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세계 최고의 베이스 Ivan Rebroff

박연서원 2012. 2. 13. 00:31

Ivan Rebroff (세계 최고의 베이스)

Wolgalied

Ivan Rebroff (세계최고의 베이스) - Wolgalied

 

 

 

 

 

 

 

 

 

 

 

 

 

 

 

 

 

 

 

 

 

 

 

 

 

 

 

 

 

 

 

 

 

Ave Maria

 

Live - Part 1 of 2

 

Es steht ein Soldat am Wolgastrand 

 

Santa Lucia

 

러시안 벨칸토의 대부 Ivan Rebroff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친 그는 1958년 독일 연방 콩쿠르와 1960년 독일 국영 방송 ARD 국제 콩쿠르에서 각각 1등을 차지하며 화려한 경력의 막을 올리는데, 그 시작부터 특이하다. 그는 보통 가수들처럼 오페라 무대에서 기본기를 닦는 대신 막 서방에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던 돈 코사크 합창단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지휘자 세르게이 야로프는 그에게 아버지 나라 음악의 가장 강력한 본질은 무엇보다 러시아 민요와 정교 성가에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사실 아직도 레브로프를 〈검은 눈동자〉, 〈스텐카 라진〉, 〈칼린카〉 등의 민요로 기억하는 팬들이 가장 많을 것이다.

“돈 코사크 합창단의 경험은 내게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야로프는 눈부신 지휘만큼이나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흑해 코사크 합창단은 러시아 정교회의 음악만을 집중적으로 공연했습니다. 두 합창단 모두 뛰어난 솔리스트들로 이루어졌고, 모두들 의욕과 도전 정신으로 가득차 있었죠.”

하지만 그가 오페라 무대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1960~70년대 그는 유럽 각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했다. 일례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한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 음반에서 오를로프스키 공을 부르는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혹자는 원래 메조 소프라노가 부르도록 되어 있는 이 역을 팔세토로 소화하는 그를 두고 이 음반의 ‘옥의 티’라고 말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자 클라이버도 실제 무대에서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발산하며 청중의 배꼽을 앗아갔던 레브로프를 음반에서 제외할 수 없었던 것을 보면 무대 위에서 그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뮌헨에서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우스〉를 공연할 때였습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공연 중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고, 이 부분이 LP 속에서 그만 휴지(休止)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프랑스 라디오의 ‘유럽 1’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열 두 도적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그 음반을 방송한 적이 있는데,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 가수가 누구냐는 전화가 쇄도해 방송국 전화 시스템이 불통이 되었다더군요.”

 

그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무소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요한 슈트라우스의 〈집시남작〉과 〈빈 기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에서 주역을 맡아 전 유럽을 누볐다.

 

러시아 민요 최고의 대사

레브로프는 1985년 동서독 국민간의 우호를 증진시킨 공으로 서독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 받았다. 또한 그는 옛 소련에서 공연을 가질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서방 예술가였다. 누구 못지않게 그의 음악과 예술성을 이해하고 있던 고르바초프가 그를 초청해 역사적인 소련 방문이 이루어지게 되어, 20회의 공연을 가졌고 전국에 방송되었으며, 80명의 오시포프 발랄라이카 오케스트라가 반주하는 모스크바 디나모 체육관의 공연은 음반으로 녹음되었다. 〈프라우다〉는 그를 가리켜 ‘러시아 민요 최고의 대사(大使)’라고 칭했는데, 신문으로 그것을 읽은 레브로프가 얼마나 감격했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신약 성경을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는다는 레브로프에게 종교 음악이 가진 의미는 무엇일까?

 

“교회 음악이야말로 내 모든 관심사입니다. 언제나 나를 자극하죠. 꾸밈없이 엄숙한 러시아 찬송가나, 화려한 서방 교회 음악, 기쁨에 찬 가스펠 모두 내 목소리에 활기를 줍니다. 하지만 러시아 정교만큼 음악적 요소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울리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러시아의 은폐가 서방의 눈을 가리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 음악은 내게 침묵의 한 모습이고, 나는 청중에게 기독교의 다른 일면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겸손한 의무감에 싸이게 됩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노래로 기도하고 기도로 노래하는 교회입니다.”

현재 그리스에 살고 있는 레브로프는 보잉 747을 제 집 삼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연간 200여 회의 공연을 소화한다.

“내가 다음 번 갈 곳이 내가 가고 싶은 곳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파리와 베를린만을 위해 노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랜드의 스티키숄무르란 마을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주민이 1000명인 이 마을에서 800명이 마을 음악홀에 모여듭니다. 마을 신문은 아직도 그 공연을 오늘 있었던 일처럼 보도합니다. 스티키숄무르 사람들이 내게 보내준 그 아이슬랜드식 박수 갈채란...”

“위대한 러시아 베이스 표도르 샬리아핀은 아름다운 음성을 멋진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비교했습니다. 스트라디를 소유한 사람이 장식장에 보관만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고, 이 아름다움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해 비르투오소가 연주하듯이 ‘노래하게’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점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에도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는 노래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평생을 노력했고,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아직도 익히고 있습니다. 나는 신께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말만큼 그의 예술을 잘 드러내는 표현은 없을 듯하다. 레브로프의 노래는 무엇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그가 불렀기에 가치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말할 밖에. 여기 그 현상의 일부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