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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8

박연서원 2019. 2. 11. 07:17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나그네 인생


33. 첫날밤 소박맞은 세자매(1)

오진사 집을 떠나 온 김삿갓은 원주(原州)를 향해 걸어갔다.
때는 가을이 짙어져 산길 사이에 산들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졌고,
하늘가에는 어느새 기러기가 "끼룩"대며 떼지어 날아 다니고 있었다.

김삿갓은 고개를 넘어 앞을 살펴보니, 집이 한 채 있었다.
산골에서는 보기드문 반 기와집이었는데, 기왓골에는 드문드문 잡초가 돋아났고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은 판자가 썩을대로 썩어 제각각 바람에 너덜거렸다.
 
김삿갓은 그 집 대문 앞에서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칠십 노파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며 누구냐고 묻는다.
 
"저는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날이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졌으면 싶은데,
재워 주실 수 있겠는지요?"
노파는 대청 마루로 나오더니 딱한 얼굴을 하며 말한다.
"우리 집은 나 혼자 사는 집이라오. 사정이 딱해 보이니 들어 오시구려."
 
노파는 김삿갓을 건넌방으로 인도하며 혼잣말로 걱정을 한다.
"손님이 모처럼 오셨는데, 대접할 음식이 변변치 않아 어쩌지..."
"할머니!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행여 그런 걱정은 마시고, 잠만 재워 주셔도 됩니다."
"시장하시지? 저녁을 곧 지어 올테니, 그동안 방에서 편히 쉬구려."
 
주인 노파가 부엌으로 간 뒤, 방안을 둘러보니 머리맡에는 문갑이 있고 그 위에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오래된 탓인지 책장 곳곳이 여기저기 헤져 있었다.
(칠십 노파가 혼자 살면서도 글을 읽을 정도가 된다면 잘 교양된 집에서 자란 모양이구나...)
김삿갓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편히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후 문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주인 노파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온다.
들여온 상에는 반찬이라곤 몇 가지 밖에 없었으나, 음식이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웠다.

"저만 먹을게 아니라, 할머니도 함께 드시죠."
주인 노파가 웃으며 대답하는데,
 
"내가 아무리 늙었기로 남녀가 유별한데, 외방 남자와 음식을 어떻게 같이 먹누.
반찬이 입에 맞을진 모르겠으나 어서 많이 들어요."
자신을 가리켜 외방 남자라고 말을 할 때, 풍기는 노파의 수줍움이 느껴졌기에
삿갓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밥상을 물렸다.
 
밤이 이슥해서 노파가 자리끼를 들여주는데 김삿갓이 노파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거기 좀 앉으시죠. 할머니는 이 집에 언제부터 혼자 사셨나요?"
주인 노파에겐 무슨 사연이 있어 보여 삿갓이 물어 보았다.
 
주인 노파는 등잔 뒤에 살며시 앉으며 말한다.
"늙은이가 혼자 사는 것이 무척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모양이구료.
나는 혼자 산 지가 벌써 오십 년이 넘었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아니 그럼, 어른께서 그렇게나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씀입니까?"
 
김삿갓은 노파의 집을 초시 댁이라고 부른다고 들었기에

주인 노파를 초시의 미망인인 것으로 알고 그렇게 물었던 것이엇다.
그러자 주인 노파는 초시라는 말을 듣더니 약간 당황하는 빛을 보이더니,
"초시 어른은 내 남편이 아니고 돌아가신 우리 집 아버님이시라오.
우리 집이 초시 댁이라는 것을 어찌 아셨소?"
 
"조금 전에 마을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초시 어른이 부군이 아니고 선친이셨다면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김삿갓은 자신의 짐작이 잘못된 것을 솔직히 사과하고 나서,
"아니 그러면 부군께서 그렇게도 일찍 돌아가셨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다시 물었다.
 
