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 Concerto No.4 in D minor, Op.31
비외탕 / 바이올린협주곡 4번
Henri Vieuxtemps, 1820 ~ 1881
전 악장 이어듣기
1. Andante-Moderato.
2. Andante religioso.
3. Scherzo vivace.
4. Finale marziale-Andante allegro
Hilary Hahn, violin
Tugan Sokhiev, cond.
Philharmonie Berlin (Berlin Philarmonic Orchestra)
1악장 (Andante moderat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Hilary Hahn, violin
Tugan Sokhiev, cond.
Philharmonie Berlin (Berlin Philarmonic Orchestra)
Yehudi Menuhin, violin
Walter Susskind, cond.
Philharmonia Orchestra
2악장 (Adagio religios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Hilary Hahn, violin
Tugan Sokhiev, cond.
Philharmonie Berlin (Berlin Philarmonic Orchestra)
Yehudi Menuhin, violin
Walter Susskind, cond.
Philharmonia Orchestra
3악장 (Scherzo Vivace)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Yehudi Menuhin, violin
Walter Susskind, cond.
Philharmonia Orchestra
4악장 (Finale marziale: Andante -Allegr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3악장 (Scherzo Vivace) & 4악장 (Finale marziale: Andante -Allegro)
Hilary Hahn, violin
Tugan Sokhiev, cond.
Philharmonie Berlin (Berlin Philarmonic Orchestra)
Yehudi Menuhin, violin
Walter Susskind, cond.
Philharmonia Orchestra
Violin Concerto No.5 in A minor, Op.37 'Gretry'
비외탕 / 바이올린협주곡 5번 '그리트리'
Henri Vieuxtemps, 1820 ~ 1881
전 악장 이어듣기
1. Allegro non troppo
2. Adagio
3. Allegro con fuoco
Nikita Borisoglebsky, violin
Clemens Schuldt, cond.
Mariinsky Theatre Symphony Orchestra
Musical Olympus ath the Mariinsky Concert Hall
22 May 2011
1. Allegro non tropp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I. Allegro non troppo (14:01)
Viktoria Mullova, violin
1th mov. part.1-2
1th mov. part.2-2
1th mov. Cadenza
Yehudi Menuhin, violin
Anatole Fistoulari, cond.
Philharmonia Orchestra
2. Adagi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2. Adagio (03:40)
Viktoria Mullova, violin
3. Allegro con fuoco
Jascha Heifetz, violin
John Barbirolli, cond.
London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3. Allegro con fuoco (01:10)
Viktoria Mullova, violin
Neville Marriner, cond.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2 & 3th mov.
Yehudi Menuhin, violin
Anatole Fistoulari, cond.
Philharmonia Orchestra
비외탕은 모두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다. 그 가운데 오늘날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곡은 단연코 5번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부분에 벨기에의 작곡가 그레트리(Andre Gretry)의 오페라 선율이 사용되고 있어 ‘그레트리’란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한 이 곡은 1862년 초연 당시 베를리오즈로부터 “나에게 이 곡은 지극히 위대한 동시에 새롭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또 “만약 비외탕이 뛰어난 비르투오조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를 위대한 작곡가로서 환호할 수 있을텐데···”라고도 말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곡은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협주곡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단악장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관현악 부분의 규모와 역할이 더욱 확대되어 독주 관현악의 조화가 돋보이는 점 등에서 남다른 음악적 깊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작곡가로서의 비외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베를리오즈의 이 말은 그러나 그만큼 비외탕이 연주가로서 탁월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대 대부분의 비르투오조들이 그러했듯이 비외탕도 자신의 곡들, 그리고 이 5번 협주곡 안에서 역시 탁월한 연주력을 바탕으로 하는 기교적 주법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비외탕 [Henri Vieuxtemps, 1820.2.17~1881.6.6]
벨기에의 바이올린 연주자. 베르비에 (Verviers)출생.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유럽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하였으며 아버지에게 음악의 기초를, 루쿨루와 안젤로 베리오에게 바이올린을, 지몬 제흐터(Simon Sechter)와 안톤 라이하( anton Reicha)에게 작곡을 사사. 이어 여러 차례 유럽 순회 공연을 했고 미국에서도 3번(1843~44,1857~58,1870~71)이나 순회공연을 했다. 1846년 부터 1852년까지는 상크페테르브르크의 궁정음악연주가로 있으면서 그곳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871년부터 1873년까지는 브뤼셀 음악원의 교수로 있었다. 상트페테르브르크 음악원에서도 러시아 바이올린 연주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브뤼셀 음악원에서는 뇌졸증으로 사임해야했다. 극도로 정밀한 기교적 연주와 풍부한 음역을 한데 혼합한 것이 특징인 그의 연주 양식은 널리 모방이 되었다. 그는 19세기 기교적 연주자 계보의 길을 연 초기 연주자 중 한사람이며 그의 작품들 역시 기교적 연주에서 선구적 영역을 개척했고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1~7번은 이 형식의 발전에 기여했다.
