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金炳淵)
41. 황진이(黃眞伊) 무덤
김삿갓이 임진나루를 건너, 얼마를 더 가니 장단(長湍,)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도의 삼절(三絶)로 불려오는 기생 황진이
(黃眞伊)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송도 사람들은 황진이와 함께, 성리학자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송도 삼절로
불렀다.
김삿갓은,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망정 신사임당과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 존재를
역사에 길이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진이는 이처럼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김삿갓은 황진이의 무덤만은 꼭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에 많은
남성들을 희롱해 온 일이 무척 후회가 된 임종 직전의 황진이가,
"내가 죽거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백골을 마음대로 밟고 다닐 수 있도록
길가에 묻어 달라."고 했던
황진이의 무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진이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그림도 잘
그리는 "만능 여인"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시를 짓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건곤할 제 쉬어 간들 어떠리.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님의
情
綠水 흘러간들 靑山이야 변할손가
綠水도 靑山 못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이렇듯 황진이는 언문 시조에도
능했지만, 한시에 있어서도 많은 명작을 남겼다.
가령 밤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보고선, 아래 詠半月(영반월)이란 시를 읊었다.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찍어 내어
직녀에게 얼레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그리운 견우님 떠나가신 뒤
서러워 머리빗 허공에 던져 버렸네.
誰斷崑崙玉
(수단곤륜옥)
裁成織女梳 (재성직녀소)
牽牛一去後 (견우일거후)
愁擲碧空虛 (수척벽공허)
김삿갓은 삼일 동안 장단 땅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보았다.
그러나 황진이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진이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마침내 황진이 무덤을 찾는 것을 단념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후 산속에 있는 어느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시며 주모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이 부근에 혹시 황진이라는 기생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아이 참, 손님은 별 걸 다 물어 보시네.
내
조상의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판인데
그까짓 기생년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누가 알겠어요."
김삿갓은 황진이 무덤을 찾아
제사 지내줄 것을 깨끗이 단념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술을 마시자니 오늘따라 처량한 기분이었다.
황진이 무덤을
찾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산골짜기에는 매화 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의 버드나무 숲속에서 꾀꼴새가 영걸스럽게 울고 있었다.
김삿갓의 눈에는 이런 풍경 모두가 마치 황진이의 환상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황진이를 생각하는 시 한 수가 읊조려 나왔다.
술을 들며 노래하고 싶어도
옛사람은 없고
꾀꼴새 울음소리만 마음을 괴롭히네
강 건너 버들가지는 마냥 싱그럽고
산골짜기 매화만 봄 향기를
풍기노니.
對酒欲歌無故人 (대주욕가 무고인)
一聲黃鳥獨傷神 (일성황조 독상신)
過江柳絮晴獨雷 (과강유서
청독뇌)
入峽梅花香如春 (입협매화 향시춘)
42. 두문 불출(杜門不出)
장단을 떠나온 김삿갓은 송도로 가는 길에 송도 팔경의 하나로 유명한 진봉산(進鳳山) 철쭉꽃을 찾았다.
과연, 진봉산 철쭉은 변계량이 읊은
시처럼 천하의 절경이었다.
제법 험한 산 전체에 철쭉꽃이 얼마나 많이 피어 있는지,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산 전체가 훨훨 불타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와 볼수록 더욱 놀라왔다.
철쭉꽃은 진달래꽃과 비슷하면서도 취향은 크게 달랐다.
진달래꽃의 빛깔은 청초한 연보랏 빛이어서 순결 무구한 숫처녀를 연상하게 하지만,
철쭉꽃은 꽃송이 자체도 풍만하려니와 빛깔도 농염하기 짝이 없어,
진달래꽃과 견주어
보건데 한창 무르익은 삼십대 여성의 육체가 연상되기에 충분하였다.
진봉산에 피어 있는 꽃은 오직 진달래와 철쭉 뿐이었다.
진달래꽃이 한물 가자, 철쭉꽃이 때를 만난 듯이 황홀하게 피어 있었다.
김삿갓은 마치 옷을 벗고 잠자리에 누워 있는 여체를 어루만지듯
철쭉 꽃송이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시 한 수가 읊조려졌다.
지난 밤 봄바람이 동방에
불어 들어
비단 이부자리 곱게 깔아 놓았소
이 꽃이 피는 곳에 새도 울고 있어
그윽한 그 자태 더욱 애를
끊노니
진봉산 철쭉에 넋이 나간 김삿갓,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한 발길을 옮기다 보니
개성의 진산인 송악산이 멀리
바라 보였다.
그러자 김삿갓은 5백년 옛 도읍지를 이제야 보게 되었구나하며 감개가 무량해왔다.
송악산 기슭에는 수목이
무성하였다.
저물어 가는 산길을 걸어가며 송악산 높은 봉우리를 올려보며 문득 고려조 충신이었던
야은 길재(吉再)의 옛 시조가 머리에
떠올랐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이성계는 고려를 망하게 하고 조선왕조를 창업하자 백성의 추앙을 받던
정신적 지도자인 세 사람을 회유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써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고려조의 지조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쪽같은 절개는 지금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태조의 다섯째 아들 정안군(후일 조선조 3대 태종)이 주석(酒席)에서
포은
정몽주의 심경을 아래와 같은 시(詩)로 떠보았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다.
그러자 정몽주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안군의 교묘한 회유를 일도
양단(一刀 兩斷)의 절개로 응수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쪽같은 정몽주의 일편 단심의 표현은 야망을 꿈꾸고 있는 정안군과
그의 추종세력에게는 전혀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주석이 파한 후, 포은 정몽주는 죽음을 예감하고 말 안장에 거꾸로
앉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선죽교에 이르렀을 때 맞닥뜨린 조영규(趙英珪)의 철퇴에 맞아 숨을 거두었으니,
세상에 그런 충신이 어디
있으랴 생각되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어원은 개성 사람들, 아니 고려조에 충성해오던 문신(文臣)
72명과 무신(武臣) 48명이
이성계가 고려를 거꾸러 뜨리고 새나라인 조선 왕조를 창건하자,
그 날로 만수산 두문동 골자기로 들어가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새 나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성계는 그들의 항거에 크게 당황하여 온갖 회유책을 써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왕 이성계의 회유에 일체 응하지 않았다.
