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한쪽도 어떻게 자르냐에 따라 맛이 확연히 다르게 된다. 가로로 자른 둥근 단면의 맛이 다르고 사과처럼 돌려 깎으면 식감과 향도 다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제20차 농심음식문화탐사는 무 안쪽의 맛을 깊이 본 듯했다. 즉 한반도 중부 내륙 의 맛을 보았다. 내륙! 그 안의 내륙에서 산악의 기운과 함께 살아온 중첩의 맛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엔 산세가 웅장하고 깊은 골짜기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고장으로 익히 알려진 청송으로 향했다. 청송으로 가는 길엔 육당 최남선이 국토의 중앙이라고 일컬었고 철도가 신설되기 전에는 수로의 거점 역할을 담당했던 충주를 들려 유기농 채소 농장과 시래기 전문 맛집을 들렸다. 그리고 문경의 오미자가 만든 발효산물의 결실을 볼 수 있는 술박물관 ‘오미나라’를 거쳐서 청송에 들어섰다. 얼음골 사과로 만든 사과쌀찐빵 체험, 달기약수로 오랜 시간동안 끓여온 닭백숙을 맛보고 경상도식 올갱이국인 골부리국의 전통국물을 먹고 영천으로 넘어갔다. 예로부터 상어고기를 귀하게 여기며 삭혀서 의례음식과 생활 속에서 많이 이용했던 영천답게 시장 안에는 돔베기가 즐비하고 노포의 곰탕집도 꽤 여럿이다. 닭발편육의 맛체험과 지역사랑 군것질꺼리인 꾼만두도 맛보았다. 그 뒤 채약산 자락의 푸근한 농가맛집 ‘숲속안골길’에서는 우리 땅에서 나는 산물로 차린 우리 음식의 참신함을 밥상에서 확인하였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충북 보은에 위치한 99칸 보성선씨 종가의 씨간장과 숙성연도별 간장의 깊은 맛과 빛깔을 비교시식하며 내림음식의 역사를 귀담아 들었다. 음식을 통한 역사와 지역문화를 느끼기에는 분주한 1박2일이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충주편> 중앙탑공원, 달래강을 보며 드라이브를 하면, 깨끗한 물과 주변의 잔잔한 산세로 인해 어디선가 조용히 쉬고 싶은 생각이 드는 편안한 호반의 도시 충주로 기억 남게 된다. 이런 느낌을 저버리지 않게 살아있는 충주의 채소를 만났다. ‘장안농장’은 여러 신화를 일으킨 채소농장으로 이미 유명하다. 1996년에 귀농한 류근모 대표는 흔한 상추로 인터넷판매를 시작하였고 유기농 채소농장들을 연계한 대규모 쌈채소 유통의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2014년도에는 농사지은 자연쌈채를 직접 먹을 수 있는 뷔페식당을 오픈하였다. 식당 안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쌈채소 종류만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고기 없는 식단이네~’ 라며 실망했던 사람들도 먹다보면 다양한 채소의 아삭거리는 식감, 오분도미의 씹는 맛 그리고 수제두부의 고소함에 몰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고객들이 원하면 내부 농장을 견학할 수도 있다. 넓은 우리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흑돼지와 천연 퇴비를 이용한 유기생태농법을 실감하게 된다. ‘장안농장’이 생채소로 유명하다면 ‘손씨부엌’은 건시래기로 솜씨를 자랑한다. 무를 수확하여 떼어냈던 무청을 처마 밑에 말리거나 소금 속에 담가두었다 먹는 것은 옛날 힘든 시절 겨울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즉 비타민의 보고이자 배고픔을 달래는 식량이었다. 이젠 그 시래기가 건강과 맛을 생각하며 미식가들이 찾는 인기 식재료가 되었다. 손씨부엌에서는 오랜 연구 속에서 젖은 시래기 자체를 밀가루 속에 넣어 반죽하여 손칼국수를 만들고 밥과 혼연일체된 시래기밥을 선보인다. 손씨 주인장은 음식이 사람의 건강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한 분으로서 함께 나오는 무나물 등 밑반찬의 정갈함 또한 남다르다.
