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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15

박연서원 2019. 3. 7. 07:47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나그네 인생


63.  인생은 아침 이슬같은 것


전주, 남원(南原)을 돌아본 김삿갓은 계절이 가을철로 접어들자,

지리산을 넘어 따듯한 남쪽으로 가기 위해 또 다시 방랑의 길에 올랐다.

지리산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걸쳐있는 엄청난 산으로

둘레에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고을들이 산재해 있다.

남원은 서쪽에 해당하고, 함양(咸陽)은 북쪽 고을이고, 진주(晉州)는 남쪽 고을에 해당한다.
이렇듯 크고 넓은 산을 넘자니 다리가 불편한 김삿갓으로선,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산허리를 걸어 넘어 진주 방향으로 길을 접어들었다.

그 옛날 진시 황제 시절, 중국 사람들은 <영생불사(永生不死)>초(草)를 구하기 위해,

동남동녀(童男童女) 5백 쌍을 동방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삼신산의 하나였던 방장산(方丈山)이 바로 오늘날의 지리산인 것이다.

김삿갓이 수많은 골짜기를 건너며 깊은 산속으로 들어오다 보니,

어디선가 늙은이가 대성 통곡하는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이고...이 무정한 친구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던 자네가

나를 내버려 둔 채 혼자만 가버렸으니, 이 무슨 기가 막힌 일이란 말인가!"
 
(응? 이게 무슨 소릴까?)
김삿갓은 길을 가다 말고, 귀를 유심히 기울여 보았다.

저편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넋두리는 분명 사람의 소리였다.
김삿갓은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부랴부랴 달려가다가,

너무도 뜻밖의 광경에 기절초풍을 할 듯이 놀랐다.
 
높다란 벼랑 아래 풀밭에는 뼈와 가죽뿐인 호호백발 노인이 하나 쓰러져 있는데,

그와 똑같은 또래의 호호백발 늙은이가 시체를 부등켜 안고 슬픈 목소리로 넋두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보세요, 어르신네! 이게 어찌 된 일이옵니까?"
 
김삿갓은 가까이 다가가, 노인과 시체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호호백발 늙은이는 울음을 그치고 김삿갓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정 노인과, 정 노인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있는 윤 노인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60대에 영생불사하는 신선이 되고자 속세를 떠나,

이곳 지리산에 들어와 영지버섯과 나무 열매, 풀뿌리 등 오직 초식 생활을 해오며,
백 살이 가까운 오늘날까지 잘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 노인이 영지버섯을 따려고 높은 벼랑에 올라갔다가,

그대로 벼랑에서 떨어져 즉사를 했다는 것이다.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또 다시 시체를 부등켜 안고 넋두리를 계속했다.
 
"아이고, 아이고! 이 무심한 친구야. 어떤 일이 있어도 3백 살까지는 같이 살자고 하던

자네가 백 살도 다 못 살고 죽어 버렸으니, 혼자 남은 나는 어쩌란 말이냐!"
김삿갓은 그런 넋두리를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지금 눈앞에서 넋두리를 하고 있는 늙은이는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사람이라고 말할밖에 없겠지만, 뼈와 가죽만 남은데다가 눈알만 반짝거리는 것이,

사람이라기보다는 귀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2백 년을 더 살아갈 예정이라니

도대체 사람의 생명에 대한 욕심은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 수 있단 말인가?
 
"돌아가신 노인께서는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옵니까?"
"이 사람이 나보다 세 살이 아래니까 올해 아흔 여덟이지.

3백 살까지 살려면 아직도 2백 년이나 남았는데,

이 친구가 비명횡사(非命橫死)를 했으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느냐 말일세."
 
김삿갓은 들을수록 놀랍기만 하였다.
사람이 백 년을 넘겨 살기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윤 노인 자신은 이미 백 년을 넘겨 살아왔을 뿐 아니라,

아흔여덟 살에 죽은 친구를 <비명횡사>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래도 말이 되는 것일까?
 
"아무려나 친구분이 돌아 가셨으니까, 매장을 해드려야 할 것이 아니옵니까?"
"물론 그래야지. 그러나 내가 기운이 없어 땅을 팔 수가 없네그려.

미안하지만 젊은이가 무덤 좀 파줄 수가 없을까?"
 
무덤을 팔 기운조차 없는 사람이 2백 살이나 더 살겠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김삿갓은 노인을 대신해 광혈(壙穴)을 손수 파주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정 노인을 땅속에 묻게 되자, 윤 노인은 김삿갓에게 생각조차 못했던 청탁을 하고 나왔다.

"여보게, 젊은이!

이 친구하고 나하고는 생사고락을 같이 해온 평생 동지라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동지였지만,

우리 두 사람은 저승에서도 동지가 되기로 약속했단 말일세.

