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아름다운 숲길 원정대’와 국가대표 숲길 걷기 2회차]
도시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일상 잊고 걷다
입력 : 2018.07.26 09:40
[585호] 2018.07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불암 우회코스 산길구간 4.3km
서울둘레길은 2014년 11월 완공된 이후 서울의 역사, 문화, 자연생태를 탐방하는 서울의 대표적인 길로 자리매김했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관악산, 북한산, 대모산, 수락산, 봉산, 아차산 등을 이은 157km의 길로 현재까지 2만2,800여 명이 완주할 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다. 둘레길 곳곳에 휴게시설과 쉼터가 잘 정비돼 있고, 주변의 역사·문화 자원을 잘 활용한데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탈출과 진입이 원활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숲길 원정대’의 두 번째 원정지는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불암산코스 중 산길구간이었다. 총 길이는 4.3km, 당고개공원 원점회귀다.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다른 둘레길에 비해 고저 변화가 꽤 있어 난이도는 상으로 분류된다. 물론 일반적인 정상 등산과 비교하면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둘레길은 특성상 원점회귀하기 어렵지만 이 구간은 수락산과 불암산 자락을 휘도는 우회코스이기 때문에 기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사실, 처음 지도에서 코스를 확인했을 때는 그다지 기대감이 들지 않았다. 등고선상 고도가 높지도 않고 도시에서 크게 이탈해 있지도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둘레길 중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구간의 경우 길이 주는 즐거움이 없다시피 했던 기억이 만든 기우였다.
6월 16일 오전 9시 의구심을 안고 찾은 당고개공원 야외무대는 100여 명의 원정대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제에서 진행됐던 1회 원정에 비해 훨씬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서울에서 진행됐기 때문이다. 최연소 6세부터 80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골고루 참여했다. 전체 진행은 수차례 서울둘레길 100인 원정대를 인솔한 바 있는 방재형씨가 맡았다.
산행 날머리에 위치한 철쭉동산.
출발에 앞서 야외무대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대원들.
서울둘레길은 28개의 인증 도장을 모두 찍어야 완주인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번 원정 코스의 들머리. 서울둘레길 채석장 전망대 방면으로 향한다.
삽시간에 자취를 감춘 서울
야외무대 오른편에 위치한 돌과 나무로 된 계단이 산행 시작점이다. 오른쪽으로 점점이 솟아 있는 상계동 건물들이 보인다. 놀랍게도 오르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건물들이 사라지고 완연한 숲길로 접어든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서울이 사라진다. 먼저 매캐한 도시 매연의 냄새가 사라지고 향긋한 숲 내음이 덮쳐온다. 그 다음 무성한 나뭇잎이 잿빛 건물을 가려 준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경적소리 대신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몸을 비비는 기분 좋은 소리가 귀를 채운다. 지레 가졌던 걱정을 깨는 오롯한 숲길이다.
연한 자주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작살나무를 지나고 아까시나무를 지나자 데크 길이 나온다. 한 원정대원이 고무마개를 빼지 않고 스틱을 사용하자 방씨가 옆에 서 “데크에서 마개를 빼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 미끄러져 사고 나는 경우가 많다”며 올바른 스틱 사용법을 알려 준다. 덩달아 “허리와 골반, 그리고 어깨로 무게를 분산해야 한다”며 배낭 메는 법까지 강의하자 주변의 대원들 모두 열심히 설명을 듣는다.
제법 빠듯하게 30분 정도 고도를 올리자 산허리를 돌며 작은 개울들을 지난다. 수락산공원을 지나면 내리막길이 나온다. 야자수로 만든 매트가 푹신하게 깔려 있어 발이 밀리지 않아 편안히 내려간다. 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은 “마사토 유실을 막기 위해 자연친화적 소재를 사용한 것”이라며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걸으면서 건강을 도모하는 길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 센터의 최대 목표”라고 설명했다.
연인바위.
덕능고개 생태이동통로.
조금 더 진행하자 수락산갈림길이 나온다. 수락·불암산 둘레길 중 기원길 구간을 택해 간다. 기원길은 학림사부터 동막골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는 도안사, 송암사, 흥국사 등 수많은 사찰을 지나며 무엇을 기원하고 어떤 삶을 살지 성찰해 보는 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여러 둘레길이 겹치고 탈출로도 많지만 길목마다 이정표가 설치돼 있어 길 찾기가 어렵지 않다. 서울둘레길 이정표만 따라가면 된다.
