠겨있고 인적도 드물다. 해변의 인적 드문 캠핑장은 을씨년스러워 미국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해서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어디에도 두 여자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차로 돌아와서 보아도 돌아오지 않아서 양형과 함께 다시 주위를 찾아 나섰다. 결국은 나중에 바닷가 쪽으로 외딴 곳에 Laundry 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직도 세탁작업 중인 두 사람을 찾아내고는 맥이 풀렸다. 그녀들도 세탁장을 찾아 헤매다 중도에 만난 독일계 남자에게 물어 이곳을 찾아 왔다고 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이기는 한데 캠핑장내 지도를 설펴 보았더라면 전혀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위치에 있는 이 세탁장을 바로 찾아냈을 터인데 하는 자책감에 부질없이 허비한 시간과 감성의 무게가 버거웠다.
조카 집에서 보낸 며칠
5 월 12 일 금요일
여행 일정을 일부 조절했다. 실제로 RV 를 몰다보니 상당히 움직임이 둔하다. 하루 평균 200 마일의 운행 계획이 생각보다 벅찼다. 기름 값도 만만치 않다. 예상에 기름 값만 5~6천불을 지불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두 가족이 이미 각기 여행한 바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 여행은 접고 , 오늘 뉴 햄프셔 뉴 마켓의 조카의 집을 방문하여 1~2 박을 한 후 바로 뉴욕 주를 거쳐 세난도 계곡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조카 집에서의 일정을 제외하고는 한 곳에서 1박을 원칙으로 하고 계속 움직여야 할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일정에 대하여 확신이 설 때 까지는.... 워싱턴도 여행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아침 8에 캠핑장을 나와 ‘아카디아 국립공원’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았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렸지만 비 내리는 가운데 숲과 호수와 바다 그리고 별장들과 해안의 요트들이 만드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미국 특히 뉴햄프셔와 메인 주에서의 호수와 숲은 분위기가 차분하고 깊은 맛이 있다고 새삼 느꼈다. Acardia Nat'l Park 내의 해변 부두에서
공원을 나와 어제의 길을 거슬러 메인 주의 길을 달린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때로 폭우로 변하곤 했다. 길은 넓고 차량은 많지 않았지만 큰 트레일러가 옆을 추월 할 때는 차 전체가 쏠리고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온몸으로 느낀다. 어제 양형 부부와의 협의로 한쪽이 운전 하는 동안 조수석은 운전자의 부인이 앉기로 했다. 실제로 운전 중에는 앞좌석 편안하고 경치를 즐기기도 좋은데, 처음에는 Mrs 양이 조심스러워 앞에 앉기를 꺼려했었다. 오늘은 잘도 참고 앉아 있다. 그리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준형이 사는 New Market 시는 포트 랜드 서쪽 33W 상에 있다. New Market 시에 들어 길옆에 차를 세워 놓고 전화로 조카를 불러 길을 안내하게 하려는데 경찰차가 찾아 왔다. 우리가 정차 한 곳의 인근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다. 탤런트같이 미끈하게 빠진 젊은 경찰이 경찰차에서 내려,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우리에게 길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설명이 긴 품이 우리가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러라고 하며 떠났다. 대학가라서인지 경찰은 젊고 매너가 좋았다. 비에 흠뻑 젖었을 경찰관에게 공연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카와 조카며느리가 달려오고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와 했다. 유아기에 핀란드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던 조카며느리는 미네소타 주의 작은 도시에서 자랐는데 양부모가 곱게 잘 키워내어 심성이 좋았다. 몇 년 전 미네소타 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행한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목수인 양외할아버지, 변리사이며 늘씬한 미녀인 양어머니가 그녀를 곱게 키워 냈다. 그들은 조카가 유학중에 학교에서 사귀어 결혼했다. 조카는 뉴햄프셔 주립대학에서 조교 일을 보며 화학 전공의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영문학 전공인 며느리는 대안학교 - 문제소년 특수학교 - 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말을 몇 마디 밖에 모르는 며느리와 서로 반 정도만 이해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달 전에 아이를 낳아, 시어머니가 된 처형이 마침 아이를 돌보러 와 있는데, 서로 언어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들이 우리 둘의 대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우리의 여행 계획에 대하여 그녀는 솔직하게 부러워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Manhattan 을 수학여행으로 처음 구경했다는 그녀는 그 때 생각에 아마 또 다시 못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마도 미네소타의 시골 청년과 결혼해서 시골에 박혀 지낼 것이라고 생각 했다는데, 지금은 여기 뉴햄프셔까지 와 있다고 소박하게 웃었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 조카며느리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동안 계속 크게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일정에 대해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5 월 13 일 토요일 하루 종일 비가 줄기차게 온다. 이 계절에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은 분명 이상 기온일 터이다. 서부는 고온, 동부는 저온에 폭우가 계속 될 것이라고 예보하고 있다고 한다. TV의 기상예보는 미 동북부 지역에 홍수 경보를 보도하며, 전년도들의 홍수 피해 화면을 내 보내며 홍수에 대비하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루 종일 집에 있기가 지루해서 준형의 차를 빌려 보스턴 시내를 관광을 하기로 했다. 준형의 말로는 편도 한 시간은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우중이어서인지 실제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 외출이 되었다. 보스턴 북서부 캠브릿지 구역에 있는 하버드 대학을 찾느라 약간 헤맨 것 이외에는 큰 낭비가 없었는데도 그랬다. Harvard Law School 구내에 주차를 하고 인근의 공원을 산책하며, 동상이 있는 풍경 몇 컷을 찍고 돌아왔다.
준형이 집에 돌아와서, 여자들은 처형과 조카와 함께 쇼핑을 나가 바다 가제를 사와서 저녁에 바다 가제로 포식을 했다. 1. 1/4 파운드 무게의 바다 가제가 마리당 7 불.
선영에게 전화를 했다. 내일 일본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일주일 여행이라고 한다. 전에는 여행사를 따라 가겠다고 했었는데 혼자 하는 여행이란다.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했단다.
세난도 벨리 5 월 14 일 일요일
요사이는 새벽 3시경에는 잠이 꼭 깬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는다. 묵주기도를 하고, 잠을 들려고 노력하여도 마찬가지다. 한 참을 왜 잠이 오지 않는가 싶어 일어나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누워 본다, 그리고 ‘그래도 역시 잠이 오지 않는군’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5시 반이었다.
밖엔 계속 비가 내렸다고 했다. 준형이 부부는 밤에 지하실에 물이 차서 퍼 내느라 잠을 설쳤다고 했다. 그러니 그 밤에 잠이 깬 것은 그 아이들의 부산스러움 때문 이었나 보다. 처형이 끓여준 김치찌개로 아침으로 먹고 쏟아지는 빗속에 여행을 출발 했다. 95 south 를 타고 495 S, 90 W, 87 S 80W, 209S를 거쳐 New York 근무 시절에 자주 들렀던 Pocono 산록 중의 Delaware Watergap National Recreation Area 에 있는 KOA 캠핑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경이다.
