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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웨이 & 서리풀공원 숲길

박연서원 2019. 6. 24. 09:03

[발견이의 숲길 걷기여행5]

콧노래 절로 나는 허밍웨이 & 서리풀공원 숲길

 

이 길은 숲길 걷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입문자용 코스이다.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산보삼아 걷기에도 거리와 난이도가 적당하다. 지하철로 오고 갈 수 있으므로 접근하기도 좋다. 수많은 발길에 비벼져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서울의 숲길 중에서는 길찾기도 꽤 수월한 편이다. 얼마 전에는 찻길로 끊겼던 숲길 능선을 ‘누에다리’와 ‘서리풀다리’로 이어놓아 안전하고 안락한 산책로로 업그레이드됐다. 주둥이를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이뤄준다는 조각상도 있으니 소원하나 매달고 가보는 것도 좋겠다. 그 조각은 서리골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연결하는 누에다리 근처에 있다.

이 길의 시작은 걸으면 콧노래가 절로 난다고 하여 ‘허밍웨이’라고 명명된 반포천 둑길이다. 동작역 1번 출입구<1>를 나오면 곧바로 오른쪽으로 허밍웨이 입구<2>다. 반포천 둑을 따라 놓인 이 길은 한강 지류의 많은 둑길을 섭렵했던 발견이(필자)가 판단할 때 걷기에 아주 우수한 조건을 갖췄다. 무엇보다 여타 둑길에서 들려오던 찻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것이 큰 미덕이다.

 

▲아카시나무와 참나무류가 잎을 펼친 서리풀공원 숲길. 길옆으로철따라 야생화가 만발한다.

 

이 길은 서초구에서 산책로로 오래 전부터 신경을 바짝 써서 조경을 했다. 그래서 녹음으로 우거진 가로수 밑으로 철따라 피어나는 야생화들이 ‘나 좀 보고 가라’며 산보객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간혹 최근에 뚫린 반포천 둔치 길로 내려가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삭막한 자전거도로이니 꼭 둑 위로 난 길로 걷기 바란다. 40분 정도 걷게 되는 허밍웨이의 끝은 지하철 고속터미널역 5번 출입구가 있는 성모병원 사거리다. 찻길 사거리 너머로 보면 작은 조각공원 같은 서래공원<3>이 보이니 그리로 건너간다.

파란 눈의 아이가 뛰노는 몽마르뜨공원 지나

서래(西來)공원은 서쪽에서 온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공원 뒤편으로 예전만 못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많은 프랑스인들이 올망졸망 모여 사는 서래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파란 눈의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수업을 받는 프랑스학교도 있고, 다양한 음식문화가 퓨전된 외래문화 특화거리도 있다. 그 거리에는 소문난 퓨전 음식점들이 많으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미식가라면 이미 가보았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음식기행보다 숲길 걷기가 매력적이다. 서래공원에서 강남성모병원 쪽으로 길을 건너 잠깐 걷다 센트럴 육교 위에서 시작하는 서리골공원 숲길<4>로 들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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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권사 쉼터로 향하는 서리풀공원의 등날. 해발 1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순한 숲길이다.

 

서리골공원 숲길 입구에는 ‘서리풀공원 안내도’가 적혀 있어 지명이 조금 혼돈스러울 수 있다. ‘서리골’ ‘서리풀’ 뭔가 엇비슷한 지명이면서도 서로 다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서리골공원~몽마르뜨공원~서리풀공원을 하나로 뭉쳐 ‘서리풀공원’이라고 통칭한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리골공원 숲길은 몽마르뜨공원을 지상 30m 상공에서 이어놓은 누에다리까지 1㎞ 남짓 이어진다. 서리골공원을 이루는 숲은 작고 낮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일병동인 서울성모병원 본관이 기대고 있는 야무진 숲이다. 그런 점에서 서리골공원 숲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효율적인 치유의 숲이 아닐까 싶다.

몽마르뜨공원으로 넘어가는 관문인 누에다리를 만나면 서리골공원은 길은 마무리된다. 누에다리는 생긴 형태도 특이하지만 만들어 놓은 공법은 더 기이하다. 잘려나간 능선 끄트머리에 간단한 지반공사만 해 놓고 다리 본체는 다른 곳에서 조립해 한 덩어리로 옮겨와 하룻밤 만에 두 능선을 이어낸 것이다. 이처럼 큰 다리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된 방법이어서 시공 당시부터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야간 조명이 빛을 발하는 밤이면 일부러 이 다리를 보러 이곳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위)워킹코스로 개발해 놓은 허밍웨이 길은 여느 둑길 산책로와 달리 찻소리가 없어 한적한 걷기를 즐길 수 있다.