이에 크게 진노한 이성계는 만수산 사방에 불을 질러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을 질러 버리면 불길에 견디지 못하고 두문동에서 뛰쳐 나오게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문동에 숨어든 고려조의
망국 지사들은 만수산 전체가 큰 불덩이가 되었음에도
불에 쫒겨 나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杜門不出)
이로 인해 개성에는
두문동 정신이라는 새로운 말이 생겼고, 이런 정신적 영향으로
개성 사람들은 조선 왕조에서 벼슬을 사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 왕조에서는 인재(人材)를 등용할 때
서북(西北)사람을 배척하게 되는 전통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개성 사람들은 호구지책으로 장삿길에 나서게 되었으니 흔히 "개성상인"이라고 하면
이익을 취하는데 영악함이 남달라서 지금까지도 개성
사람들을 흔히 "깍정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익에 영악한 개성 사람들이지만 신용이 알뜰하고 셈이 바르기론
팔도를 두루
편답하더라도 개성 상인을 따를 사람이 없는 것이다.
죽음의 도시와 다름없는 개성의 거리를 거닐다 보니,
김삿갓은 문득
정몽주가 살해된 선죽교(善竹橋)를 찾아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선죽교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여보세요
말씀 좀 묻겠습니다. 선죽교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김삿갓이 지나가는 선비를 붙잡고 물어 보니 사십쯤 되어 보이는 선비는 얼굴에
근엄한 빚을 띄며,
"포은 선생님이 운명하신 선죽교를 가시려고요?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서 말만 듣고 찾으시기가 수월치 않습니다.
내가 앞장 설 터이니 따라 오시오."하며,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 자진해서 길잡이로 나서주는 것이 아닌가.
김삿갓은 이렇듯 외지에서
온 선죽교 참배객을 앞장서 인도하는 개성 사람들을 보건데,
정몽주 선생을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흠모하고 사랑하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윽고 선죽교에 당도하자 선비는 다리 앞에서 머리를 숙여 잠시 묵념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포은 선생께서는
이 다리 위에서 이방원의 하수인인 조영규라는 놈의 철퇴에 맞아
무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성스러운 피는
이 다리 돌 속에 깊숙이 물들어서 3백년이 지난 지금도 돌이 이렇게 붉습니다.
보십시요. 이게 포은 선생께서 흘리신 핏자국입니다."
선비의
말을 듣고 보니, 아닌게 아니라 선죽교 돌에는 군데군데 핏자국이 남아 있는 듯이 보였다.
김삿갓은 붉은 핏자국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무심한 돌도 충신의 피를 알아 보는 모양 입니다.
그러나 이 다리에는 충신을 기리는 비각(碑閣)이 없는 것은 웬일입니까?"
그러자 선비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나라에서는 포은 선생님의 지조 굳은 충성심이 두려워 간신히 비석
하나만이 있을 뿐
비각조차 세우지 못하게 하였으니, 누가 목숨을 걸고 비각을 세우려고 하겠소이까?"
선비는 선죽교에 비각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지 이렇게 말을 이었다.
"조선 왕조가 되고 난 뒤에는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누구도 찬양하지 못한답니다.
포은 선생님의 충성심을 모르는게 아니라 섣불리 찬양했다가는 목숨이 달아날까 무섭기 때문이지요.
내가 알기로는 무명 시인의 시가 한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시는 어떤 시옵니까?"
그러자 선비는 아래와 같은 시를 한 수 읊어 보였다.
산천은 옛대로되 거리는 비어 있고
저녁놀
잠긴 곳에 물소리만 처량쿠나
홀로히 말 세우고 옛 자취를 찾아 보니
한 조각 비석에는 "정충문"만 남아 있네.
43. 고향 가는 길
신계에서 곡산까지는 높고 가파른 산길로 백여리를 가야 한다.
김삿갓이 어린 시절을 보낸 천동 마을은 곡산 읍내에서도 다시, 산속으로 60여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첩첩 산중 감둔산 (甘屯山)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곡산으로 가는 길조차, 산이 높고 길이 험해 고개
하나를 넘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 길이 천동 마을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지루한 느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김삿갓은 눈 앞에 펼쳐지는 산천을 정답게 바라보며 걸어가다가 문득 구양수의 시를 떠올렸다.
산빛은 멀고
가까움에 다름이 없어
하루 종일 산만 보며 걸어 가노라
보이는 봉우리 모양은 제각기 다르고
그 이름조차 나그네는 알 길
없어라.
고향이 가까워져가자 김삿갓은 험한 산길을 걸어가면서 30여년전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철부지
시절, 해 지는줄 모르고 즐겁게 뛰놀며 장난을 치던 불알 친구들은 지금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천방 지축으로 까불대던 까불이는 지금은 철이
들었겠지..
머리통이 유난히 컸던 대갈장군은 아직도 천동 마을에 그대로 살고 있을까?
또, 합죽이, 막동이와 땡굴이, 땅꼬마는 지금은
애 아버지가 되어 있겠지.
옥수수처럼 얼굴이 길쭉해서 불렸던 옥쇄기는 지금 보게 되더라도 금방 알아볼 것같고,
조조와 참새,
제제는 계집애들 꽁무니를 아직도 쫒아 다니고 있을까?...
예쁘장했던 곱단이는 애 엄마가 되어 있겠지.
얼굴이 넙적해서 세숫대야로
불리던 계집애는 애는 몇이나 낳고 살고 있는지?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살랑살랑 젓던 부채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갔겠지?...)