주인 노파는 한참 동안 망설이는 빛을 보이더니 문득 말을 꺼냈다.
"나의 남편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고, 나는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여자라오."
김삿갓은 너무나 뜻밖의 대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날밤에 소박을 맞으셨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을 한 노파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듯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신방을 치루는 날 밤에 신랑이 도망을 가 버렸으니 그게 바로 첫날밤 소박이 아니고 뭐겠소."
김삿갓은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실례의 말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처녀 때에도 용모가 수려하고 몸가짐도 단정 하셨을 것같은데,

어째서 첫날밤에 소박을 맞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얼굴이 못생겼거나 품행이 단정치 못해 소박을 맞았다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그저, 모든 것이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할 밖에 없어요."
 
"아무 까닭없이 첫날밤 소박을 맞다니, 세상에 그런 팔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게나 말이오. 그러나 나는 소박 맞을 팔자를 타고난 여자인걸 어떡하우.

우리 집은 딸이 삼형제인데, 두 언니들도 한결같이 첫날밤 소박을 맞았으니

그게 팔자 소관이 아니고 뭐겠소."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기절초풍하게 놀랐다.
"네..엣?... 삼형제가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으셨다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주인 노파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모든 것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생각해요."
 
조상의 산소를 잘못 쓰면 후손에게 화가 미친다는 말은 흔히 들어오는 소리다.
그러나 산소를 잘못 써, 딸 삼형제가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아닌가.
 
"묏자리는 대개 지관(地官)들과 상의해 정하는 것이 일례이지 않습니까?
선친께서 돌아 가셨을 때는 지관과 상의하지 않으셨던 모양이죠?"
그러자 주인 노파는 손을 내저으며,
 
"아버님을 모시는데 풍수와 상의를 안했을 리가 있나요.

어머니는 유명하다는 지관을 모셔다가 묏자리를 정했는데,

그 놈의 지관이 천하의 돌팔이였지 않겠소!"
"유명한 지관이 갑자기 돌팔이로 변한 것은 무슨 까닭인지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님을 모신 형국은 잠두(蠶頭) 형으로 누에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잠두형에 산소를 쓰는 경우에는 산소에서 바라 보이는 곳에 반드시 뽕나무를 심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놈의 돌팔이 지관은 잠두형국이 명당이라는 것만 알았지,

그런 형국에는 뽕나무를 심어 놓아야 한다는 것까지는 몰랐거든요.
결국, 우리 삼형제는  모두 첫날밤 소박을 맞는 불행을 겪게 된 것이지요."
 
김삿갓은 풍수설을 별로 믿지는 않는다. 다만 노파의 말을 듣고 대뜸 수긍이 되는 점도 있었으니,

그 것은 자신이 학문에 정진하던 시절 들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로 말할 것같으면 한양의 남산(南山)도 잠두 형국이 되는데,

이태조는 무학 대사의 고언을 듣고 한양으로 천도를 해오자

남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오늘날  잠실(蠶室), 잠원(蠶院)으로 불리는 곳은 옛날에 뽕나무가 많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산소가 잠두형국인 것을 아시게 되었다면, 나중에라도 뽕나무를 심어 놓으셨더라면
괜찮았을 걸 그랬군요."
그러자 주인 노파는 씹어 뱉듯이 말을 한다.
 
"우리 삼형제가 모두 소박을 맞고 난 뒤에야 그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 아니겠소?"
"아, 참!...안타깝습니다."
 
주인 노파가 이야기하는 사연이 너무도 구구절절한 까닭에 김삿갓은 자신이 당한 일처럼 안타까워 하였다.


34. 첫날밤 소박맞은 세 자매(2)


"첫날밤에는 신부가 반드시 옷을 벗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옷을 제가 직접 벗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랑님이 벗겨 주시겠습니까? "
큰 언니는 옷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워 소박을 맞았고,

둘째 언니는 자기 손으로 옷을 벗은 탓에 소박을 맞은 고로,

신부 동순은 신랑의 의사를 존중해 줌으로써 소박을 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랑은 신부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자,
눈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뭣? 이게 무슨 소리야! 신부가 제 손으로 직접 옷을 벗겠다고?"
"신랑께서 옷을 벗겨 주시거나 저더러 벗으라고 하시던가 신랑님 좋으실대로 하세요."
신부는 어떡하던지 소박을 맞지 않기 위해서 자기 정신이 아닌 듯 말했던 것이다.
 