단짝 동지의 마지막 길을 보내기가 너무도 섭섭하니

자네가 혹시 글을 알고 있거든 만장(輓章)이나 한 틀 써주게나."

김삿갓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좋습니다. 마침 종이와 먹이 제게 있으니, 만장을 써 드리기로 하지요."
그리고 김삿갓은 즉석에서 만시(輓詩) 한 수를 써갈겼다.
        
그대와 나는 살아서는 쌍동지였는데     
(동지생전 쌍동지 : 同知生前  雙同知)

그대가 죽어 나는 외톨 동지가 되었네   
(동지사후 독동지 : 同知死後  獨同知)

그대 단짝 동지인 나도 데려가 주게      
(동지착거 차동지 : 同知 捉去 此同知)

이제는 저승에서 쌍동지가 되고 싶네     
(지하원작 쌍동지 : 地下願作  雙同知)
          
윤 노인이 <동지>라는 말을 하도 많이 뇌까려 대기에

김삿갓은 짓궂게도 일부러 <동지>라는 말만 가지고 만장을 써 주었다.

그리고 만장 속에는 <영감님도 친구를 따라 빨리 저승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윤 노인이 글을 볼 줄 알았다면 김삿갓을 죽이겠다고 덤벼 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윤 노인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자네도 나처럼 오래 살고 싶거든 이 산속에서 신선도를 닦으며 나와 함께 살면 어떻겠는가?"
하고 뚱단지같은 소리를 한다.

김삿갓은 어름어름하다가는 윤 노인에게 붙잡혀 버릴 것만 같아,

부랴부랴 걸음을 옮겨 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갈 길이 바쁜 사람입니다."
    
김삿갓은 산길을 걸어 내려오며 마음 속으로 혼자 생각해 보았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죽는다는 것은 무엇이기에 윤 노인은 생에 대한 애착이 이렇게도 강렬한 것일까?)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인도 모르게 부모가 만들고 낳아 주셨으니까 사람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그렇게 인생의 출발은 본인의 의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죽음 역시 자기 의사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때가 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기에 옛날부터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고 일러오지 않던가?
 
따라서 내 목숨은  틀림없는 나의 것이지만,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이 땅에 나온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오래 살고 싶어도 내 맘대로 오랫동안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의 생명이다.
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은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전에 작별한 윤 노인은 3백 살까지 살고 싶어 지리산에 들어와 선도(仙道)를 닦는다고 하였다.
사람의 목숨이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도를 닦는다고 과연 3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설령 3백 살까지 산다손 치더라도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혼자 3백 년을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일찍이 어떤 시인은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고 하였다.
풀잎 끝에 달려 있는 아침이슬은 해가 뜨면서 사라지는 슬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다.
이렇게 영겁(永劫)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아침이슬같은 존재이다.


64. 남아하처 불상봉(男兒何處 不相逢)


어느덧 진주에 도착한 김삿갓은 우선 촉석루(矗石樓)부터 찾아 갔다.
진주성 남쪽 벼랑 위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촉석루는 그 아래로는 남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강 건너편 우거진 대나무 숲은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대나무 숲이 끝나는 강가에는 하얀 모래밭이 길게 연결되어 있어,

자연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은 왜적과 우리 관군이 피아간에 운명을 걸고 싸운 가장 치열했던 격전장이었다.
왜적이 총력을 기울여 공격해 왔었지만, 전라 병사 황진(黃進)과

경상 병사 최경회(崔慶會)와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등이 전력을 기울여 방어해 오다가,

마침내 세 장사가 모두 장렬히 전사한 곳이 이 곳, 촉석루이다.
 
이처럼 촉석루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인지라,

다락 위에는 시인 묵객들의 현판시가 수없이 걸려 있었다.

김삿갓은 다락 위에 걸려 있는 시들을 모조리 읽어 내려오다

인조 때의 명신이었던  홍만조(洪萬朝)의 시를 소리내어 읊었다.
     
천 척 높은 벼랑 위엔 다락이 솟아 있고
벼랑 아래 긴 강에선 여울이 흐느낀다.
지난 일 꿈이련 듯 싸움터는 말이 없어
저무는 구름 쌓인 눈 모두가 시름이네.

寄巖千尺 起高樓 (기암천척 기고루)
下有長江 咽不流 (하유장강 인불유)
今日經過 征戰地 (금일경과 정전지)
暮雲殘雪 入邊愁 (모운잔설 입변수)​
            
촉석루 위에서 강을 굽어보니, 어느덧 가을이 깊어 공중에는 낙엽이 휘날리고 있었다.
저 멀리 성벽 밑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것은 아마도 어느 촌가에서 저녁을 짓는 연기이리라.

(오늘도 어느새 하루 해가 또 저물어 오는구나. 오늘 밤은 누구의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고?)
김삿갓은 예전에는 아무리 날이 저물어도 잠자리를 걱정해 본 일이 없었다.

