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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슈나 신을 사랑한 여인 '미라'

박연서원 2013. 8. 8. 11:38

 

오백여 년 전,
라자스탄의 치토르를 통치하던 성주가 딸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미라(Meera 또는 Mirabai 1503 - 75)였고,
매우 아름다웠다.

미라는 소녀시절, 어느 성자로부터
크리슈나의 조각을 얻어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점점 성장하여 젖가슴이 봉긋 솟을 무렵,
궁전 테라스 밑으로 흥겨운 결혼 행렬이 지나갔다.

커다란 불로 길을 밝히고 온갖 악기들을 흥겹게 연주하는데,
수줍어하면서도 기쁜 표정의 아름다운 신부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테라스에 함께 서있던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제 남편이 될 사람은 누구일까요?"

어머니는 이제 소녀에서 막 벗어나 숙녀가 되려는
미라의 등을 부드럽게 포옹하며 대답했다.

"네 남편이 될 사람은 크리슈나 신이란다.
너의 영원한 남편은 크리슈나고,
크리슈나는 사랑의 신이란다.
사랑, 오직 사랑만이 너의 남편이란다."

평소에 미라가 크리슈나 조각을
너무나 아끼는 것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당시 여성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신,
크리슈나의 이름을 말해준 것이다.



그말을 들은 날부터
미라는 크리슈나 신상 앞에 나가,
노래 부르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크리슈나에 대한 소명.
그리고 '까마 데바'(사랑의 신)의 화살.

미라의 노래는 날이 갈수록 깊고 아름다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노래를 듣기 위하여
그녀를 따라 다녔고 칭송하게 되었다.

미라는 어느덧 여인이 되고
왕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라의 가슴과 영혼 속에는
온통 크리슈나뿐, 왕자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미라는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신에 대한 찬양, 헌신과 그리움을 노래하며
한밤중에도 신상에 절을 하기 위하여
신방을 몰래 빠져나가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한 행동에 인내를 거듭하던 왕자는
밤중에 외간 남자를 만난다는 거짓 소문까지 퍼지자,
왕가의 명예를 위해 그녀에게 독약을 보냈다.

그녀는 크리슈나 신상에 바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기에,
먼저 그 신상에게 바치고 난 후 독약을 마셨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왕궁에서 쫒겨 나왔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슈나는
밤이면 줌마 강가 혹은 야무나 강가에서
물소 떼와 함께 피리를 불며 지낸다고 했다.
아래와 같은 노래를 부르며,

" 그대를 부르기 위해
달콤한 피리로 그대의 이름을 연주하오.
그대의 미묘한 육체를 애무하는
바람에 실려온 꽃가루를 가슴에 안고
바람이 살랑이는 줌마 강 언덕 위, 작은 숲에서,
야생화로 꽃장식하고 크리슈나는 기다린다오."
- '기타고빈다'에서



슬픔에 빠진 그녀는
애지중지하는 크리슈나 신상을 가슴에 꼭 껴안고,
크리슈나가 피리를 연주하며 기다린다는 강으로 향하였다.

그녀가 도착하였을 때 그 강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루 일을 마친 물소들만이
강물 속에서 유유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실망과 낙담 끝에 죽기로 작정했다.
신상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기로 했다.

미라가 강을 향해 몸을 던지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녀의 신상에서 빠져나온 크리슈나였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크리슈나의 품에 안긴
그녀는 정신이 아득하고 몽롱해졌다.



이윽고 '크리슈나'가 말했다.

" 미라여, 남편과의 인연은 끝난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나를 위해 살아라."

그후 미라는 떠돌이 노래꾼이 되었다.
공주의 위치도 금은보화도 버리고
크리슈나 신을 위한 헌신, 즉 박티(Bhakti)를 수행하며
인도의 땅을 정처없이 떠돌았다.

세계는 신의 몸이고,
세계에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움은
신의 아름다움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죽으려 했다가 재탄생된 미라는 이 마을 저 마을
신의 영토를 유랑하며 크리슈나를 찬양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신을 만난 이후
이미 지상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신의 지복(至福)을 깨달은 경지에 이르렀다.
신과 합일하여 아름다움이 극치에 다달은,
그리고 간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어졌다.

미라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감동과 전율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신을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왕궁에 앉아 있던 왕자는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되었다.

꿈길에서처럼, 마술에 걸린 사람처럼,
소리에 이끌려가니, 자신이 독약을 보냈으며,
저주의 말을 퍼붓고 성 밖으로 내쫓은 미라가 있었다.

옷은 이미 심하게 낡아 속살이 보였고,
산발한 머리, 몸에 붙은 지저분한 오물과
벗겨진 피부는 거지와 다름 없었다.



그러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혼 깊은 곳을 울리는 노랫 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왕자는 무릎을 꿇었다.
미라 앞에, 아니, 사랑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세상의 부귀, 영화, 권력을 가지고
자신만을 사랑해 주기를 강요했던 왕자는
거지 앞에서 눈물 흘리며 머리를 낮추었다.

