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모악산 ‘미륵길’ 걷기―정여립 전봉준 강증산의 발자취 따라
물가의 눈부신 노을빛은 녹두장군 부릅뜬 눈빛이련가
모악산은 발밑에 김제만경 들판을 키운다. 만경강(80.86km) 동진강(44.7km)이 바로 그 생명의 젖줄이다. 두 강물은 갈지자로 느릿느릿 호남평야를 고루 적시며 서해바다로 빠진다. 호남평야는 동서 50km, 남북 80km의 타원형이다. 붉게 물든 저물녘, 들판은 강물과 두런거리며 어둠을 맞는다. 농부들은 저마다 저문 강에 삽과 손발을 씻고 집으로 돌아간다. 김제만경 들판은 그렇게 수천수만 년 동안 모악산의 품에서 자랐다. 평평한 호남평야 들머리에 갑자기 우뚝 솟은 산. 발아래엔 모두 ‘쇠 금(金)’자로 시작되는 마을들을 거느리고 있다. 금평(金坪) 금산(金山) 금구(金溝) 김제(金堤)…. 우리말로 금들 금뫼 금도랑 금언덕…. 그렇다. 모악산 골짜기에는 물이 많다. 수생금(水生金). 물은 금을 낳는다. 생명을 키운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호남평야를 목 축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치이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거르면 사금이 쏟아졌다. 한때 겨울만 되면 산자락 논밭마다 사금 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굴착기로 땅 밑 깊숙이 논밭을 갈아엎은 뒤, 그 모래흙을 체로 거르면 사금이 나왔다. 지금은 겨울이 돼도 사금 채취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제 사람들은 말한다. “원래 모악산 자락 밑에 사람 형상의 커다란 금덩이가 묻혀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머리와 팔다리 그리고 몸통 일부까지 다 캐 가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몸통의 극히 일부뿐이다. 그것도 아주 땅 깊숙이 묻혀 있다.”
그렇다. 모악산은 바로 미륵의 나라이다. 미륵전은 미륵신앙의 성지다. 주위의 미륵 관련 신흥종교들의 중심이 바로 미륵전이다. 하지만 불교 조계종 시각에서 보면 그건 부처님의 도량이다. 스님들은 미륵교도들을 미신이나 사교신자로 보는 반면에 미륵교도들은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창건할 때 미륵을 모셨으니, 금산사 스님들도 당연히 그 뜻에 따라 미륵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륵부처는 앞으로 올 미래불이다. 메시아다. 도솔천에서 살고 있는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오면 용화세계가 된다. 용화세계는 이상향인 샹그릴라이다. 모악산 앞자락 반경 30리(12km)엔 미륵신앙공동체가 많다. 미륵 품 안에서 살면 큰 난리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백운동마을 동곡마을 용화동마을 청도리…. 미륵길(약 5km)은 김제 청도리 귀신사(歸信寺)에서 시작한다. 믿음으로 돌아가는 절집.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숨은 꽃’은 1992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귀신사는 화장 안한 말간 절집이다. 대웅전 단청이 ‘생얼’ 그대로이다. 뒤란에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탑전을 지키고 있다. 그 옆엔 석수상이 있고, 석수 등 위엔 남근석이 빳빳이 서있다. 탑전 오르는 돌계단에 앉아 모악산을 바라보면 백운동 오르는 길이 가르마처럼 보인다. 돌계단 양 길섶엔 야생차가 성성하다.
백운동 뽕밭은 초기 정착할 때 심은 것으로 80년이 넘은 재래종이다. 당시엔 누에를 키웠지만 요즘엔 노인이 많아 오디 따는 것만도 힘에 부친다. 백운동 재래 뽕나무 오디즙은 인근에 이름났다. 백운동은 뽕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늙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다. 마을 고샅길은 커다란 뽕잎 사이로 덮여있다. 할머니들이 간이정자에 앉아 시간을 삭이고 있다. 한낮인데도 풀벌레 소리만 고즈넉하다. 백운동길은 도통사(道通寺)로 이어진다. 도통사도 증산교 계열이다. 그 아래엔 용화교본사가 숨어있다. 도통은 증산교에서 깨달음을 말한다. 현재 도통사는 99세의 강성통(姜聖通)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다. 이름 자체가 이미 도통했다. 허리가 꼿꼿하고 눈이 형형하다.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다. 그는 말한다. “미륵부처가 오실 날이 며칠 안 남았다. 후천개벽의 세상이 오면, 33경의 사바세계는 끝이 난다. 석가모니부처의 운이 다했다.”
