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쇼팽 / 야상곡 20번 C#단조, Op.72, B 49

박연서원 2017. 2. 2. 06:24

Nocturne No.20 in C# minor, Op.72, B 49

쇼팽 / 야상곡 20번 C#단조, Op.72, B 49

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

(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1849)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The Pianist'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Op. posth

 

Ginette Neveu, violin

 

지네뜨 느뵈(1919~1949)가 연주하는 쇼팽의 야상곡은 짧은 생을 살다간 그녀의 운명을 예감한 듯 애잔한 선율에 슬픔의 눈물이 고여 있는 듯하다.  20세기 바이올린 역사에서 가장 안타깝게 비행기 추락사고로 요절한 천재 지네뜨 느뵈. 그녀가 1938년 19살때 최초로 녹음한 음반.
프랑스적인 우아한 연주는 아름다움의 극치였으며, 다른 연주자들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다양한 음색과 비브라토를 가졌다고 스승 플레슈(Carl Flesch)가 말했다.

 

Gregor Piatigorsky, violoncello

 

 

Daniel Barenboim, piano

 

Vladimir Ashkenazy, piano

 

Vladimir Krpan, piano

 

"The pianist"

Félix Ardanaz, piano

 

Aldo Ciccolini, piano

 

Claudio Arrau, piano

 

Sarah Chang, violin

James Last Orchestra

 

Emre Sabuncuoglu, classical guitar

Lento con gran espressione

 

"The Pianist" - Original Recording

Wladyslaw Szpilman, piano

  

영화 'The Pianist'의 주제곡처럼 전면을 흐르는 쇼팽(Chopin)의 "Nocturne in C-Sharp minor"는 바이올린과 첼로곡으로도 편곡, 연주되어 우리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쇼팽의 청년기 시절 작품이지만 그의 사후에야 유물로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악보에는 'Lento con gran espressione(느리고 풍부한 표정으로)'로 표기되어 있었지만 나중에 'Nocturne'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곡에는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에서 차용한 선율이 사용되는데 누나 루드비카가 그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습하기 전에 치도록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쇼팽의 사후 그의 유물 중에서 발견된 곡. 작품 72번과 마찬가지로 쇼팽 청년기의 작품이며 1895년에 출판되었다. 바이올린용과 첼로용으로 편곡되어 있다.

쇼팽의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음악적 성향은 발라드나 즉흥곡, 특히 녹턴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녹턴은 그가 멜로디 창출의 대가로, 낭만주의의 진정한 시인으로 모습을 드러낸 만년의 작품이다. 쇼팽의 화성과 멜로디에의 재능은 너무도 뛰어난 것이어서 기악적으로 곡을 재구성할 경우에도 별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이 유작 녹턴의 편곡도 녹턴 본연의 화성과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른손 파트는 바이올린이 맡고 있으며 피아노에는 반주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바이올린에 의해 연주되는, 솔로 레치타티보와 유사한 부분은 이 곡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녹턴이란 원래 교회음악으로서 기도서를 낭송하기 전에 불리어졌던 기도 노래였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마음을 한데 모으는 한 밤 미사 시간의 정취를 담아내기 위해서인지 아름답고 서정성이 풍부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쇼팽의 사후 그의 유물 중에서 발견된 유작으로 그가 젊디 젊은 17세 때 쓴 "Nocturne in E minor, Op.72 No.1"과 함께 쇼팽의 청년기 작품인데, 1895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루빈스타인(Arthur Ribinstein)은 쇼팽을 가장 잘 해석한 연주가로 '과장이나 확대해석이 없다.'라고 평가된다. 루빈스타인의 피아노에서 묻어나는 사랑과 탄식, 고독의 여운은 쇼팽의 야상곡을 이해하는 확실한 해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 루빈스타인 스스로 '내가 쇼팽을 연주할 때면 듣는 이의 가슴에 직접 말하고 있음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쇼팽의 "Nocturne in C sharp minor Op.post"는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을 통해서 피아노 원곡 연주로 들어도 정말 훌륭하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 곡으로 편곡되어 많은 연주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대부분의 유명한 바이얼리스트들 레퍼토리에는 거의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야상곡"이라고도 부르는 녹턴(Nocturne)은 원래 영국의 존 필드(John Field)에 의해 만들어진 피아노 음악 형식으로 쇼팽도 처음엔 존 필드 형식의 녹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후에 그에 의해 새로운 모습을 갖춘 녹턴이 선보이게 되었다.


 

Maria João Pires,piano

 

00:00:00 I. Chopin's 200th Birthday.

Legendary Late Night Prom in 2010 (The Proms).

