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명가 ①] 밥힘으로 사는 한국인을 위한 별미밥 비결
쌀을 주식으로하는 우리는 밥과 땔래야 땔수 없는 관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밥힘으로 산다고 한다. 특히 지금처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때면 김이 모락모락 나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 한그릇에 온 몸이 사르르 녹고 마음마저 푸근해진다.
게다가 어머니들은 밥을 지을 때 그 지방의 특산물을 살짝 올려놓는 지혜를 발휘했다. 영양이 듬뿍 담긴 밥, 지금은 이를 별미밥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부터 참살이 열풍이 불면서 집에서 먹던 별미밥이 상업화되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도 그 지역만의 특색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여기저기서 솔솔 풍기는 그 고소한 밥내음을 따라 가봤다.
별미밥. 말그대로 '특별히 좋은 맛이 나는 밥'이다. 그러면 별미밥을 특정짓는 요소는 무엇일까. 별미밥집 주인장들은 거의 다 3가지 를 들었는데 쌀·재료·솥이다. 그중에서도 주인들은 대부분 '솥'에 가장 큰 방점을 찍었다. '밥맛이 솥맛'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별미밥맛은 솥맛'
별미밥으로 유명한 집들은 대개 1인용 곱돌솥이나 무쇠솥을 사용해 밥을 짓는다. 이 두 가지 솥은 우선 공통적인 장점이 있다. 1인분씩 밥을 짓기 때문에 밥맛이 좋다는 것. 곤드레나물돌솥밥을 파는 강원도 정선 '동박골'식당 홍성립(55)사장은 "곱돌솥은 열이 고루 퍼져 쌀이 고르게 익고 뜸이 잘들며 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무쇠솥에 밥을 내는 단양 '장다리 식당' 이옥자(49) 사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일반솥보다 매력적인 면이 또 있다. 곱돌솥은 열을 받으면 미네랄 성분과 원적외선을 방출해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시킨다. 무쇠솥은 솥에서 철분성분이 우러나와 빈혈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단다.
반면 차이점도 있다. "누룽지를 먹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 이옥자 사장의 설명이다. 곱돌솥은 보온성이 무쇠솥보다 더 좋기 때문에 밥을 퍼고 물을 부어놓으면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어 누룽지가 퍼진다고 한다. 하지만 무쇠솥은 처음에는 뜨겁지만 곱돌솥보다 빨리 식기 때문에 누룽지 고유의 꼬들꼬들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한다.
또 곱돌솥은 보온성이 좋기에 미리 밥을 지어 놓아도 무방하지만 무쇠솥은 주문과 동시에 불에 올려 놓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사장의 설명이다.
▲쌀은 지방 특산미 사용
쌀은 대개 그 지방에서 나는 햅쌀을 사용한다. 충청도 서산에서 '큰마을 영양굴밥'집을 운영하는 김운용(73)할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천수만에서 나는 쌀로 밥을 짓는다. 천수만 간척지는 유기질이 풍부해 과거부터 최고의 쌀 생산지로 손꼽혔다"고 자랑했다.
서울의 경우에는 약수돌솥밥으로 유명한 '이조'는 경기미를, 일본식 솥밥집인 '조금'은 이천쌀을 사용한다.
▲재료에는 영양이 듬뿍
별미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지역 특산물이라고 보면 된다. 마늘솥밥은 단양의 6쪽 마늘을 사용한다. 이옥자 사장은 "단양 마늘은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 알리신 등 고유 성분이 풍부하다. 또 다른 지역보다 일찍 파종해서 늦게 수확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력을 받는다. 다른 지역보다 1.5배 가격이 비싼 이유이다"고 밝혔다.
서산 간월도 굴도 마찬가지이다. 간월도 굴은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하루에 두 번 햇볕에 노출돼 말려지고 바닷바람에 씻기면서 맛이 깊어진다. 이 굴로 만든 서산 어리굴젓은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이름을 날렸다. '바다의 우유'라는 별명답게 각종 비타민과 칼슘·단백질 등이 풍부하다.
[백년명가 ②] 카사노바가 먹었던 굴로 솥밥을?
