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화의 화식서식(話食書食), 광장시장
2011.04.15
현대의 맛에 타협 없는 맛거리음식
광장시장 원조 먹거리
세계 어디를 가도 그 지역 사람들의 숨김없는 모습과 친근한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다. 현대의 맛에 타협하지 않으며 옛날부터 내려오는 서민음식에 대한 관심의 식탐가라면 시장음식을 주목해볼 만하다. 홍대 앞 클럽에서 놀다 왔거나 새로운 유행에 앞서가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를 자칭하는 사람들에게 종로 대로는 퇴색한 시대의 잔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더구나 종로 끝 광장시장 먹거리는 고리타분한 옛 모습으로 밖에 안보이겠지만 옛날 종로는 지금 홍대와 강남역처럼 당시 모던을 꿈꾸던 젊은 세대의 영유거리였고, 광장시장 또한 중심의 저작거리였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서울엔 크고 작은 30여 개의 시장이 있는데, 먹자 거리가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곳이라면 단연 광장시장을 꼽을 수 있다. 1904년 동대문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재래시장은 동대문시장관리를 위한 광장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광장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의 시장들은 1일장, 격일장, 3일장, 5일장 등의 개장 방식이었는데, 광장시장은 개장과 동시에 상설시장으로 운영한 현대시장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주단, 한복, 커튼, 의류부자재, 삼베모시 등의 직물 판매와 견과류, 폐백음식, 농수산물 중심의 상설 도,소매를 겸하고 있는 시장이다. 광장시장은 한때 주춤했다가 청계전 복원 이후 시장의 활기가 더 살아나기도 하였다.
커다란 시장이 형성된 덕에 오가는 손님과 상인이 많다 보니 먹거리 시장 자체만으로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없는 게 없다. 구운 가래떡 하나만도 어엿한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음식과 대중들의 간식거리와 각종 술안주 할만한 것 등 다양하다. 대낮부터 술 한잔 걸쳐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늦은 밤 술 자리에서는 아코디언 맨 거리악사가 다니며 즉석 노래방을 열어주기도 한다. 낮부터 늦은 밤까지 시간대를 달리한 시장 분위기는 바뀌어도 활기참은 변함없다. 입맛이 없다, 의욕이 없다, 구수한 사람 냄새가 그립다,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광장시장에 달려가도 좋겠다. 아직 서울에도 이런 활기가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쌓여진 음식은 일단 눈을 즐겁게 하고 동시에 풍겨 나오는 냄새에 후각이 마비된 뒤 일단 자리 잡고 앉으면 스스로 미각이 곤두서게 된다.
시장을 가장 신나게 즐기는 것은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필 꽂힌 곳에 들어가 걸터앉고 배불리 먹고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면 그저 행복하다. 그런데 조금 더 까칠하게 전통의 시장 맛을 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맛집을 먼저 섭렵하는 센스를 부려보자
지글지글, 시장 빈대떡은 참 크다
순희네 빈대떡
알루미늄호일로 스티로폴을 폭 싸서 빈대떡 접시로 사용하는데, 가게 옆에는 수북이 쌓여 손님이 언제, 어떻게 닥치더라도 담아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대형 전 틀에서는 부침인지 튀김인지 구분 안 될 정도로 많은 기름 속에 빈대떡 반죽이 큰 국자로 하나씩 떠 놓인다. 4인 가족이 함께 먹어도 될 만한 미니크기의 큰 빈대떡은 단돈 4천원. 크기와 음식값에 대해 대적한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즉석에서 부쳐대니 따끈따끈 말랑말랑, 막걸리 한잔 옆에 따라 놓으면 밖에 비라도 내리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녹두와 숙주가 듬뿍 들어가 있고 넉넉한 기름 속에 익히다 보니 고소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기완자 또한 부드러워 식은 뒤에서 먹을 만하다. 그래도 시장 부침개는 꼭 시장에서 맛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집에서 한 김 나간 빈대떡은 절대 시장의 따끈한 빈대떡 맛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이라고 해도 꽉 누르지 말아야 되는 부침의 기본을 잘 지키고 있기에 팍팍하지 않은 폭신한 맛이다. 근처 횟집 등 식당에서도 부침개를 원하면 순희네 익스프레스 배달(?)도 된다. 인기의 빈대떡 결제는 현금만 되고 선불이다.