Nocturne No.1 in B-flat minor, Op.9, No.1

Nocturne No.2 in E-flat major, Op.9, No.2

Nocturne No.3 in B major, Op.9, No.3

Nocturne No.4 in F major, Op.15, No.1

Nocturne No.5 in F-sharp major, Op.15, No.2

Nocturne No.6 in G minor, Op.15, No.3

Nocturne No.7 in C-sharp minor, Op.27, No.1

Nocturne No.8 in D-flat major, Op.27, No.2

Nocturne No.17 in B major, Op.62, No.1

Nocturne No.18 in E major, Op.62, No.2

Nocturne No.19 in E minor, Op.72, No.1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Op. posthume

(Encore) Nocturne No.11 in G minor, Op.37, No.1

Royal Albert Hall, London, 21.VII.2010.


01:08:13 II. Chopin Festival. Poland Recital in 2014.

Nocturne No.1 in B-flat minor, Op.9, No.1

Nocturne No.2 in E-flat major, Op.9, No.2

Nocturne No.3 in B major, Op.9, No.3

Nocturne No.7 in C-sharp minor, Op.27, No.1

Nocturne No.8 in D-flat major, Op.27, No.2

Nocturne No.14 in F-sharp minor, Op.48, No.2

Nocturne No.20 in C-sharp minor, Op. posthume

Warsaw Philharmonic Concert Hall, Warsaw, 29.VIII.2014.

Maria João Pires,piano live recital

 

Chopin Nocturne No.2 in E flat major, op.9 no.2

Maria João Pires,piano

Jan.1995, & Jan. Apr. Jun.1996

 

Chopin - Nocturne No. 20 in C sharp minor, Op. posth.

Maria João Pires,piano

 

Complete Nocturnes

1. 0:06 Op. 9, No. 1 in B flat minor. Larghetto

2. 5:53 Op. 9, No. 2 in E flat major. Andante

3. 10:29 Op. 9, No. 3 in B major. Allegretto

4. 17:09 Op. 15, No. 1 in F major. Andante cantabile

5. 22:07 Op. 15, No. 2 in F sharp major. Larghetto

6. 25:43 Op. 15, No. 3 in G minor. Lento

7. 30:53 Op. 27, No. 1 in C sharp minor. Larghetto

8. 36:32 Op. 27, No. 2 in D flat major. Lento sostenuto

9. 42:27 Op. 32, No. 1 in B major. Andante sostenuto

10. 47:27 Op. 32, No. 2 in A flat major. Lento

11. 53:01 Op. 37, No. 1 in G minor. Lento

12. 59:51 Op. 37, No. 2 in G major. Andante

13. 1:06:17 Op. 48, No. 1 in C minor. Lento

14. 1:12:25 Op. 48, No. 2 in F sharp minor. Andantino

15. 1:20:11 Op. 55, No. 1 in F minor. Andante

16. 1:25:36 Op. 55, No. 2 in E flat major. Lento sostenuto

17. 1:31:19 Op. 62, No. 1 in B major. Andante

18. 1:38:51 Op. 62, No. 2 in E major. Lento

19. 1:45:11 Op. 72, No. 1 in E minor. Andante

20. 1:49:19 Op. posth in C sharp minor. Lento con gran espressione

21. 1:53:18 Op. posth in C minor. Andante sostenuto

Brigitte Engerer, piano

 

장영주 (張永宙, Sarah Chang)

 

1980년 12월 10일 ~ )는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재능 있는 고전 음악 연주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3살 때 부모님에게 바이올린을 받아 5살 때 뉴욕의 줄리어드 학원에서 오디션을 받았다.

바이올린 신동으로 평가받아 8살 때 뉴욕 필하모닉의 주빈 메타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리카르도 무티 같은 지휘자들과 오디션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두 사람 모두 즉시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했고 장영주는 9살에 데뷔 음반을 냈다. 예후디 메누힌은 그녀를 "내가 지금껏 들어본 이 중 가장 대단한, 가장 완벽한, 가장 이상적인 바이올리니스트다"라고 평가했다. 네 살 때 처음 잡은 바이올린으로 1년이 채 안 되어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후 그 뒤 각국에서 초청장이 연이었다.
다섯 살에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 장민수씨(미 템플대 교수)의 스승인 도로시 딜레이 줄리아드음대 교수(2002년 작고)의 눈에 띄어 줄리아드 예비학교 장학생으로 본격 지도를 받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장영주는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는’점으로 유명하다. 연주가로서 큰 장점이다. 청중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느낌으로 연주를 듣는지를 살펴 볼 정도이다.“무대에서 청중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해요.현장에서 청중들과 호흡을 나눠가면서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표현을 하는 것이 참 좋아요. 연주실황 음반을 만드는 것도 좋구요."