본명은 잊어버렸지만 아명(兒名)만으로도 그들의 얼굴과 뛰놀던 모습이
눈 앞에 떠올라서 김삿갓은 흐뭇하기 그지없는 고향가는
길이었다.
산길은 가도가도 끝이없이 이어졌다.
곡산이 심심 산골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찾아와 보니
너무도 깊은 산골이었다.
김삿갓은 깊은 산속을 마냥 걸어가며, 문득 영월에 계실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철없는 자식들을
죽음에서 구해 내려고
첩첩 산중으로 둘러싸인 곡산으로 도망을 오셨던 것이 아니었던가.
(철없는 우리 형제를 곡산까지 데리고 오시느라고,
어머니는 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그 일을 생각하자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 왔다.
그러나 김삿갓은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지사를 회상해 본들 무슨 소용이랴.)
김삿갓은 오늘날 어머니 슬하를
떠나 방랑길을 떠도는것조차도
자신은 벗어날 수 없는 업보이고 숙명이라고 체념하고 있었다.
산속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주위가 죽은 듯이 고요하다.
간간히 새소리가 들려오긴 했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적막감은 깊어만 갔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한없이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이제는 잠자리를 구해야 할 판이건만, 도대체 인가는 어느 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를 더 가다 보니, 저 멀리 나무 그늘에 말 한 마리가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말이 있다는 것은 근처에 사람이
있다는 증거이기에, 김삿갓은 안심하고 다가갔다.
김삿갓이 가까이 다가가자 누워 있던 말이 천천히 일어나더니 몸을 부르르 떨면서 먼지를 털어낸다.
찬찬히 살펴 보니 어지간히 늙어빠진 말이었다.
그래도 산중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생활하는 말을 보니 정다운 마음이
앞섰다.
그리하여 가까이 다가가 말의 콧등을 두두려 주니,
말은 사람의 정을 알아 보았는지 발굽질을 하며 꼬리를 흔들어
보였다.
김삿갓은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말의 등허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늙은 말(老馬)이라는 옛
시 한 수가 기억났다.
늙은 말이 소나무 그늘에 누워 있네
천 리를 달리던 옛 꿈을 꾸고
있는가
나뭇잎 떨어지는 가을 바람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석양이 저물고 있네.
老馬枕松根
(노마침송근)
夢行千里路 (몽행천리로)
秋風落葉聲 (추풍낙엽성)
驚起斜陽暮 (경기사양모)
이렇게 말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삿갓,
산 머리에 초승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는데도 말 주인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깊은 산중에서 갑갑했던
김삿갓은 시 한 수를 읊어댔다.
오두막집 저녁 연기는 사라지고
해는 저물어 새는 깃으로 돌아가네
나무꾼은 하늘에 걸린
초승달을 바라보고
어디쯤에서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겠지.
바로 그 때, 오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나무꾼이 나무를 짊어지고
말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김삿갓은 나무꾼에게 말을 걸었다.
"늦게까지 수고가 많으시오."
나무꾼은 김삿갓을 보자 적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 산중에 웬 사람이오?"
"나는 지나가던 과객이오. 천동 마을에 가다가 길이 저물었는데,
어디서
하룻밤쯤 자고 갈 데가 없을까요?"
"천동 마을? 천동 마을이라면 옛날 나의 외갓집이 있었는데 그런 깊은 산골에는 뭣하러 가시오?"
나무꾼은 김삿갓에게 천동 마을과 자신의 연관을 말하면서 경계심을 감춘다.
"나도 어렸을 때에는 천동 마을에서 자랐지요.
그래서 지금 천동 마을을 찾아 가다가 날이 저물었군요."
"그래요? 타향살이를 하다 보면 고향이 그리운 것이지요."
"외가는
아직 천동 마을에 계신가요?"
"웬걸요. 외조부님 돌아가신 후 외가 식구들은 모두 해주(海州)로 살림을 옮겨버려서 지금은 아무도
없다오."
"그러시군요."
"그나 저나 반갑소이다. 나의 옛날 외가집 마을이 고향이라니..
그리고 이 산골에는 인가라고는 우리 집 밖에 없어요.
날도 많이 저물어서 길을 갈 수도 없을 것이니 우리 집으로 내려 갑시다."
인심이 순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무꾼은 무거운 지게를 짊어진 채로 말은 맨몸으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김삿갓이 옆에서 보기에는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짐을 말에게 실을 일이지 무슨 고생을 못해 직접 짊어지고 내려가시오?"하고 물었다.
그러자 자기를
변 서방이라고 말을 한 나무꾼은 웃으며 대답한다.
"우리 집 말은 너무 늙어서 나는 부려먹을 수가 없다오."
김삿갓은 뜻밖의 대답에
어리둥절하였다.
"아니, 부려먹을 수가 없도록 늙어 버린 말이라면 아예 팔아 버리거나 없앨 일이지,
무엇 때문에 고생스럽게 키운단
말이오?"
"그건 노형 생각이지, 나는 그럴 수가 없어요."
"무엇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단 말이오?"
"말이
동물이기는 하지만,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의리라는 것이 있어요.
저 말로 이를 것 같으면 할아버지때부터 함께 살아오고 있는 우리 집 식구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밭도 갈지 못하고 짐도 나르지 못하게 되었지만
우리 집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저 말의 어미에게 은혜를 너무도 많이 져왔다오."
"말에게 은혜를 졌다구요?"
"물론이지요. 저 말의 어미가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아주 잘 도와 주었고,
이제 저 말이 오늘날까지 우리 집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줬지요. 이렇게 저 말에게서 조상때부터 오랫동안
은혜를 입어왔으니 이제는 그 은혜를 나라도 갚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어요?"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도록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다.