어느 집에서나 찬밥 한 술 얻어먹고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근래에 해소병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찬 방에서 자게 되면 기침이 심하게 날 뿐만 아니라, 전신에 이상한 동통이 발동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김삿갓에게 따듯한 방을 제공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아무려나 어디선가 밥을 얻어 먹어야 하겠기에,

다락에서 막 일어서려는데 별안간 누군가가 앞을 막고 나서며,
"아니 이거, 삿갓 선생 아니오?
남아하처 불상봉(男兒何處 不相逢)이라더니,
삿갓 선생을 이런 데서 다시 만날 줄은 정말 몰랐소이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김삿갓도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거, 노형은 우국지사가 아니오? 우리가 평양 연광정에서 만나고 나서 이거 몇 년 만이오?"
우국지사도 김삿갓의 손을 움켜잡으며 감격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연광정에서 만난 것은 벌써 10여 년 전 일이오. 그런데 오늘날,

이번에는 진주 촉석루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세상에 이런 기우(奇遇)가 어디 있단 말이오!"
10여 년 만의 해후 상봉이고 보니, 모두가 놀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김삿갓이 <우국지사>로 부른 사람은 <이북천(李北天)>이라는 본명을 가진 풍객(風客)이었다.
평양 연광정에서 김삿갓이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땅을 두두리며 다음과 같이 비분강개한 일이 있었다.
"우리가 임진년에 왜놈들한테 침략을 당하게 된 것은, 그 당시의 벼슬아치들이

사색붕당(四色朋黨)에만 정신이 팔려, 나라를 걱정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소.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며 임진왜란 당시의 유적지를 샅샅이 돌아보고 나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대정치가가 될 생각이오."

그때 이북천의 우국지정이 너무도 출중하였기에 김삿갓은 농담삼아,
"오늘부터 노형을 <우국지사>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하겠소."
하고 말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이 10여 년이 지나서 진주 촉석루에서 다시 만났으니,
피차가 기쁠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도 많이 늙었지만, 우국지사도 백발이 성성해진 걸 보니 그동안 많이 늙으셨구려."
"인정사정 없이 밀어닥치는 세월이야 낸들 어찌 막아낼 수가 있겠소이까."
그리고 나서 우국지사는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한지,

"우리 어디 가서 술을 나누며, 쌓였던 회포를 마음껏 풀어 보기로 합시다."
하고 김삿갓을 술집으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김삿갓도 술을 마다고 할 턱이 없었다.

남강물이 바로 눈앞에 굽어보이는 촉석루 담벼락 밑에 <유천(流川)>이라는 주막이 하나 있었다.
김삿갓은 우국지사와 함께 주막으로 들어서다가 간판을 보고 주모를 나무라 주었다.
"이 사람아! 전쟁터에서 군사가 많이 죽은 것을 <유혈성천(流血成川)>이라고 한다네.
여기는 임진왜란 때에 왜놈들을 많이 죽인 곳이니까,

이왕이면 주막 이름을 <유혈성천>이라고 할 일이지, 왜 단순히 <유천>이라고 했는가?"

그러자 주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잖아도 주막 이름을 <유혈성천>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비참하다고 해서 <유천>이라고 했다오."
 
김삿갓은 술이 거나해져오자, 문득 옛날 일이 떠올라 우국지사에게 물었다.
"참, 노형은 그 옛날 임진왜란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나는 언젠가는 파사현정의 정치가가 되겠노라>
호언했던 일이 있지 않소?

만약 그때의 장담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지금쯤은 정치가가 되었어야
옳은 일인데, 도대체 그 꿈은 어떻게 되셨소?"
 
우국지사는 뜻밖의 질문에 쓸쓸하게 웃었다.
"허허허, 그것은 젊은 날의 객기에 지나지 않았던 호언장담이었지요.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시운(時運)>이란 것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단 말입니다."
 
"차라리 잘 되었소이다. 옛글에 <영웅은 만인의 적(英雄萬人之敵)>이라는 말이 있습디다.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면서 그까짓 영웅은 되어서 무엇 하오?"
"삿갓 선생은 워낙 달관하신 양반이니까 영웅을 우습게 여기시겠지만,

나같은 속물에게 영웅이란 그야말로 대단하게 보이는 인물이라오.

그러나 영웅이 되려면 반드시 시운이 따라야 하는 거예요."
 
우국지사는 그렇게 탄식하며 술을 한 잔 쭈욱 들이키고 나더니,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즉흥시 한 편을 읊어 보이는 것이었다.
       
지사가 때를 만나기 어려움은                  
(志士逢時少 : 지사봉시소)
미인이 박명 하는 것과 같도다                 
(佳人薄命多 : 가인박명다)
내 평생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生平無所事 : 생평무소사)
머리가 백발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리요.  
(頭白奈何何 : 두백내하하)
      
김삿갓은 그 시를 들어 보고, 우국지사는 아직도 속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구나 싶어,

적이 슬픈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미련을 떨쳐주기 위해 얼른 이렇게 말했다.