장영주는 소녀 시절부터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취미가 많다. 학교 대표선수급 실력이었던 수영은 연주투어에 지친 몸을 추슬러주는 특효약이다. 테니스, 롤러스케이트 등도 좋아한다. 그는 “작년 하와이 연주 때는 짬을 내서 행글라이딩을 즐겼다. 매니지먼트 회사 관계자들이 걱정하면서도 무척 놀라더라” 고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10학년(고1)인 동생 영진(16)의 야구나 하키경기를 구경하는 것도 큰 즐거움. 요즘 하키스틱을 내려놓고 첼로를 들고 다니며 필라델피아 고교생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동생을 누나는 안쓰러운 듯 지켜보고 있다. 음악을 하면서 대학에서 미디어나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이들 분야에 관심이 많다. 랩탑 컴퓨터는 들고 다니지 않고 현지 호텔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체크한다.
세계 곳곳의 많은 친구들은 장영주의 ‘힘’이다. “친구 만나러 가는 기분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고 현지에서 틈이 나면 친구들을 만난다.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면서 건축물도 보고 미술작품도 감상한다. ‘놀면서 배운다’고.. 그래야 그 나라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거기서 나온 음악을 잘 연주할 수 있다는 것. 밝은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인 장영주는 여행하면서 본 것들을 이야기할 때면“너무 좋았어요”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투어 때는 리허설이나 인터뷰 등으로 바빠 충분히 시간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곡은 집에서 연습한다”며 “다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호텔에서 베이직은 매일 30분씩 꼭 하고 스케일도 매일 한다”고 소개했다.

 

쇼팽 (Frédéric François Chopin, 1810.3.1~ 1849.10.17)

 

가장 위대한 폴란드의 작곡가이자 가장 위대한 피아노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는 그가 20세 때 폴란드를 떠나고 프랑스에서 살게 되었을 때 쓰던 프랑스어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프리데리크 프란치셰크 호핀(Fryderyk Franciszek Chopin)이지만, 폴란드어권에서도 프랑스 발음에 맞추어 성을 ‘쇼펜(Szopen)’이라 부르기도 한다.

쇼팽 자신과 가족은 쇼팽이 1810년 3월 1일에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로마 가톨릭교회 세례 기록을 보면 2월 22일에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출생 날짜는 그보다 몇 주일 전일 것이다.

쇼팽의 재능은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그것이 모짜르트에 비견될 정도였다.

7살 때 이미 두 개의 폴로네이즈를 작곡했다.

그의 천재성이 바르샤바에 보도되면서 귀족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고 자선공연도 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첫 피아노 레슨은 1816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보이치에흐 지브니에게 받게 되었는데, 1822년 스승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하여 스스로 그만두었다. 1817~27년 쇼팽은 바르샤바 콘소바토리의 교수이자 피아니스트인 빌헬름 뷔르펠(Wilhelm Würfel)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823년부터 1826까지 그의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해 있는 Warsaw Lyceum을 다녔다.

그는 가족과 함께 넓은 2층 주택에서 살았다. 1826년 가을부터 쇼팽은 Warsaw School of Music에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831년 그는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와 비엔나로 이주하여 파리 근처에서 여생을 보낸다.

일생을 폐결핵에 시달리게 된 것도 그때부터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살 때 러시아의 식민통치에 반대한 폴란드인들의 혁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했는데, 폐결핵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죽음이 임박한 말년에도 폴란드 난민들을 위한 연주회에 참여했다.

1840년대에 쇼팽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와 상드는 Nohant-Vic을 포함한 많은 곳으로 여행을 다녔지만 소용이 없었다. 1849년 쇼팽은 모든 작품을 완성하고 마주르카와 녹턴에만 전념했다. 그의 마지막 곡은 마주르카 바 단조로 폴란드를 생각하면서 지은 민족주의적인 곡이다. 1849년 쇼팽은 사망했다.

공식적인 사인은 폐결핵이지만 그의 친지가 부검한 결과가 이전 검진결과와 다르다는 점 때문에 낭포성 섬유증이나 폐기종 같은 다른 질병을 앓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다. 로마 가톨릭 성 마들렌 교회에서 열리게 된 그의 장례식에는 그의 유언에 따라 모짜르트의 레퀴엠 을 연주하기로 했다.

레퀴엠에는 여자 성악가의 역할이 크지만 마들렌 교회에서는 합창단에 여자 가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마찰 때문에 장례식이 2주 동안 연기되었고, 결국 교회 측에서 쇼팽의 마지막 소원을 위해 양보했다.

쇼팽의 시신은 파리 Père Lachaise에 안장되었고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聖 십자가 교회에 있는 기념비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