그러나, 미라는 노래를 끝내고
왕자를 뒤로 한 채 다음 마을로 떠나갔다.

그녀가 떠나니 노래가 떠나고,
라자스탄 성안에 모래바람이 서걱서걱 지나갔다.

미라도 없고, 노래도 없고, 사랑도 없었다.

왕자는 오랫동안 울었다.
그리고 미라의 노래를 되뇌었다.

" 당신은 영원, 그 자체이오니
죽음조차 당신을 앗아갈 수 없나이다.
당신은 영원히 내 가슴 속에 살고 있나이다."



미라의 '바쟌'(Bhajan, 신에 대한 찬가)은 구전되어
오늘날에도 인도의 모든 계층이 즐겨 바쟌을 노래한다.

또한 신에 대한 순수한 박티의 상징으로
미라의 바쟌은 인도문학에서도 영원히 빛나고 있다.

그녀의 바쟌은 훗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에게도 영감을 주어
‘신에게 바치는 송가(頌歌)’, '기탄잘리'를 탄생케 하였다.

아름답다 못해 관능적이기까지 한
크리슈나에게 바치는 미라의 시(詩)를 소개한다.



[크리슈나에게 바치는 Meera의 詩]

사랑은 나를 미치게 하오니
아무도 이 고통을 이해할 수 없나이다.

심장이 그 불길로 상처받아온 사람만이
이 고뇌의 의미를 알 수 있겠나이다.

보석의 값어치는 그 주인만이 알수 있는 것
이 고뇌를 치유해줄 의사를 찾아
문전마다 문전마다 헤매나이다 .

의사로서 당신이 돌아오는 날
나의 고뇌는 사라지겠나이다.



이 집시의 사랑은 모든 슬픔의 근원이오니
당신은 내 가슴에 달콤한 말만 남기고
너무 쉽게 떠나가 버렸나이다.

당신은 꽃을 꺾으면서
동시에 약속을 깨버리나이다.

당신이 없는 이 공간
내 가슴은 고통의 가시밭이옵니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고뇌가 뭔지를 알았나이다
이별은 고통이오니
집시는 누구의 연인도 될수 없나이다.

당신이 없는 이 공간에서 나는 방황하고 있나니,
내 사랑이여, 어느때 돌아오시렵니까.
내 삶의 봄은 어느 때 돌아오겠나이까.

 

야무나 강 언덕에서
나는 당신의 피리소리를 보았나이다.

어두운 강물 옆에 앉아서
피리부는 당신의 물빛 모습을 보는 순간
미라는 의식을 잃었나이다.

마치 돌로 다듬은 석상처럼
미라는 굳어버렸나이다.

날 당신의 노예로 써 주시어요
이 정원에 꽃을 심어 놓고
아침마다 당신을 보러 오겠나이다.



브린다반의 어두운 숲속에서
난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당신을 보는 그것으로 충분하오니
더 이상의 품삯은 원하지 않나이다.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이오니
이 헌신과 이 사랑은
남김없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공작깃털을 머리에 꽂고
황금빛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소떼들을 몰면서 당신은
마법의 피리를 부나이다.

내 사랑이여
미라의 가슴은 견딜수 없사오니
한밤의 야무나강 언덕에서
당신의 전부를 보여 주시어요.



오시어요, 내 사랑이여
당신의 모두를 내보이시어요
당신이 없으면 난 살 수가 없나이다.

물이 없으면 연꽃은 시들어 가듯
달이 없으면 밤은 칠흑이듯
당신 없으면 난 살수가 없나이다.

당신 없는 이 밤은 고통의 강물이옵니다
이젠 먹을 수도 없고 잠잘 수조차 없나니
누가 이 고뇌를 알수 있단 말인가.

내 사랑이여, 내 가슴의 이 불길을 잡아주시어요.
당신의 현존만이 이 불길을 잡을수 있나니
당신은 왜 나로 하여금
이토록 기다리게 하나이까.



돌아오시어요, 내 사랑이여
내 몸은 신음하고 있나이다.
내 호흡은 불타고 있나이다.
나뉘임의 이 고통은 나를 파멸시키나이다.

돌아오시어요 내 몸의 이 불길을 잡아주시어요.
온 밤을 이 슬픔 속에 헤매나이다.
잠과 굶주림 속에 버리워지나이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이 삶만이 덧없이 지나가고 있나이다.

내 사랑이여, 돌아오시어요.
미라는 절망의 늪에 빠졌나이다.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요
수많은 탄생과 죽음속에
영원한 나의 사랑은 흐르고 있나이다.

나는 당신의 것이오니 날 버리지 말아주시어요
내 뜰안으로 들어오시어요
내 눈물의 진주방울로 난 당신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내 몸과 마음은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도 당신의 것이옵니다.
미라는 당신의 발밑에 보금자리를 찾고 있나이다.
이 무수한 탄생속에서 미라의 순결은
오직 당신에게 바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이선희 - 인연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