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14~15일)은 봄 꽃게를 맛보기에 최적기일 듯하다. 그렇잖아도 제철인 꽃게지만, 맛도 가격도 이번 주말이 극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대 꽃게 집하장인 충남 태안군 백사장항에 다녀왔다. 살과 알과 장이 꽉꽉 들어찬, '글래머' 꽃게를 파는 상인과 사는 손님으로 수협어판장이 흥이 올랐다. 꽃게의 색깔과 맛을 형성하는 과학적 원리와 더 맛있게 요리하는 비결도 소개한다.
◆봄 꽃게, 5월이 가장 맛나다
봄 꽃게가 대풍(大豊)이란 소문에 지난주 백사장항에 갔다. 수협공판장 여기저기 꽃게가 많긴 많은데 '대풍'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물량이 적어 보였다. '상해수산' 신상호씨는 "지난주 바람이 심하게 불어가지고 그물이 다 찢어지는 사고가 났었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이 조금 때잖아요. 17일 사리 때가 가까워지면 꽃게가 더 나올 거예요." 조금은 조수(潮水)가 가장 낮은 때로, 대개 매월 음력 7·8일과 22·23일에 있다. 사리, 정확하게 한사리는 음력 보름과 그믐 무렵 밀물이 가장 높을 때를 말한다. 17일이 음력 4월 15일이다.
백사장항에서 멀지 않은 채석포항 '바다수산' 이용복씨는 "봄 꽃게는 4월에 물량이 가장 많지만 맛은 5월이 최고"라고 했다. "암게는 산란기에 가까워질수록 알이 들어차기는 하는데, 알이 너무 영글면 뻑뻑해서 맛이 덜해요. 게다가 영양이 알로 몰려서 살이 빠지기도 하거든요." 알은 주황색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이고, 장은 푸르스름한 초록빛이 도는 옅은 노란색이다.
꽃게는 봄에는 게딱지에 알이 가득 차는 암게가 맛있고, 가을에는 살이 통통하게 찌는 수게가 맛있다. 봄 암게는 게장을 담가 먹으면 좋고, 가을 수게는 쪄 먹으면 좋다. 꽃게 암수는 구분이 쉽다. 뒤집어 보면 된다. 꽃게는 배 아래쪽 껍질이 2중인데, 이 부분을 '제(臍)', 즉 배꼽이라고 한다. 암컷은 배꼽이 둥글고 수컷은 뾰족하다. 사람의 어떤 부분을 생각하면 쉽게 감이 올 것이다.
요즘 백사장항에서 파는 꽃게는 대부분 암컷이다. 지난 6일 현재 암게는 ㎏당 대(大)자 3만원, 중(中)자 2만5000원, 소(小)자 2만2000원이다. 대자는 1㎏에 2~3마리, 중자는 4~5마리, 소자는 6~7마리쯤 된다. 게장 담가 먹기엔 소자가 알맞다. 한 사람이 먹기에 소자 정도 크기가 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수록 맛이 진하고 깊기는 하다. 크기와 상관없이 손으로 들어봐서 묵직하고 단단하면서, 뒤집어 배를 봐서 양쪽 '옆구리'로 진한 노란색 알이 비쳐 보이는 놈들이 맛나다. 백사장항 수협공판장 (041)673-5040, 상해수산 010-6431-2661
- ▲ 꽃게 보러, 꽃게 맛보러 가자, 서해안으로. 제철 맞은 봄 꽃게가 싱싱하다 못해 물 밖으로 펄쩍 뛰어오를 기세이다. 충남 태안 백사장항 수협어판장에서 찍었다.
삶은 꽃게는 선명한 붉은색이 꽃처럼 곱다. 그런데 살아있는 꽃게는 초록색과 파란색 섞인 청록색이다. 그렇다면 꽃게의 제 색깔은 무엇일까. 꽃게는 본래 붉은색의 색소를 가지고 있다. 꽃게는 살아있을 때 색소의 일종인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를 단백질 분자와 자유자재로 결합해 보호색을 만든다. 주변 환경으로 절묘하게 녹아든다. 그러나 꽃게를 익히면 단백질이 변성하면서 카로티노이드가 분리돼 드러나 본연의 색깔이 나타난다. 카로티노이드는 물보다 지방에 더 잘 녹는다. 꽃게를 요리할 때 버터 등 식용유를 더하면 더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운 색을 낼 수 있다.
게살은 생선살보다 콜라겐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요리를 해도 생선살보다 덜 부스러지는 이유다. 하지만 생선살보다 더 많은 효소를 가지고 있다. 살아서는 문제없지만, 일단 죽고 나서는 효소가 단백질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꽃게가 싱싱하지 않으면 살이 흐물흐물한 건 그래서다. 효소는 섭씨 55~60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래서 꽃게는 섭씨 55~60도 이상 뜨거운 열기로, 촉촉함을 잃지 않도록 빠르게 요리해야 가장 맛있다.