"소동파의 시에,
 
살아 있을 때의 부귀는 풀잎의 이슬이요  
(生前富貴 草頭露 : 생전부귀 초두로)
죽은 뒤에도 풍류는 밭두렁의 꽃과 같다.  
(身後風流 陌上花 : 신후풍류 맥상화)
 
라는 말이 있소. 노형이나 나나 우리가 이미 백발이 다 되었는데

이제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무엇을 바랄 것이오.

그저 남은 나날을 모든 것의 시시비비를 떠나서 살면 되겠지요."

우국지사는 김삿갓의 말에서 새삼 느낀점이 있었던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삿갓 선생 말씀이 진실로 옳은 말씀이시오."
 
김삿갓은 술을 마셔 가며, 우국지사에게 물었다.
"내일 아침이면 서로 헤어져야 할 판인데, 노형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오?"
"여기서 남해(南海) 섬들이 멀지 않으니, 그 쪽을 한 번 돌아볼까 합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국지사도 나와 마찬가지로 종신 운수객(雲水客)이 분명하구려....
우리가 이번에 헤어지면 언제나 또 만나게 되려는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글쎄올시다. 사람의 일을 누가 알겠소이까. 운수가 좋으면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만날 기회가 또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삿갓 선생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시오?"
하고 이번에는 우국지사가 김삿갓에게 물었다.
 
김삿갓은 잠시 생각하는 빛을 보이다가,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아 이번 겨울만은 따뜻한 지방에서 편히 쉬고 싶지만,
그럴 만한 곳이 있어야 말이지요."
 
우국지사는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눈을 커다랗게 떠보였다.
"그렇다면 마침 잘 됐소이다. 강진 고을에 안복경(安福卿)이란 진사 친구가 있소.
내가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써드릴 테니,

이번 겨울은 그 친구 집에서 편히 쉬도록 하시오."
 
"고맙소이다. 그렇게 폐를 끼쳐도 괜찮을 사람인지요?"
"그 점은 염려 마시오. 그 친구는 돈도 많지만, 풍류를 이해하기 때문에

삿갓 선생이 찾아 가시기만 하면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삿갓은 몸이 하도 괴로운지라, 우국지사의 호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나저나 내일 아침이면 우국지사와 작별할 것을 생각하니

김삿갓은 우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우국지사에게 술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번에 헤어지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노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삿갓 선생은 무슨 말씀을 하시오?

설사 내일 죽는 한이 있어도, 사람은 모름지기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날이 밝으면 우리들은 어차피 헤어져야 할 것이오.

우리가 두 번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지 모르니, 내가 이별의 시를 한 수 읊기로 하겠소."
          
비분강개 잘하는 우국지사와             
(憂國非歌士 : 우국비가사)
촉석루 다락에서 다시 만났는데         
(相逢矗石樓 : 상봉촉석루)
차가운 연기는 담섭에 아롱지고         
(寒烟凝短堞 : 한연응단첩)
가랑잎은 모래밭에 딍굴고 있소.        
(落葉下長洲 : 낙엽하장주)
 
우리들은 본래의 뜻은 서로 틀려도    
(素志違其卷 : 소지위기권)
마음은 하나건만 이미 백발이 되었소 
(同心己白頭 : 동심기백두)
그대 내일 아침 남해로 떠나가면       
(明朝南海去 : 명조남해거)
강산에는 어느덧 가을이 깊어 오리요. 
(江月五更秋 : 강월오경추)
          
영원한 이별을 상징하는 구슬픈 시였다.
우국지사도 그 시를 듣고 나자 가슴이 메어져 오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당나라의 시인 고적(高適)이

친구를 멀리 보내며 읊었다는 시를 서글픈 목소리로 읊어대었다.
       
누런 구름 길게 뻗어 하루해가 저무는데    
(十里黃雲 白日훈 : 십리황운 백일훈)
북풍에 기러기 날고 눈발이 사납구나        
(北風吹雁 雪紛紛 : 북풍취안 설분분)
가는 곳에 친구 없다 걱정하지 마오          
(莫愁前路 無知己 : 막수전로 무지기)
천하의 그대를 어느 누가 모르리오.          
(天下誰人 不識君 : 천하수인 불식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뜻하는 말인지 모른다.
한 번 만난 사람은 생별(生別)이든 사별(死別)이든 간에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다.
김삿갓은 오늘날까지 무수한 이별 속에서 살아왔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우국지사와의 이별처럼 절실한 비애를 느껴 보기는 처음이었다.