2시 경부터 비는 멎었다. 강우지역을 탈출한 것인지 비가 멎은 것인지 당시는 몰랐는데 처형과의 통화에서 그 후에도 뉴햄프셔 등 동북부 지역은 계속 큰비가 내렸다고 한다. 펜실베이니아 주에 이르니 주위가 넓어지면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오늘 운행 거리는 380 마일이다.
5 월 15 일 월요일
어제 잔 KOA 캠핑장은 이제까지 이용한 캠핑장 중 시설이 가장 열악했다. 그러나 화장실, 샤워장만은 정갈했다. 그것이 KOA 같은 체인캠핑장을 이용하는 장점인 것 같다, 화장실이나 샤워장에 표준 규격을 적용할 것이다. 어제 캠핑장에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대충 수습하고 우리 일행은 KOA 캠핑장 밖으로 나와 길을 따라 걸었었다. Pocono 산자락이어서 길이 자주 구비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 달려올지도 모를 차량에 신경이 쓰였다. 길옆에 피어있는 꽃이 귀엽다. 집사람은 꽃 양귀비라고 한다. 오늘 하이웨이를 달릴 때에도 목장과 경작지의 넓은 전원 풍경으로 연결 되는 도로가 초지에 같은 꽃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집사람은 “어머! 어머! 꽃 양귀비 참 예쁘다 ! ” 하며 신기해 했었다. 집사람 말이 맞는다면 야생 꽃 양귀비는 양귀비가 아니란 말인가. 아침 8시 조금 넘어 캠핑장을 나왔다. 209 S 를 조금 나오니 곧 80W 를 탈 수 있었다. 그 곳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달려 81W를 올라타면 이제 몇 일간은 그 길을 달리기만 하면 된다. 어제 운전 중에 운전석 위 Motorcab 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에 - 우리 부부의 침실이다 - 이불들을 헤치고 보니 밑에 물이 홍건 했었다. 담요도 젖고 바닥 밀실 같은 서랍에 넣어 두었던 책들과 이불 밑에 감추어 두었던 T/C 와 100 불짜리 현금들도 물에 젖어 축 늘어져있다. 우선 급한 대로 T/C 와 현금을 화장지 티슈 사이에 포개가며 습기를 제거하고, 책에는 쪽마다 종이 타월로 물기를 닦고 화장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매 쪽 마다 끼워 나갔다. 이 책은 지호 아빠가 여행 중에 보라고 사준 책인데, 읽기도 전에 물을 펑 먹었으니 면목이 없다. 집사람과 분업하여 물기를 닦고 말려가다 보니 어려서 읽은 링컨 대통령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소년 링컨이 이웃집의 책을 빌려 보는 중에 그만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 동안에 비가 쏟아져, 지붕이 새는 바람에 책이 모두 젖어 버렸다. 그래서 주인을 찾아가 사과하고 대신 일을 해 주고 용서를 빌었더니 책 주인이 기특하게 생각하여 책을 링컨에게 주었다나하는 교육적 이야기이다. 나는 책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비에 적셔 버렸으니 비교도 되지 못하겠지만 지금 미 대륙 동부 미국의 수도 Washington 시 옆을 스치면서 비에 젖은 책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으니 쓴 웃음이 나온다.
오전에는 비가 또 오다가 점심 경부터 해가 보이기 시작 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버지니아로 넘어 오면서 주위는 더욱 평평해지고 목장과 초원과 경작지가 광대하게 펼쳐지는 미국 동부의 부유한 농가 모습이 전개 된다. 도로변의 풀들은 마치 잘 다듬어 놓은 잔디밭 같이 정갈하고, 숲도 나무도 연하고 짙은 초록의 신록들이 천상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부럽다. 넓고 깨끗하고 평화롭고 풍요로운 풍경을 보며 미국에 대한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엄청나게 넓고 비옥한 땅이 적당한 인구와 함께 연출하는 풍요로운 조화가 우리나라, 중국 , 동남아 같은 동아시아권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되지 않는가. 요사이 우리나라는 중국에 편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젊은 층들의 반미주의 경향, 북한에 대한 포용 기조, 중국과의 교역의 증대와 상대적으로 커진 경제 실익, 다시 회복되는 동양 문화에 대한 자부심 등등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여기 미국의 부러운 모습을 보며, 정치역학적인 분석을 할 만한 자질을 갖지 못한 내 즉흥적인 생각이지만, 어쩐지 옳은 방향 설정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중국이라는 동양권의 괴물과 수천 년 동안 부딪치거나, 결속하며 엮어 왔던 문화적 정치적인 얼개가 무슨 향수의 대상이 될 만큼 로맨틱 한 것만이 아니었었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의 둔중한 역사 인식이 그들과 우리의 근대사의 고통의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 짧지만 서구의 가치관을 좆으면서 현재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면서, 이즈음의 작은 상황의 변화를 빌미로 후자와의 마찰을 초래하고 다시 전자의 그것에, 그것도 현실적으로 우리 보다 한수 아래인 그것에, 회귀하려는 것이 경향은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그들을 변화 시킬 역량을 아직 키우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과거의 굴레를 다시 스스로 쓰는 것은 아닐까. . 3 시경에 ‘룰레이 캐번’ 입구에 도착해서, 4시부터 5시 까지 동굴 관광을 했다. 20 년 전에도 보았던 곳이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약간은 인디안 피가 섞인 것 같았는데 몸매도 짱짱하고 발음도 좋다. 세난도 계곡 중간 지역에 있는 KOA 캠핑장에 자리를 잡았다. 캠핑장의 시설도 좋고 전형적인 미국 농촌이 펼쳐진 곳으로 먼빛으로 세난도의 스카이라인이 부담스럽지 않게 보이는 곳이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함께 캠핑장을 벗어나 농장 길을 산책 했다. 집집마다 키우는 송아지만한 개들이 우리를 보고는 호기심을 보인다. 의외로 바락바락 달려들지 않고 컹컹대다가 주인의 경고 한마디에 고개를 숙이고 꼬리를 흔든다. 날씨는 온화하고, 서쪽 지평에는 황혼이 걸려 있고, 굽이치는 초원에는 말들이 늦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들어와 포도주를 한잔씩 하고 샤워를 하고 각자 침대에 누웠다. 5 월 16 일 화요일
전날 잠을 푹 잤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다시 차를 북쪽으로 몰아 Shenandoh Nat'l Skyline Dr. 의 북쪽 기점인 Front Royal 에서 Skyline Dr. 을 타보기로 했다, Skyline Dr. 은 길이만 100 마일이 넘는다. Front Royal 로 가는 길은 양형의 의견에 따라 81번 Interstate 를 버리고 Local 11N 를 탔다. 주위의 전원 풍경이 아름답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10시에 Skyline 북쪽입구에 들어섰다. 진입 초반부터 차도 위에 노루 한 마리가 버티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주춤 거리자 옆 숲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버린다, 뽑은 칼로 호박이라도 자르듯 숲 안의 노루라도 찍으려고 좋은 포커스를 맞추려고 했지만 계속 움직여 결국 서둘러 셔터를 눌렀으나 나무 등걸에 삐져나온 꽁무니만 찍어 댄 꼴이 되었다. Sky Line 초입에서 길을 막던 노루
