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유럽 색소폰 거리연주 여행기
2007.9. 20 부터 10.1 까지 추석 연휴에 즈음하여 12일 동안 유럽 각지에서
색소폰 하나만 달랑 메고 색소폰 거리연주 여행을 다녀왔다.
이는 4년전 색소폰을 처음 만질 때부터 꿈꾸어 왔던 것으로, 아직도 실력이
미천하고 초보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대모험이요, 큰 도전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한강고수부지, 여의도공원, 보라매공원, 청계천 다리밑 등
서울과 수도권 일원은 물론, 제주도 신라호텔앞 마당, 부산역광장, 용두산공원,
해운대 동백섬, 울산 시민공원, 여수 오동도, 경주 보문호, 강릉 경포대,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울진, 삼척, 동해, 계룡산, 대청호, 충주호, 안면도, 덕적도, 영월
등 웬만한 곳이면 회사출장이던, 관광목적이던 색소폰을 휴대하고 다녔다.
이제 한정된 국내를 벗어나 국제무대에 나서보고 싶었고, 특히 세계 각국 유명
도시나 관광지 광장에서, 다리위에서, 길거리에서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널리
소개하고 싶었다. 이는 색소폰의 대가 이봉조, 길옥윤 선생도 결코 시도하지
못한 것을 감히 실행하는 것이다. 어디 샹송, 칸소네, 팝송만 세계적인 노래이고
우리나라 가요, 특히 뽕짝은 음악이 아니더냐?
여행코스는 짧은 일정상 파리, 로마, 암스텔담, 비엔나, 스위스 융프라우는 전에
가보았기에 제외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프랑크푸르트 - 샤모니 - 몽블랑 산정 - 제네바 - 프라하 - 그리스 산토리니 섬 -
아테네 - 밀라노 - 에딘버러 - 스코틀란드 하이랜드(네스 호, 인버네스) - 런던
주요 레파토리 : 만남, 친구여, 허공, 사랑이여, 잊혀진 계절, 가을을 남기고간 사랑,
등대지기, 바위섬, 사랑안해, 그리운 금강산, 향수, 선구자
고향무정, 머나먼 고향, 강촌에 살고싶네, 공항의 이별, 섬마을선생님,
선창, 번지없는 주막, 나그네 설움, 울고넘는 박달재 등 30 곡
그외 해변의 길손,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마이웨이, 타이타닉
주제곡 등 팝송
지역간 이동은 항공편으로 하고, 숙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펜션에 머물렀는데
이구동성으로, "늙은이가 혼자서 배낭여행 오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인데, 게다가
색소폰까지 메고 오는 것은 평생 처음 보았다" 라고
색소폰과 휴대용 충전식 앰프, 반주녹음 CD 만 하여도 무게가 10키로가 훨씬 넘어
다른 짐이나 쇼핑은 처음부터 생각할 수 없었다.
어찌보면 주책이고 동키호테같은 행적을 사진으로 한번 보아주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몸은 늙어도 아직 마음은 늙지 않았다. 늙은이여 용기를 내자"
처음 도착한 프랑크푸르트 마인 강변에서 만남을 노래하다
몽블랑 산정에서, 뒤로 알프스 연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뒤에 보이는 둥그런 봉우리가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4810m).
고도가 높고 바깥 기온이 너무 차 색소폰 불기에 너무 힘들었지만, 1시간 가량
만남, 친구여, 특히 그리운 금강산은 3번씩 연주하였다
제네바부터 함께 동행한 일본 아줌마들, 욘사마와 색소폰 때문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으나 상대가 셋이라 작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프라하의 명소 카를대교 위에서 나팔을 잡다. 거리 연주자와 거리 미술가들의 천국임
다리위는 텃새가 심하여(라이센스가 필요함) 아예 다리 밑으로 자리를 옮겨
5시부터 10시까지 5시간 동안 우리나라 가요를 연주하였슴.
관광객도 많고 우리나라 여행객도 더러 있어 당일 수입도 짭짤하였슴.
거리의 악사들과 함께, 그들 모두 수준급 이상이며, 특별 양해로 만남 한곡 연주함
세기적 작곡가 드보르작 묘소에서, 드보르작 선생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용히
만남을 불다(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지하의 드보르작이 별 미친 놈이 다 찾아 왔다고 하지나 않았을까?
그리스 에게해 푸른 바다 한 가운데의 화산섬 산토리니에서, 가파른 절벽위에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어쩌다 한국 신혼부부들을 만났으며,
싱글로 그것도 색소폰 메고 온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슴.
석양이 세계 최고라는 산토리니 이오 마을의 어느 카페에서 석양을 등지며,
만남, 등대지기, 바위섬 등을 30분 정도 노래하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헤로데스아티에스 야외음악당 위에서,
세계적 팝피아니스트 야니가 연주하였던 곳으로 연주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연을
하고픈 세계적 명소임.
파르테논 신전 안에는 아예 악기 반입이 불가하여(짐 검사), 대신에 신전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서 1시간 가량 우리나라 가요를 연주하다.
스코틀란드 에딘버러성이 마주 보이는 카튼 힐 언덕에서,
색소폰 연주 하기에 주변 분위기도 아주 좋았슴
스코틀란드 하이랜드에 있는 네스 호 유람선상에서,
색소폰으로 괴물을 불러내려 하였으나 소식이 없었슴. 네스 호는 물 색깔이
시커멓기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며 괴물 출현설도 그 때문이라 함
런던 타워 브리지 강변에서 3시간 색소폰으로 우리나라 가요와 팝송을 연주함
프라하. 아테네 다음으로 수입이 짭잘하였슴. (하루 5만 내지 10만원 정도 수입 생기면
밤 늦게 펍에서 술 한잔하면서 여정의 피로와 향수를 달랬슴)
엘리자베스여왕의 버킹검 궁전 앞에서, 마침 일요일 아침이라 근위병도 없고
관광객도 드물어 잠깐 색소폰으로 만남을 조용하게 연주함
런던에서의 마지막 거리공연 수입을 사진으로 촬영함
(2 파운드- 약4000원-이하는 동전으로만 사용하고 있슴)
2차 중국사천성 산악지대에서 색소폰 불다
2008년 4월말과 5월초에 걸쳐 중국대지진 참사가 일어난 사천성에 색소폰을 메고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 가을 유럽순회 공연에 이은 두 번째의 해외색소폰 연주여행인데, 귀국한지 불과 일주만에 내가 다녀온 바로 그 지역에서 엄청난 대지진이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니, 그저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진작 여행기를 올리려 준비중이었으나, 아직도 여진을 포함하여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어 무척 망설였지만, 그래도 일단 올려보기로 하였다. (지진 피해 현지주민에게 양해를 구하면서)
여러분 중에 이미 가본 사람도 더러 있겠지만, 이번에 간 곳은 사천성 성도를 기점으로 도강언 고대수리시절과 북부 산악지대에 있는 구채구와 황룡, 그리고 남족 양자강 지류에 있는 낙산대불이다.