65. 강진에서 귀인을 만나


<유천>이라는 주막에서 우국지사와 마지막 작별을 나눈 김삿갓은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강진에 있는 안복경이라는 사람을 찾아 가기로 결심하였다.
진주에서 강진 고을까지는 몇백 리가 되는지 김삿갓은 정확한 거리를 모르지만

마음 놓고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무리 멀더라도 따뜻한 곳을 찾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병이 워낙 심상치 않은데다가 우국지사를 만나 밤샘을 해가며 폭음을 한 탓인지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게다가 날씨조차 갑자기 추워져서 사지가 오그라들 지경이었다.
(이거 큰일났구나. 몸이 이래 가지고야 하루에 10리 인들 걷겠나?)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김삿갓은 날이 갈수록 몸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어떤 때에는

절간으로 찾아 들어가 10여 일씩 몸조리를 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때에는 서당방에서 4,5일씩 쉬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강진 고을을 향해 조금씩 거리를 줄여나갔다.

이 해도 저물어 가는 섣달 중순께의 일이다.
김삿갓은 이날도 저녁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기와집을 찾아가니,

마침 그 날이 제삿날이어서 많은 친척들이 음식을 차리느라고 법석을 떨고 있었다.
 
그 집은 돈도 많은데다가 제사를 지내는 법도가 엄격한지, 밤이 이슥해 오자

예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헌관(獻官)과 집사(執事)까지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옳다 됐다. 제사를 지낸 뒤에는 으례 음복을 나눠 먹을 테니,

그 때에 나도 맛나는 음식을 푸짐하게 얻어먹을 수가 있겠구나!)
 
김삿갓은 자기 나름대로 잔뜩 기대를 가지고 행랑방에 혼자 누워

제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복을 얻어먹을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무슨 기대에 어긋나는 처사인가? 주인집 일가 친척들은

제사가 끝나자 안방과 사랑방에서 저희끼리만 음복을 나눠 먹을 뿐,

김삿갓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지 김삿갓이 있는 행랑채에는

개다리 소반에 떡 한그릇과 김치와 숙주나물 한 접시만 덜렁 들여놔주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일이야.....? 빌어먹을 놈들! 조상의 제사를 지냈으면

음복만은 손님에게도 똑같이 나눠줘야 옳을 일인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차별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런 심보를 가지고 어떻게 조상의 음덕을 바란단 말인가?)
                  
김삿갓이 병든 몸을 이끌고 고생끝에 강진 고을에 도착한 것은

그해도 저물어가는 섣달 그믐께 무렵이었다.

안복경 진사는 우국지사의 소개장을 자세히 읽어 보고 김삿갓을 크게 반기면서,
 
"그러잖아도 어젯밤 꿈자리가 좋길래,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설마 삿갓 선생처럼 고명하신 어른이 찾아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척 피로하신 모양이니 어서 들어가십시다."하고 큰 사랑으로 모셔 들였다.
 
그리고 초면 인사를 정중히 나누고,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삿갓 선생을 직접 만나 뵙기는 오늘이 처음이나, 일찌기 선생의 선성(先聲)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북천(李北天) 공의 소개 편지에 의하면, 선생은 몸이 몹시 불편하시다고 하셨으니,

이번 겨울은 저희 집에서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강진이라는 곳은 겨울에도 추위를 모르는 따뜻한 곳입니다."
 
김삿갓은 안 진사의 특별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강진 고을은 뒤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바라보여서,

병자가 몸을 수양하는데는 안성맞춤의 휴양지였다.
 
김삿갓은 안 진사와 날마다 글 토론도 하고 산책도 같이 다니는 동안에,

그의 인품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돈이 많아도 교사(驕奢)하지 않았고, 지식이 풍부하면서도 겸손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비록 농사꾼이더라도 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기도 하였고,

훈장이 나들이를 갔을 때에는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이렇듯, 안 진사는 안심입명(安心立命) 사상이 몸에 배어 있는 처사형 군자였던 것이다.
 
김삿갓이 거처하는 안 진사 댁 별당은 언제나 절간처럼 조용하였다.
뜰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연못가에는 대나무도 있고 수초도 무성했지만,

물고기가 물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운 일의 하나였다.
 
어느 날 안 진사는 김삿갓에게,
"선생!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니, 금곡사(金谷寺) 구경이나 한 번 다녀오십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금곡사는 안 진사의 집에서 5 리쯤 떨어진 보은산(寶恩山) 산속에 있는

낡은 절간을 말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오랜만에 안 진사와 함께 나들이를 나섰다.

금곡사 입구에는 개울물을 사이에 두고,

30척이 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공중 높이 솟아 있었다.

그 거대한 두 개의 바위는 마치 두 마리의 싸움닭이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서로가 날갯죽지를 추스리고 마주 노려보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 두 개의 바위는 금방 싸울 것만 같은 형상이구려."

