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Woh woh, yeah yeah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ll love you twice as much tomorrow
Oh,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Woh woh, yeah yeah
I miss you every single day
why must my life be
filled with sorrow
Oh,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 don't you know I need you so
Oh tell me please I gotta know
Do you mean to make me cry
am I just another guy
Woh woh, yeah yeah
I miss you more than I can say
why must my life be
filled with sorrow
Oh,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Oh don't you know I need you so
so tell me please I gotta know
do you mean to make me cry
am I just another guy
Woh woh, yeah yeah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ll love you twice as much tomorrow
Oh,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ll love you twice as much tomorrow
love you more than I can say
I'll love you twice as much tomorrow
Leo Sayer
M2M
Pretty Boy (Lyrics)
Leo Sayer
1948년 5월21일 영국에서 출생한 Leo Sayer(본명 Gerard Sayer)는 60년대 후반 런던에 기반을 둔 테라플래인 블루스 밴드(Terraplane Blues Band)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드러머이자 작곡가인 데이브 코트니(Dave Courtney)와 패치스(Patches)라는 그룹을 결성한 그는 브리티쉬 팝 스타인 아담 페이스(Adam Faith)를 만나 그의 후원으로 솔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데이브와 함께 공동 작업으로 자신의 데뷔 앨범을 녹음하던 중 그들은 로저 달트레이(Roger Daltrey)의 앨범에도 곡을 쓰게 되었고, 로저의 최고 히트곡인 'Giving It All Away'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72년 첫 싱글 데뷔곡 "Why Is Everybody Going Home"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자 각고의 노력으로 1973년 "The Show Must Go on"을 UK 차트 1위에 올리며 영국에서 스타가 되었다.
이후 1974년 데뷔 앨범 [Silverbird]를 히트시켰으며 같은 해 [Just a Boy]를 발표한 그는 1975년 미국으로 진출하여 "Long Tall Glasses (I Can Dance)"로 처음으로 미국 차트에 진입해 톱 텐에 오르는 성과를 거두며 부각받기 시작했다.
1975년 앨범[Another Year]까지 데이브와 함께 작업했던 그는 새로운 작곡 파트너인 프랭크 퍼렐(Frank Furrell)을 맞이해 1976년 [Endless Flight]를 발표해서 "You Make Me Feel Like Dancing", "When I Need You"를 히트 시키면서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대 성공을 거두었으며, "You Make Me Feel Like Dancing"으로는 그래미 최고 R&B 송(Best R&B Song)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When I Need You"는 1977년 5월에 1주간 빌보드 싱글 챠트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는 별다른 히트곡 없이 상업적으로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1980년대 초반 "More Than I can Say"로 UK 차트 2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그는, 1981년 "Living in a Fantasy", 1983년 "Till You Come Back to Me" 등으로 차트에 진입하며 꾸준한 활동을 펼쳤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후 1990년 [Cool Touch]를 발매하기 전까지 그는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1990년 EMI와 계약하여 70년대의 영화를 다시 누리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는 1993년 [The Show Must Go on]를 비롯한 일련의 편집앨범들을 발표했다.
싱어송 라이터로서 1970년대 중반 디스코 댄스음악으로 인기를 끌었고 감미로운 발라드 러브송으로도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음악을 했던 그는 아직도 앨범제작과 공연에 몰두하며 중년의 음악인으로서 성숙한 음악세계를 지속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1970년대에는 세련된 주류 팝 음악으로 당대 디스코계의 상징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인기를 누렸던 그는 국내에서는 감미로운 발라드 가수로 인식이 되어 있는데 "When I Need You"나 "More Than I Can Say"에서 보여준 감미로운 미성이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지닌 목소리는 사춘기 시절에 얻게 되었고 운좋게 나이를 먹으면서도 그런 목소리를 지닐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아서 내한공연도 펼치며 여러차례 방한한 그의 음악은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75 Long Tall Glasses (I Can Dance) 9위
1975 one Man Band 96위
1977 How Much Love 17위
1977 Thunder In My Heart 38위
1977 When I Need You 1위
1977 You Make Me Feel Like Dancing 1위
1978 Easy To Love 36위
1978 Raining In My Heart 47위
1980 More Than I Can Say 2위
1981 Living In A Fantasy 2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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