○유명 별미집들
▲굴솥밥=서산 간월도 '큰마을 영양굴밥'
'한 때는 세계 최고의 연인'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희대의 바람둥이로 통하는 카사노바. 그는 어떻게 수많은 여자를 울리며 '밤의 황제'로 군림했을까. 굴때문이라고 한다.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생굴 50개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카사노바 뿐 아니라 옛날 유럽에서는 굴을 '사랑의 묘약'으로 여겨 로마 황제들도 즐겨 먹었고, 나폴레옹도 끼니때마다 굴을 달고 살아다고 한다. 반면 수도자들은 금기시한 음식이었다. 그만큼 남자들에게 좋은 음식이 바로 굴이다.
굴은 날씨가 추워야 채취를 시작한다. 보통 10월말부터 4월께가 캐는 시기인데 지금이 바로 제철이다. 충남 서산시 간월도에 가면 자연산 굴밥집이 여러 곳 있다.
'큰마을 영양굴밥'도 그 가운데 한 집이다. 간월도에는 옛날부터 석화가 많이나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넣어 먹었다고 한다. 25년째 굴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운용(73)할아버지는 "보통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굴은 육질이 연하고 큼직하지만 간월도 굴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인해 굵기가 작고 단단하다"고 자랑했다.
옛날과 다른 점은 가마솥에 한꺼번에 많이 짓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 따라 1~4인분씩 곱돌솥에 짓는 것이다. 여전히 간장에 참기름·달래를 썰어 넣은 양념장과 서산의 특산물인 어리굴 젓이 함께 나온다. 특이한 점은 비벼서 생 김에 싸먹는 것이다.
김 할아버지는 "원래 간월도에는 김도 유명하다. 김에는 단백질과 다양한 비타민이 들어 있어 함께 먹으면 몸에 더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밥을 지을 때도 굴 뿐 아니라 대추·은행·호두 등 8가지의 재료가 더 들어가니 영양만점이다.
이 집은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만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밥짓는 시간이 다른 집보다 10여분 더 긴 30여분이 걸린다. 밥을 지을 때 넣는 굴이 이물질을 뱉어내는데 잿빛이 나는 물이 그것이다. 주방 아주머니가 이를 일일이 걷어내다보니 시간을 많이 잡아 먹기 때문이란다. 영양굴밥 1만원, 굴파전 1만원. 041-662-2706.
팁=서울에서는 홍대 앞 '돌꽃'이 대표적인 굴솥밥집이다. 굴과 전복 요리 전문점인데 굴은 경남 통영에서 양식한 것으로 사용한다. 돌솥에 내놓는데 약 20분 정도걸린다. 굴돌솥밥 7000원. 02-324-5894.
▲곤드레나물솥밥=정선 '동박골 식당'
만약에 나물도 신분이 있다면 곤드레나물만큼 신분이 급상승한 나물도 드물 것이다. 예전에는 강원도 화전민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밥위에 얹어 먹었던 것이 이제는 웰빙 음식이라며 인기다. 또 강원도 뿐 아니라 서울·충청도·부산·대구 등지에서도 곤드레 나물밥을 파는 곳이 생겼을 정도이다.
그래도 역시 곤드레 나물밥은 정선에서 먹는 것이 '오리지널'이다. '동박골식당'은 정선 읍사무소 인근에서 25년째 곤드레나물밥을 내는 곳이다. 홍성립(55)-서명조(52)부부가 외숙모 이금자(56)씨에 이어 운영하고 있다.
사실 곤드레나물밥은 큰 특징이 없다. 나물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데 밥을 지을 때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집은 두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일반쌀과 찹쌀을 7대3으로 섞어 밥을 짓는다. 부인 서명조씨는 "찰기가 나고 맛도 좋기 때문"이란다.
또 곤드레나물밥을 비벼먹는 '막장'도 눈에 띈다. 보통의 막장과 달리 된장에다 양파 등 4가지의 채소를 넣고 볶은 것인데 검은 색을 띠고 있어 춘장과 비슷하다. 약간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데 곤드레나물 고유의 쌉사래한 맛과 잘 어울려 된장찌개나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 것보다는 한결 깔끔한 느낌이다.
겨울에도 곤드레나물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냉동보관하기 때문이란다. 홍성립 사장은 "곤드레나물은 3월에 해발 700m이상의 고냉지밭에 씨를 뿌리면 보통 4월에서 6월까지 채취한다. 이 때 많이 사서 삶은 후 냉동보관하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하루 20㎏정도, 1년에 7000㎏정도 구입한다고 한다. 곤드레 돌솥밥 6000원, 곤드레 나물 정식 8000원, 곤드레나물 전 5000원. 033-563-0213.