Skyline Drive 내의 제한 속도가 35 마일인데, 길이 왕복 2차선으로 계속 굽이치며 돌아, 아무리 빨리 가려해도 그 이상을 낼 수 없을 정도이다. 곳곳의 높은 조망이 가능한 Overlook Post 에서는 갓길을 넓게 만들어 잠시 멈추어 세난도 계곡의 조망을 즐길 수 있다 . <세난도 계곡> 입구 안내판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장군이 세난도 계곡을 잃으면 버지니아 전부를 잃는 것이라며 부하 직원을 독려 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렇게 이 세난도 계곡이 그 아름다움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적지임을 설명하고 있었다. 미국 어느 곳에서든 Historical site 라는 표현을 강조 하는 곳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는데, 관광청은 아름다움으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좌표를 제시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북동에서 남서로 길게 벋은 Skyline Drive를 타면 그 북서쪽 방향 저지대를 세난도 계곡이라고 하는데 눈으로 보아서는 무엇으로 계곡이라고 하는 지 종 잡을 수가 없다. 지도로 보면 그 계곡은 세난도 산맥 또는 George Washington Nat'l Forest Mts. 가운데를 북동에서 남서로 나누고 있는 긴 평야 지대가 되는데 그 폭이 넓은 곳은 20 마일이 넘으니 우리 눈에는 제법 큰 평야지대로 보이며 그 계곡 맞은편의 산맥은 봄날의 아지랑이 때문인지 육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신록과 단풍> Skyline Dr. 의 정상부분의 평균 높이는 1,000 m 수준이다. 버지니아 주가 한반도 보다는 남쪽이다 보니 산 아래쪽은 한국의 5~6월 같이 신록이 무성하지만 Skyline Dr. 주변은 아직도 마른 가지에 연초록의 새잎들이 아직 늦가을의 까칠한 질감을 보이는 산등성이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양형이 누군가가 ‘초봄의 새잎의 색깔이 단풍의 색깔과 같다’ 더라고 쓴 글을 읽었다는 말을 했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의 삶에 비유한다면 어렸을 때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노년의 그것을 결정한다는 말인데 인간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인간의 경우 수양이라든가 교육이라든가 그 후의 삶의 질 등이 변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의 모습이 어렸을 때의 모습 그대로 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성공한(?)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루고 싶은 나의 노후의 모습. 나의 단풍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한 3시간 족히 걸려 Skyline Drive 를 완주하고, 다시 Blue Ridge Parkway 로 접어들었다. 다시 두 시간 여를 산마루 길을 달리다 보니 멀미가 나고 지루해졌다. 벗어난 것이 4 시가 되어서이니 6 시간동안 산길을 달린 것이다.
<사슴> 중간에 사슴 두 마리가 도로가의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차를 멈추고 양형이 캠코더를 들이 대는 동안에도 사슴은 신기한 듯 고개를 들어 호기심 어린 매력적인 눈으로 포즈를 취해 준다. 집사람이 비스킷을 주겠다고 부스럭 거리는 것을 제지시켰다. 공원 입구에 절대 주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 Natural Bridge> 버지니아의 Natural Bridge 는 20 년 전에도 본적이 있는 것 같다. 기억에 그때의 느낌도 별로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입구에는 걸맞지 않게 상가들이 즐비하게 입주한 거창한 건물을 지어 놓고, 1인당 12 불씩 입장료를 받는다. 거대한 아치형 다리가 자연의 모습이라는 것이 경이롭기는 했지만 두 번 볼만큼 신비롭지는 않았고, 경내의 인디안 마을이라는 설치물도 마치 우리의 암사동 신석기인 주거지 의 그것처럼 실속 없이 꾸며져 있었고, 관람 시간도 지나 빗장이 잠겨 있어 울타리 밖에서 조금 살피다가 하릴없이 폭포까지 약 1km 정도를 걸으며 본전을 뽑으려 했지만, 폭포도 별 특성이 없었다. 미국에도 한국보다 못한 것이 있다고 일행들에게 농을 던졌다. Verginia 의 Natural Bridge. 미국인들은 Natural Bridge 를 무척 좋아 하나 보다 곳곳에서 Natural Bridge 를 그들의 관광 상품화 하고 있다.
인근의 KOA 캠핑장에 들었다. 여자 관리인이 친절하고, 관리인의 지시로 저쪽에서 땅을 파고 있던 두 소년이 일을 중단하고 전동카를 몰아 우리를 우리 자리로 안내 해 주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이들에게 팁을 주려고 했더니 받으려 하지를 않는다. Tip 을 거절하던 소년들의 잘 생기고 당당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스모키 마운틴 5 월 17 일 수요일 <미국의 힘> 미국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은 미국이 참 구김 없이 크다는 것이다. 대지가 구김 없이 크고, 길도 구김 없이 곧게 벋어 있고, 산도 평야도 수풀과 호수와 강도 모두 구김 없이 활짝 제 나래를 펴고 있다. 주택들도 바르게 앉아 있고, 인간들도 올곧아 보이고 당당해 보인다. 캠핑장에서만나는 은퇴한 노인네들도 그 육중한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게 구김살이 없고,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하고 곧은 체형과 곧게 솟은 코, 그리고 당당함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그래서 그에 반대편에 섬이 왜소하게 느끼어지고 어딘가 옹이가 진 것 같은 그런 콤플렉스를 느끼게 한다. 이런 미국의 마력의 원천은 무엇일가. 그리고 20세기 중기부터 최강국을 자랑하여 오 던 미국이 차츰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데 그 힘의 생멸의 원천은 무엇일까. 어쨌거나 그런 현재의 미국도 나에게는 부러운 나라이다.
<목장의 소떼> 버지니아 주에는 특히 농경지의 풍경이 평화롭다. 푸르고 크게 구비치는 초원에 소들이 마치 넓은 초지에 검은 자갈이 박히듯 촘촘히 미동도 하지 않고 박혀 풀을 뜯고,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초원 저 멀리 언덕위에 농장주의 단출하지만 당당해 보이는 전원주택이 앉아 있는 모습은 무한한 동경의 대상이 됨직하다.