신랑은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딱 벌린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용수철 퉁기듯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르는데,
"계집년이 얼마나 많이 놀아 먹었으면 이 모양이야!"하며,

쏜살같이 밖으로 달아나 버리더라는 것이다.
 
"하하하, 소박 맞을 운명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군요."
"모두가 아버님 산소를 잘못 쓴 탓이예요."
주인 노파는 자기네 삼형제가 한결같이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것을

산소를 잘못 쓴 탓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산소를 잘못 써 집안이 망하거나

알 수 없는 우환과 질병에 고생 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으나,

딸 삼형제가 첫날밤에 모조리 소박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 후로 세 분은 아무도 재혼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주인 노파는 펄쩍 뛸 듯이 놀라며 말한다.
"여자가 한 번 혼인을 했으면 그만이지, 재혼은 무슨 재혼이예요."
"그렇다면 세 분은 명색만 혼인을 했다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일생을 처녀로 늙어오신 것 아닙니까?
 
"이를테면 그런 셈이지요. 우리 세 자매는 아버님이 물려주신 이 집에서 함께 살아 오다가,

큰언니는 십년 전에 돌아가셨고 작은 언니는 삼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나 혼자 남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주인 노파는 한 평생을 처녀로 늙어온 터라,

칠십을 넘겼음에도 말씨가 처녀처럼 상냥하고 정갈스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 살아 가시기가 외롭지 않으십니까?"
김삿갓이 이렇게 물어보니 노파는 고개를 살랑살랑 내저으며 대답한다.
"낮이면 온갖 새소리를 들으며 농사를 짓고,

밤이면 별과 달을 바라보며 살아온 탓인지 별로 외로운 줄 모른다오.

언니들이 돌아가신 뒤에는 일시 외로운 적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그런 외로움조차 남아있지 않다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란 시조가 불현듯 떠올라
주인 노파 앞에서 시조를 읊어댔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다섯 밖에
또 두어서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 없노매라
좋고도 그칠 적 없기는
물뿐인가 하노라.
 
김삿갓의 시조를 듣고 난 주인 노파는 말을 한다.
"청풍과 명월은 돈 한 푼 주지 않고도 이곳에서 마음껏 즐길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김삿갓은 첫날밤에 불행하게도 소박을 맞고도

이를 운명으로 받아 들여 평생을 보낸 여인의 삶이 불현듯 애처럽고 불쌍하여 

시인 백낙천이 여자들의 신세 한탄을 읊은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은  모름지기 여자로 태어나지 말지어라
한평생의 고락이 남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人生某作女人身  百年苦樂由他人


35.각 도(道)의 이름이 지어진 연유


김삿갓은 원주를 향해 다시 길을 떠났다.
때는 가을도 깊어져 초겨울이었지만 산속 오솔길을 비추는 햇볕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호젓한 산길을 얼마간 걷다가 어떤 촌로 한 사람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원주에 사는 친구의 환갑 잔치에 간다는 것이다. 노인은 길을 가면서 김삿갓에게 물었다.
 
"노형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저는 한양으로 가는 길입니다."
"허, 한양을 가신다니 부럽소이다. 나는 육십 평생에 원주 나들이조차 처음이라오.
원주가 경기도 땅이지요?"하고 묻는다.
김삿갓은 촌로의 무심함에 적잖이 놀라면서,
 
"아닙니다. 원주는 강원도 땅입니다. 본디 강원도라는 이름은 원주라는 고을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촌로는 김삿갓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강원도라는 이름이 원주에서 따왔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김삿갓은 걸어 가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옛날에 각 도의 이름을 지을 때, 영동 지방을 뭐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강릉의 머리 글자 "강"과  원주의 머리글자 "원" 자를 한 자씩 따가지고

"강원도"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원주는 강원도 땅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촌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그러면 함경도나 평안도 등도 그런 식으로 생겨난 이름인가요? "
"물론이죠.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 일대만은 "경기도"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고,

나머지는 모두 지역에 사람들의 왕래와 활동이 빈번한 고을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지은 것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구려. 이왕이면 다른 도명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지요."
 