나의 성씨가 묘금도 유씨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삼국지 매니아이었으며, 언젠가는 꼭 유비가 촉한의 수도로 정한 성도를 찾아, 유비와 제갈공명에게 참배하고 색소폰으로 진혼곡이라도 들려주리라 하였다. (사당인지라 색소폰 연주는 포기함)
보통 중국하면, 북경과 상해, 그리고 홍콩은 웬만하면 다 갔다 왔을 것이다.
그리고 황산과 장가계는 잘 알려져 있지만, 구채구는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는데, 워낙 길이 험하고(성도에서 버스로 10시간 이상 소요) 지형도 험준하여 접근이 쉬운 곳이 아니다. 그런 만큼 자연 절경 하나는 끝내주는 곳이다.
예로부터 산 하면 황산이고, 물 하면 구채구라고 하는데, 산골짜기에 자연적으로 생긴 호수의 그 에머랄드 같은 물빛은 물감을 탄 것도 아닌데 정말 보면 볼수록 감탄을 자아낸다.
그것도 한가지 색갈이 아니고 호숫가 부터 차례로 노란색, 연두색, 초록색, 청록색, 파란색, 남색까지 다양한 색채를 품고 있으니, 그것을 어떻게 말로써 이루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사천성이 등소평의 고향이고, 서부개발의 거점도시가 되는 사천성의 주도인 성도(청뚜)는 인구가 1000 만명으로 중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데, (성도 인근에 중국 최대의 TV공장과 핵시설이 있으며, 사천요리의 주메뉴가 되는 돼지의 최대 산지임), 성도 이남은 완전 대평원이고, 성도 이북은 해발 3000 미터이상인 온통 험준한 산악지대로, 겨우 바위를 깎아 접근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 옛날 유비가 성도를 촉한의 수도로 정한 이유를 확실히 알수 있었다.
그런데 어렵게 만든 그 도로가 상당수 파괴되고, 산악지대에는 아예 접근도 어렵다고 하니, 그 곳에서 대재앙을 입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특히 이번의 지진 진앙지인 문천현(원촨현)은 구채구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하여야 하는 지역으로 그 도시 모습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데, 방송에서 완전히 폐허가 된 모습을 보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도 아직 재앙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니 하늘도 너무 무심하다.
그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이며, 우리는 정말 좋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 강산을 좀더 소중히 가꾸어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다.
사천성 북부의 산들을 보느라면 우리나라 산들은 어찌보면 산도 아니다. 설악산도 지리산도 귀여운 동산의 하나라고 할까?
물도 그렇다. 구채구의 물색갈은 천하제일이라지만, 양자강 상류의 물은 삼천리 금수강산의 물에 비하면 탁한 것을 떠나 지저분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2200년전 양자강 상류 민강을 막아 만든 고대수리시설이고 세계문화유산인 도강언에서
이번 대지진으로 상당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산악지대 주민에게는 하얀 야크가 가장 큰 재산으로서 한국돈으로 300 만원 이상 호가하며
블랙야크는 겨우 1/4 가격임 (그런데 블랙야크 아웃도어가 한국에선 명품인 까닭은 무얼까?)
구채구 의 전죽해 전경 (중국영화 영웅에서 이연걸과 왕조위가 피터지게 싸운 촬영지임)
구채구 최고의 절경 오화해. 다양한 색채의 물색갈이 너무나 환상적이다
오화해 전망대에서 포즈를 취하다. 에머랄드 같은 물빛이지만 결코 마실 수 없는 물이다
물속에 잠긴 고목나무와 에머랄드 빛 물색갈을 보라. 과연 선경이 아닐 수 없다
진주탄 폭포의 전경.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이 진주알 같다고 붙인 이름이다
수정군해의 전경 (이 지역에선 호수를 해라 하는데 그들은 평생 진짜 바다를 못보았을 것임)
티베트 장족 마을의 전경. 깃발에 펄럭이는 다양한 칼라의 천이 이채로운데,
천조각 하나하나마다 티벳 라마교의 경전이 쓰여져 있다
황룡 오채지의 전경. 산 한가운데 이런 테라스의 지형과 아름다운 물이 있다니?
케이블카를 타고 무려 해발 4100 미터 고지까지 올라가야 한다
만년설로 뒤덮인 황룡 최고봉의 전경 (높이 5533 미터로 백두산 2744 미터의 두배임)
양자강 상류 20세기 초에 지진으로 함몰된 지역으로 깊이가 무려 1000미터나 된다고 한다
이 지역은 과거에도 지진이 잦은 곳이며, 험준한 산악지형의 형태 보이나 이 정도는 약과임
유비와 제갈공명을 함께 모신 사당 무후사(무후는 제갈공명의 호) 입구 전경
제갈량이 촉한 2대황제 유선(조자룡이 목숨걸고 구한 유비의 아들)에게 바친 출사표
유비의 상 앞에서 포즈 취함 (본인과 같은 종씨로 99촌 정도의 선조 친척이라 할수 있음)
이곳에는 유비와 제갈량 말고도 관우, 장비, 조자룡, 보마초, 황충, 강유, 봉추 등 삼국지의
영웅들 상들이 다 모여 있어 삼국시대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세계최대의 낙산대불 전경. 부처님 발톱하나에 5명이 둘러앉아 고스톱을치고
또 다섯명의 구경꾼이 서 있더라도 여유가 있을 정도이니 그 크기를 상상해 보시라.
너무 커서 양자강(흙탕물이고 똥물임)에서 배를 타고 보아야 전체를 다 볼 수 있다.
중국은 유럽과 달리 군중이 모이는 것을 통제하고, 특히 사천성은 티베트 인접지역이라 재수 없으면 공안원에 붙들려 갈 것 같아 주로 식당에서 색소폰을 불렀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로 갔는데, 여행객 20명 중 노부부가 2팀이고 나머지는 전부 여자들임. 남자 혼자 싱글로 오니까 (그것도 색소폰 들은 이상한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처음엔 모두들 이상한 눈초리로 보다가 다음날 식당에서 이때다하고 고향무정, 동숙의노래, 섬마을선생님 등을 1시간 동안 때리니까 모두들 박수치고 춤추며 식당안이 난리가 났음. 이후부터 완전히 히어로가 되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여자들이 모두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으로 할미꽃밭에서만 놀다가 왔음.
상당기간 중국 사천성과 구채구 일대는 여행이 불가능한 지역이 될 것이며, 본인이 불과 며칠 상관으로 대지진을 피해서 무사히 다녀온 것만 해도 하늘에 감사히 생각할 뿐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떠나 이번 대지진 참사를 맞은 사천성 주민들에게 진실로 위로의 말씀 드립니다.
3차 실크로드따라 파미르고원까지
2008년도 하기휴가를 이용하여 학창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신라고승 혜초와 현장법사의 순례의 길, 실크로드의 천산산맥 과 곤륜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횡단, 세계의 지붕이고 인류의 발상지인 파미르고원과 무스타크봉(7,546미터)자락을 다녀왔다.