아울러 말 못하는 미물인 동물과 인간의 교감과 신뢰가 어떻게 대를 이어 전해질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참만에 산을 내려오니, 변서방네 집은 절간처럼 조용하였다.
변서방은 나뭇짐을 내려놓고 말을 외양간에
들여매며 말한다.
"공교롭게도 마누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고 없어서, 오늘 밤은 나 혼자예요.
말에게 먹이를 주고 저녁을 지어
올테니, 방에 들어가서 잠시 기다리구려."
변서방은 김삿갓을 방으로 안내하고 등잔불을 켜주었다.
살림 살이라고 방 한복판에
화로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 있었는데
그나마도 마누라가 없는 탓인지, 화로는 불이 싸늘하게 꺼져 있었다.
한참만에 변서방은 삶은 감자 한
소쿠리와 네 다리 소반 위에 죽그릇을 놓아 가지고 들어왔다.
"많이 시장하셨지요?"
"괜찮습니다. 말에게도 먹이를 주셨나요?"
"그럼요, 말도 우리 집 식구인데 말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나만 혼자 먹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변서방이 들고 온
소반 위에는 죽이 한 그릇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사람은 둘인데 죽은 왜 한 그릇만 가져 오셨소?"
변서방은
계면스런 웃음을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한다.
"나는 평소에도 감자만 먹고 살아요. 그러나 손님에게는 감자만 대접하기가 미안스러워
오늘은 쌀독 밑바닥을 긁어 가지고 죽을 한 그릇 쑤워 왔지요.
그런데 쌀이 몇 알밖에 없어서 죽이란 것조차도 맹물에 조갯돌 삶은 것처럼 되어 버렸군요.
그러니 죽을 자시고 나서 감자를 더 잡수세요."
김삿갓은 주인 양반의 성의가 너무도 고맙기 그지 없었다.
오가다 만난
사람에게 이처럼 따듯한 정성을 베풀어 줄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 것인가.
아닌게 아니라 죽그릇을 들여다 보니, 죽이란 것이 정말로 맹물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주인 양반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럼 미안하게도 죽을 혼자만 먹겠소이다."하고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죽그릇을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쌀알이라고는 몇 알갱이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죽을 자시고 나거든 감자를 더
드세요." 변서방은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고맙습니다. 죽을 다 먹고 나거든 감자를 더 먹지요."
김삿갓이 죽을
몇 숟갈 떠먹다 보니 죽은 맑은 물과 같아서,
죽그릇 속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이는 것이었다.
("허어, 정성은 고맙지만 기가
막히는군"...)
김삿갓은 변서방이 쑤워 온 죽을 한 숟갈 한 숟갈 떠 먹으면서...
다음과 같은 운치 있는 즉흥시를 한 수
읊었다.
사각송반 죽일기 (四脚松盤 粥一器)
천광운영 공배회 (天光雲影 共徘徊)
주인막도 무안색 (主人莫道
無顔色)
오애청산 도수래 (吾愛靑山 倒水來)
네다리 소반에는 죽 한 그릇 뿐인데
하늘과 구름이 같이 비치는구나
주인은
무안해서 어쩔줄 몰라 하는데
염려 마시오 나는 본래 물에 비친 산을 사랑한다오.
44. 내 고향 천동마을
다음 날 아침, 김삿갓은 아침을 얻어 먹기 미안해서 변서방의 집을 일찍 나섰다.
밤사이 첫 눈이 내려 발을 뗄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연이어 났다.
(오늘은 드디어 오랜 세월을 두고 그리워했던 천동 마을에 가게 되었구나!)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 김삿갓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흥분이 일었다.
그러다보니 눈으로 얼어버린 길도 제법 쌀쌀해진 산 속의 추위도 관심밖의 일이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까맣게 잊어 가던 기억속의 희미한 눈에 익은 산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장난꾸러기 친구들과 어울려 50 리가 넘는 곡산
장거리에 몇 차례 다녀본 길이 아니던가.
이렇게, 눈에 덮힌 험한 산 굽이를 돌아갈 때마다 옛날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김삿갓이 산길을 정신없이 한참 걷다보니 문득 눈앞에 장승 한 쌍이 우뚝 마주 보였다.
얼굴과 몸뚱이가 시뻘건
천하 대장군과, 얼굴과 몸뚱이가 새파랗게 색칠된 지하 여장군이었다.
(아! 장승이 아직도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구나!)
김삿갓은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던 장승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하도 기뻐,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 배례를
하였다.
"장승님들! 안녕하시오. 옛날 친구였던 밤나무집 둘째가 천동 마을을 다시 찾아 왔소이다."
장승!
우리네
조상들은 통일 신라때부터 고려조와 조선 왕조에 이르기까지,
절에 가는 길목이나 촌락 어귀에 사람들의 우상인 장승을 세워 놓았다.
장승은
시대를 통 틀어서 사찰과 마을의 경계를 가르는 이정표 역활을 해왔고,
동구 앞에 세워 놓은 장승은 모든 악귀와 질병의 침입을 막아주는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때로는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천하대장군의 코를 베어다 달여 먹기도 하였고,
남몰래 찾아와 간절한 소망을 빌기도 하는
우상인 것이다.
장승앞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며 합장 배례를 하고 있노라니, 마침 저 만치서
사십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지게 위에 봇짐을 하나 얹고 이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장승앞에 서있던 김삿갓의 초라한 행색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김삿갓은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들고 다가오는 사내에게 목례를 해보이며 물었다.
"말씀 좀 물어 봅시다. 이 동구
안이 천동 마을이 틀림없습니까?"
그러자 사내는 김삿갓의 얼굴이 눈에 익은지, 대답은 안 하고 빤히 쳐다만 보았다.
김삿갓도 사내의
얼굴이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잠시 말끄러미 마주 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김삿갓은 별안간 사내의 두 손을 와락 움켜 잡으며 소리쳤다.