비교되는 감회를 히말라야 트래킹 중에도 느낀 적이 있다. 칼날 같은 설산에 둘러싸인 좁은 분지 내 돌담이 쌓인 눈 덮인 작은 공터에서도 야크들이 저런 모습으로 몸통은 미동도 하지 않고 주둥이로 덮인 눈을 헤집으며 마른 풀뿌리를 찾고 있었다. 그 때는 이 추위에도 참 꼼짝도 않고 서 있구나 하고, 그들의 생명력에 애틋한 정을 느꼈었다. 아침에 캠핑장을 나와 바로 81 S 를 타고 스모키 마운틴으로 이동한다. 캠핑장으로부터 200 마일 정도를 서남쪽으로 달리면 버지니아와 테네시의 경계 도시인 Bristol 을 지나고, 그곳에서 Knoxville 로 진입하기 전에 66 번 도로를 타고 동진하면 Smoky Mts 에 닿는다, 우리의 목적지는 Smoky Mts 진입 직전의 제법 번화한 마을인 Pigeon Forge 에 있는 KOA캠핑장. 캠핑장은 이 시내에 있다. 우리의 캠핑장 옆으로는 마을길이 지나고 캠핑장에 붙어 Patriot Park 이 있다. 우리로 보면 지리산 입구의 구례 하동 남원 정도라고나 할까. 주위에 의외로 많은 쇼핑센터와 식당 오락 시설들이 몰려 있다.
그런 것들이 가까이 있는 곳이라 캠핑장 사용료가 다른 곳에 비하여 20 % 정도 높다. 그리고 비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캠핑장은 많은 RV 로 붐볐는데 반갑게도 우리가 빌린 같은 종류의 Elmonte RV가 두 대나 보였다.
스위스에서 날아와 올란도에서 Elmonte RV 를 빌려 2주간 여행 하고 있다는 부인이 반가워하며 아는 척을 한다. 작년에도 Yellowstone 을 갔었다고 한다. 우리도 스위스 여행을 했던 경험을 이야기 하니 스위스의 지명들을 대며 가본 적이 있느냐 물으며 반가와 했다.
캠핑장에 들기 전에 부인들이 월마트에서 식품과 생필품을 샀다. 특히 집사람이 정열적으로 배추 오이 고기 등, 거의 두 카트 가득 식품들을 사 모았다. 물론 벌써 그동안 집사람이 만들었던 오이김치 양상추김치 장조림 등이 거의 동나기는 했지만, 여자들은 역시 그런 부분에는 남자들보다 현실적이고 행동적이다. 그렇게 바리바리 사 온 재료는 겨우 2시간여 만에 집사람과 Mrs 양의 손에 오이김치 배추김치 육개장, 장조림 등으로 바뀌어 구석구석에 저장되었다.
우리 남자는 그사이에 캠핑장 안에 있는 바비큐 틀에 불을 피우고 등심을 구웠다. RV 옆에서 가든 고기 파티를 하는 것인 이번 여행에서는 처음이다. 식사 후에 함께 캠핑장 옆의 Patriot Park 을 거닐었다. 큰 원형 잔디밭 가장이로 보행 도로를 만들고 한 구석에는 제 2차 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에서 죽은 이곳 출신 젊은 병사들을 추모하는 기념 비문을 세워져 있다. Manhattan 의 Battery Park 에서의 한국전쟁 기념공원과, Washington 에도 있는 같은 종류의 조형물들을 생각하며, 현대사에서 한국과 미국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의 무게 - 이제는 해석을 달리하는 경향도 있지만 - 가 가볍지 않음을 느꼈다. 5 월 18 일 목요일 <여행 중의 식사 > RV 옆에서 식사 준비하는 모습
이번 여행 중의 식사는 정말 만족스럽다. 우리 부부가 미국에 근무할 때에도 여행할 때 이렇게 잘 먹지 못했다. 아이들이 5살, 2살 때였으니 승용차 뒷좌석을 담요나 옷 보따리로 틈을 메워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서 두 아이들이 눕거나 놀게 하며 다녔었다. 번거롭기도 했고 작은 차 트렁크 안에 텐트, 에어매트리스, 전기담요 등의 침구와 아이스박스 취사기구들을 빠꿈이 채워 갖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사실 먹는 것에 호사를 부릴 수 없기도 했는데, RV 는 냉장고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싱크대까지 완비 되어 있고, 차 안팎으로 저장 공간이 넓어. 필요한 만큼 사서 필요한 만큼 저장할 수 있다. 특히 집사람이 20 년 만에 다시해보는 미국여행에 고양되어 Mrs 양과 호흡을 맞추어 각종 김치와 요리를 만들어 사실 한국에서 보다 더 한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다니고 있다.
오늘 저녁은 돼지갈비를 넣은 김치찌개, 야채류와 Jicama - 멕시칸 샐러드의 재료로 양파 같은 모습이나 맛은 감자와 비슷해 Mexican Potato 라고도 하는 샐러드 재료 - 를 곁들여 샐러드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여행 중 음식이 가장 문제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다.
<미국인의 비만문제> 미국 중년의 비만 문제는 심각해 보인다. 거의 터질 것 같은 몸매가 의외로 많다, Bad Land Nat'l Park 에서 찍은 모습
이번 여행에서 특히 느끼는 것은 미국인의 비만문제의 심각성이다. 약간 과장을 한다면 아이들의 경우는 제외로 하고 성인의 경우 60 % 이상이 우리 기준으로 하면 굉장한 수준의 비만이고 그 다섯 명 중의 한명은 마치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은 듯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 엉덩이와 종아리를 가지고 있어, 마치 바늘로 살짝 찌르기라도 한다면 바람이 피시시 빠질 것 같은 그런 정도의 심각한 비만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느낌은 20 년 전 내가 미국에 근무할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그 당시에 내가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아서 일까... 그 당시, 햄버거 등 Junk Food 로 예상되는 폐해에 대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글들이 언론에 많이 등장 하곤 했는데, 그 때 무분별 했던 사람들이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일까... 여행 중 캠핑장에서 만나는 은퇴한 노인들, Rest Area 에서 만나는 여행자들, 트럭기사, 때로는 아이들까지, 저런 몸으로 어떻게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어쩌면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소외된 사람들, 대중매체의 충동적인 논조에 오락에 정신과 몸을 맡겨 버린, 자기 관리조차 할 의지가 없는 계층들이, 구하기 쉽고 달고 싼 Junk Food 까지 곁들면서 만드는 미국의 어두운 면으로 보인다. 실제로 TV 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있는 몸매의 미국인은 10 % 에도 한참 미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정보와 오락의 생산자 역할을 하며 부도 독점하고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그저 방심하고 미국의 영광과 풍요에 취해 있는 대중 군상들이 아닐까. 루즈벨트 대통령이 Smoky Mts 국립공원 축하 연설한 연단
스모키 마운틴의 Pigeon Forge KOA 캠핑장을 나와 441S 를 타고 Smoky 국립공원에 들었다. 입장료는 안 받는다. Smoky Mts Nat'l Park 는 미국 최초로, 민간인이 토지를 기증하여 국립공원으로 지정( 1940 년) 된 곳이라고 한다. 산을 가로지르는 New Found Gap Road 의 정상부분에(1,538m) 연단 같이 설치된 조형물이 있는데 설명이 있다. Smoky Mts 국립공원 조성에 필요한 1천 2백만 달러의 자금 중 록펠러가 5 백만 달러를 기증하였다는 것과, 이 국립공원 지정일인 1940년 9월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축하연설 하였다는 것. 그 연단 뒤쪽으로 Appalachian Trail 이라는 거리가 1.6 마일 정도 되는 짧은 등산로가 있는데, 한번 걸어볼까 싶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해서 하지 못했다. 지역성 강우인 듯한데 비는 우리가 산속에 있는 내내 계속 줄기차게 내렸다.