앙리 비외탕의 삶
대가의 눈에 띈 잠재력 넘치는 소년의 연주
비외탕 일가의 가장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앙리 비외탕은 820년 3월 17일 벨기에의 베르비애에서 태어났다. 4세부터 아마츄어 음악가이자 조율사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루쿨루(M.Lecloux-Dejonc)를 사사한 그는 6세가 되던 해 처음으로 대중앞에서 실력을 선보이게 된다. 비외탕은 1827년 11월29일에 리에지(Liege)의 Socie, Te. Gretry연주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이듬해 초에는 부뤼셀에서 몇차례 연주를 하였는데 이곳에서 大 바이올리니스트인 베리오(Beriot)의 이목을 끌어 그의 제자가 되는 영광을 안기도 한다. 1829년 5월에 제자를 파리로 데리고 간 스승은 비외탕의 데뷔를 위한 무대를 개최해주었고 그는 로드 협주곡 제 7번을 연주하여 청중의 큰 호응을 얻게 된다. 본 음악회를 지켜본 페티(Fetis)는 비외탕을 '타고난 연주가'라며 격찬을 하기도 하였다. 1831년에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베리오는 탁월한 기량을 지닌 제자를 열성을 다해 4년 동안 지도하였다.
독일 연주여행의 성공과 파가니니와의 만남
1833년 비외탕은 늘 엄격한 연습을 고집하던 그의 아버지와 함께 음악적 지평을 넓히기 위해 독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거기서 그는 당시에 저명하던 음악가들 슈포어(Louis Spohr), 몰리끄(Wilhelm Bernhard Molique), 마이세더(Joseph Mayseder)를 만나고 그들의 음악을 접하게 된다. 비외탕은 순회연주 도중 지몬 제흐터(Simon Sechter)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베에토벤과 가까이 지내던 음악가들의 사교 모임에 합류하게 되면서 1834년 초 비엔나에 정착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당시 실질적으로 거의 잊혀지다시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익히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비외탕은 2주간의 연습끝에 이루어진 1834년 3월 16일의 연주회에서 베에토벤의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복원시키게 된다. 지휘자이자 비엔나 음악원학장이었던 란노이( Eduard von Lannoy)는 그의 연주가 " 독창적이고 참신하면서도 고전적이다"라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라이프찌히에서는 작곡가 슈만으로부터 그의 연주가 파가니니에 비견된다는 평을 듣는 등 연주여행을 통해 비외탕의 명성이 독일전역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monic society)에서 이루어진 그의 런던 데뷔 무대는 독일에 비하면 그리 열광적인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으나 그곳에서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을 심어주고 당시 런던 전체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린 바 있는 파가니니를 만나 음악적 조언을 듣게 된다.
작곡 공부와 러시아 연주여행 재개를 통한 지속적인 발전의 길
비외탕은 1836년 초 까지 라이하 (Antom Reicha)에게 작곡을 배우며 파리에서 지냈다. 그는 스스로 비오키 협주곡의 웅장하고 장대한 형식의 근대의 테크닉적 진보에 발 맞춘 화려한 기술을 결합시킨 곡을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파가니니로부터의 음악적 영행을 명백히 보여주는 바이올린 협주곡 f# 단조 (나중에 협주곡 제 2번 op.19로 출판되었다)이다.
라이하 밑에서 작곡 수업을 마친 비외탕은 1837년 유럽을 돌며 연주 여행을 다시 시작하였다. 특히 러시아에서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1840년 3월 16일 상트페테르브르크에서는 근간에 작곡된 '환상 카프리스 (Fantaisie caprice) op11'과 제 1번 협주곡이 초연되기도 하였다. 첫번째 협주곡의 성공여파는 브뤼셀에서도 이어졌으며 1841년 1월 12일 파리에서 베를리오즈는 "훌륭한 독주자로서의 기량이 넘쳐나는 비외탕은 이제 작곡가로서도 그에 못지않은 명망을 얻고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1841년 4월 19일에 비외탕은 다시 런던을 찾아 무대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게된다. 그는 런던을 자주 방문하였고 1845년 첫 시즌부터 베토벤 4중주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1843~1844년, 피아니스트 탈베르그(Talberg)와 함께 한 1857~1858년, 그리고 1870~1871년 3회에 걸친 미국 연주 여행을 성황리에 끝냈다.