"여보게! 자네는 조조라고 부르던 친구 아닌가? 나는 밤나무집
둘째일세, 자네 나를 모르겠나?"
사내는 그제야 생각이 나는지, 김삿갓의 두 손을 힘차게 흔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맞다 맞다!
자네는 밤나무집 둘째가 틀림없으렸다? 이게 얼마만인가!
그동안 어디로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오는가?"
만나는 첫 순간부터 어린
시절로 돌아간 그들이었다.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도 죽마 고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김삿갓은 조조와 함께 마을로 들어오며,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소식을 하나 하나 물어 보았다.
그중에는 이미 죽은 친구도 둘 씩이나 있었지만 대부분 천동 마을에 그냥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자네는 지금 아이를 몇이나 두었는가?"
"나는 할 일이 없어서 아이만 만들었네, 머슴아와
계집아이를 모두 합해 자그마치 일곱이나 두었다네."
"이 친구, 어릴 때도 계집 아이 꽁무니를 어지간히 쫒아 다니더니, 결국은 자식 복이
넉넉하군 그래,
아이를 일곱이나 만드느라고 고생이 많았겠는걸, 하하하."
"이 사람아! 만들고 싶어 만든 것은 아닐세. 여편네 궁둥이를
두드려 주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야, 하하하..자네는 아이가 몇이나 되는가?"
"나?... 나는 오나 가나 내 몸
하나뿐인걸.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는 외톨박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마음놓고 떠돌아 다니는 덕분에, 자네를 만나게 된 것
아니겠나."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길어질 것같아, 김삿갓은 적당히 거짓말을 꾸며 대었다.
"그래?... 자네는 어렸을
때 글 읽기를 좋아했기에,
지금쯤은 커다란 감투라도 쓰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글쎄, 운이 닿지 않아서인지
팔자 소관인지? 여간, 내게는 등용문(登龍門)이 열리지 않는구먼."
김삿갓은 이것조차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윽고 30년 만에 천동
마을로 들어서는 김삿갓은 감개가 무량하였다.
그 옛날 고작해야 열 채가 될까 말까하던 집은, 지금은 얼핏 보아도 20채가 넘어
보였다.
"그동안 집이 많이 늘었네 그려."
"그래... 자네가 살 때보다는 많이 늘었지?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디 묵을
작정인가?"
김삿갓의 잠자리를 걱정하는 소리였다.
김삿갓은 어렸을 때 자라던 고향 산천이 그리워 천동 마을을 찾아오기는 하였으나,
천동 마을에 일가붙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각별히 기댈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대답을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글쎄...
나는 어차피 떠돌이 신세니까, 잠이야 아무데서나 자면 어떤가."
조조는 김삿갓의 말을 듣고나서 대뜸 이렇게 말을 한다.
"그래?
그러면 밥은 우리 집에서 먹기로 하고 잠은 모임방에서 자면 되겠네."
"모임방이라니? 이 마을에는 그런 것도 있는가?"
"그래! 동네
사람들이 저녁마다 모여서 미투리도 삼고, 새끼도 꼬는 공동 사랑방이 하나 있지.
거기에 가면 옛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게야."
"그거 참 잘됐네그려. 나는 옛날 친구들을 만나 보고싶어 왔거든!"
"자네 심정을 내가 왜 모르겠나. 그렇지
않아도 오늘 밤에는 마을 사람들을 모임방에 오도록
우리 집 아이를 시켜 사발 통문을 돌려 놓겠네."
조조의 우정이 눈물겹도록 지극하였다.
이윽고 조조네 집에 당도해 보니, 그의 집은 옛날과 다름없이 초라하였다.
"자네 집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일쎄,
이제는 아이들이 많아서 집도 늘려야 하겠구먼."
"허긴 그래, 아이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늘려야지 늘려야지하면서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먼."
"여보 마누라! 이리 와서 인사드려요. 이 친구가 옛날에 나에게 "조조"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던
"밤나무집 둘째"라는
친구야." 조조가 자기 마누라를 불러내 김삿갓에게 인사를 시킨다.
"애기 아버지한테서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애기 아버지에게
조조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가,
시아버님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당하셨다구요? 호호호."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불현듯 조조의
아버지 생각이 떠올랐다.
"참, 자네 어르신께 인사를 올려야지, 어르신 어디 계신가?"
그러자 조조는 얼굴빛이 별안간
숙연해지며,
"아버지는 이미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자네가 찾아온 것은 30년 만이
아닌가."
"뭐야? 어르신께서 세상을 떠나셨다구?.. 그래, 내가 너무 늦게 찾아왔구먼...."
김삿갓은 일순 삭막한 기분이
들었다.
김삿갓이 저녁밥을 먹은 뒤, 조조와 함께 모임방에 가보고 깜짝 놀랐다.
그 곳에는 이미 2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급히 모이라"는 사발 통문을 받고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김삿갓을 모임방 가운데 세워 놓고 말한다.
"여보게들! 자네들은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겠나?
이 사람은 지금부터 삼십 년 전에 우리들의 불알 친구였던 밤나무집 둘째라네!"하고 소개하자
방안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도 뜻밖의 일에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제야 알겠네. 내가 땡굴인데, 내 얼굴을
알아보겠나?"
"그럼 그럼! 저기 앉아 있는 친구는 대갈 장군과 옥쇄기가 아닌가?"
김삿갓이 생긴 모습이 남달라 한 눈에 띄는
대갈장군과 옥쇄기를 가르키자,
좌중에는 "와하"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소개하며 김삿갓과 제각기 손을
움켜 잡으며 알아보는 통에,
김삿갓은 눈물겨운 감격을 느끼면서도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개중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김삿갓의 손을 움켜잡으며,
"나는 초면이기는 하오만, 노형의 말씀을 많이 들었소. 또래 친구들에게
조조니, 참새니 하는
엉뚱한 별명을 지어 주었다가, 어른들에게 몰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면서요?"