도통사를 지나 용화삼거리로 가는 길은 아늑한 오솔길이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 길이다. 산허리를 밟아 내려가다 보면 금세 금산교회를 지나 오리알터가 나온다. 금산교회는 1908년 지은 ㄱ자형 한옥건물. 남녀유별이 있었던 시대 남쪽이 남자석이고, 동쪽이 여자석이었다. 상량문엔 남자석은 한자로, 여자석은 한글로 성경 구절이 씌어있다. 인근엔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촬영했던 수류성당도 있다. 수류성당은 6·25전쟁 때 신자 50여 명이 순교한 곳. 100년이 훨씬 넘은 유서 깊은 성당이다.
▼2일 여행가 김남희-신정일 씨와 걷기 행사▼일 여 김남희-신정일 씨와 걷기▼ ▼‘오리알 터’는 ‘올(來)터’서 유래… 구원자가 나타날 장소임을 암시▼
타원형의 오리알터 위쪽 정수리에 솟은 산이 바로 제비산(帝妃山)이다. ‘황제의 아내 산’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혁명아 정여립(1546∼1589)은 서른아홉 살 때 한양의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는 이곳에서 대동계(大同契)를 만들어 반상의 귀천과 사농공상의 차별, 남녀차별이 전혀 없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꿨다. 대동계엔 사당패 광대 점쟁이 풍수 무당 등 별의별 인물들이 다 있었다.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집터와 그가 천일 동안 기도를 했다는 치마바위가 남아있다.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은 오리알터 아래 감곡 황새마을에서 감수성 많은 유년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훗날 그의 오른팔이 됐던 동학의 금구접주 김덕명과 태인접주 손화중도 바로 그 시절에 사귄 동무들이었다. 전봉준은 그곳에서 ‘사람이 하늘’인 세상을 꿈꿨다. 요즘에도 이곳에선 ‘눈이 샛별같이 빛나는 차돌 같은 소년 녹두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강증산(1871∼1909)은 정여립 집터 바로 옆 구릿골(동곡마을)에 약방(광제국·廣濟局)을 차려놓고 구한말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했다. 그는 여성과 백정 무당이 존경받고 서자와 상민이 무시당하지 않는 후천개벽의 세상을 역설했다. 그는 그곳에서 서른여덟에 눈을 감았지만 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강증산은 막걸리도 곧잘 마시고, 신이 나면 얼씨구절씨구 어깨춤도 들썩였다. 꽹과리나 장구는 물론 굿도 잘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광대요 무당이며 천지농사꾼이다. 광대와 무당이 바로 가장 큰 후천개벽의 전위다.” 오리알 터 주변엔 증산계열 종파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증산의 유일한 혈육인 강순임이 세운 증산법종교, 제자 안내성의 증산대도회(백운동 교인촌), 제자 이상호·이정립 형제의 증산교본부, 제자 김형렬의 미륵불교, 제자 서백일의 용화교본부, 증산 외손자가 세운 전각 청도대향원, 증산의 둘째 부인 고수부(태을교)를 모신 집, 도통사…. 20여 개 종파가 남아있지만 대부분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6·25전쟁 후 50여 종파에 수천여 신도에 이르렀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증산의 시신은 본부인 정 씨가 제자 차경석(보천교)에게 ‘증산유골반환소송’ 끝에 승소(동아일보 1929년 3월 27일자 보도), 현재 딸이 세운 증산법종교 경내에 묻혀 있다. 증산의 구릿골 약방은 최근까지도 소박한 초가집이었으나 증산교의 한 종파가 인수해 거대한 기와집으로 바꿔놓았다. 마당가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꽃밭도 사라지고 뒤란의 텃밭도 없어졌다. ▽ 교통 △ 고속버스=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김제 하차→금산사행 시내버스→금산사(혹은 서울에서 전주행 고속버스로 전주 하차→금산사행 버스) ▽ 숙박=전주한옥마을 한옥 민박집. 전주한옥생활체험관(063-287-6300), 학인당(063-284-9929), 양사재(063-282-4959), 동락원(063-287-2040), 아세헌(063-287-1677)
▽ 음식 △ 매운탕: 무릉도원(063-548-5557), 한어울(063-545-1241), 락원가든(063-543-3738) △ 산채요리: 그린회관(063-548-4090), 화림회관(063-548-4028), 호박정(063-548-0861), 김제식당(063-548-4097) △ 기타: 팥칼국수 흥부바지 걸쳐입고(063-548-9048), 한우 육회비빔밥 원평총체보리 한우촌(063-543-0076) △ 전주콩나물국밥: 현대옥(063-228-0020), 왱이집(063-287-6980), 삼백집(063-284-2227) △ 전주비빔밥: 성미당(063-284-6595), 가족회관(063-284-2884), 고궁 (063-251-3211)
△ 전주한정식: 백번집(063-286-0100), 수구정(063-284-3432), 송정원(063-283-7663) ▽ 특산물: 백운동마을 재래오디 백운농원(063-548-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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