7월 12일 중국 신강 위구르자치구의 주도인 우르무치를 출발하여, 천산산맥을 횡단, 천산남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 투루판, 쿠얼러, 룬타이, 쿠처 까지 간 후에 최근 석유개발을 위하여 건설된 사막공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북에서 남으로 횡단(800키로), 오아시스 도시인 민풍, 호티엔, 쩌푸, 사처, 영길사 등을 거쳐 중국에서 제일 서쪽에 위치한 도시 카쉬가르에 도착하였다. 그리곤 다시 파키스탄과 연결되는 국경도로를 따라 남행하여 파미르고원 지대에 위치한 카라큘 호수(해발 4,000미터)와 빙산의 아버지라는 무스타크 봉(7,546미터)과 궁거얼 산(7,719미터)의 파노라마를 감상한 후에 다시 카쉬가르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루무치를 거쳐 서울에 왔다. 총 8박9일의 여정으로 버스만 무려 4000키로, 서울과 부산을 5번 왕복한 셈이지만 평균 시속 50키로 미만이므로 시간은 따블로 걸린 셈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여행지, 특히 동남아와 중국 여타지역은 여자들로 우굴거리지만, 이번 코스는 워낙 오지이고, 차를 많이 타는 곳이라, 일행 12명중 부부는 단 2팀이고 나머지는 스님 한분을 포함하여 전부 남자이고, 나이도 55세부터 65세까지, 직업도 교수가 5명, 전 포스코 부사장 등 거의 식자층이었으며, 따라서 여행 분위기도 무척 좋았다.
(같은 실크로드라도 천산북로인 우루무치, 투루판, 돈황 코스는 대부분 여자와 대학생들임)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신강은 면적으로 중국의 20% (남한의; 20배)지만, 인구는 1600만명에 불과하며, 주도인 우루무치를 제외한 시골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는 위구르족이며, 이외 카자흐족, 키르키스탄족, 회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몽고족 등 중국의 총 55개 소수 민족중 무려 47개 종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국경이 몽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연결되어 있음)
이곳은 원래 서역땅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원래 이 땅의 주인인 위그르족은 생김새, 언어, 종교부터 한족과 차이가 나며, 우루무치를 벗어나면 정말이지 전혀 중국과 딴판인데, 모택동이 1955년 강제로 합병한 곳으로 중국에서 티베트와 함께 제일 낙후된 오지인 곳이다.
그런데 최근 이곳, 특히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무궁무진한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광물자원이 발견되고 상당수 지역은 아예 노천탄광이니, 중국 당국이 가만히 나둘리 없고, 또한 석유와 천연가스 송유관이 상해까지 뻗혀있다고 하니, 결국 이곳 사람들의 피를 빨아서 중국 동부 해안의 상해, 북경, 청도, 광주, 홍콩 같은데 사는 인간들을 살찌우고 있는 셈이다.
(내 개인 생각으로는 신강과 티베트는 무조건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가 본 사천성 성도, 구채구, 장가계 말고도 앞으로 시간이 나면 황산, 계림, 운남성, 귀주성, 태산, 소림사, 용문 운강석불 그리고 백두산과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등 아직도 중국내에서 가야할 곳이 많이 남아 있는데, 중국 공안당국이 알면 요주의 인물이 될까보아 들어내 놓고 티베트와 신강의 독립운동에 일조를 할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최근의 티베트 사태와 지하자원, 핵시설 등 전략 요충지, 북경올림픽 때문에 검문 검색이 매우 까다로우며, 따라서 여권과 비자 말고도 요소요소에 별도로 여행허가증이 필요하다.
개인으로는 여행하기 매우 어려운 곳으로, 혹시 차후에라도 이곳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상세한 여행정보를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염호,
멀리 천산산맥이 보이며, 호수 주위의 하얀 것은 소금이 석출된 것으로 그 양을 상상해 보시라
천산산맥 남쪽 기슭의 도시 쿠얼러 근교의 호수, 신강에서 가장 큰 호수로 면적이 경기도 정도이며
연꽃과 갈대가 많아 연화호라 부른다. 모터보트에서 색소폰으로 당연히 한곡 땡김
천산산맥 남쪽 기슭의 도시 쿠처의 노천시장, 길거리에 양고기를 매달아 놓고 칼 대신 도끼로 짤라서 팔고 있다. 이 지역은 이슬람교라 돼지고기가 무척 귀하다. 모든 식사에 양고기가 나오는데 누린내가 나는 것 같아 먹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식사에 큰 불편은 없었다
한때 이곳에 위치한 구자국의 최대 불교 사원터.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도 나오는,
동서 150 남북 500미터의 대사찰로 지금은 황량한 모습이나 천산산맥 등 주변 경관은 괜찮다
돈황 막고굴에 버금가는 키질 천불동. 3세기 에서 7세기에 만든 것이며, 총 135개 달하는동굴 내부는 많이 훼손상태로 사진촬영금지. 조선족 화가 한낙연의 활약상 기록이 있음. 앞에 보이는 동상은 이곳 쿠처 출신인 구마라십으로 불경을 중국에 처음 전파 및 한역함
동굴 앞에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으며, 그 호숫가에서 색소폰 음악으로 공양하다.
불교에서 보시는 꼭 현찰이 아니더라도 음악으로 보시할 수 있다 한다.
자리가 자리이니 만치 대중가요 대신에 선구자를 불렀는데, 다음에는 찬불가를 몇곡 연습하여야 겠다
천산산맥 자락에 있는 천산신비대협곡 입구에서. 적색의 바위가 깎아지를 듯
폭 2 내지 5미터 계곡의 양옆으로 4키로나 뻗혀져 있으며
내부로 들어갈수록 기괴한 모습이 장관이다
타클로마칸사막의 초입 풍경, 바닥에 하얀 것은 눈이 아니고 소금이 석출된 것임.
막대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멀리 석유시추탑과 송전선이 보인다.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 누워서 1000년 합 3000년을 산다는 사막의 호양나무.
앞에 보이는 나무는 수령이 1000년이라 하는데 용문산 은행나무도 아마 1000년이라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세계 두 번째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언덕에 서서 만세부르다.
온통 가는 모래로 이루어졌으며 사막크기가 남북 500키로 동서 1000키로로 남북한 2배임.
사막의 모래언덕에서 색소폰을 불다. 곡목은 고복수의 사막의 한으로 이를 위해
대표적 중국노래인 야래향, 첨밀밀, 월량대표아적심과 함께 특별히 연습하였다.
타클라마칸 남부 오아시스 도시 호티엔 교외의 고대유적을 보기위해 1시간 정도 당나귀마차를 타다. 마차에 카페트가 깔려 있으며, 마부는 위구르족 젊은 여자로 아주 미인이다.
가운데 아이는 그녀의 아들이며, 마부로 아리따운 젊음을 보내기엔 너무 아깝고 불쌍하다.
호티엔 교외 유적지에서 색소폰을 부니 평생 처음 보는 우렁찬 나팔 소리가 신기한 듯
동네 아이들은 물론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 모여들었다.
호티엔 시 중심부 야외 시장에서. 수박, 메론, 무화과, 살구, 자두, 포도, 호도 등 과일이 매우 풍부하고 맛도 좋고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수박 한덩이에 한국돈으로 500원 정도
사처 시의 15세기경 현지 국가의 여왕 무덤안에서. 뒤에 보이는 그림이 여왕이며, 아주 미인으로
위그르족 음악을 집성하였다 한다. 묘의 장식이 화려하나 이슬람묘는 부장품이 없다
최종 목적지인 파미르고원의 카라큘 호수와 빙산의 아버지라는 무스타크봉(7546미터)의 파노라마.