하고 말하는 바람에 좌중에는 일시에 폭소가
터지기도 하였다.
김삿갓은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이렇게 자기를 기억하고
열열히 환영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하여 자리에 앉으며,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오늘처럼 기쁘고 행복하게 느껴보기는 처음일쎄.
우리들
모두가 죽지 않고 다시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네.
우리네 인간살이에서 우정보다 더 소중한 것이 뭐가 있겠나.
나는
자네들과의 기쁜 재회를 함께 나누고 싶어 술이라도 한잔 사기로 하겠네!"
그러면서 개풍 군수가 몰래 넣어 주었던 전별금(錢別金)중 그동안
쓰고 남은 스무 냥을 송두리째 내놓았다.
그러자 제제가 성큼 앞으로 나앉으며, 김삿갓을 호되게 꾸짖는다.
"야, 임마! 너
정신이 돌았냐? 내일부터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밤은 너는 고향을 찾아온 손님이고
우리들은 주인 아니냐! 그러니 손님이 술을 산다면 주인인
우리 꼴이 뭐가 된단 말이냐.
너를 환영하는 술은 우리가 살테니, 그 돈일랑 썩 집어 넣어라!"
그 바람에 모두들 "옳소!" "옳소!"하며 박수를 보낸다.
천동 마을에는 대동계(大洞契)가 있어서 경조사를 맞았을 때 서로 도와주는 제도가 있었고 그 계장은
제제였다.
제제는 김삿갓이 내놓은 술값을 억지로 집어 넣어주고 나서, 계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삼십 년 동안이나
헤어져 지내던 죽마 고우가 돌아와서
환영주가 한 잔 없을 수가 없는데, 오늘 밤 술값은 곗돈으로 쓰면 어떨까?"
그러자 계원들은 모두가
쌍수를 들어 찬성한다.
"물론 그래야지. 그건 계장이 알아서 하게, 그리고 술만 많이 먹게 해주게."
"막걸리 두 말쯤 사오면
되겠지?"
"아따, 이 사람아! 두 말이고 서 말이고 어서 가져오도록 시키기나 하게."
"그래, 그래..그러면
재무(財務) 막동이가 막걸리 서 말하고, 북어 두쾌만 사오너라.
그리고 합죽이네 김치가 매우 맛이 좋으니 합죽아! 오늘은 자네집 김치 좀
꺼내다 맛 좀 보여줘라."
재무 막동이는 술을 사오려고, 합죽이는 김치를 가지러,
문밖으러 나서려다 둘이서 거의 동시에 소리를
지른다.
"어이구 눈이 오시네! 어느새 제법 많이 쌓였는걸"
그러자 모두들 문 앞으로 우루르 몰려와 밖을 내다
보았다.
함박눈이 소리도 없이 펄펄 내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은 세계로 바뀌고 있었다.
"야아! 눈 한번 탐스럽게 온다. 명년
농사는 풍년이 들겠구나!"
"옛날 친구가 눈까지 몰고 와서 오늘 밤 술맛은 기막히겠다."
이윽고 막걸리 서 말이 도착되었고
김삿갓을 맞는 환영연이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제제가 대동계 계장으로 첫 잔을 김삿갓에게 따라주며 말한다.
"여기 친구들은 모두가
호주가(好酒家)들이라네, 자네 술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그래? 나는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가는 사람이니 오늘 밤은 맘대로
따라주게!"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 갈채를 보낸다.
"그렇다면 오늘 밤 멋지게 어울려 보세. 술
없는 인생이 무슨 인생이란 말인가!"
이렇게 술자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술자리가 어울려 오자, 옛 친구들은 앞을 다투어 김삿갓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이렇게 취흥이 도도해져오자 땅꼬마가 큰 소리로 외친다.
"술이 있는데 가락이 없을 수 있는가?
까불아 너, "나무 타령" 한 곡조 뽑거라!"
"그래,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까불아! 퍼떡 일어나서 나무 타령
하거라."
모두가 박수를 치며 까불이에게 시선이 모아지자, 까불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나더니
머리에는 일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바지춤을 일부러 비틀어 당겨 입더니,
허리를 반쯤 꼬부려 병신 시늉을 하면서 나무 타령을 부른다.
품배 품배 품배야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천 냥 주고 배운 소리, 한두 푼에 팔린다.
얼시구 좋다 엄나무, 한다리 절뚝 전나무.
이
산 저 산 소나무, 오다가다 오동나무.
가다오다 가닥나무, 님의 손목 쥐염나무.
칼로 푹 찔러 피나무, 달 가운데
계수나무.
방귀 뀌었다 뽕나무, 십 리 절반 오리나무.
열아홉에 스무나무, 돈이 많아 은행나무.
돈없으면 박달나무, 방긋 웃는
복사나무.
배를 타라네 배나무, 휘휘칭칭 버드나무.
물고 늘어지는 물구나무~~~~~
45. 나무아미타불
김삿갓은 천동 마을에 찾아와서부터는 마음이 편하고 즐겁기 그지 없었다.
더구나 매일 밤이면 친구들이 모두, 김삿갓이 거처하는 모임방으로
몰려와,
기나긴 겨울 밤을 이야기로 보내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모임방에서는 어슷비슷 둘러앉아 미투리를 삼거나 새끼를 꼬거나,
때로는 덕석이나 멍석 등을 짜면서
제각기 제멋대로 늘어놓는 음담패설을 들어보는 것은 다시 없는 즐거움이었다.
밤에 모임방으로 모여드는
사람은 김삿갓의 옛날 친구만은 아니었다.
천동 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감둔산 동쪽 골짜기에 반석암(盤石庵)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그 암자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일휴(一休)스님도 밤이면 가끔 놀러오는 단골 손님중의 하나다.
일휴 스님은 나이가 70이 넘은
대머리 스님이었다.