김삿갓이 바위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하자, 안 진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지방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두개의 바위를

<쟁계암(爭鷄岩)>이라고 불러 오고 있답니다. 금곡사가 번창하지 못하는 것은

이 바위들이 절 입구에서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삿갓 선생은 오늘 금곡사에 놀러 오신 기념으로,

이 바위들이 이제부터는 싸움을 아니하도록 화해를 좀 붙여 주시지요."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고 즉석에서,
"그렇다면 내가 화해를 주선하는 시를 한 수 지어 볼까요?"하고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지만             
(雙岩竝起 疑紛爭 : 쌍암병기 의분쟁)
중간에 물이 흘러 서로 분한 마음을 풀어 주네.   
(一水中流 解忿心 : 일수중유 해분심)


66.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보은산은 남향이어서 산속이 유난히 따뜻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산속에서는 어느새 진달래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김삿갓은 진달래 꽃 봉오리가 터진 것을 발견하자,

오랫동안 몸 속에 잠재해 있던 방랑벽이 별안간 가슴이 설레도록 용솟음쳐 올라왔다.

(아아, 나도 모르게 어느새 대지에는 봄이 왔구나. 나도 이제는 방랑의 길을 떠나야 할 때가 왔구나!)
김삿갓은 무의식중에 그런 충동이 느껴져,

진달래꽃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안 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봄이 왔으니, 나도 이제는 길을 떠나야 하겠소이다."
그리고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작별시를 한 수 써 보였다.
         
먼 나그네 오랫동안 병을 빙자하여
댁에 폐를 끼치며 봄을 맞았소
봄이 와서 동서로 뿔뿔이 헤어지면
이곳 꽃 구경은 다른 사람과 할 것이오.

遠客悠悠 任病身 (원객유유 임병신)
君家蒙恩 且逢春 (군가몽은 차봉춘)
春來各自 東西去 (춘래각자 동서거)
此地看花 是別人 (차지간화 시별인)
         
김삿갓은 길 떠날 결심을, 한 수의 시로써 안 진사에게 알려 준 것이었다.
안 진사는 김삿갓의 시를 들여다 보고 크게 놀랐다.
"선생이 여기를 떠나시다니, 무슨 말씀이시오. 건강이 쾌유하시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지금 길을 떠나시면 안되시옵니다."

안 진사는 기를 쓰고 만류하였다.
그러나 한 번 결심한 이상, 누가 무슨 소리를 하거나 그냥 눌러 있을 김삿갓은 아니었다.
"나는 워낙 방랑 생활을 끝없이 계속하다가,

언젠가는 길에서 죽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려는 나를 굳이 붙잡지 말아 주세요."

김삿갓의 결심이 이렇다 보니, 안 진사는 더 이상 김삿갓을 붙잡을 수가 없다고 느끼며,
"길을 떠나신다면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하고 물었다.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웃어 보이며,
"내가 언제는 갈 곳을 미리 정해 놓고 돌아다니는 사람이었던가요.

봄을 따라 북상하면서, 가지산(迦智山)에 있는 보림사(寶林寺)와 용천사(龍泉寺)도 구경하고 싶고, 마음이 내키면 화순(和順) 동복(同福)에 있는 적벽강(赤壁江)에도 한번 들러볼 생각입니다."

안 진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마침 잘되셨습니다. <동복>에는 신석우(申錫愚)라는 막역한 친구가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편지를 써 드릴 테니, 동복에 가시거든 그 친구를 꼭 찾아 주십시오.

그 친구라면 선생에게 모든 편의를 정성껏 보아 드릴 것입니다."

이리하여 김삿갓은 신석우라는 사람에게 전해줄 소개 편지 한 장만 받아 가지고,

기어코 강진 고을을 떠나고야 말았다.
김삿갓은 몸으로 봄을 느끼자 고집스럽게 방랑의 길에 오르기는 했으나,

먼 길을 걷기에는 몸이 너무도 쇠약해 있었다.

그러기에 강진에서 용천사를 거쳐 보림사까지 2백 리도 채 못되는 거리를

보름 만에야 가까스로 도착하였다. 김삿갓이 진작부터 보고 싶었던 가지산 속의 명찰,

보림사를 구경하고 풀밭에 누워 피로를 풀며 자기 자신의 신세를 다음과 같은 시로 읊었다.
      
잘 살고 못사는 것은 천명이라 마음대로 안 되는 것
나는 내 멋대로 자유롭게 살아왔노라
고향 하늘 바라보니 천리길 아득한데
남쪽에 헤매는 신세 물거품과 같구나.

窮達在天 登豈易求 (궁달재천 등가역구)
從吾所好 任悠悠    (종오소호  임유유  )
家鄕北望 雲千里    (가향북망  운천리  )
身勢南遊 海一구    (신세남유  해일구  )

술잔을 비로 삼아 시름을 쓸어 내고
달을 낚시로 삼아 시를 낚아 오면서
보림사 용천사를 두루 구경하고 나니
내 마음 욕심없이 스님과 다름없네.

