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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社會가 '事實'과 '價値'를 區分하지 못하는 反理性의 미몽(迷夢)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박연서원 2024. 11. 11. 08:41

우리 社會가 '事實'과 '價値'를 區分하지 못하는 反理性의 미몽(迷夢)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병태(카이스트 교수)

日帝時代의 先祖들의 국적(國籍)은 日本이었다는 김문수 前 道知事의 發言이 論難이 된다는 事實이 우리 社會가 '事實'과 '價値'를 區分하지 못하는 反理性의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生生하게 證明한다.

帝國主義는 15世紀부터 20世紀 中盤까지 全世界的으로 퍼져, 1800년까지 地球 땅의 35%, 1次世界大戰이 始作될 때까지 84%에 걸쳐 植民地가 擴大되었다. 이 시기 植民主義는 例外가 아니라 普遍的 現象이었다. 人口를 基準으로 우리가 解放된 1945년에는 약 7억 5천만 명, 全 世界人口의 1/3이 植民統治下에 있었다.

帝國主義, 植民主義란 무엇인가? 强大國이 弱小國을 병합(倂合)하고 自身들의 국적을 强要했다는 말이다. 日帝時代 우리 先祖들이 日本의 국적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植民統治下에 있지 않았다는 억지 主張이 된다. 도대체 그럼 그 時期에 韓半島의 百姓들은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었다는 말들을 하고 싶은 것인가?

日帝가 內鮮一體를 主張하고, 말과 글을 바꾸고, 創氏改名으로 日本化를 획책(劃策)했다는 事實을 非難하면서 일본국적을 否定하는 모순(矛盾)된 이야기를 繼續하겠다는 말인가? 손기정 選手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參加했을 때 대한제국의 국적으로, 아니면 上海臨時政府의 旅券으로 參與했다고 우길 참인가? 손기정 選手는 太極旗를 달고 뛰었다고 주장할 참인가? 事實을 부인해서 어쩌자는 것이고 무슨 敎訓을 後世에 남기자고 하는 일인가?

事實과 價値 判斷은 明白히 다르다. 先祖들이 일본 국적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는 事實과, 帝國主義에 의해 弱小國 百姓들의 自治權과 主權을 强奪당하고 强制로 국적을 바꾸었다는 事實은 온당치 않고 불의한 것이었다는 價値 判斷은 別個고, 이는 이미 全人類가 논난의 여지없이 인정한 歷史的 事實이다.

그래서 植民主義와 帝國主義는 歷史에서 퇴출되었고 大部分의 植民地는 獨立해서 主權을 찾았고, 그 獨立은 국적回復을 意味한다. 국적喪失의 歷史가 없으면 국적回復의 歷史도 없다.

植民主義의 퇴출은 植民地 住民들의 투쟁의 結果만은 아니다. 事實 自身의 힘으로 獨立한 나라는 많지 않다. 帝國主義가 植民統治의 費用이 植民統治로 얻는 利益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배우고 나서 帝國主義 國家들이 스스로 抛棄해서 이루어진 現象이다. 마치 武力 獨立運動이 우리의 光復을 가져왔던 것처럼 歷史 歪曲을 해봐야 眞實과 멀다. 인도,아프리카 等 英연방국가들 또는 필리핀이 英國과 美國을 상대로 武力 勝利로 獨立했나?

우리나라는 帝國主義를 포기한 强大國 (미,영 등 聯合國)이 帝國主義의 포기를 拒否했던 主軸國 (獨逸,日本 등)과 戰爭에서 勝利한 덕분에 獨立을 했지, 우리가 帝國主義 日本을 물리친 것은 아니다. 이런 事實을 인정한다고 先祖들의 獨立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不屈의 意志를 實踐해서 나라 獨立의 名分과 正當性을 지켰다는 것을 누가 폄하할 수가 있는가? 이 또한 事實과 價値判斷의 混同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理由에서든 水準이 다른 文明이 만나면 물의 흐름과 같이 文明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많은 植民國家들이 植民地 시절에 봉건제도가 파괴되고, 强大國의 西歐的 先進文明이 導入되어 制度化의 契機가 된 事實도 否認할 수 없는 事實이다.

그것은 좋은 것을 배우는 人間의 本性이다. 그 事實과 植民統治가 바람직했다는 價値判斷과는 無關하다. 近代化가 始作되었다고 해서 植民統治가 正當化되는 것은 別個다.

'植民地 近代化論'을 親日로 몰고 가는 것도 事實을 價値判斷으로 덮으려는 感情的 우격다짐이다. 나는 政爭에 미친 586들의 歷史 退行的인 反日프레임의 狂氣를 늘 批判해왔다.

우리는 불편한 眞實을 대할 勇氣가 必要하다. 이는 自尊感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國民이 이제는 反日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充分한 成果를 이룬 나라라는 자존감(自尊感)과 자부심(自負心)으로 불편한 眞實을 受容하는 勇氣와 知性을 發揮를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