Cherokee Indian Reservation 의 인디안 박물관 정원에서 Cherokee Indian Reservation 에 들러 인디안 박물관과 공예품 전시실 등을 둘러 보았다. 인디안 마을도 참관하였는데, 배불뚝이 체로키 인디안 남자가 그들의 지난 생활모습 - 천 짜는 모습, 질그릇 만드는 모습, 무기 만드는 모습, 입으로 부는 화살의 시연 등 동료들의 행동을 일일이 설명하며 안내한다. 우리의 전통 생활 모습의 시연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살리게 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인데 이들의 것은 무었을 의미 하는 것일까. Cherokee Indian Reservation 인디안 공예품 전시실에서
Cherokee 인디언은 여기 북 캐롤라이나 주 뿐 아니라 켄터키 주까지 진출한 큰 부족이었다고 한다. 사실 Indian Reservation 을 나와 오늘 저녁 머무를 조지아 주 의 Chattanooga 까지 의 여정에서 계곡과 숲에 체로키어에 기원된 것이라는 지명이 많아 당시 상당한 세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큰 인디안 왕국은 허물어지고, 모두 배불뚝이가 되어, 내리 깔은 눈길로 관광객을 위해 그들 조상의 삶의 모습을 시연하고 있는 그 후예들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땅과, 정신, 그리고 기력까지 모두 빼앗긴 듯.
인디안 보호지로부터 차타누가까지의 지방도로는 숲과 강이나 호수가 펼쳐지는 150 마일의 아름다운 길이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4시간 정도 달려 차타누가 KOA캠핑장에 도착했다. 애 틀 랜 타 5 월 19 일 금요일 며칠 전부터 여행 초기의 흥분을 진정시키고 아침에는 캠핑장 주변을 산책하고 스트레칭 등으로 몸을 풀고 저녁에는 책을 조금씩 읽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잡은 책이 남영진이 여행 중에 읽어 보라고 준 법정스님의 잠언집이다. 이 책은 엮은이 류시화씨의 권두문이 일품이다. 특유의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법정스님의 행동과 말씀을 기술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잔뜩 돋운다. 그러나 정작 법정스님의 잠언에 들어서는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메말라 , 첫맛으로는 스님들의 진부한 상투적 말씀 같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다. 그래도 제법 정좌를 틀고 앉아 정독을 하면 그 단맛이 조금씩 스미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는 한다. 저녁에 책을 읽는 것은 하루의 운전과 차의 흔들림으로 피곤해진 터에, 저녁을 먹고 맥주라도 한 캔 들고 나면, 다소 무리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것이 앞으로의 약 50일 남은 여정에서의 나와의 약속이다.
일찍 일어나 캠핑장을 한 바퀴 돌았다. 새벽공기는 제법 차서 어제 여름옷으로 갈아입으며 맨몸에 한 장 걸친 등산용 반팔 티셔츠가 찬 기운을 막아 주지 못한다. 한 5~6 만평정도 될까. 제법 많은 RV 여행객들이 입주해 있고, 상당 RV는 주인 없이 정박해 있기도 한다. 아마 보관료를 받고 차량 소유자로부터 맡겨져 있는 것일 것이다.
말 운반용 마구간 트레일러를 끌고 여행하는 미국인 이번 여행을 하면서 미국인들의 물질적인 부가 - 어쩌면 소비에 국한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 도를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어마어마하게 큰 대형견인차량이 30~ 40 피트는 족히 됨직한 RV 차량을 끌고 오는데 그 뒤로 승용차나 때로는 말 운반용 마구간 트레일러를 달기도 하고, 애완견과 화분 등을 가득 싣고 다니는 부부들을 발견 한다. 애완견과 화분 따위는 그렇다 쳐도 말까지 달고 다니는 것은 심하다 싶었다. 말은 물론, 말먹이 등등이 적재 되어야 하는데 .. 하기는 세난도 의 Skyline Trail 이나 Smoky Mts 의 오솔길을 말을 타고 트래킹 한다면 그 것보다 더한 멋은 없겠지만 그 순간들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들이 그 효용에 비하여 나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은 챠타누가 시외에 있는 Rock City 를 관람했다. 안내 브로셔 앞면에 큰 절벽위에 올라 아래를 조망하는 사진을 보며, 조망이 좋은 큰 등산길로 생각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산의 자연 상태의 암석 지형에 인공조형들을 곁들여 만들어 놓은 개인 정원 급의 관광지였다. 마치 우리 남해의 외도와 같은 조망 좋은 곳에 설치한 인조 공원이다. 7개 주를 조망 할 수 있다는 정상 벼랑 외에는 별 것이 없어 1인당 15불의 입장료가 아까웠다. Ruby 폭포는 나는 보고 싶지 않아 차에 남아 있었고 집사람과 양형 부부만 관람하고 왔다. Rock City 전망대 위에서 7개주를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75 S 를 타고 애틀랜타로 향했다. 애틀랜타에서는 Stone Mt. 을 우선 보고 한국 쇼핑몰이 있다는 Buford 를 들러 한국식품을 마련할 계획이다. 중간의 휴게소에서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노부부와 젊은 여자와 어린 아이들의 가족 구성으로 보아 유학생 부부가 한국에서 온 부모를 안내하고 다니는 모습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이 접근하여 한국 상점들에 대한 정보들을 얻는다. 여자들은 이런 장면에서는 항상 현명하다.
Stone Mts 는 애틀랜타 시 외곽순환도로인 285 와, Stone Mt Freeway 를 타고 Exit 8 로 나가면 된다. 큰 대머리 모양의 둥근 알바위의 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를 호수와 숲이 감싸고 있는 범상치 않은 모습이다. 바위산 북벽으로는 말 탄 장군들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 있는데 아마 남북 전쟁 당시의 장군들의 것일 것이다. 공원 내에 나무가 짙게 우거진 호수 변에 캠핑장이 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값도 비싸지 않은 33 불이다.