바람이 없는 날 맑은 호수에 비친 산봉우리 그림자가 장관인데 역광이라서 유감.
카랴큘 호수에서 낙타를 타고 색소폰으로 그리운금강산과 호반에서 만난사람을 연주하다.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에서 색소폰으로 우리나라 음악을 연주한 최초의 사람으로 남겠지
색소폰을 연주하니 역시나 호수 주변 동네에 사는 유목민족의 애들이 다 모여들었다.
모두들 처음 보는 색소폰과 우렁찬 나팔소리가 무척 신기한 듯 한번씩 불어보자고 난리이다
카라큘 호수가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집, 빠오 앞에서, 6천원짜리 양모 모자를 기념으로
사서 썼는데 아주 따뜻하다. 날씨가 서늘해지면 색소폰 공연시에 이 모자를 착용할 예정
빠오 안에서, 즉석에서 구운 빵과 마유를 한잔 대접받았는데 맛도 좋았다.
바닥과 벽면을 뒤덮은 호화로운 양탄자가 이색적이다.(물론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겠지만)
곤륜산맥과 그 앞을 흐르는 강. 산은 뻘건색, 누런색, 하얀색, 검은색이 뒤섞여 있으며
당연히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다. 빙하가 녹아내린 강물의 색깔은 뿌옇다 못해 짙은 회색이다
사진을 300컷 정도 찍었는데 용량 관계로 다 게시할 수 없는 것이 유감입니다.
시간이 멈추는 곳, 정녕 마음의 영원한 고향 실크로드 여행을 한번쯤 추천해봅니다
4차 고구려 유적지 및 백두산 색소폰 연주 여행
2008년 추석 연휴에 즈음하여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를 다녀왔다.
그런데 우리 백두산을 우리나라 땅을 통하지 않고 중국땅을 거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것은 그곳에 다녀온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일 것이다. 더구나 중국 동북공정의 책략으로 고구려의 역사까지 왜곡하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나면 피가 끓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9월 12일 오후 5시, 인천 연안부두 국제터미날에서 단동행 페리에 몸을 실었다.
중국 여행은 북경 만리장성, 사천성 구채구, 호남성 장가계, 신강성 천산남로 실크로드에 이어 다섯 번째이지만, 이번의 여행만큼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순례여행이자 고구려 유적지 답사라는데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해외여행이 비행기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페리를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인천항에서 단동항까지 16시간이 소요되지만 선박을 이용하는 여행은 시간상의 여유만 있다면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출발은 혼자 하였지만 여행사를 통하였기에 다른 일행들을 만나서 5박6일의 일정 내내 그들과 친하게 지내었으며 여정도 아주 재미가 있었다.
압록강을 두고 신의주와 마주 보는 국경도시 단동을 시작으로, 고구려의 처음 도읍지인 환인현 졸본성, 백두산 천지와 금강대협곡,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인 집안현 국내성 및 광개토왕비, 북한과 가장 지근거리에 위치하며 역사왜곡의 현장인 고구려 박작성 등을 둘러 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정은 백두산에 올라 천지의 장관을 보는 것이며, 게다가 휴대한 색소폰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노래를 한번 불러 보는 것인데,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여행비용도 페리를 이용한지라 다른 것에 비하여 저렴하며, 공식비용은 추석연휴 황금시즌인데도 불구하고 40만원 남짓 들었으며, 이것저것 개인비용, 선물(선물이야 별것도 없지만), 가요주점 도우미팁까지 다 포함하여도 60만원이 채 들지 않았다.
향후에도 시간이 허용된다면 선박을 이용하고 싶다. 예컨대 백두산의 또 다른 루트인 연길, 도문, 용정 등 두만강 지역, 산동반도 청도 및 태산, 소림사 및 낙양, 그리고 일본의 큐수 지방, 오사카, 알펜루트 등. 적어도 우리가 한국사람 이라면 다른 지역은 몰라도 백두산 천지 만큼은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서두에서 말했듯이 우리 민족의 땅이 아닌 중국땅을 밟아야 하는 것인데, 언젠가는 북한 지역을 통하여 중국 장백산이 아닌 진짜 한국 백두산 천지에 오를 날이 올 것이다.
단동시에서 본 압록강 철교의 모습. 앞쪽 원형 아취 철교는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가운데가 끊어졌으며, 지금은 뒤에 보이는 철교를 다시 놓아 신의주 연결하는 기차가 다닌다
압록강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다. 만남, 선구자, 아침이슬, 강촌에 살고싶네 등을 30분 정도 연주함
단동시 국제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라본 압록강의 모습.
앞에 보이는 섬이 이성계의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이며 북한 땅이다.
드디어 감격스러운 백두산 천지에 올라서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
1200개의 계단을 올라와 처음 천지를 바라볼 때의 벅찬 감격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다행히 날씨가 좋아 천지의 파란 물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이런 행운은 흔치 않다고 한다
천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다. 중국 국경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어 처음에는 중국노래 첨밀밀, 야래향을 부르니 그들도 박수를 친다. 이어 선구자, 아침이슬, 그리운금강산, 찔레꽃 등을 30분 정도 연주함.
동해물과 백두산을 부를수 없는 것이 유감 (바로 끌려가거나 벌금 당함)
북한과의 경계비에서. 빨간 줄이 경계선이며 1미터 가량 북한땅에 들어섰다 .하얀 방책이 경계지역이다.(김정일 동무가 여기서 막걸리 팔아 한사발 만원씩 받으면 많이 벌 수 있을텐데)
백두산 금강대협곡의 장관. 한국판 그랜드캐년으로 이런 협곡이 70키로나 뻗혀있다고 한다.
골짜기의 계곡물이 압록강의 발원이 된다. 9월 중순인데 단풍이 시작되고 있다.
금강대협곡에서도 색소폰을 연주하니까 일행인 아줌마들이 함께 춤을 추며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주몽이 고구려를 처음 세운 환인현 졸본성의 모습. 중국에서는 오녀산성 이라 하는데
그야말로 천연의 요새라 할수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 되어 있다.
앞에 옥수수 밭이 보이는데 만주지역은 일부 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옥수수 밭이다
집안현에 위치한 고구려 두 번째의 도읍지인 국내성 광개토대왕 비의 모습.
높이가 6미터가 넘으며 비문에 1700자가 적혀 있다. 내부에 공안원이 있어 촬영절대금지
광개토대왕릉의 모습. 많이 훼손되어 있어 보기에 너무 안타깝다.
고구려 장수왕릉의 모습.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말처럼 거대한 돌로 쌓아 보존이 잘되고,
높이도 30미터에 달한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장수왕을 인정하지 않고 장군총이라 부른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으므로 장수왕 이후부터 동북공정 역사왜곡에 차질이 생겼음)
압록강 중류의 전경. 건너편이 북한 강계시 만포진 지역인데
산에 나무가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박작성터에서. 중국에서는 호산산성이라 하는데 최근에 동국공정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성을 복원하였다는데 언뜻 보기에 만리장성의 짝퉁처럼 보인다
바로 이 고구려 박작성 입구에다 여기가 만리장성의 시발점이라 대서특필 하였는데,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왜곡하는 적나라한 현장을 보라!