"노인장의 소원이라면 그렇게 합시다.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함경도"로 부르게 되었고,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평안도"로 부르지요.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황해도",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에서 한 자씩을 따서 충청도,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에서 한 자씩을 따왔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에서 한 자씩 따가지고 "전라도"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촌로는 김삿갓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
"오늘은 노형 덕분에 늙은이가 좋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김삿갓은 원주 부근에서 촌로와 작별하고, 발길을 여주로 돌렸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고을을 되도록 피해가면서, 명승지가 많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여주의 대표적 명승지는 신륵사(新勒寺)이다.
 
신륵사는 봉미산(鳳尾山) 동쪽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눈 앞에는 한강의 상류가 흐르고 있어 산수의 조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곳이다.
게다가 강가의 바위 위에는 강월헌(江月軒)이라는 멋들어진 정자까지 있는 곳이었다.
 
강월헌 근처까지 다다른 김삿갓은 주변 경치에 취해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그만,
하룻밤 묵을 곳을 찾지 못하였다.
때는 이미 많이 지나 서산 넘어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창공의 달은 마치 대낮같이 주변의 사물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강월헌이라더니 제대로 날을 잡았군,

내친 김에 오늘은 강월헌 정자에서 달 구경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야 하겠구먼...)
 
이렇게 생각한 김삿갓은 천천히 발걸음을 강월헌이 있는 여강(驪江)으로 향해 갔다.
그런데 한참 앞서 옷을 하얗게 차려 입은 아낙네 하나가 부지런히 강월헌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로 강월헌에 가는 것인가?

아녀자 혼자, 초겨울 달 경치를 구경하기는 너무 늦은 시각인데...)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 김삿갓은 불현듯 일종의 호기심이 일어 여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월헌에 올라선 여인은 그 곳에서 누가 기다리던 모양인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미안해요...아이 숨차!" 하고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누구인지는 알 길 없으나 어둠속에서 제법 나아가 들어 보이는 늙수구레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게만 느껴지는군,

바삐 오느라고 숨이 무척 가쁜 모양이구먼, 어서 이리 와 앉아요."
 
두 남녀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이 확실해 보였다.
김삿갓은 적당한 위치에서 몸을 숨기고, 정자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바라 보다가

다음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빛이 가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으나 젊은 아낙네와 정답게 마주 앉은 남자는,
속인이 아닌 가사(袈裟) 적삼을 걸친 노승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치렀던 저희 집 양반 사십구 제(齊) 때에는

스님께서 여러가지로 보살펴 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모르겠어요."
여인이 그렇게 말을 하자 중은,
 
"무슨 소리요. 그대의 일을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 주겠는가?

그대의 일이 즉 나의 일이니, 앞으로도 어렵게 생각지 말고 나를 자주 찾아 오라구."하고 말한다.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은 무슨 일로 저를 여기까지 오라고 하셨습니까."
 
"그대가 무척 외로워 보이기에 내가 위로를 해주려고 만나자고 한 것 아닌가!"
중은 그렇게 말하며 대뜸 여인을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는지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참이 지난 후 여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스님들은 여자를 모른다고 했는데, 스님만은 여자를 잘 알고 계시는가 보네요."
 
그러자 노승이,
"무슨 소리! 많은 신도들에게 자비(慈悲)를 베풀어야 하는 내가 여자를 몰라서야 되겠는가?
옛날에 석가여래의 고제자였던 아난은 마등이라는 음녀(淫女)와 수없이 정을 통해 왔는데,
아난은 중이 아니며 마등은 계집이 아니더란 말인가?

오늘날 내가 그대와 이렇게 함께 하는 것도, 모두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해 보이는 것이라네!"
중은 해괴하고 괴상 망측한 자신의 짓을 이런 궤변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자 여인은 짐짓 놀라는 소리로,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그러면 스님은 남녀간의 재미를 속인들처럼 샅샅이 알고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하고, 교묘한 말로써 사내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아무렴! 내가 여자를 얼마나 잘 아는지 실증해 보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중은 여인의 손에 자신의 신물(神物)을 직접 쥐어 주기라도 했는지,
여인이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마! 스님은 누구를 죽이려고 이런 참나무 방망이를 다리 사이에 숨겨 가지고 다니세요?"
 