팁=서울 종로구 신문로 구세군 회관 뒤에 가면 '나무가 있는 집'이 있다. 강원도 토속 음식점인데 곤드레 나물밥 등 다양한 향토 음식을 판다. 고봉학 사장이 직접 정선에서 구입한 곤드레나물을 넣고 무쇠솥에 짓는데 1인분에 1만원한다. 미리 예약해야 먹을 수 있다. 02-737-3888.
▲마늘솥밥=단양 '장다리 식당'
이옥자(49)사장이 충북 단양의 특산물인 6쪽마늘로 밥을 지어 히트시켰다. 이 사장은 "1996년 전국 한우 요리대회에서 6쪽마늘이 들어간 육회로 상을 받았는데 이후 솥밥 등 다양한 요리에 마늘을 넣기 시작했다. 마늘 솥밥으로 97년에는 단양 마늘 음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마늘은 항암과 해독작용, 노화억제, 신경안정 등 다양한 효능을 갖고 있다. 생마늘 세알을 매일 먹으면 다른 보약이 필요없을 정도라고 전해진다. 특히 이 사장 본인이 마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내가 5~6년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아야했는데 부작용이 싫어서 집에서 키운 마늘과 된장찌개를 먹고 암을 극복했습니다. " 지금은 완치됐고 얼굴 피부도 탱탱해 40대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평강마늘 정식(1만2000원)을 시키니 무쇠솥에 지은 마늘솥밥이 나왔다. 마늘 3쪽과 조·콩·흑미·기장·해바라기씨·대추 등 12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그리고 반찬만 18가지에 이르는데 유심히 살펴보니 모두가 마늘이 들어있다. 마늘장아찌,마늘고추장초무침,마늘쫑무침,마늘통튀김,마늘 샐러드,마늘쫑잎 튀각 등이다.
마늘은 주중에는 약 50㎏, 주말에는 100㎏가까이 들어간다고 한다. 1년이면 무려 20톤 가량의 마늘이 소비되는 셈이다. 단양 뿐 아니라 의성·창원·서산 등 국내 마늘만 사용한다.온달 마늘정식 1만5000원, 효자 마늘정식 2만원, 장다리 마늘정식 2만5000원이며 모두 마늘솥밥이 나온다. 042-423-3960.
[백년명가 ③] 약수로 지어 푸른 솥밥을 먹어보자
●이외의 서울 별미집
▲약수밥
약수로 지으면 밥 색깔이 달라진다. 철분과 탄산의 영향인데 주로 파란색을 많이 띤다. 이런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종로 1가에 있는 곳이 '이조'이다. 김승호 사장은 비밀이기 때문에 정확히 밝힐 수는 없다고 했는데 충청도 지역에서 가져오는 약수라고 했다. 밥 색깔은 연한 파란색이다. 약수돌솥정식 1만원. 02-732-9559.
▲송이밥
자연산 송이로 밥을 짓는 곳은 '동락'이다. 삼청터널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있다. 철에 맞는 재료를 넣은 솥밥집이다. 송이는 양귀모 사장이 직접 강원도 양양과 인제에서 구입한다. 워낙 값이 비싸기 때문에 지금은 솥밥에 4~5점 올려놓는다. 지금이 철인 굴솥밥과 전복·홍합 돌솥밥도 먹을 수 있다. 가격은 모두 2만2000원. 02-743-9976.
▲연잎밥
돌솥이나 무쇠솥에 짓는 것이 아니라 연잎에 밥을 사서 만든다. 인사동에 가면 한정식 집이 많은데 '뉘조'에서 연잎밥을 먹을 수 있다. 신재옥 사장이 직접 전라도에서 연잎을 구해 온다고 한다. 점심에 우슬초 코스(1만6500원)를 시키면 호박죽과 김치편육 등과 함께 연잎으로 곱게 싼 밥이 나온다. 02-730-9301.
▲일본식 솥밥
안국동 로터리, 인사동 골목 입구에 있는 '조금'에서 판다. 33년째 같은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조금솥밭(1만3000원)에는 새우·죽순·대추·밤·은행·굴 등 30여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보통 솥밥집이 곱돌솥이나 무쇠솥을 사용하는데 비해 이곳에선 뚝배기를 사용한다. 송이솥밥 1만3000원, 전복솥밥 2만8000원. 02-725-8400.
정선·단양·서산=이석희 기자 [seri1997@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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