단군의 자손으로서 이 광경을 보고 치를 떨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대국답지 못하게 엄연한 남의 나라 역사를 자기네 것이라고 짝퉁 만리장성까지 축조하고
이런 비열한 짓을 하다니. 짱꼴라 떼국놈 나쁜 넘 짜식들! 변방 사천성에 지진이 날 것이 아니라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대지진이 났어야 했는데
북한과 가장 가까운 일보과(한발 앞서면 북한, 한발 물러서면 중국땅이란 뜻)의 전경.
여의도 샛강 같은 개천너머 북한 철조망이 보인다. 과거 김일성이 중국 주은래와 국경협약 맺으면서 압록강의 섬 103개중 100개를 받는 대신(위화도 포함)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에 넘겨주었다고 함.
그러다 보니 이런 광경 생김. (예컨대 여의도가 영등포구가 아니라 마포구에 편입되는 것처럼
어떤 지역은 압록강이 국경선이 아니고 샛강이 국경선 되는 것이 있음)
일보과 샛강에서 배를 타고. 뒤에 북한 철조망이 보이며 군인 초소도 있다. 북한 인민군을 만나
담배, 시계, 그리고 먹다 남은 과자 등을 건네 주었다. 이름도 물어보고 악수도 하였다
단동과 오고가는 단동페리 갑판에서 색소폰 연주 무대를 가지다.
타이타닉 주제가를 포함하여 3시간 가량 연주하였더니 모두들 박수 치고 인기가 좋았다.
5차 네팔 인도 기행
2009년 3월9일부터 3월22일까지 2주간 네팔 및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금년이 만60세로 환갑여행을 미리 다녀온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제껏 여러 나라를 다녀왔지만,
특히 이번 여행은 나에게 과히 충격의 연속이었다.
다시 말하여 “사람이 왜 사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시작하여 휴양도시 포카라,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를 거쳐 인도의 갠지스 강과 바라나시, 섹스 템플로 유명한 카주라호, 타지마할의 아그라, 핑크시티라는 자이푸르, 인도의 수도 델리를 거쳐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 유적을 보고, 마지막으로 뭄바이에서 이번 여행의 끝맺음을 하였다.
3월9일, 카트만두 공항에 내리자마자, 첫 대면부터 생사여탈을 보여주는 화장터를 보았다.
일반에게 공개된 화장하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는데, 그야말로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네팔에서 가장 유명한 힌두교의 파슈파티넛트 사원과 진짜 살아있는 처녀신을 모시고 있는
쿠마리사원, 원숭이 사원이라는 불교의 스엠브넛트 사원을 보고,
다음날 안나푸르나와 휴양지로 유명한 호반의 도시 포카라로 향하였다.
포카라 페와호수에서 보트유람을 하고,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사랑콧트 전망대로 올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연봉사이로 일출광경을 보고,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로 향하였다.
비록 독실한 신도는 아니지만 불교신자로서 룸비니 등 성지순례는 오랜 소원이었는데, 이번에 탄생지인 룸비니와 최초의 설법지인 사라나트(녹야원)를 탐방,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3월12일, 국경을 넘어 인도로 들어갔는데, 처음 도착한 것은 갠지스강가의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도시 바라나시였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었다.
바라나시의 경험은 모든 것이 충격적의 연속이었는데, 온갖 무질서, 소음, 혼돈이 뒤섞인 시가지는 말할 것도 없고, 힌두교에서 성스럽다는 갠지스강은, 상류에 위치한 화장터에서 화장하고 타다 남은 숯과 뼈를 그냥 강물에 버리는데도, 어린아기까지 업고 와서 목욕하는 사람들, 빨래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 온갖 군상들을 보면서, 죽음과 현실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보게 되었다.
갠지스강가의 새벽 일출 광경도 장관이지만, 저녁의 일몰 광경을 보기 위하여 다시 한번 갠지스강가로 가서 보트투어를 하였는데, 특히 승려들이 횃불을 들고 춤을 추고 관중들이 열광하는 힌두의식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한 장면 같았으며, 한마디로 광신자들이 미쳐 날뛰는 광란의 축제의식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바라나시는 인도 전역에서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다시 말해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길거리에 노숙하면서, 먼저 빨리 죽어(힌두교에서도 자살은 가장 큰 죄악임) 화장되는 차례를 기다리는 곳으로, “죽음의 도시, 영혼의 도시, 전설의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은 10배 이상이나 비싼 향나무로 뼈까지 완전히 한줌의 재가 되도록 확실하게 화장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이나 무연고의 시체는 과거에는 갠지스강가에 그냥 떠내려 보냈지만, 지금은 시당국에서 전기로를 설치하여 처리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바라나시에서 이틀을 보낸 후 3월14일, 무려 버스로 10시간을 달려 소위 섹스템플로 유명한 에로틱 도시, 카주라호로 갔다.
10세기부터 삼백년간 건설되었다는 사원들에는 온갖 자세의 섹스 장면을 리얼하게 조각한
미투나(남녀교합상)이 즐비한데, 84가지 성교 기법이 있다는 인도의 섹스바이블 카마수트라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어떤 자세는 시중의 어느 야동에서도 결코 볼 수 없는, 고도의 요가 수련자만이 한번쯤 도전해 볼 수 있는 자세도 있다. 힌두교의 교리에 의하면 종교와 성행위, 다산과 생육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온갖 자세의 섹스장면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카마수트라 책도 여러 권 산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50대 이상의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젊었을 때 진작 와볼 걸 내 나이로는 너무 늦었어” (나도 3년만 젊었어도 84 방법중 반이라도 시도해볼 터인데)
3월15일,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로 갔다. 과연 타지마할의 외양은 세계 최고의 건축물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도 싱글로 왔지만, 상당수의 부부들이 이곳에 왔다가 싸운다고 한다. 사연인즉, “누구는 이렇듯 마누라에게 타지마할을 지어 주었는데,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무엇이 있느냐?” 그러나 세상의 남편들이여, 실망하지 마시라.
타지마할에 묻힌 왕비는 두 번째 왕비, 즉 중전마마가 아니고 세컨드라는 사실, 또 하나는 왕비가 25살에 왕궁에 들어와 아이를 14번째 낳다가 39살에 죽었다는 사실인데, 능력이 없다고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에게 어떻게 대답하면 되는지 해답은 자명하지 않는가?