그 사내 놈에 그 계집이라고나 할까. 계집의 수작도 보통이 아니었다.
서방이 죽은지 두 달도 못되어 한밤중에 호젓한 정자로 중을 만나러 올 정도이니,
여인의 행실은 고대 소설 가루지기 타령의 변강쇠의 마누라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김삿갓은 젊은 계집의 앙큼한 수작을 듣는 순간,

옛날에 읽어 본 가루지기 타령이라는 고대 소설의 한 장면이 불현듯 머리에 떠올랐다.
   
천하의 잡년이었던 변강쇠 마누라는 서방의 신물을 어루만져보며,
다음과 같은 익살스러운 사설을 늘어 놓았다.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케도 생겼네.

전배사령(前陪使令)을 서려는지, 쌍걸랑을 늦게 차고, 오군문군노(五軍門軍奴) 이런가 복떠기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방아인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철고비를 둘러치고 감기가 들었는가 맑은 코는 뭔 일일꼬,
어린애 젖 게우듯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장이 궁기 그저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고 소년 인사 배웠는지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댄지 검붉기는 무슨 일꼬, 칠팔 월 알밤인지 두 쪽이 한데 붙어 있네..."
 
천하의 잡년이었던 변강쇠 마누라는 서방의 신물을 어루만지며

위와 같이 해괴한 일장 사설을 익살맞게 늘어 놓았으나,

이 젊은 여인은 그만한 말재주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신물을 어루만질수록 믿음직스러운 실감이 났던지,
 
"도대체 이 방망이의 이름을 무어라 하옵니까?"
하며, 앙큼스럽게 묻는다.
이에 늙은 중이 자신감에 찬 소리로 콧노래를 섞어 이렇게 뇌까리는 것이 아닌가?
 
"이 방망이로 말하면 만천하의 여인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생살 여의봉(生殺 如意捧)이라고 하느니라..

선가에는 극락 세계가 있으니, 모든 여자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는 이 물건을 일컬어

생살 여의봉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야! "
 
그러자 여인의 새침한 소리가 들렸다.
"스님은 이 물건으로 모든 여성들을 극락 세계로 인도하셨습니까?
이 물건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여성들을 위한 물건이라면,
저는 죽어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아니하옵니다."
 
여인이 갑자기 질투심 어린 소리를 하자, 노승이 크게 당황하는 듯 하더니

젊은 여인을 와락 끌어 안으며 이렇게 뇌까려 대었다.


"중생이 천만이 되어도 인연은 제각기 따로 있는 법.

나룻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넜다고 모두가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은 아니오.

나는 봉(鳳)이요, 그대는 황(凰)이 아닌가?

자고로 봉과 황은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인연임을 그대는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내 이제, 우리 두 사람은 삼생(三生)의 인연임을 그대에게 실증으로 보여 주리라."
 
그러면서 늙은 중은 여인을 마루 바닥에 깔아 눕히고 위로 덮쳐 올라

여인의 옷을 벗기는지, 부스럭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잠시후 여인은 별안간,
"으흐흑 !"
하고 외마디 감탄사를 지르더니 잠시 후에는 콧소리로 말을 한다.
"스님은 사람을 죽이시네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스님인줄 알았는데,

이렇듯 죽게 만드시니 이 무슨 일이오니까?"
 
노승은 만족스런 대답을 하는데,
"생살 여의봉이란, 신통방통 영험하여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수도 있으니

그대가 조금 전까지는 죽을 것같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다시 살아났으니,

앞으로도 살아갈 재미가 있을 것이야...
그래서 이 것을, 생살 여의봉이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면서 도도하게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김삿갓은 외간 남녀의 야합을 더 이상 지켜 볼 흥미를 잃었다.
그러면서도 불도에 정진하며 수양을 하여야 할 중의 파계도 문제이지만,

남편의 사십구 제를 계기로 만난 늙은 중과 눈이 맞아 돌아가는 젊은 여인의 행실에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삼강 오륜은 이미 땅에 떨어졌구나!"하고 중얼거린 김삿갓은 중놈과 계집이 모르게 강월헌을 빠져 나왔다.