그는 젊은 중생들에게 불법을 깨우쳐 주기 위해 모임방에 자주 온다고 하였지만,
김삿갓은 일휴 스님이 모임방에서
강설(講說)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은 없었다.
그러니,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모임방에 온다는 것은 멀쩡한 거짓말이고
어쩌면 마을
사람들이 제멋대로 씨부려대는 음담패설을 들으려고 찾아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 증거로, 마을 사람들이 음담패설을 떠들어댈
때면
일휴 스님은 누구보다도 신바람 나게 박장대소를 하곤 하였다.
이럴 때는 스님으로서의 체면 같은 것에는 일절 개의치 않는 일휴
스님이었다.
언젠가 누가 일휴 스님에게,
"스님은 돌중이지요?"하고 농담을 걸은 일이 있었는데, 일휴 스님은 농담을 건넨 사람을
나무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하하하. 내가 돌중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내 머리통을 보라구!
머리통이 돌덩이처럼 생겨 먹은 것만 보아도 내가 돌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렇듯 젊은 사람들이 심한 농담을 걸어와도 결코 나무라는 일이 없는 일휴 스님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70이 넘은 그를
친구처럼 대해 왔었고,
일휴 스님 자신도 노소동락(老少同樂)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라고 공언해 왔었다.
김삿갓은 일휴
스님의 활달한 기품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한편은,
"산속에 혼자 사시기가 적적하시죠?"하고 물었더니,
일휴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혼자 살기가 심심하니까 이렇게 가끔 사바 세계에 내려와 음담패설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누가
힐난하듯이 한 마디했다.
"스님이 염불은 안 외고 잡소리만 즐겨하시면, 수도는 언제 하시오?"
"수도....? 마음을
구름 한 점 없이 한가롭게 가지면, 그게 바로 수도인걸!...
극락 세계가 법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는가?"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짖궂게도 이렇게 물어보았다.
"신도들 중에는 젊은 여자들도 많던데, 예쁜
여자가 눈앞에서 아양을 떨 때면
아무리 스님이라도 색정이 동하겠지요?"
그러자 일휴 스님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중은 사람이 아닌가? 중도 속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죄다 가지고 있는걸!"
"스님! 그 물건이 예쁜 여신도를 보고
색정이 발동하게 되면 스님은 어떻게 하시오?"
"그런 경우라면 "나무아미타불"을 연실 되뇌지."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符籍)조차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무식하기 짝이 없는 그 물건이 염불을 왼다고 곱게 말을 들어 줄까요?"
"그게 바로 속인들과 중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야.
불도(佛道)를 어느 정도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일시적으로 색정을 느꼈다가도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만 외면 대개는
흥분이 가라앉게 되는 법이야."
"도대체 스님들이 입버릇처럼 외는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오?"
"자네는 정말로
무식하네 그려. 나무아미타불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모르니까 물어보는 게 아니오?"
"자네들이 정말로 모른다니
설명을 해주지.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는 부처님은 서방정토(西方淨土)에 계시면서,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극락 세계로 보내주는 부처님이시고,
나무(南無)라는 말은, 극락 세계에 가서 영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과 염원이 담긴 뜻이라네, 알겠나?"
일동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갸우뚱하였다.
"그러면, 아침부터 밤중까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만 외면
누구든지 극락 세계에 가서 영생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러자 일휴 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염불을 왼다고 모두가 극락 세계에 가는 것은 아니야.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도
마음이 잿밥에 가있다면, 그런 돌중놈이 어떻게 극락에 갈 수 있겠나!"
"스님은 조금 전에 자신을 돌중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그렇다면 스님은 아무리 염불을 외어도 극락 세계에는 못 가실게 아니오?"
"모르는 소리. 나는 머리통이 돌덩이같이 두루뭉술로 생겨
먹었기에 돌중이라고 말했을 뿐이지,
진짜 돌중은 아니야."
"그러면 여자가 옷을 벗고 덤벼들어도 스님은 제대로 접수하실 수도 없겠네요?"
누가 그렇게 놀려대자 방안에는 별안간 폭소가 터졌다.
일휴 스님도 같이 어울려 웃으면서 말했다.
"예끼,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자네는 바라경이라는 경문을 꼭 들어 봐야만 알겠는가?"
("바라경"....?)
김삿갓은
바라경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관음경(觀音經)과 반야경(般若經) 같은 경문이 있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지만
바라경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 경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즉석에서 일휴 스님에게 물어 보았다.
"스님! 불교에는 바라경이라는 경문도
있습니까?
저는 처음 들어 보는 경문인데 그 경문의 내용은 어떤 것이옵니까?"
일휴 스님은 대답할 생각은 안하고 빙그레
웃기만 하다가,
"반야경과 관음경은 부처님께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리를 설파하신 귀한 경문이지.
그러나 바라경이라는 것은 그런 신성한
경문은 아니야."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바라경이 신성한 경문이 아니라구요? 경문에도 신성, 비 신성이 있습니까?"
"있지
있구말구! 바라경이라는 경문은 신성하지 못한 대표적 경문일쎄!"
"그렇다면 바라경은 누가 지어낸 경문이기에, 신성치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궁금한 것은 못참는 김삿갓, 더구나 바라경이란 것이 자기가 모르는 불교의 경문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캐어
물었다.
그러자 일휴 스님이 대답하는데,
"바라경이라는 것이 말이 경문이지, 실상인즉 어느 돌중놈이 어떤 여자로부터
해괴망측한 질문을 받고,
즉흥적으로 꾸며낸 잡설에 불과한 것이야. 그 유래를 설명할테니 들어 보려나?"
그리고 일휴 스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옛날 어떤 절에 음흉하고도 익살스러운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 신도가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스님에게 이렇게 물어 본 일이 있었다.