메뉴 : 녹두빈대떡 4천원, 고기완자 2천원
영업시간 : 오전 9시- 오후10시30
전화 : 02-2268-3344
얼큰한 소주 친구, 내장 듬뿍 대구탕
은성횟집
시장 안의 국물만 하더라도 생태찌개, 대구탕 등 제각기 특기 분야가 있다. 은성횟집은 ‘탕’과 ‘회’로 오랜 시간을 지켜낸 곳이다. 큰 솥엔 육수가 끓고 있고 입구 왼쪽에 차곡히 쌓인 전골냄비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무, 대구토막, 보리새우 등이 담긴 냄비를 가져와 곤이(내장) 두 국자를 듬뿍 넣고 미나리를 푸짐하게 얹어 테이블 불판으로 가져간다. 대구는 냉동살이라 생물과 비교한다면 퍽퍽하지만 오랫동안 끓여온 매운탕의 노하우가 있어 국물과 건더기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다. 처음엔 술안주처럼 대구와 채소를 건져 먹다가 시간이 지나 졸아든 매운탕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일품이다. 좀더 럭셔리하게 저녁 만찬을 하고 싶을 때에는 광어회 한 접시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매운탕을 고객 인원수대로 주문해야 되는 깐깐한 이 집만의 원칙도 있다. 매운탕 가격은 부침개나 분식 가격에 비해 매년 상승폭이 높은 편이다.
메뉴 : 대구매운탕 1만8천원(2인분), 광어회 3만원, 4만원, 5만원
영업시간 : 오전 9시40분- 오후10시
전화 : 02-2267-6813
직접 만드는 자랑의 순대
할머니집순대
순대처럼 저렴하면서 고단백인 음식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신선한 선지가 들어가고 찹쌀이 채워져 푹 쪄낸 음식인 순대를 한입크기로 썰어, 소금도 좋지만 소화 잘 되는 양념새우젓을 찍어 먹으면 균형 잡힌 요기 꺼리가 된다. 프랑스 비스트로(선술집)에 가면 우리 순대와 비슷한 음식이 있어 깜짝 놀라게 된다. ‘부당느와 (Boudin Noir)’ 라는 음식은 우리처럼 선지를 넣고 프랑스의 여러 채소와 허브를 넣어 만든다. 우리의 순대 안에 파, 마늘이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순대를 막걸리나 소주에, 프랑스사람들은 부당느와를 와인안주로 즐기고 있다. 이런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는지 몰라도 강남의 유명 와인바 안주에는 ‘구운 순대’라는 술안주가 있다. 요즘은 순대 전문 공급업체가 있어 대부분 납품 받아 판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순대집의 원조답게 할머니집순대는 자가제조를 고수하고 있다. 광장시장 순대는 무척 통통하다. 통이 넓은 막창에 선지와 찹쌀을 넣은 순대이기에 어슷 썰어 몇 점만 먹어도 금새 배가 부르다.
메뉴 : 순대 1인분 6천원, 순대국밥 5천원
영업시간 : 노점 오전9시 - 오후10시/ 식당 오전 9시- 오후 11시
전화 : 02-2274-1332
국물과 면이 범상치 않는 밸런스 칼국수
강원도분식 칼국수
30년 된 칼국수집이다. 광장시장 내에는 대를 이어 영업하는 집이 적지 않은데, 강원도분식 또한 어머니의 손맛을 딸이 이어받아 3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장 자리에 앉았다. 청바지와 군복을 팔던 골목 초입에서 어머니가 자그마하게 칼국수를 팔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와 분식집 상호를 붙이게 되었다. 지금은 강원도분식 주위에 3개의 분식집이 더 늘어서 있다. 칼국수 면발이 쫄깃하고 밀가루 내가 나지 않는다. 콩가루가 들어가 면발의 고소함을 살리고 있는데, 그보다 더 큰 노하우는 5시간이상의 숙성과 잘 치대는 테크닉이다. 마술을 부리듯 금새 얇아지고 종이를 접어두듯 반죽을 말은 뒤 채썰어 육수국물에 풍덩 던지는 일련의 행위가 숟가락으로 국을 떠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반죽도마 옆에는 멸치와 각종 채소를 넣은 칼국수용 육수가 끓고 있다. 국물이 무척 시원하다. 다른 집처럼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맛을 보고 또 찾곤 하는 집이다.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는 언제 찾아도 잘 익은 맛 그대로이다.
특히 열무김치의 국물이 개운하고 칼칼해서 칼국수를 먹다 입가심으로 국물까지 떠 먹게 된다. 김치와 두부를 넣은 큼직한 만두는 섬세한 맛은 아니지만 멸치국물에 어울리는 푸짐한 한끼다. 칼국수는 사계절을 내내 먹는 음식이지만, 특히 찬바람이 불 때 열선이 깔린 쪽 의자에 않아 밖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칼국수를 호호 불며 먹으면 마치 노천온천을 즐기는 기분이 되곤 한다.