러시아에서 맞이한 비외탕의 전성기
러시아 황제의 전속 궁정 음악연주자로서 그리고 러시아의 바이올린 연주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등 성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교수로 지냈던 1846~52년의 5년동안 비외탕은 러시아에서 절찬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불리우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 4번 d단조를 완성하고 1851년 12월 파리에서 연주하였다. 베를리오즈는 제 4번 협주곡을 '바이올린 솔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장대한 교향곡'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한편, 비에니아프스키가 가장 아끼는 곡으로 유명해진 비외탕의 협주곡 제 5번 a 단조는 1861년에 완성되었다.
혼신을 다한 후진 양성과 벨리에 악파의 성립
1844년에 비엔나 출신 피아니스트 요세핀 에더(Josephine Eder)와 결혼한 비외탕은 1855년 프랑크프르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으나 1866년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2년 후에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게되자 그는 해외연주여행에 몰두하여 그로 인한 성공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1871년 비외탕이 미국에서 돌아 왔을 때 그는 브뤼셀 음악원으로부터 교수 제의를 받게된다. 그는 벨기에 바이올린 악파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전력을 다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유명 바이올리리스트 이자이(Eugene Ysa ye)도 이 시기 그의 제자중 하나였다.
그러나 1873년에 갑자기 찾아온 중풍으로 몸이 마비된 비외탕은 비에니아프스키에게 자신의 교수자리를 임시로 위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1877~8년부터는 병세가 호전이 되어 조금씩 레슨을 재개하게 되었지만 1879년에는 학교측으로부터 결국 사임당하게 된다. 병마와 싸우던 그는 2년후 알제리 무스타파( Mustapha )의 한 요양소에서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비외탕의 음악세계
기교와 표현력 사이에 음악적 '중용' 을 꾀한 독창적인 작곡 .
비외탕의 작곡가적인 면모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베를리오즈와 다른 평론가들의 일화는 오늘날 다소 과장된 채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는 그 당시 정황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할 일이다.
비외탕이 1840년에 그의 첫 협주곡을 작곡하였을 때 베리오의 협주곡들은 청중들에게 품위있는 오락거리 이상으로는 여겨지지 않았고 비오티(Giovanni Battista Viotti), 로드(Pierre Rode), 크로이처(Rodolphe Kreutzer)의 레퍼터리들은 너무 고전적이었던 반면 파가니니의 협주곡들은 (당시는 출판되기도 전이었지만) 현란한 기교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비외탕은 솔로파트를 풍부히 하고 근대적인 교향곡 구조로 구상하므르써 프랑스 바이올린 협조곡의 개념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그의 작품에는 파가니니의 마법과 같은 기교는 없지만 베리오난 파가니니의 기술적 요소들을 자신의 독자적인 어법으로 융해시켜 가장 바이올린다운 음악 양식을 창조해냈고 이는 19세기 내내 유행하게 된다.
비외탕은 제 4번 협주곡을 통해 카덴차를 포함하는 즉흥적인 서주곡, 느린 악장, 스케르초와 피날레로 구성되는 4악장 구조 형식을 고안해냈었다.
제 5번 협주곡에서는 마지막에 카텐차가 붙는 통합된 한 악장 형식을 사용하므로써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이처럼 비외탕은 협주곡의 개혁자로서 리스트에 비견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형식을 적합한 음악적 내용으로 채우는 일에 늘 성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그의 영웅주의는 지나치게 극적이었고 그의 열정은 너무 수사적이었고 그의 선율은 과할 정도로 감성적이었다. 매우 잘 작곡된 일부 작품들에 한하여 그러한 그의 음악이 고결하고 매력적이면서도 우아함이 넘치는 특색을 띠었다. 비외탕의 바이올린 소픔들은 음악적으로 깊이가 있다기 보다는 화려하고 밝다. 그러나 가장 걸작들은 오늘날의 얄팍한 솔로 레퍼터리들과는 거리가 있다.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무장된 탁월한 비르투오조 비외탕은 풍부한 음색과 뉘앙스 넘치는 표현을 구사하면서도 정확하고 절도 있는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발현하는 솔리스트였다. 또한 뛰어난 실나애가 주자이기도 했는데...
그는 모짜르트, 하이든, 베에토벤, 바흐, 케루비니 등의 작품들로 구성된 실내악 프로그램을 연주하는 연주자 조직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의 동년배들은 비외탕이 훌츠, 린케(Joseph Linke)로부터 내려오는 비엔나 실내악 전통의 대가라고 서슴없이 칭한다.
이처럼 그는 실내악을 즐겨 연주하며 애호가 양성과 실내악 음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꾀하였다. 프랑코- 벨기에 악파의 바이올린 연주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자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고 정확한 해석에 바탕을 둔 풍부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수많은 청중들에게 뜨거운 감격을 선사한 비외탕은 거장의 면모를 지닌 연주가로서 19세기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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