장안농장뷔페 메뉴 : 런치 12,900원, 디너 15,900원 주소 : 충북 충주시 신니면 용원리 326-15 / 043-848-6262
손씨부엌 메뉴 : 시래기 칼국수 5,000원 시래기 밥 6,000원 주소 : 충북 충주시 연수동 451 / 043-842-0180
<문경편> 국내 오미자의 최대 생산지인 문경과 평생 술을 연구하던 이종기박사와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프랑스 샴페인 방식을 오미자에 그대로 적용하여 스파클링오미자술 ‘오미로제’를 만들었다. 와인을 또는 오미자를 아니면 술의 발효를 알고 싶다면 ‘오미나라’에 가보길 권한다. 술의 제조공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문경새재 주막 터를 현대판 천년주막으로 개조한 곳에서 오미로제를 편하게 시음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서양의 오크통 방식 뿐 아니라 한국의 옹기 숙성방식을 적용하고 있고 개인 숙성항아리를 소유할 수 있는 회원제도 운영하고 있다.
오미나라 입장은 무료이고 시음은 유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 83 / 054-572-0601
<청송편> 200여 곳의 시골장터를 돌아다니며 보부상의 희노애락을 그린 “객주”의 김주영작가의 고향인 청송은 80%이상이 산으로 되어있어 예부터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유명하다. 편리하지 않고 넘어야 될 높은 고개 덕분에 청송은 천혜의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푸근한 옛 인심을 많이 담고 있다. 생소한 단어인 ‘골부리국’은 경상도사투리로 다슬기로 끓인 국을 말한다. 된장, 고추장 등 어떤 장도 사용하지 않고 고춧가루와 들깨만으로 다슬기의 시원한 맛을 끌어냈다. 특히 ‘머시기와여시기’의 골부리국은 아직도 김주영작가가 일부러 찾는 좋아하는 국물이란다. 주인장은 청송의 산물만을 고수하며 시골집 반찬과 다름없는 편안한 밥상을 차려준다. 청송의 달기 약수는 탄산과 철분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위장병, 신경통을 앓는 사람들이 약처럼 먹는 물로도 애용되어 왔다. 약수터 근처는 약숫물을 받아가기 위한 흰색플라스틱 물통가게와 백숙집들로 둘러 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숫물로 끓인 백숙은 신기하게도 닭의 잡내를 없앤다. 초록빛 감도는 약숫물 빛깔과 쇠냄새 나는 맛에 뜨악했던 사람도 일단 초록빛이 은은히 감도는 백숙의 부드러운 맛을 접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속에 심이 박혀있는 청송 얼음골사과는 이미 전국의 명물과일이다. 말린 청송사과가 들어간 수제팥소 그리고 호박, 자색고구마 등으로 자연빛깔의 다섯 가지 색을 낸 쌀찐빵 체험은, 모두를 동심의 찐빵세계로 가기 위해 문을 열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마냥 즐겁게 한다. 길거리에 흔한 게 찐빵 같지만 팥소와 반죽 그리고 물리지 않게 하는 이집만의 쌀찐빵 비법 덕에 자꾸 손이 가게 된다. 머시기와여시기 메뉴 ; 골부리국 10,000원(골부리국만은 예약에 한함. 다른 메뉴는 일상 판매) 주소 : 경북 청송군 부동면 하의리 740 / 054-873-6009
서울여관식당 메뉴 : 달기약수엄나무백숙 大 (3인) 45,000원, 청송사과동동주 8,000원 주소 : 경북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299-5 / 054-873-2177
사과쌀찐빵 체험장 주소 :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737 / 010-3690-9070