조금 더 나아가자 거인손자국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길’에 있는 거인발자국 바위와 세트라고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 수락산에 살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이곳의 동식물들을 지켜주던 거인이 개발의 영향으로 수락산이 파괴되고 마을공동체가 해체되자 떠나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길은 골짜기 안에 폭 싸인 채 지루하지 않을 만큼만 굽이친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등 활엽수가 대부분이기 때문인지 자연을 입고 걷는 느낌이다. 30분쯤 더 나아가자 길 양옆으로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다. 나무 사이로 학림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학림사는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원효가 창건한 절이다. 고려 공민왕 때는 나옹화상 혜근이 이 절에서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서울둘레길은 곳곳에 쉼터가 마련돼 있다.
거인손자국 바위.
산행 도중 대원들에게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연심씨.
갈림길이 많지만 이정표만 따라가면 문제없다.
산행 후 대원들은 당고개공원에 옹기종기 모여 야생화와 나뭇잎,
종이를 이용해 부채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정가인 팀장 제공.
천천하고 심심하게
“천천히 갈게요. 천천히”
선두에서 인솔하는 김연심씨가 연신 외친다. 둘레길은 평양냉면 같은 길이다. 심심하게 음미하며 걸어야 제 맛이다. 심심할수록 자기 자신을 대하고 숲을 바라볼 수 있다. 덕능고개로 나아가기 위해 차도로 내려선다. 민족고유의 전통무예인 궁도弓道를 후손들에게 계승·발전시키자는 의미로 건립한 정자인 수락정을 지난다. 차도를 따라 걷다가 이정표를 따라 산길로 껑충 오르면 덕능고개다.
덕능고개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남양주에 위치한 조선 14대 왕인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묘 덕릉德陵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해방 전후까지 도당집이 있어서 나라와 마을의 무사태평을 산신에게 빌었던 곳이어서 ‘당고개’라고도 불린다.
덕릉터널과 국도 위로 야생 동물이 이동할수록 조성된 생태통로를 이용해 건너기 때문에 숲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덕능고개를 건너면 불암산 자락이다. 산들바람 끝에 비릿한 밤꽃 냄새가 섞여 온다.
“밤꽃이 절정이네요. 길 위에 미색(아이보리색)으로 된 길쭉한 꽃들이 다 밤꽃이에요. 과거에는 밤꽃이 절정이면 처녀들을 집 밖에 안 내보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자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동아지도 제공
김씨는 나무 하나 지나치는 법 없이 즐겁게 대원들의 귀가 솔깃할 숲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소코뚜레로 쓰이고 지팡이로 만들어 쓰면 장수한다는 노간주나무, 나막신을 만든 오리나무부터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
사람 모양의 바위가 둘로 나뉘어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 연인 같은 연인바위를 지나면 전망대가 나온다. 수락산터널로 이어지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와 노원구 너머 서울 도심과 북한산까지 훤하다.
전망대 바로 밑에는 작은 채석장이 있다. 과거에는 실제 돌을 채취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석조 조형물을 설치한 휴식공간이다. 조금 더 길을 걷자 흉하게 껍질이 벗겨진 나무가 보인다.
“굴참나무 껍질이 벗겨져 있네요. 예전에 화전민들은 굴참나무 껍질로 굴피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산에서는 벼농사를 짓기 어려워 볏짚을 구하기 어려웠으니까요. 한 번 벗겨내면 자연 복구되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산에서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낸 자리를 굴참나무 껍질을 벗겨서 표시했다고 해요.”
산길은 불암산 발치를 도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30분쯤 더 걸으면 철쭉동산쉼터다. 철쭉 대신 샛노란 금계국이 이따금 무리지어 피어 있다. 이곳엔 서울둘레길 마을길·산길 합류지점 스탬프 보관함이 있다. 공원길을 따라 내려가면 당고개역이 나오고, 역사 안을 통과해 길을 건너면 당고개공원이다. 길이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이 아쉽다. 산행거리 4.3km, 산행시간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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