◆꽃게는 껍질째 익혀야 더 맛있다
꽃게는 달다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감칠맛이 짙다. 이 진한 감칠맛의 비결은 피라진(pyrazine)·티아졸(thiazole) 등 풍미를 자극하는 화학적 결합물질을 듬뿍 품고 있기 때문이다. 쇠고기의 경우 이런 결합물질이 구워야 생성된다. 열을 가해 고기 표면에서 수분이 제거되고 뜨거워지면서 ‘마이아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일어나야 이런 결합물질이 만들어지는데, 꽃게는 익히지 않아도 이미 살 속에 이런 물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꽃게를 포함한 갑각류는 염분을 조절하기 위해 글리신(glycine)이란 아미노산을 체내에 가지고 있다. 이 글리신도 꽃게 감칠맛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꽃게를 찌거나 굽거나 삶을 땐 껍질째 요리해야 더 맛있다. 껍질이 꽃게살에서 풍미가 빠져나가는 걸 막는다. 껍질 자체가 단백질과 당분, 색소 성분들의 결합체이다. 껍질에서 국물 맛이 우러나거나, 살에 맛을 더해준다.
꽃게맛집_게살이 상추에 쏙 '꽃게쌈밥'… 설탕 넣은 듯 달달 '게국지'
게장
까나리액젓·육수가 비법… 짜지 않으면서 숙성된 맛
게국지
게에서 우러난 국물맛이 달면서 개운하고 새콤해
태안, 꽃게가 많이 나는 곳답게 꽃게 요리가 다채롭다.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게장일 듯하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있다. 게살 특유의 달큰한 맛과 향을 즐기려면 간장게장이 낫다.
▲ 꽃게찜, 꽃게쌈밥, 간장게장(위쪽부터). 값은 다소 부담이 되지만 맛을 생각하면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 모두 충남 태안‘일송꽃게장백반’에서 찍었다. / 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canyou@chosun.com
요즘 손님들이 짠 음식 싫어한다고 간장에 날게를 담가놓고 게장이라고 착각하는 식당이 많다. 일송꽃게장백반은 짜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숙성시킨 게장이 어떤 맛인지 보여준다. 간장에 까나리액젓과 육수를 더한 국물이 맛의 비법이라는데, 이렇게 하는 곳은 많아도 이곳처럼 성공적인 경우는 드물다. 꽃게찜은 기대만 못했다. 꽃게간장백반(1인분) 1만9000원, 양념게장 3만5000·5만5000원, 꽃게탕 4만5000·6만5000원, 꽃게찜 5만·7만원.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755-5, (041)674-0777, www.ilsongmall.com
보다 색다른 맛을 찾는다면 게국지나 꽃게쌈밥이 있다. 꽃게쌈밥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음식. 꽃게살을 발라내 갖은 양념과 버무려 낸다. 깻잎이나 상추에 쌈 싸먹거나 밥에 비벼 먹는다.
송정꽃게는 아마도 꽃게쌈밥으로 태안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일 듯하다. 꽃게의 단맛과, 달착지근하면서 짭짤하고 살짝 매운 양념, 참기름 향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꽃게쌈장 2만원, 간장게장 2만원, 꽃게양념찜 5만·7만원, 꽃게탕 5만·7만원.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1290-31, (041)673-2666
게국지는 충남 해안가 토속음식이다. 간장게장 국물에 소금에 절인 배추와 고춧가루, 꽃게를 넣고 숙성시킨다. 3년까지도 삭힌다고 한다. 김치찌개처럼 끓여 먹는다. 맵지 않고 새콤 개운하다. 설탕이라도 추가한 듯 국물이 달다. 오로지 게에서 우러난 맛이다. 독특한 맛이라 그런지 하는 집이 많지는 않다.
곰섬나루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그래선지 돈 주고 사먹는 식당이라기보다 시골 친척집에서 정성껏 차려주는 밥을 먹는 듯 푸근하다. 우럭젓국 1만7000원(2인분)이나 간장게장 1인분 1만5000원(2인분 이상 주문 가능) 따위를 주문하면 게국지를 함께 낸다. 따로 팔지는 않는다. 태안군 남면 신온리 505-2, (041)675-5527, www.gomseom.com
꽃게탕은 어디서나 쉬 맛볼 수 있는 음식이나 꽃게가 싱싱해서 그런지 국물이 남달리 시원하다. 꽃게 자체의 맛을 정직하게 즐기기엔 찜이 최적일 듯하나, 이상하게도 내는 집이 드물다. 꽃게를 사다가 집에서 쪄먹는 게 가장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