캠핑사이트를 확보해 놓고 한국 상점을 찾아 나섰다. I-85N 104 exit 으로 나서서 좌회전하면 H-mart 가 있고 109 exit에서 나와 좌회전하여 Old Peach Tree Rd. 상에는 Assii가 있는데, Assi 가 더 크다는 것이 유학생 주부의 조언이란다. Stone Mt. 공원 둥근 바위 앞면에 새겨진 부조는 남북전쟁 당시의 장군들의 기마상이다.
Assi 는 정말 큰 한국식 Shopping Mall 이다. 그 몰 전체가 한국인에 의해 한국인을 위한 상점들인 것 같다. Super Market 뿐 아니라 은행, 치과 한의원 하물며 노래방까지 없는 것이 없다. 한국인들이 애틀랜타로 많이 진출한다는 것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졌다. 5 월 20 일 토요일
어제 Stone Mt. 캠핑장에는 저녁이 되며 RV 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대도시 교외에 있는 지리적 여건에 자연 환경이 받쳐 주니 주말에는 애틀랜타 시민들의 좋은 휴식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가 우리가 타고 있는 25 Ft RV 보다 큰 차에 자전거, 개, 바비큐장비, 의자, 탁자, 장의자 등에 차양까지 설치하고, 차양 끝에는 밤에 오색 깜박등까지 널어놓는 호사를 피운다. 이들은 에너지 절감이라는 것에 둔감한 것일까. 밤새도록 그 등을 켜놓고 에어컨을 틀어놓고 밖에서는 장작을 태우면서. 가족끼리 대화이니 아마 수십 번은 우려먹었을 신변잡화를 늘어놓으며 밤늦게까지 흥청거린다. 나는 10시가 넘어오니 하루 피로가 몰려들어 샤워하러간 집사람이 올 때 까지는 묵주 기도나 드리며 기다리자며 누어 있다가, 아마 사도신경도 마치지 못하고 잠이 들었나 보다. 호수와 Stone Mt. 원경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캠핑장 조망
아침 6시까지 푹 잤다. 다행이 전날 저녁 에는 지쳐서 가늠을 못하다가도 아침이 오면 몸이 가벼워지며 정신이 맑다 . 캠핑장 주위를 한 바퀴 산책했다. 우리가 머무는 사이트는 호숫가이고 호수 건너에는 큰 민 대머리 바위산인 Stone 산이 숲으로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풍경이 아침 햇살에 더욱 아름답다. 아침햇살이 호수 면에 반사되어 흩어지고 햇살을 머금은 호반의 나무들이 다시 그 수면위에 투영되어 도립하여 있다. 호반 어느 움푹진 구석에선가 아침 정적을 깨며 거위 한마리가 꺽꺽거리고 있다.
참 좋고 부럽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동경하여 미국으로 이주하려하는구나.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한국에서 여기까지의 1 인당 비행기 요금이 왕복 100 만원이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부부 기준으로, 한국인으로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과, 미국인으로 이렇게 여행 다니는 것의 비용 차이가 겨우 200 만원에 불과 하다는데 생각이 미쳐 작은 위안을 주었다. 9 시 반쯤 캠핑장을 나와 I-75S 를 타고 남으로 달린다. 조지아 주는 정말 광활한 땅이다.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막힘이 없다. 길은 가끔 상하로 작게 출렁이면서 넓은 평원으로 직선으로 달리고 있다. 양 옆으로는 활엽수로 아마 방풍용일 수림대를 조성해 놓고 중앙분리대는 초록빛 카펫을 깔아 놓은 듯 넓은 풀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길 위를 차들이 달리는 모습이 마치 모형 자동차가 경주하는 것 같이 깜찍하게 보인다. Stone Mt. 공원의 아침 산책길
조수석에 앉아 있는 집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나의 주위를 환기 시켰다. 옆 차선에 송아지 크기의 사슴 한 마리가 죽어 넘어져 있었단다. 도로변의 수림대와 길 사이에는 길을 따라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어떻게 그 철조망을 넘어 들어와 그런 꼴을 당했을까. 더구나, 중앙선 벨트 가운데에는 차단벽까지 설치되어 있어 일단 무슨 수를 써서 들어온 동물은 자기 힘으로 넘어 가거나, 다시 돌아 나가는 것이 어려워 참사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사슴은 어떤 놈이었을까. 보호망을 속박의 망으로 생각하고 탈출을 생각한 철부지였을까. 원래 자기가 속해 있는 반쪽의 세계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일 수도 있는데 철조망 너머, 저 위험한 찻길 너머의 초원이 동경의 대상이었을까.. Rest Area 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을 가는 짧은 시간에도 햇살이 귀찮을 정도로 따가워 졌다. 우리는 I-75 번 도로를 타고 Macon, Valdosta 같은 귀에 익지 않은 도시를 지나 플로리다 주에 들어섰다.
플로리다의 여정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막연히 Key West 까지 달려갔다 오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편도 600 마일 거리를 달려가기에는 큰 매력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플로리다 반도 북동안의 St. Augustine Beach를 목표로 하고 차를 몰았다. I-75 도로와 I-10 도로를 달려 제법 큰 도시인 Jackson Ville 을 지나 I-95S 로 30 마일을 더 가면 된다.
Jackson Ville 을 남으로 우회하는 I-295 가 일견 내해인지 호수인지 분간 할 수 없는 넓은 물을 건넌다. 유선형 다리가 비스듬히 솟구쳐 오르다가 중앙에서 다시 한 번 솟구치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려오는데, 달리는 차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밑의 검푸른 바다와 대안 섬의 풍광과 그 건너편의 대양을 관망 할 수 있는 기막힌 다리이다. 대안의 땅도 폭이 넓은 엄연한 육지 인데 마치 항해 중에 가로 막는 긴 섬 같이 느끼어 진다,.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St. Augustine Beach 는 St Augustine 시에서 남쪽으로 약 10 마일 거리에 있는 작은 섬에 있다. KOA 캠핑장에 자리를 잡고 저녁 식사 후에 함께 해변을 걸었다. 해변까지 3/4 마일로 가깝지 않은 거리를 걸어 어둠 속에 걷는 해변은 또 다른 맛이다. 거대한 바다, 넓고 두터운 모래사장, 그리고 파도 소리. 백사장에 앉았다. 흰 모래가 정말 곱다. 이 바다에는 모래층의 유실도 환경의 파괴도 없는 것 같다. 어마어마한 량의 이 모래를 수입한다면 우리의 건축용 모래 부족 정도야 이 해변 하나 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모래사장이다.. 아름다운 플로리다
5 월 21 일 일요일 함께 여행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들 조금씩 지쳐 있다. 이 여행 자체가 낯설기도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생면 부지였던 두 부부가 한 공간에서 숙식을 함께하니 상당한 이해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씩 서운해지는 구석들이 생기는 것을 숨길 수 있다. 이제 2주가 경과했고 앞으로 6주가 더 남았는데 어떤 때는 가끔 내가 너무 무모한 계획을 추진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실험적인 공동생활로나 간주 되었을 이런 여행을 가볍게 생각하고 시작 하였으니...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에는 마치 마른 땅 한구석에서 샘물이 솟구치듯 주고 받는 한마디에서 다시 서로의 관계와 약속을 일깨우게 되고 다시 공동생활을 계속할 활력을 얻는다.