掃去愁城 盃作추 (소거수성 배작추)
釣來詩句 月爲鉤 (조래시구 월위구)
寶林看盡 龍泉又 (보림간진 용천우)
物外閑跡 共比丘 (물외한적 공비구)
     
그로부터 10여 일이 지난 후, 화순 동복으로 신석우를 찾아갔을 때에는,

김삿갓은 몸을 가누기가 어려울 정도로 극히 쇠약해 있었다.
 
50 고개를 바라보는 시골 선비 신석우는 안 진사의 소개 편지를 받아 보고,

김삿갓을 무척이나 측은히 여기며 말했다.
"선생께서 강진 고을에 와 계시다는 소식은 풍문으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까지 왕림해 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에는 조용한 초당이 있으니, 건강을 회복하실 때까지 푹 쉬시기 바랍니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그런데 주인 양반께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동복에는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적벽강(赤壁江)과 같은 강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강은 이곳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적벽강은 여기서 불과 5 리 안쪽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선생이 적벽강을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조만간 따뜻한 날을 택해 제가 직접 모시고 가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적벽강을 꼭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나 나 혼자서 구경하고 싶지,

누구하고 함께 보고 싶지는 않아요. 매우 외람된 부탁이지만,

내일 아침에 저에게 배를 한 척 빌려 주실 수 없으실까요?"
선비 신석우는 김삿갓의 무리한 부탁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불편하신 몸으로 배를 어떻게 혼자 타시옵니까.

적벽강은 내일중으로 기어이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제가 직접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김삿갓은 고개를 힘차게 내저었다.
 
"좋은 경치를 내 마음대로 즐기려면 옆에 방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옛날 시에,
 
<꽃은 웃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花笑聲未聽)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다. (鳥啼淚難看)>
 
이라는 시가 있지요.

이처럼 홀로 자연과 동화된 시인은 꽃의 웃음과 새의 울음을 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부디 그러한 느낌을 즐길 수 있도록 나에게 배 한 척만 알선해주세요."
 
김삿갓이 이렇게도 고집을 부리니, 신석우로서는 더 이상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은 적벽강 나루터까지 김삿갓을 모시고 가서, 혼자만 배를 타게 해주었다.
 
배는 조그만 놀잇배였다.
물 위에 둥둥 떠도는 배는 노를 젓지 않아도 흐름을 따라 조금씩 적벽강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김삿갓은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에 상쾌감을 느끼며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그윽히 바라보며, 여기가 바로 선경이 아닌가 싶었다.
 
이러한 천장지활(天長地활)한 대자연 속에

일엽편주를 띄워놓고 삼라만상을 허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제 부터는 밥을 빌어먹기 위해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릴 필요도 없고,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헤매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같았다.
 
(아아, 여기가 바로 나의 안식처였구나!)
      
김삿갓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배 위에 편히 누워 저 멀리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넓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한가롭게 떠돌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떠도는 구름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어디선가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옛 시 한 수를 연상하였다.
                   
구름은 넓고 넓은 데를 어디로 가는고  
(雲山造造 何處歸 : 운산조조 하처귀)
하늘가 아득히 난새 소리 들려 오네.     
(但聞空際 綵鸞聲 : 단문공제 채난성)
 
하얀 구름을 그윽히 바라보고 있자니,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 왔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에 겨울 정도로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눈을 감으니 난새 소리가 한결 분명하게 들려오는 것 같앗다.
그나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음의 눈에는 하얀 구름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보였다.
 
(아아, 나의 목숨은 저 하늘가에 떠있는 한 조각 구름과 같은 것,

저 구름이 사라질 때면, 나도 이 세상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지겠지....)
 
점점 몽롱해 오는 의식 속에서 문득 <귀천(歸天)>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귀천, 넋이 하늘로 돌아간다. 즉, 죽는다는 소리다.
그러나 김삿갓은 <귀천>이라는 말을 떠올린 순간, 마음이 그렇게도 편안할 수가 없었다.


67. 승피백운 (乘彼白雲) 우화등선 (羽化登仙)


돌이켜보면 기구하기 짝이 없었던 50 평생이었다.
그러기에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며 시를 읊기 시작하였다.
      