(아래)프랑스마을이 인접한 몽마르뜨공원에서는 야외수업을 나온 프랑스학교 학생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누에다리를 건너면 잠몽(蠶夢)이라는 조각작품이 몽마르뜨공원<5>의 청지기인 양 사람들을 맞아들인다. 몽마르뜨공원은 그리 넓지 않지만 빙 둘러 돌아보면 보기보다 꽤 긴 동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냥 빙글빙글 돌기에는 그늘도 없는 밋밋한 잔디공원이지만 철따라 피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외곽을 따라 심어놓은 소나무 사잇길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서리골공원과 서리풀공원 중간을 녹지로 연결해 주는 것이 이 공원의 미덕이다.

이 공원은 프랑스마을과 인접했다는 이유로 파리의 몽마르뜨언덕에서 이름을 가져왔고, 실제로도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들이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들과 산보 나온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대체로 햇빛에 강한 피부를 가지고 있으니 그늘이 별로 없는 몽마르뜨공원은 동양인보다 그들 취향에 더 가까워 보인다. 몽마르뜨공원 조경에는 프랑스 유명 패션업체의 후원이 있기도 했으니 이정도면 프랑스인들의 산보 치외법권을 인정해 줄 수도 있을 법하다. 몽마르뜨공원을 마지막으로 코스가 끝날 때까지 공중화장실과 식수대가 없으니 이 점 참고하기 바란다.

 

▲(위)몽마르뜨공원에는 잣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외곽 흙길산책로가 나 있다.

(아래)여유로움이 가득한 몽마르뜨공원의 어느 날 오후.

 

몽마르뜨공원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공원 진입로를 따라 걸으면 서리풀공원<6>과 연결되는 서리풀다리가 나온다. 그 다리를 건너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서리풀공원의 아담한 오솔길이 언덕 위에서 시작된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우회전 후 곧바로 왼쪽 정자 있는 쪽으로 간다. 그 후로는 직진해서 기슭을 따라 걷는다는 느낌으로 가면 된다. 이정표가 나오면 ‘청권사 쉼터’ 방향으로 길을 잡자. 길을 잃더라도 청권사를 물어 찾아가면 된다.

빽빽한 활엽수들이 길 뒤편을 슬금슬금 감추다 내어주는 구불구불한 서리풀공원 숲길은 가히 어느 산중과 비교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고운 선을 그어낸다. 건조한 도시 속에서 바싹 메말라 가던 마음이 숲길의 수분으로 촉촉해지는 느낌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산기슭으로는 실제 밭을 갈던 경운기가 힘차게 돌아가기도 했다. 경운기가 밭 갈던 그 자리는 지금 금계국 꽃씨가 뿌려져 화려한 꽃무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위) 야경이 아름다운 누에다리를 보기 위해 일부러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리골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지상 30m에서 연결한다.

(아래)코스 끝무렵에 만나는 청권사.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묘가 모셔져 있다.

 

군부대 ‘알박기’가 지켜낸 알토란 녹지

 

서리풀공원 숲은 수많은 아파트와 관공서로 빽빽하게 포위되어 있다. 마구잡이로 진행된 도시개발의 물결 속에서 이런 녹지가 아직까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보니 산자락에 자리잡은 군부대의 ‘알박기’가 이 녹지를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전히 지켜낸 일등공신이었다. 결과적으로 고마운 일이다.

서리풀공원의 걷기 좋은 숲길은 느린 걸음으로 50분 정도 이어지다 고색창연한 청권사(淸權祠) 기와담장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서리풀공원의 숲길이 끝난다. 서리풀공원 자락에 있는 청권사는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으로 평일에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 수련이 아름다운 연못 뒤로 자리잡은 모연재(慕蓮齋)의 단아함은 수련에 비길 만큼 당당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언덕 위에 자리한 효령대군 묘에서 바라보는 효령로의 풍광도 나쁘지 않다. 청권사 정문을 나서면 3분 만에 지하철 2호선 방배역<7>으로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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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윤문기 도보여행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