플로리다의 해변은 푸르고 넓고 뜨거웠다. 어제 많이 지쳐 있었고, 플로리다에서 어떻게 지낼까에 대한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늦잠도 자고 아침도 늦게 먹고 하며 시간을 끌었다. 결국 해안가를 한번 다시 둘러보고 다른 매력 포인트를 찾지 못하면 서쪽 Lake City 로 이동하여 Swanee River Family Center Park에서 일박하고, 플로리다 반도를 서쪽으로 넘어가자는 결론을 내리고, 10 시 넘어 일단 St. Augustine 섬 해안을 다시 둘러보기 위해 캠핑장을 나왔다.
운전하던 양형이 백사장으로 열린 좁은 길로 급히 차를 꺾었다. 밖을 내다보니 백사장을 차로 달릴 수 있다는 안내와 입장료 수납 부스가 있다. 우리 차가 너무 커 어떨까 하는 망설임이 있었지만 수수료 징수 직원이 별말이 없어 방심한 것이 오늘의 해프닝의 시발점이 되었다. 차들이 많이 다녀 다져진 모래 부분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일단 들어갔으니, RV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라도 한잔하는 멋을 내야겠는데, RV 의 차창이 바다 반대편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운전석에 올라 차를 돌리려고 차를 꺾는 순간부터 차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마치 마술에 걸리 듯 액셀을 아무리 밟아도 엔진은 도는데 바퀴는 꼼짝도 않는다. 헛바퀴가 도는 것이 아니고 꼼짝을 않는다.
내려서 보니 바퀴가 모래에 조금 박혀 있었다. 처음에는 바퀴가 약간 묻혀 있어 그러려니 하고 바퀴께의 모래를 약간 긁어내고, 나무판자 따위의 힘받이를 대면 빠져 나올 것으로 생각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상하게 엔진의 동력이 바퀴에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 RV 차의 무게가 트럭만큼 무거운데도 오토트랜스 미션 이어서 고운 모래와 밀착된 바퀴의 증가된 마찰력을 극복할 만한 바퀴의 회전력을 트랜스미션이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을 판단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쩔쩔 매는 것을 본 인근의 60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점잖은 노인이 밧줄과 플라스틱 장난감 모래 삽을 들고 와서 그냥은 안 되고 4 륜구동 차로 끌어내야 한다며 구원의 손길을 뻗혀왔다. 아직도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우리는 여전히 그 장난감 플라스틱 삽만 빌려, 바퀴 앞뒤의 모래를 파낸다, 힘받이를 댄다 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참다못한 그 노인이 지나가는 4 륜 구동차를 세워 차량 뒤의 걸개에 밧줄로 묶고 차를 끌어내도록 시켜, 우리를 사지에서 구해 내 주었다.
그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나니 정작 도와준 그 4륜 구동차는 가버려 인사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그런데, 아차 차가 다시 꼼짝을 하지 않는다. 차를 뒤로 끌어 낸 후, 차의 운전석에 올라앉은 양형이 진행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앞바퀴를 틀어 놓은 것이 다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는데도 그 노인은 우리 곁을 지켜주며 같이 있어 주었다. 결국 또 주위에서 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젊은 부인이 전화를 걸어, 아마 그 부인의 남편인가 싶은 남자가 구동차를 몰고 와 우리를 다시 구해 주었다. 그 와중에 나는 모래를 파낸다며 그 노인이 가지고 온 아이들 장난감 플라스틱 삽의 목을 부러트렸다. 나는 황급히 노인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며 20불을 붙여 삽을 돌려주었는데, 노인이 막무가내로 사양하며 가 버렸다. 결국 완전하게 일방적으로 신세를 지고 상대방에게 피해만 준 우리는 한참을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 두 젊은 남녀에게만 감사를 표했는데 이때는 거의 자제력을 잃어, 영어를 했는지 뭐를 했는지 모르겠다. 거의 정이 떨어졌지만 커피나 한잔하고 나가고 싶었는데 양형은 그냥 차를 밖으로 뽑아내어 Lake City 쪽으로 차를 몰았다. 스티븐 포스터 가족공원 박물관을 관람하다 스티븐 포스터 가족공원은 스와니 강 상류 계곡 옆에 있는 포스터 기념 공원이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 면적에 기념박물관과 종탑 - 차임벨 타워 -, 잔디밭, 수공예품 판매점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종탑에서는 오후 2시와 4시에 포스터 음악을 차임벨로 들려준다는데, 관람객들은 종탑 앞에 펼쳐진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박물관 내에는 포스터가 사용했던 책상등과 그 시대의 피아노 - 포스터가 사용하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 와 집기들을 모아 진열 하고 있고, 벽에 감실형태의 전시공간에는, Diorama 기법이라고. 포스터 음악 에 따라 움직이는 풍경이나 인형이나 모형들을 만들어 설치하였는데, 일테면 “Camptown race" 전시공간에는 포스터의 Camptown race 음악에 따라 기수가 탄 말 모형이 움직여 달리게 하고 있는데, 기수와 말의 움직임, 풍경의 원근, 입체감과 운동감을 교묘히 조화시켜 사실감 있게 묘사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인상적이다. 자료의 부족을 기술적으로 보강하고 있는 것 같다.
박물관을 지키는 직원은 점잖게 생긴 노인이었는데,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 무료 했음인지 들어 올 때부터, 직접 문밖까지 나와 영접을 하고, 곁에 붙어 일일이 설명을 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내가 공원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이런 곳에서 그 나이에 근무를 하는 그가 부럽다고 했더니 ‘세상의 번거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일하고 있어 즐겁다며 호쾌하게 웃는다.
포스터는 1826 년 7월 4일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형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의 회계원으로 일하며, 20세에서 37세에 무일푼으로 죽을 때까지, 200 여곡 이상을 음악을 작곡했다고 한다. 스와니강, 올드 블랙 죠. 등등 . 의외로 관리인이 호의로 틀어 주는 포스터의 음악의 대부분이 우리가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흥얼거렸던 음악이어서 놀랐다,
포스터의 곡 ‘스와니 강’ 은 플로리다 주의 주가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포스터는 플로리다에 온 적도 없다고 한다. 그는 아마 피츠버그의 공장지대에서 인부로 일하고 있는 각 주에서 온 일꾼들의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했나 보다. 역시 천재의 삶은 범상치가 않다고 생각했다.