날짐승도 길짐승도 제 집이 있건만         
(鳥巢獸巢皆有居 : 조소수소개유거)
나는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노라.     
(顧我平生獨自傷 : 고아평생독자상)

짚신에 지팡이 끌고 천릿길 떠돌며        
(芒鞋竹杖路千里 : 망혜죽장로천리)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水性雲心家中方 : 수성운심가중방)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尤人不可怨天難 : 우인불가원천난)
해마다 해가 저물면 혼자 슬퍼했노라.    
(歲暮悲懷餘寸腸 : 세모비회여촌장)

어려서는 이른바 넉넉한 집에 태어나     
(初年有謂得樂地 : 초년유위득락지)
한강가 이름 있는 고향에서 자랐노라.    
(漢北知吾生長鄕 : 한북지오생장향)

조상은 부귀영화를 누려 왔던 사람        
(簪纓先世富貴門 : 잠영선세부귀문)
장안에서도 이름 높던 가문이었다.        
(花柳長安名勝生 : 화류장안 명승생)

이웃 사람들 생남했다 축하해 주며       
(隣人來賀弄璋慶 : 인인래하농장경)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했건만         
(早晩歸期冠蓋場 : 조만귀기관개장)

자랄수록 운명이 자꾸만 기구하여        
(髮毛稍長命漸奇 : 발모초장명점기)
오래잖아 상전이 벽해처럼 변했다.       
(小劫殘門번海桑 : 소겁잔문번해상)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도 각박한데        
(依無親戚世情薄 : 의무친척세정박)
부모마저 돌아가셔 집안은 망했도다.    
(哭盡爺孃家事荒 : 곡진야양가사황)

새벽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終南曉鐘一納履 : 종남효종일납이)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 애달팠노라.       
(風土異邦心細量 : 풍토이방심세량)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호같고    
(心猶異域首丘孤 : 심유이역수구고)
신세는 궁지에 몰린 양 같은 나로다.     
(勢亦窮途觸藩羊 : 세역궁도촉번양)
  
시조차 읊을 기운이 떨어진 김삿갓은 잠시 뜸을 두었다가, 다시 읊기 시작했다.
 
남쪽 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은 곳      
(南州從古過客多 : 남주종고과객다)
부평초 처럼 떠돌아가기 몇몇 해던고.    
(轉蓬浮萍經幾霜 : 전봉부평경기상)
 
머리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이리오     
(搖頭行勢豈本習 : 요두행세기본습)
먹고 살아가기 위해 버릇이 되었도다.   
(楔口圖生惟所長 : 설구도생유소장)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가    
(光陰漸向此巾失 : 광음점향차건실)
삼각산 푸른 모습 생각할수록 아득하네. 
(三角靑山何渺茫 : 삼각청산하묘망)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으나       
(江山乞號慣千門 : 강산걸호관천문)
풍월 읊는 행랑은 언제나 비었도다.      
(風月行裝空一囊 : 풍월행장공일낭)
 
큰 부자 작은 부자 고루 찾아 다니며     
(千金之家萬石君 : 천금지가만석군)
후하고 박한 가풍 모조리 맛보았노라.    
(厚薄家風均試嘗 : 후박가풍균시상)
 
신세가 기구해 남의 눈총만 받다 보니   
(身窮每遇俗眼白 : 신궁매우속안백)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歲去偏傷髮髮蒼 : 세거편상발발창)
 
돌아가자니 어렵고 머무르기도 어려워  
(歸兮亦難佇亦難 : 귀혜역난저역난)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幾口彷徨中路傍 : 기구방황중로방)
       
김삿갓은 여기까지 씨부려 보다가, 마침내 기운이 진해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응구첩대(應口輒對)로 시를 읊어댄 것은 그의 타고난 천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를 읊을 기력조차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감은 채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배는 가벼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감고 있는 김삿갓의 심안(心眼)에는 홀연히 한 조각 하얀 구름이 떠올라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누군가가 그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며
        
"승피백운 (乘彼白雲),
 우화등선 (羽化登仙)!....."
 
"저 하얀 구름을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하고 읊조리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려 왔다.
김삿갓은 그 소리가 들려오자, 별안간 몸을 꿈틀하며,
 
"뭐? 승피백운 우화등선.....?"
하고 입속말로 뇌까리다가,
다음 순간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리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루 편답하며 수많은 시를 뿌려 놓은 시인 김삿갓은,

마침내 전라도 동복 적벽강 나룻배 위에서 영구 귀천했으니,

때는 지금으로부터 155년 전인 1863년 철종(哲宗) 14년, 3월 29일이요, 향년 57세였다.


에필로그(Epilogue)


김삿갓!

딱 한 번 집으로 가, 둘째 아들을 낳고 또 다시 떠나버렸다.
망한 놈의 집 구석, 쉰밥 얻어먹으며 아들이 여기 저기 찾아다녔으나

보리밭 똥 싸는 척하고 달아나 따돌렸다.
그럭 저럭 많이 살았다
57세. 전라도 동복(현, 전남 화순)에서 죽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송장 거두어 영월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김삿갓 유적지ㆍ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매년 10월초 김삿갓 문화재 개최)



김삿갓 문학관



복원된 생가



김삿갓 묘

타향의 외로운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