<영천편> 영남의 3대 시장 중에 한곳인 영천공설시장은 2일, 7일이 장날로 재래시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소금을 쳐서 간을 한 토막 낸 상어고기인 ‘돔베기’는 영천의 제사상부터 잔치상까지 오르는 음식이다. 영천사람이라면 돔베기에 대한 추억이 한두 가지는 있고 어르신일수록 말만 들어도 침샘을 울리게 하는 예부터 먹어온 음식이다. 돔베기골목 한켠엔 십여 년 전 개발한 원조 ‘닭발편육’을 파는 부부가 있다. 푹 끓인 닭발의 콜라겐에 파, 마늘, 고추장 등의 양념이 맛깔스럽게 배어든 닭발편육은 영천에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진 음식이기도 하다. 영천사람들에겐 관광철 버스여행을 할 때면 꼭 지참하는 어른 간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편, 시장의 국물은 깊다. 아예 곰탕골목이라는 간판이 붙어있을 정도다. 곰탕이라고 하나 들어가는 재료나 스타일이 설렁탕과 경계가 모호할 정도지만 뭐라 불리든 어떠랴. 국물 맛이 깨끗하고 일품이다. 앞으로 영천 인근에 올 때면 곰탕요기를 하러 일부러 시장에 갈 핑계를 만들 것 같다. 그리고 영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알만한 꾼만두집도 들려 지역 간식을 평가해봤다. 영천시내에서 남쪽방향의 채약산 기슭에 자리 잡은 농가맛집 ‘숲속 안골길’. 어린 시절 가재 잡고 놀던 작은 농막을 그림 같은 예쁜 양옥으로 새로 지었다.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클래식음악이 산을 울리고 집 주변에서 농사지은 뽕, 오디, 호두, 매실 등을 이용한 음식들이 상에 차려진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이나 차림새와 맛의 품격은 월등히 높다. 시간을 잠시 잡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숲속 집에서 영천의 상어고기 껍질을 굳힌 ‘돔베기피편’도 만들어보았다. 거무칙칙한 상어껍질의 빛깔은 또 다른 식감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영천공설시장 경북 영천시 완산동 982-3
포항할매집곰탕 메뉴 : 소머리곰탕 7,000원, 곰탕국수 5,000원 주소 : 경북 영천시 완산동 982-3 / 054-334-4531
고경수산 메뉴 : 닭발편육(500g) 10,000원 주소 : 경북 영천시 완산동 982-19 / 054-333-7997
삼송꾼만두 본점 메뉴 :꾼만두(6개) 5,000원 주소 : 경북 영천시 창구동 52 / 054-333-8806
숲속안골길 메뉴 : 정식(1인) 15,000원부터 주소 : 경북 영천시 괴연동 64-5 / 054-332-2377
<보은편> 긴 시간을 거쳐 내려오는 음식이란 어떤 것일까? 소위 이를 내림음식이라 말하곤 한다. 그런데 단순 내림이 아니라 내림음식의 검증의 흔적이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내려오는 역사의 간장에 그해 가장 잘 만들어진 간장을 섞고 다음해에도 또 그렇게 하고, 이런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350년이 된 간장을 자랑하는 보성선씨 종가를 찾았다. 지척의 속리산의 깊은 정기까지 더해진 곳이다. 수백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씨간장’부터 2년 된 간장, 5년, 10년 된 간장의 빛깔을 보고 맛을 보았다. ‘간장이 뭐 대수야, 그냥 간장이지’ 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연도별로 줄 선 간장의 비교에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2년 된 간장으로는 국을 끓이고 5년 이상 된 간장으로는 조림을 하여 깊은 맛을 더한다. 10년 된 간장은 그냥 먹어도 단맛이 절로 나니 지금까지 알던 간장 맛이 결코 아니다. 그런 장의 내림이 기본이 되어 종가의 제사와 일상의 음식이 자리매김 되었다. 이날은 종갓집 한상차림과 제사 때마다 올리는 보성선씨 전탕(전의 자투리로 끓인 보성선씨 집안만의 탕)을 맛보았다.
보성선씨종가 메뉴 : 1인 15,000원부터 예약제(6인이상) 주소 :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3-1 / 010-5336-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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