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HWV 351
헨델 / 모음곡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George Frideric Händel, 1685∼1759
1749년 런던의 템즈강과 화이트몰에서 열린 불꽃놀이를 묘사한 삽화
전곡 연속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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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Ouverture: Adagio, Allegro, Lentement, Allegro 2 - Bourrée 3 - La Paix: Largo alla siciliana 4 - La Réjouissance: Allegro 5 - Menuets I and II Hervé Niquet, cond. Le Concert Spirituel Royal Albert Hall, 18 July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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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2)
1. Ouvertüre (Adagio - Allegro- Lentement - Allegro) - 00:00
2. Bourrée - 07:07
3. La Paix - 08:42
Trevor Pinnock, cond.
The English Concert
Recorded in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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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2)
4. La Réjouissance - 00:00
5. Menuet I - 02:05
6. Menuet II - 03:32
Trevor Pinnock, cond.
The English Concert
Recorded in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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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Ouverture: Adagio; Allegro; Lentement; Allegro
Karl Richter, cond.
Münchener Bach-Orchester
Recorded in Munich, Herkulessaal, by UNI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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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 'Bourrée'
3. 'La Paix': Largo alla siciliana
4. 'La Réjouissance': Allegro
Karl Richter, cond.
Münchener Bach-Orchester
Recorded in Munich, Herkulessaal, by UNITEL,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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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5. Menuets I and II
Karl Richter, cond.
Münchener Bach-Orchester
Recorded in Munich, Herkulessaal, by UNITEL, 1970
헨델이 64세 때인 1749년에 작곡. 《수상 음악 Water Music》과 함께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관현악곡이다.
1748년, 8년 동안 지속된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고 엑스 라 샤펠에서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오스트리아의 영토 대부분에 대한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1717~ 1780)의 상속권을 확증했다. 오스트리아를 지원한 영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영국 왕 조지 2세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 봄, 런던의 그린파크에서 성대한 불꽃축제를 열었고, 이 행사의 음악을 헨델이 담당하게 되었다. 《왕궁의 불꽃놀이》는 당시 식전 음악으로 연주되었는데, 헨델은 이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지는 점과 많은 군중들이 모여들고 야외에서 연주될 것을 감안하여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대규모 편성을 선보였다.
원곡은 불꽃놀이 전에 연주하는 서곡과 불꽃과 불꽃 사이에 연주되는 무곡 등 많은 소곡으로 이루어진 매우 긴 곡이지만, 현재는 많은 지휘자들에 의해 편곡된 곡이 연주되는데, 아일랜드의 명 지휘자 해밀턴 하티의 편곡으로 된 작품과 자이페르트의 편곡으로 된 작품을 많이 연주한다.
제1곡은 프랑스풍의 서곡으로 D장조의 4/4박자 행진곡풍으로 펼쳐진다. 제2곡은 시칠리아 풍(Alla Siciliana, 평화)의 느리고 엄숙한 춤곡이 빠른 환희로 바뀌는 형태를 갖는다. 제3곡은 빠른 템포의 프랑스 춤곡 부레(Bourrée)로 이루어져 있고, 제4곡은 레쥐상스(Rejouissance, ‘기쁨’이란 뜻으로 18세기 경쾌한 소곡에 붙는다) 알레그로, 제5곡은 우아한 춤곡 미뉴에트 두 곡이 이어진다.
제1곡 서곡
팀파니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프랑스 풍의 즐겁고 화려한 곡이다.
01.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Suite HWV 351
1. Ou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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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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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ro, Lentement, Allegro
Jordi Savall, cond.
제2곡 부레
프랑스에서 시작되 빠른 무곡, 고전 조곡에서 흔히 쓴다.
02.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Suite HWV 351 -
2. Bour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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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Bourrée
Jordi Savall, cond.
제3곡 라르고 알라 시찰리아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무곡이다. 아름다운 목가조이며 언제부터인가 "평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03.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Suite HWV 351 -
3. La pa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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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paix
Jordi Savall, cond.
제4곡 환희
알레그로이며 평화와는 대조적인 밝은 곡이다.
04.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Suite HWV 351
4. La Réjouiss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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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éjouissance
Jordi Savall, cond.
제5곡 미뉴에트
제1, 제2의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의 작곡가 퍼셀을 연상시키는 작풍(作風)이다. 편곡자에 따라서는 제4곡 환희를 빼거나 조곡 배열이 다르기도 하다.