공원구역은 스와니 강 상류로 연결 된다. 스와니 강은 이곳 플로리다 북부 지역에서 기원하여, 반도의 중서부 해안으로 굽이쳐 흐르는 큰 강이다. 상류 지역인데도 물 색깔이 검푸르렀다. 상류지역이고 인근이 숲인데 왜 물이 검푸를까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캠핑장의 젊은 여직원은 Cyprus 나뭇잎의 탄닌 성분 때문이라고 하며 ‘건강에는 전혀 해롭지 않은 거예요’ 하고 강조한다. 하기는 강안에서 아이들이 물에 뛰어 들며 놀고 있었으니 그렇겠지 싶다.
오늘 밤은 스와니 강변에 있는 Swanee Valley Camping Resort 에 묵었다. 캠핑장이 잘 정리 되어 있고, 값도 저렴해서 1 박에 28 불 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저녁에는 LA 갈비와 쌈으로 포식을 하며 맥주를 마셨는데, 오늘 해변에서와 기념 공원에서 모자도 쓰지 않고 다녀서 인지 더위를 먹어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세 사람이 밖에 산보를 하는 동안 RV 안에서 에어컨 을 틀어 놓고 책을 읽으며 몸을 식혔다. 스와니강 상류의 물은 맑지 않고 검푸르렀다. Cyprus 나뭇잎의 탄닌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Panama City Beach 5 월 22 일 월요일
아침에 캠핑장을 나서 98 번 도로를 타고 플로리다 북서 해안을 타고 유명한 휴양지 Panama City 쪽으로 달린다. 98 번 도로는 편도 1차 , 왕복 2차 도로로 초반 내륙 부분은 숲 사이로 미국에서는 드물게 좁은 한적한 도로가 곧게 뻗어 나간다. 도로 폭을 감안 할 때, 처음에는 제한 속도가 아마 45 마일은 넘지 않으리라 생각는데, 의외로 55 마일이나 된다. 길은 정말 한적하여 우리가 1 시간여를 달리는 동안 우리가 만난 차량은 트레일러 3대 밖에 없었다. 눈같이 하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던 요정 같은 소녀
98 번 도로의 후반은 카리브 해안을 끼고 서쪽으로 달리는 해안 도로이다. 순백의 하얀 모래사장과 파란 바다, 그리고 1층을 피로티 처리한 목조 조립식 전원주택이 부호들의 해안 별장인양 아름답고 사치스럽다. 1층 피로티 부분에는, 승용차와 요트를 정박 시켜 놓고, 2층부터 주거 공간으로 사용 한다. 파나마 시티 비치의 황혼
또 특이한 것은 해안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다 저편에 해안선을 따라 길게 가늘고 긴 모래섬들이 해안선과 평행으로 달리고 있는데, 마치 방파제로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이런 것을 산호섬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 양형은 해안의 모래가 하얗고 마치 설탕처럼 고운 것은 모래가 산호초의 부서진 조각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엄청난 모래가 산호초의 부스러기라는 것이 믿어지지를 않았다. 여하튼 이런 것들이 어울려 천혜의 휴양지를 이루는데 설령 어떤 폭풍우와 태풍이 불어오더라도 해안과 모래섬 사이의 내해에 정박한 배들은 안전 할 것 같았다. 중간 중간 해안가 모래사장에서 정차를 하고, 산책을 하며 파나마시티로 달렸다. 모래사장에 나서면 물새들이 먹을 것을 찾으며 모래를 파헤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파나마 시티 비치의 황혼
파나마시티 비치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경이 되었다. 파나마 시티에는 의외로 자동차 관련 상점과 서비스 상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그간 RV를 인수하여 달린 거리가 4,000 마일이 되었으니 엔진 오일을 갈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내일 시간을 내어 엔진 오일을 갈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양형의 의견을 좆아 파나마 시티 비치에서는 해안선에 면한 Motel 에 들었다. Motel 이라지만 우리 콘도 30 여 평 규모로, 방에는 두 개의 킹사이즈 침대가 있고 , 거실에도 킹사이즈인 접는 침대와 주방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베란다 밖으로 시퍼런 바다와 시원한 물거품 띄를 이루며 몰려오는 파도,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지평선까지 닿아 있을 것 같은 새하얀 백사장이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펼쳐져 있다. 가격은 200 불 수준인데 양형이 자기 비용으로 하겠다고 호의를 보였다. 전망이 끝내 주어서 웬만한 호텔보다 만족스러웠다.
잔교에서의 산책 우리는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모래사장을 거닐고 바다 깊이 길게 설치한 잔교에 올라 낚시 하는 모습들을 즐기며 한가한 저녁 시간을 가진 후, 호텔로 돌아와 포도주와 맥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다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 카리부 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5 월 23 일 화요일 .
잠에서 깨어 베란다 문을 열어젖히니 시원한 파도 소리가 마치 가슴으로 뛰어 들 듯 몰려들었다. 하얀 백사장, 가없는 파란 수평선이 오른쪽 끝에서부터 왼쪽 끝까지 꽉 차들어 내가 언제 이렇게 큰 바다를 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모텔에서 맞은 아침.
오전에 해야 할 일은 RV 의 엔진 오일을 가는 일이다. 여기저기를 헤매다 우여 곡절 끝에 겨우 해낼 수 있었다. RV 의 차 높이가 높아 그에 맞는 작업대를 설치하지 않은 정비소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찾아낸 11.5 ft 높이의 정비소에서 엔진오일을 교환 할 수 있었다.
파나마시티에서 펜사콜라로 가는 해안도로는 더 환상적이다.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호섬 같이 퇴적 모래가 이루는 가늘고 긴 열도가 마치 방파제 같이 해안선과 평행을 이루며 달리는 모습은 어제의 풍경과 같으나, 특히, 하얀 모래가 더 두드러져서 ‘나바레 비치’나, ‘펜사콜라 비치’ 의 숙박시설이 몰려 있는 거리는 마치 온 천지가 눈이 온 듯 폭설이 덮인 겨울 리조트로 착각할 지경이다. 정말로 파나마 시티에서 Grayton Beach, 나바레 비치, 펜사콜라 비치에 이르는 해안선은 정말 보석 같은 휴양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머물은 Peridido Key Drive 상의 Playa de Rio RV Park
펜사콜라에서의 캠핑장은 앨라배마 주 경계 넘어 Peridido Key Drive 상의 Playa de Rio RV Park 에 머물렀다. 뒷면은 석호에 면한 요트 정박장이 있고, 앞면은 길 건너 해안가로 연결 된다는 멋진 광고문안과는 달리 비좁게 RV들이 정박하는 주차장이다. 다만 뒤편의 석호에는 작은 부두들이 있고, 여기에 휴양용 요트들이 정박해 친근감을 주어 거부감을 다소 눅여 주었다. Fee 는 60 불로 이제까지 지불한 비용 중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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