36. 장수의 비결


신륵사에서 서쪽으로 십 여리 떨어진 북성산(北城山) 양지바른 곳에는

세종 대왕(世宗大王)의 영릉(英陵)이 있다. 

세종 대왕의 초장지는 대모산 기슭(헌릉ㆍ태종과 왕비의 묘. 현, 서울 세곡동)과 이어진

구룡산 기슭(현, 서울시 서초구 소재)에 있었는데, 대왕이 승하 하시고 19년이 지난후인 

예종(睿宗) 원년(1469년)에 이 곳으로 이장(移葬)해 온 것이다.
 
세종 대왕은 모든 문물에 조예가 깊으셨지만, 불교에 대해서도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 후예들은 불심이 깊으셨던 대왕의 영령을 받들어 모심과 함께,
대왕의 극락 왕생을 기리기 위해 영릉 부근에 수호사를(守護寺)를 새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땅히 절을 지을 만한 곳을 찾지 못하자, 영릉에서 동쪽으로 십여리 떨어진 신륵사를

세종 대왕의 영령을 수호하는 절로 삼는 동시에, 신륵사란 이름을 보은사(報恩寺)로 바꾸었으나,
고려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륵사라는 유명한 절 이름을 사람들은 그대로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아무리  나랏님의 지엄한 명령이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백성들의 중의(衆意)는 존엄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세종 대왕은 53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하실 때까지,

재위 32년간 이룩해 놓은 수많은 문화 업적중에 단연코 민족의 무궁한 역사에 길이 남을

최대의 업적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창제라 할 것이다.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자기 글이 있고 자기 말이 있는 민족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
그 것은 글을 통하여 민족의 역사적 자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관도 지기야(文者貫道 之器也)"라는 말이 있다.
이 것은 문장은 도(道)를 천년을 꿰뚫어 내려가게 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김삿갓은 이같은 일을 생각하며 세종 대왕의 능 앞에서 수그러진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세종대왕께서 좀 더 장수를 하셨다면, 나라의 문화가 더욱 융성하였을 것을... )
      
여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양평으로 가는 길과,

산악 지대인 이천과  광주를 거치는 길이 있다.
김삿갓은 산과 물을 모두 좋아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를 정하는데는 역시 지팡이 밖엔 없었다.
그렇게 허공으로 던져진 김삿갓의 지팡이가 떨어지며 가리킨 방향은 이천쪽이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
이라더니, 나의 지팡이는 물길 보다 산길이 더욱 좋은가 보군!" 

김삿갓은 이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때는 겨울이었지만, 날씨는 오전에는 따뜻하였는데 한낮이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구름이 크게 일더니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하여 길을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김삿갓은 마침 지나가는 젊은이를 붙잡고,
"혹시 이 근방에 하룻밤 자고 갈 만한 집이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젊은이는,
"우리 집 사랑방에 가친(家親)께서 혼자 거처하고 계시니 저희 집으로 가시죠."
하고 친절하게 말을 한다.
 
김삿갓은 젊은이를 따라가며 물었다.
"부친께서는 춘추가 어찌 되시오?"
"올해 여든여섯 살이시옵니다. 지금은 연세가 많으셔서 이따금 정신이 혼미하실 때가 있으시나,
젊으셨을 때는 훈장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두 부자(父子) 분의 나이 차가 퍽이나 많은 것같습니다."
김삿갓은 젊은이의 나이를 어림하여 이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젊은이는,
"부친께서는 환갑이 넘은 연후에 저를 보셨습니다."하며 말을 하였다.
 
김삿갓은 놀랐다.
환갑이면 61세이건만, 남자가 그 나이가 넘어서도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김삿갓은 부자간의 나이 차가 당장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눈보라를 피해, 하룻밤을 보낼 곳으로 속히 가는 것이 보다 절실하였다.
 
"춘부장 어른이 아흔이 다 되도록 장수하시는 것을 보면, 형공의 효성이 극진하신가 보구려."
김삿갓은 아흔이 가까운 노인이 계시다는 것에 크게 놀라며 말을 했다.
"저의 효성이 극진하여 장수하신다기 보다도, 이 곳의 산과 물이 좋은 탓과

평소에 가친께서 섭생에 유의하시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원인이야 어디 있든 간에 아흔에 가까운 노인을 만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김삿갓은 곧 만나게 될 노인에 대한 흥미를 느꼈다.
이윽고 젊은이를 따라서 "김 훈장 댁"에 당도해 보니, 집은 비록 초가집이었으나
본채와 사랑채가 의젓이 갖춰진 품이 어디로 보아도 중농(中農) 정도는 될 성 싶었다.
 