05.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Suite HWV 351
5. Menuet I,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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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uet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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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uet 1 da capo
Jordi Savall, 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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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uet II
Jordi Savall, cond.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Music for the Royal Fireworks)은 헨델이 64세 때인 1749년에 작곡했으며 물의 음악(Water Music)과 함께 그의 만년을 장식하는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야외음악의 최고 걸작이기도 하다. 1749년 4월 27일, 런던의 그린 파크에서 영국이 프랑스와 체결한 평화조약을 축하하기 위해 대규모의 불꽃놀이 축제가 열렸다. 헨델은 이때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왕궁의 불꽃놀이를 작곡, 연주했다.
이야기는 8년 전인 1740년 오스트리아의 황제 칼 6세의 서거(逝去) 무렵으로 돌아간다. 칼 6세에게는 아들이 없어 국본칙령(國本勅令=기본법을 이루는 조칙, pragmatic sanction)으로 가헌(家憲)을 정해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중부 유럽, 벨기에, 이탈리아를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전부 상속시키도록 했다. 그러나 칼 6세가 죽자 상속권 싸움이 일어났다.
바바리아의 선제후(選帝侯)였던 칼알브레히트가 프랑스, 스페인, 프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침공하여 빈의 마리아 테리지아를 내쫓고 1742년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의 시작이었다. 쫓겨난 마리아 테레지아는 친척인 헝가리의 도움을 얻어 바바리아, 프랑스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고국을 돌아왔다. 프러시아 왕 후페데리크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한편 영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여 우위를 되찾았다. 그러한 영국과의 관계에 불만을 품은 프러시아가 얼마후 평화조약을 깨뜨리고 보헤미아로 쳐들어왔다. 마침 바바리아의 칼 알브레히트가 죽어서 오스트리아와 다시 협상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을 황제로 선임하여 모든 일은 일단락된 듯 했다.
그렇지만 마리아 테리지아 편을 든 영국과 오스트리아에 적대했던 프랑스의 갈등이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속을 구실 삼아 또 전쟁으로 표출되었다. 전쟁은 8년이나 계속된 뒤에 간신히 끝났다. 비로소 두 나라는,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1748년 7월 7일 에스 라 샤펠(아헨)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관계국은 모두 점령한 땅을 돌려 주었다. 이듬해 봄, 영국은 긴 전쟁에서 해방된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불꽃놀이를 계획했다. 불꽃은 카발리에레 세르반도니가, 음악은 헨델이 각기 담당했다.
헨델은 군악용 악기를 쓰라는 영국 황제 죠지 2세의 요구에 맞추어 트럼펫 9개, 호른 9개, 오보에 24개, 화고트 12개, 콘트라화고트 1개, 팀파니 3상, 작은 북 2개, 여기에 세르팡 sepent 이라는 아직 영국에서는 낯선 저음악기까지 덧붙여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57인의 대합주 편성으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만들었다.
더구나 초연에는 관악기를 늘려 100개 이상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불꽃놀이를 열기 1주일 전인 4월 21일 보크스 홀 가든에서 공개 연습을 할 때 1만 2천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법석을 떨었다. 축제 당일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의 서곡을 연주하고 101발의 캐논포가 울려퍼진 뒤, 불꽃이 올라가야 할 차례가 되었으나 모처럼 아름다운 거대한 성당 모양을 하늘에 그리려던 시도는 무산되고 오히려 불꽃이 딴 곳으로 튀어 근처 건물을 태우는 소동만 일으켰다.
그리고 불꽃을 담당한 세르반도니는 울화가 치민 나머지 칼을 뽑아들고 축제 집행관에게 덤벼들어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 으로 몰려 예기한 대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미 64세였던 헨델은 3년 후 1752년에 장님이 되어 더 이상 작곡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있다가 1759년에 죽었으므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은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무대였다. 훗날 헨델은 현악기를 보강하여 연주회용 관현악곡으로 고쳐 썼다. 그해 5월에 런던의 자선 음악회 때 이 개정판을 처음 공개했다.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의 원곡은 매우 길다. 불꽃을 쏘아올리기 전의 서곡. 불꽃과 불꽃 사이에 연주되는 무곡풍의 여러 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훗날 해밀톤 하티, 막스 자이훼르트,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등 여러 사람이 조곡으로 편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