아그라 성, 시크리 성도 관람하였는데, 내가 보기에 나무로 깎아도 저렇게 만들 수 없는데, 돌 하나하나에 새긴 그 정교함에 그저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핑크시티라 불리우는 자이푸르로 가서, 코끼리를 타고 색소폰을 불면서 산중턱에 위치한 암베르성을 구경하고, 세계 최대의 해시계가 있는 역사적인 천문대로 관람하였다. 자고로 인도 사람들은 수학을 잘하였으니, 0(제로)와 .(소수점)을 발견한 것도 그들이라 하는데, 해시계는 20초 단위까지 정확히 표현하였는 바, 그들의 과학적 능력에 또 한번 감탄하였으며, 최근 인도가 IT 강국이 된 것도 이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3월18일, 인도의 수도인 델리로 가서 시내관광을 한 후에, 야간기차를 타고, 아잔타, 엘로라 석굴 유적의 관문인 부사월까지 갔다. 16시간짜리 침대열차인데 60일전에 표를 구해야만 침대열차표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며, 종점까지 48시간 가는데 비용은 중간에 내리더라도 끝까지 지불하고, 연착 또는 운행중지 되더라도 환불이 없다고 한다. (환불신청하더라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단다) 간막이 없는 3층 침대간이나 시간상 최선의 이동방법이었다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부터 800년간, 자자손손 대를 이어서, 산 하나를 깎아 28개의 불교석굴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와 정교함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석굴암은 솔직히 명함내기가 미안할 정도이다. 특히 벽화가 유명한데, 향후에도 국가와 종교를 떠나 인류문화유산으로서 영구히 잘 보존되었으면 좋겠다. (인근에 짝퉁 석굴을 만들고 있는데, 이것이 완성되면 일반인은 출입을 통제할 계획이므로, 몇 년 후면 오리지날 유적을 보기 힘들 것임)
아잔타가 100% 불교 석굴인데 반하여, 엘로라 석굴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시대별로 종교갈등 없이(서로 파괴하지 않고) 34개의 석굴을 차례로 만들었으며, 아잔타 석굴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3월20일, 마지막 관광지로 뭄바이(봄베이라 부르는 것이 우리에게 더 익숙함)에 들렀는데, 델리가 인도의 행정중심지라면 뭄바이는 경제중심지라 할 수 있다. 뭄바이에는 세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들이 많은데, 한편으로는 노숙자와 거지들도 많아, 세계에서 빈부의 격차가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일례로 어떤 부자는 마누라 생일 선물로 280억짜리 비행기를 사주고, 시내 한복판에서 양로원자리에 데모하는 군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63층빌딩에 20층까지 주차장으로, 50층까지 개인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윗층은 살림집으로 쓴다는데, 30%도 안되는 중산층은 살인적인 물가고 때문에 하루하루 힘겹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네들 가진 자에게는 최소한의 사회정의도 없는 그야말로 경제동물일 뿐이다)
집이 없는 노숙자가 도시인구의 40%라고 하는데, 아마도 평생 볼 수 있는 노숙자와 거지는 여기서 하루만에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 많은 노숙자와 거지들은 술도 안마시고(우리나라처럼 술을 함부로 팔고 있지 않음), 서로 싸우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우리나라의 노숙자들은 인도의 노숙자에 비하면, 천국이라 해도 다름없다. 특히 서울역, 영등포역 등지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은 비바람 막아주고, 역구내 수세식 화장실에서 세수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는 밤마다 술 마시고 서로 싸우는데, 국가에서 이들에게 인도 노숙자 실태 견학을 보내주면 어떨까?
인도나라에 진작 일어났어도 수십 번 일어날 법한 사회주의 혁명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엄격한 카스트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종교의 덕분이리라. 내가 보기에 지배계급(과거에는 왕족이나 승려들이지만, 지금은 정치귀족과 경제귀족)은 종교를 악용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우매한 백성들은 현세가 고통스러울수록 신과 가까우며, 내세에 축복받고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데, 바로 지배계급은 이 점을 들먹거리며, 수천 년 동안 백성들을 착취하여 온 것이다. 현세에 고통 받는 자가 내세에 축복받는다고 한다면, 백성들을 착취하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려온 정치귀족과 경제귀족들은, 반대로 내세에 거지로 다시 태어나야 할 터인데, 그 점에 대해서 지배계급은 일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우매한 백성들도 문제가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진인사대천명” 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세에 자기 할 일도 하지 않고, 자기의 정당한 권리도 포기하면서, 다시 말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세에 그냥 부자로 태어나기만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설령 내세가 있더라도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아니, 전생의 내가 결코 지금의 내가 아니듯이, 내세의 자기는 분명 현재의 자기가 아닐진대, 최소한의 자기 할일도 안하면서 시바신(힌두교 최고신 중의 하나)만 찾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두 자기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생사를 초월한 그들의 삶, 즉 우리가 그토록 기피하고 두려워하는 죽음을, 그들은 삶의 한 과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화장터에서 우는 사람이 없으며 단, 네팔에서 어린 자식을 화장하면서 울먹이는 어머니는 예외였지만--어린 자식을 바로 눈앞에서 불에 태워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은 어떤 종교로서도 막을 수 없는가 보다)
그리고 삶이 아무리 고달퍼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자기네들끼리 서로 싸우지도 않는다
둘째, 내세가 있고 내가 다시 환생한다고 할 지라도, 지금 현세에서 내가 살고 있는 한, 내가 죽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금년 말에 정년이 되지만, 퇴직 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싶다. 정년 이후의 삶에 대비하여 우선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 몇 년 전부터 색소폰 배우기를 준비하였는데, 색소폰은 내 생애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한다. 이번에도 색소폰을 가지고 갔는데, 아직 아마츄어 수준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악보없이 100곡 정도는 자신있게 부를 수 있다.
지금까지 세게 여러 곳을 여행하여 왔지만, 이번의 인도와 네팔 여행만큼 고생하면서도 보람있는 여행은 없었다.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사람들, 특히 나이가 들어 삶과 죽음을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들이라면 인도, 특히 바라나시의 여행을 한번 권하고 싶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결코 두 번 다시 인도에는 가고 싶지 않다
힌두교 파슈파티너트 사원에서 걸식을 하며 수행하는 사람들. 옷을 벗고 있는 사람부터 얼굴에 이상한 색칠을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함. 사진을 찍으려 하니 돈 달라고 손부터 내미는데, 수행자라고 하기보다 일하기 싫은 게으른 노숙자나 거지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네팔 제2의 도시이자 휴양지인 포카라의 페와호수에서 보트를 타면서 색소폰 연주. 타이타닉 주제곡을 비롯 우리나라 가요들을 불렀는데 호숫가의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인기 짱이었음. 보트투어 마치고 광장에서 2시간 색소폰 연주하여 모은 성금은 티벳 난민촌에 전달함.
새벽에 사랑코트 전망대에서 히말라야 연봉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광경을 바라보며
아침이슬과 그리운 금강산 등을 연주함.
뒤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보이나 새벽녘이고, 휴대용 디카라서 사진이 선명치 못해 유감.
그러나 두 눈 속에 확실히 박아왔으며, 기회가 되면 히말라야 트랙킹에 도전하고싶다.
갠지스강 상류에 위치한 화장터. 사진찍는 것이 절대 금기시되어 있으나 보트에서 한 커트 찍고
바로 옆에서 화장 광경을 지켜봄. 향나무에 화장되는 것이 생애 최고의 영광이라 하며
무연고 시신은 별도의 전기로 화장터가 있어 시체가 그대로 강에 버려지는 일은 없다고 함.