메뉴 : 칼국수, 만두국 각 4천원
영업시간 : 오전 10시-오후 8시30분, 일요일 휴무
전화 : 02-2269-1387
묽은 강된장을 넣어 비비는 채소 비빔밥
영암집
광장시장 내에는 비빔밥집이 유독 많다. 패밀리레스토랑은 어떻게 하면 색다른 샐러드바를 만들까가 고민인데, 광장 시장 내에도 진작부터 샐러드바 즉 나물바가 있다.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또는 아줌마가 손에 잡히는 대로 넣어 주는 샐러드 비빔밥인 셈이다. 생채소, 익힌 나물, 김치까지 10여종은 보통이다. 양푼에 부추, 열무, 콩나물무침, 치커리, 무생채, 묵은나물 등이 집집마다 다양하고 수북하게 줄지어 있다. 비빔밥을 말할 때 ‘영암집’이 빠지지 않는다. 시장 안 노점 영암집과 근처 식당 두 곳을 운영하는데, 언니와 동생이 각각 도맡고 있다. 이미 다 만들어놓은 나물인지라 주문과 동시에 손으로 나물을 한번 훑으면 밥 위에 이런저런 채소가 올라와있다. 거칠게 얹은 듯 해도 양이 딱 맞는다. 프로의 ‘미다스’ 손이다. 거기에 묽게 끓인 강된장을 조금 얹어준다. 비빔밥은 신기한 음식이다. 비빔 채소 각각의 맛은 밋밋하나 강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비비면 새로운 음식으로 탄생되는 진정 펀(FUN)이 있는 음식이다. 함께 떠먹는 진하지 않은 시래기된장국은 편한 속풀이용이다. 옛날 지게꾼들이 오가며 값싸게 때우던 한끼 식사가 이제는 채소 듬뿍 넣은 건강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메뉴 : 보리밥 4천원
영업시간 : 오전7시-오후10시
전화 : 02-2265-9351
마약김밥의 선풍을 일으킨 원조
마약김밥
김밥을 파는 곳곳에 마약김밥 원조라고 쓰여있다. 알고 보니 원조는 시장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마약김밥 2호점이 올 2월 달에 먹자골목 사거리 중심에 오픈을 했다. 본점의 김밥들이 큰 양푼으로 수시로 날라져 오고 있다. 손가락만한 길이의 가는 김밥 안에 단무지, 당근, 보일 듯 말듯한 시금치가 전부이고 위에 깨가 뿌려져 있다. 이 김밥을 이쑤시개로 꽂아 겨자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다. 초단순 김밥이다. 주인장 조차도 들어간 거 별거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김밥은 한번 먹은 사람들에게 인이 박히게 하는지 시장에 오면 또다시 작은 김밥을 찾게 한다. 그래서 마약김밥인지는 몰라도 원래는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 ‘모녀김밥’으로 통하였다. 어쨌든 인기의 김밥인 만큼 원조를 표방한 영업경쟁도 치열하다. 김밥판매 시간이 늦은 밤부터 새벽이었던 것이 요즘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한 시간에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인분에 8개의 김밥이 나온다.
메뉴 : 1인분 2천5백원
영업시간 : 본점 오전6시-다음날 새벽2시 / 2호점 오전9시-오후9시
전화 : 본점 02-2264-7668 / 2호점 02-2273-8330
달지 않은 시골 부꾸미를 맛보다
수수부꾸미
찹쌀반죽에 소를 넣어 기름에 지진 떡인 부꾸미. 광장시장의 먹거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별미 간식이다. 커다란 철판에 종일 부꾸미를 부치는데 일명, 부꾸미 할머니로 불린다. 부치는 속도가 프로임에도 손님들의 주문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먹자골목 중심가 모퉁이에는 부꾸미 손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흰색의 찹쌀부꾸미도 좋지만, 수수부꾸미는 요즘 쉽게 맛보기 어려운 떡으로 수수 맛과 팥 맛을 즐길 수 있는 든든한 디저트다. 점점 달달해지는 음식들 사이에 별로 달지 않는 수수한 맛의 수수부꾸미, 그것도 시장스럽게 큰 사이즈의 부꾸미를 받아들면 옛 부자가 된 듯 하다. 종이컵에 하나씩 담아 주기에 먹으면서 시장 안을 쇼핑해도 좋겠다. 찹쌀부꾸미와 수수부꾸미를 함께 살 때에는 안 달은 수수부꾸미부터 먹는 것이 좋다.
메뉴 : 부꾸미 1개 1천5백원
** 광장시장 찾아가는 방법 :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8번 출구로 나와 150m 직진 왼편 김해약국와 왕약국 사이로 들어가면 맛골목이 펼쳐진다. 주차장은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요즘엔 휴일에 2시간 갓길 무료 주차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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