"스님들은 여자와 한 이불 속에 누워 있어도 관계를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질문을 받은 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리 중이로서니, 사지가 멀쩡한
사내로써 여자와 관계하는 방법을 모를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여인이 중을 유혹하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중의 체면으로서는 그런 질문에 말로 상세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중은 마치 경문을 외우듯이
이렇게 염송(念誦)하였다.
"줘바라 줘바라 못하나 줘바라... 줘바라 줘바라 정말 못하나 어디 한번 줘바라."
46. 도로아미타불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세상사람들은 그 경문을 "바라경"이라고 불러 오게 되었다고
일휴 스님이 말하자, 좌중은 손뼉을 치며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리고 일휴 스님에게 다시 묻는다.
"하하하, 스님은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바라경을 지은 사람은
일휴 스님 자신이 아니오?"
그러자 일휴 스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나는 남녀 관계를 모르지는 않지만, "바라경"을
지은 사람이 나 자신은 아니야."
"그 말을 누가 믿겠어요."
"바라경을 내가 지었다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고백할 일이지 왜 거짓말을
하겠나?..
불경에 보면 남을 속이는 것도 죄악이라고 했거든."
이같은 일휴 스님의 태도로 보아, 바라경의 작가가 일휴
스님 자신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나이가 70을 넘으면 감정을 초월한 탓인지,
일휴 스님이 무슨 말을 해도 천박해
보이거나 야비해 보이지는 않았다.
"스님들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염불만 외는 것 같은데,
도대체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염불을
하루에 몇 번이나 외시오?"
"하루에 몇 번이나 외는지 헤아려 본 일은 없지만, 염불은 많이 욀수록 좋은 것이야.
그래야만
극락에 갈 수 있거든. 자네들도 극락에 가고 싶거든 오늘부터라도 염불 외는 습관을 길러요."
"도루아미타불이라는
염불도 있던데, 나무아미타불과 도루아미타불은 어떻게 틀리오?"
"예끼 이 사람! 또 무식한 소리를 하고 있네. 도루아미타불이 무슨
놈의 염불이란 말인가?"
"옛 ?... 도루아미타불은 염불이 아니라는 말씀이오?"
김삿갓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도루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자네들은 그 유래도 모르는가?
그렇다면 내가 설명해줄 것이니 잘들 들어요."
일휴 스님은 도루아미타불의 유래를 말해 주려고, 큰 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김삿갓도
도루아미타불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지만, 그 말의 유래를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김삿갓도 일휴 스님이 말하는 도루아미타불의 유래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일휴 스님이 말한 도루아미타불의 유래는 다음과 같았다.
옛날 어떤 소금 장수가 절에 소금을 한 바리
실어다가 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 가려면 강을 하나 건너야 하는데, 때가 마침 늦은 겨울이라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말을 끌고 강을 건너기가 매우 위험하였다.
"아침에 강을 건너오며 보니, 얼음이 녹기 시작하던데, 지금쯤 강을
건너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소금 장수가 주지 스님에게 그렇게 물어 보자, 주지 스님이 웃으며 말하는데,
"강을 건너가면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움보살"이라는 염불을 끊임 없이 외우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오."
소금 장수는 불교 신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강을 무사히 건너, 집으로 돌아 가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간에 염불을 열심히 외는 수 밖에 없었다.
소금 장수는
얼음판을 건너며, 나무아미타불 관세움보살을 열심히 외었다.
그리고 염불을 열심히 왼 덕택으로 강을 무사히 건너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강을 무사히 건너오고 생각해 보니, 마음에도 없는 염불을 열심히 왼 일이,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제길헐..! 나무아미타불이 뭔 개수작이야."
이렇듯 한 마디 씨부리고 난 후, 문득 강 건너를 쳐다보니
,
"아뿔싸!"...
소금을 싣고 갔던 말이 강 건너편에 그냥 서있는 것이 아닌가?
소금 장수는 행여 얼음판이
꺼질까?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말을 그냥 내버려 두고 혼자만 건너온 것이었다.
"에구 에구 쯔쯧...!"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소금 장수는 말을 가지러 강을 다시 건너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소금장수는 위험한 강을 다시
건너며 이번에는, 염불을 시작하는 첫 구절이 생각나지 않자,
"도루아미타불 관세움보살! 도루아미타불 관세움보살"하고, 자기
나름대로 생각된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휴 스님은 도루아미타불의 유래를 거기까지 말해주고 나서
,
"도루아미타불이라는 말은 그때 생겨난 말이야, 위험할 때는 부처님을 의지했다가도,
위험에서 벗어난 뒤에는 부처님의 고마움을 깡그리 잊어버리는 게 인간이거든.
이처럼 교만한 것이 인간이니까,
자네들은 그런 점을 잘 깨달아서, 평소에도 염불을 열심히 외도록 하라구!"
하고 제법 스님다운 설교를 들려 주었다.
그러자 누군가 웃으며,
"위험에 부딪치면 그때 가서 소금 장수처럼
도루아미타불이라고 외치면 될 게 아니오!"
하고 말하자 일휴 스님은 고개를 설래설래 저으며,
"도루아미타불은 염불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염불은 반드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야!"
김삿갓이 천동 마을에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많은 친구들이 저녁마다 모임방에 몰려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밤을 지새다 보니,
모르는 사이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낮의 시간만은 지극히 한가하였다.
따라서 별 일이 없을 때는 김삿갓은 늙은이들이 모이는 이풍헌 댁
사랑으로 찾아가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었다.
장기는 조그만 것을 주고 큰 것을 낚는 재미가 있어,
결국에는 마지막 끝내기에서 결과가 얻어지기 싶상이다.
그러나 바둑은 첫 점부터 착점을 잘하여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
인생을 사는 것도 장기판과 바둑판같다고 생각한 김삿갓, 인생의 결과는 한 판의 장기나
바둑처럼 짧지 않고, 다시 무를 수 없다고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고향설(故鄕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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