김삿갓이 사랑방으로 들어와 김 훈장과 초면 인사를 나누었는데,

주인 노인은 나이를 너무도 많이 자신 탓인지, 귀가 어두워져 인사를 드려도 대꾸가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나이에 비해 기골이 장대하고 뼈대가 굵고, 구렛나루 흰 수염은 배꼽에 닿을 정도로 

길게 자랐지만 머리는 거의 다 빠져, 둥근 머리 주변으로 간간히 흰 머리만 보일 뿐이었다.
("풍채가 도사(道師)같은 어른이군"... 김삿갓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잠시 후 사랑방으로 저녁상이 들어 오는데 소반에 반찬은 너댓 개였고, 

국과 밥주발은 한 개만이 들어왔다.

사랑에 두 사람이 있건만 저녁밥을 한 그릇만 들여온 것이 의아한 김삿갓,
"소찬이나마 맛있게 드십시요."하며 자신을 지칭하는 인삿말을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어르신 저녁은 따로 대접하십니까?"
 
그러자 젊은이가 말하는데,
"저의 아버님은 매일 아침 한 차례 '벽곡'을 하시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자시지 않습니다.
하오니 손님께선 괘념치 마시고 저녁을 잡수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김삿갓은 놀랐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의 노인이 산사에서 도를 닦는 고승과 같은 방법으로

식사를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젊은이의 입에서 여든여섯의 노인을

"뻔한" 자신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을 자신의 귀로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김삿갓은 저녁을 먹으며 노인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노인은 호롱불 밑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더니 까딱까딱 졸기까지 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김삿갓은 노인을 자리에 눕혀 드렸다.
그러자 노인은 코를 골기까지 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여든 여섯의 노인이 환갑을 넘겨 자손을 생산했고
다른 사람들은 세끼 식사를 하는데 반해, 하루 한 차례 벽곡 만의 식사로 끼니를 이으며,

말 수가 없고 주변의 변화에 무심한 것은 장수(長壽)와 어떤 상관 관계일까?...)
 
김삿갓의 이같은 의문을 풀어 줄 사람은 노인의 젊은 아들뿐이었다.
"잠시 아버님에 대해 물어도 될까요?" 김삿갓은 저녁상을 가지러 들어온 젊은이에게 말을 했다.
 
"제가 여러 지방을 다녀 보았지만, 춘부장 어른처럼 연로하셨어도 정정한 분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장수하시는 데에 어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젊은이는 아래와 같이 말을 하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배를 곯지 않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 먹는 음식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쉽게 죽이기 합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당신의 취향과 여건에 맞춰, 이미 오래 전 부터 벽곡을 하시면서 

과도한 음식의 섭취로 인한 질병과 거리를 멀리 하시게 되었으며,

평소에 말을 가급적 삼가하여 기(氣)를 발산하지 않으시며, 매사를  당신의 현안이 아닌 듯

무심하게 보고 넘기시는 것이 장수의 비결인 듯 합니다."라고 말을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무병 장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무병 장수는 어지간한 노력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김삿갓은 노인이 일상을 지내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노인처럼 평소에 절제있는 생활을 하게 되면 수명이 남다르게 오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조반을 얻어 먹고 길을 나선 김삿갓,
밤새  내린 눈으로 천지가 하얀 소복을 뒤집어 쓴 듯,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다.
         
屋後林鴉 凍不飛  
옥후임아 불동비
晩來瓊屑 壓松扉    
만래경설 압송비
應知昨夜 山靈死   
응지작야 산령사
多少靑峰 盡白衣   
다소청봉 진백의
 
숲속의 까마귀는 얼어서 날지 못하고
밤새 눈이 내려 사립문이 찌들어 붙었네
짐작컨데 간밤에 산신령이 죽었나 보다

수의 소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