바라나시 특히 갠지스강 근처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데,
그들은 삶이 고통받을수록 신과 가까이 있고 부자로 환생되는 것을 믿고 있으며,
오히려 우리들을 보고 불쌍하다고 함
죽음의도시, 영혼의도시 바라나시의 갠지스강가에서 상류에 화장터가 있어
타다남은 숯과 유해가 떠다니고 온갖 배설물과 쓰레기가 떠다녀도 성스러운 강이라고
목욕과 빨래는 물론 그 물을 떠마시는 사람도 있음 (한국사람이 마시면 그 즉시 장염에 걸림)
처음에는 본인도 갠지스강가에서 목욕하려 하였으나 포기하고 대신 강물에 손만 담구어 봄.
관광객을 상대로 갠지스강의 모래와 물을 조그만 놋쇠 항아리에 담아서 파는 사람들도 있음
저녁에 갠지스강에서 힌두교의 전통의 축제가 열리는데,
본인도 유람보트 위에서 한곡 읊어 소음확산에 일조를 함.
뱃사공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데, 전통악기가 현악기인지라
관악기, 특히 색소폰의 우렁찬 소리가 그들에게는 처음으로 그저 신기할 따름
힌두교에서 소는 자신들의 어머니라 하여 신성하게 여김. 주인 없는 무연고의 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그런데 도시인지라 풀이 없어 삐쩍마른 소가 쓰레기를 뒤져서 먹고 있는 광경을 보고 충격 받음. (비록 굶을 망정 소들도 논밭을 갈고 일해야하는 시골보다 도시를 좋아하여 무작정 상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함)
본인은 소띠인지라, 뼈빠지게 일만 하다가 털 하나 남김없이 인간을 위해 희생당하는 소를 제일 싫어하는데, 인도의 소는 물론 개도 소위 “자유인”으로 사람보다 더 팔자가 좋음 (짐승으로 태어나려면 인도에서 태어날 것)
에로틱 도시 카주라호의 섹스템플의 미투나 상들. 조각의 섬세함과 정교함에 감탄사가 나옴.
섹스 장면이 야동은 저리 가라이며, 여기서는 가장 약한 장면 하나만 샘플로서 맛보기로 보여 주겠음
(*84가지 섹스 자세의 풀버전 사진이 필요하다면 별도로 본인에게 요청하기 바람)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건축물 타지마할 앞에서. 그동안 사진으로 많이 보아왔으나
실제 실물을 보니 과연 저절로 감탄사가 나옴. 그러나 외양과 달리 건물 내부는 기대 이하.
자이푸르 암베르성에 코끼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색소폰을 불다. 역사상 최초로 기록될 것임.
지난번 실크로드 파미르 고원에서 낙타타고 색소폰 불었는데 기네스북에 등재켜주면 안될까?
자이푸르 암베르 성에서 독일에서 온 단체관광객들과 한판 기념사진을 찍고 한 곡 땡김.
암베르 성은 물론 인구 300만의 자이푸르시가지 대부분이 지역 군주의 개인 소유로, 지금은 후손중에 아들이 없고 딸이 있는데, 이 공주를 운전수가 낼름 엎드려서 완전히 횡재하였다고 함.
(*자고로 유명하거나 빼어난 여자는 운전수, 정원사, 골프공 뽈보이 등이 먼저 낼름 삼키는데, 김연아 도 저으기 걱정이 됨)
인도 최대의 문화유산 아잔타 불교 석굴앞에서. 28개의 석굴이 말발굽 모양으로 배치됨.
아잔타 석굴은 8세기에 사람의 손길로부터 홀연히 사라졌다가 19세기 초 호랑이 사냥 나온
영국군 병사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그동안 큰 훼손이 없이 잘 보존되어 왔슴.
공적이던 사적이던 네팔과 인도를 다녀온 회원들이 더러 있을 터인데, 개인적인 의견을 많이 피력하였습니다.
(용량 부족으로 많은 사진을 게재하지 못하였으며, 별도로 기행문을 작성 중에 있습니다)
6차 티벳 히말라야 여행
2009년 7월 4일부터 12일간 세계의 지붕이자 가장 오지인 은둔의 땅, 티벳과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2008년도에 실크로드 천산남로를 거쳐 파미르고원까지 다녀온 적이 있는데, 해외여행은 일본, 유럽, 미국 등 선진지역 보다는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오지 여행을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런데 오지여행은 너무 힘이 들어 이번의 티벳과 히말라야 여행으로 일단 마무리하련다.
티벳 하면 우선 달라이라마와 포탈라 궁,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하얀 설산과 푸른 초원이 떠오르며,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은 지역이었다. 그런데 2008년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발생한 티벳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지역으로, 중국 당국에서 수시로 외국인의 여행을 통제하는 곳인데, (중국비자 외에 별도의 여행허가서가 있어야 여행이 가능함) 이번에 그 현장을 확인하고 왔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티벳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결코 중국이 아닌데, 1949년 모택동 공산당이 강제로 합병한 곳이다. 이 과정에서 백만이 넘는 무고한 티벳 사람들이 희생당한 아픔을 아직까지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 힘이 없는 약소민족의 설움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지만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행의 시작은 북경에서 출발하여 티벳 라싸까지 48시간 달리는 칭창열차로 하였다
이번 여행과 지난번 인도 네팔 여행을 통하여, 북경에서 중국 대륙과 인도 대륙을 횡단 한 셈이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었으며,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도 중국과 네팔 쪽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으며, 최고 5,248 미터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높이가 5,360 미터임)까지, 그것도 색소폰을 메고 올라가 나팔을 불었다.
라싸행 열차는 북경 서역에서 하루 한차례 밤 9시 30분에 출발하며 48시간이 소요된다. 열차는 20량으로 특실(4인실) 침대 2량, 일반실 (6인실) 침대 4량, 나머지는 모두 앉아서 가는 열차로, 침대 4인실은 몇 개월 전에 예약해도 구하기 힘들어 침대 6인실을 이용하였으며, 요금은 한국 돈으로 약 20만원 정도 든다. 북경 서역을 떠난 열차는 하북성, 산서성을 지나 섬서성 서안 및 감숙성 난조우, 그리고 청해성 서녕 및 거얼무 등 단 4곳에서만 정차하는 초특급열차이다.
원래 칭창열차는 청해성의 거얼무에서 티벳 라싸까지 1142 키로를 연결하는 것으로
평균고도 4000미터 이상으로 높아 하늘길을 달린다고 하늘열차라 불리운다.
북경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눈뜨면 역사도시 서안이고, 또 그 다음 날 눈뜨면 청
해성과 티벳의 경계인 곤륜산맥을 넘어 티벳 땅에 들어선다.
새벽녘 눈 덮인 곤륜산의 일출 광경. 곤륜산은 서유기는 물론 무협지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명한 산으로 6022 미터의 높이로 산정에는 항상 눈이 덮여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예부터 “곤륜산에 이르면 아름다움에 눈물이 마를 줄 모르고,
당고라산에 이르면 손으로 하늘을 잡을 수 있다” 라는 말이 있다.
양자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강 너머 설산과 조화를 이루어 너무나 아름답다
티벳땅의 산과 들. 무엇보다 높고 파란 하늘이 인상적이다.
산에 보이는 하얀 것은 눈이 아니고 소금이 석출된 것으로, 티벳 지역이 먼 과거에 바다였는데
융기하여 산이 된 것이다. 산 아래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골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8홀 아니 180홀, 1800홀이라도 원없이 칠 수 있을 것이다.
해발 7,162 미터의 당고라 산의 설경으로 바로 옆으로 기차가 지나간다
포탈라 궁에서 바라다 본 라싸 시가지의 모습. 300만 티벳의 인구의 90%는 장족(티벳족)이지만
중국 당국의 의도적인 티벳의 중국화 정책에 따라서 정치 경제의 주도권은 이곳에 이주한
한족에게 있다. 따라서 인구 20만의 라싸는 여느 중국의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티벳은 아직도 계엄령 상태이며 라싸 시내 곳곳에 무장군인이 있다
티벳의 상징 포탈라 궁의 위용. 달라이라마의 궁전으로 1645년부터 50년간 돌산에 건설되었으며,
건물의 높이 1,15미터, 동서 360, 남북 300미터의 웅장한 건물로서 종교기관인 가운데의 홍궁과
행정기관인 백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부 관람이 가능하나 사진 촬영불가 .
역시 색소폰을 빼놓을 수 없지. 포탈라 궁전 앞의 공원 호숫가에서 한 곡 읊조리다
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궁에서. 마침 소풍 나온 티벳 어린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천진스럽다. 그런데 이들이 티벳의 비참한 역사를 알아내고 자기들 앞에 놓인 티벳의 미래를 알게 된다면?
티벳의 최대 불교사원인 두레풍 사원. 한때 승려가 2만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문화혁명 당시 강제 해산되었으며 현재 200명 정도 있음.
겉에서 보기엔 절이라보다 아파트 같으나 대웅전에 15미터의 미륵불이 압권이다.
티벳에서 가장 성스러운 라싸 시내의 조캉 사원과 바코르 광장
조캉 사원 입구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티벳 사람들. 저들은 무슨 소원을 저리도 진지하게 빌고 있는 것일까? 티벳 전역에서 오체투지 하면서 이곳 조캉 사원에 도착하기 위한 성지순례가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조캉 사원 내부는 미로와 같이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로 이루어져 있고 회랑의 벽면에는 다양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라싸 교외의 수장터에서. 티벳 사람들은 조장과 마찬가지로 죽은 사람을 잘게 토막내어
강가에 뿌리면 물고기가 시체를 먹어치움. 따라서 그들은 절대로 물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함
라싸에서 장체로 가는 도중 해발 4820 미터인 고개를 지나는데,
발 아래 티벳 4대 성스러운 호수 중의 하나인 암드록쵸 호수와 멀리 설산의 장관이 펼쳐진다.
해발 4250 미터의 암드록쵸 호수에 발을 담그고 색소폰을 불다. 암드록쵸 호수는
짙푸른 물빛으로 인하여 터키석의 호수라고 불리며, 호수 모양도 전갈의 형태로 정말로 아름답다.
장체로 가는 길목에 해발 5050 미터의 고개의 빙하지대를 지나는데, 티벳 마을과 휴게소가 있어
나팔을 꺼내어 노래 부르니, 동네 어른들 아이들 할 것 없이 다 모여들다.
실크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음 들어보는 우렁찬 나팔소리에 모두들 신기해 하며
한번씩 불어보자고 난리들이다. 5,000 미터에서도 폐활량에 이상 없슴이 증명되었슴.
유채꽃과 그 너머 달나라 풍경 같은 파노라마. 티벳에서 몇 개 안되는 평지에는 주로 유채꽃을
재배하며, 7월은 유채꽃이 만개하는 시기로 온 들판이 노란색 물결로 장관을 이루며,
제주도와는 비교가 안되며 평생 볼 유채꽃을 여기서 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장체를 대표하는 팔코르최데 사원으로 티벳의 모든 불교종파에 의해 범교파적으로 관리하는 사원임. 이 사원의 핵심은 높이 37 미터의 9층 백탑인 쿰붐으로 이 탑에는 108개의 작은 방과 부처, 그리고 벽화가 있다.
티벳 제2의 도시 시가체의 타시룬포 사원의 전경. 현재 850명의 승려가 있어 승려 수로 볼 때 티벳에서 가장 큰 사찰로, 세계에서 제일 큰 26미터의 금동미륵좌상이 모셔져 있음
시가체에서 히말라야 기슭의 팅그리로 넘어가는 도중의 해발 5248 미터 고지에서.
이 고지에도 야크를 키우는 티벳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몰골이란 한마디로 두발 달린 야크 같다고 할까 사는 모습이 보기에도 너무 비참하고 측은하다.
중국쪽에서 바라다 본 세계 최고봉 8,848 미터의 에베레스트 산 전경.
계절이 우기인데도 마침 날씨가 좋아 산 정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옛날 차마고도의 길을 따라 네팔과의 국경 무역도시 장무에 도착함.
전날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도로가 끊겨서 4키로를 걸어서 네팔 국경까지 가다.
강을 경계로 중국과 네팔이 갈라지며, 강 위에 우정의 다리가 놓여져 있다. 강물은 회색빛
으로 급류를 이루고 있다.
하늘에서 본 히말라야의 장관
네팔 카트만두에서의 일정은 생략하겠다.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당장 2010 년이라도) 다음 번에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자 길에 도전하고 싶다.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 스페인의 북서쪽 끄트머리 산티아고까지 900 키로의 길을 약 40일 간 순전히 도보로 행군하는 것인데, 굳이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인생이 무엇인지를 반추하여 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이다.
2008년인가 이미 퇴직하신 건설의 김정국 국장께서도 도전하셨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색소폰을 메고 그 길을 다녀간 사람은 없다고 한다. 워낙 장거리에 한달 이상을 행군하는 것인지라 일단 짐이 가벼워야 하는데 색소폰에 앰프까지 들고 가려면, 우선 짐을 꾸리는 방법부터 연구하여야 하겠다.
그리고 성지순례인지라 비록 나 자신이 불교도이지만, 성가 또는 찬송가도 최소한 10여곡은 준비를 할 생각이다. (나머지는 고향무정, 섬마을선생님, 나그네설움 같은 우리 전통가요와 팝송 등으로 매일 행군과 동시에 두 세 시간정도 색소폰 연주할 생각임)
20 키로 내지 30 키로 마다 도미터리 형태의 저렴한 숙소가 있어, 하루 비용은 20 유로 정도면 된다고 하는데, 색소폰만 들고 가면 현지에서 충분히 조달할 수 있어 유럽까지 왕복 비행기표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한다.
2007년도에 약 보름동안 연차휴가 등을 사용하여 유럽 각지 (알프스 몽블랑 산정, 프라하, 아테네, 에게해 산토리니섬, 밀라노, 런던, 에딘버러 등지)에 색소폰 거리 연주여행을 갔다 온 경험이 있어 거리공연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 참고로 티벳의 역사, 문물 등에 관심이 있는 분은 DVD 차마고도 (KBS 발간 전6편 또는 요약편) 그리고 영화 티벳에서의 7년 (브레드피트 주연)을 사서 보거나 비데오 점에서 대여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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