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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 3인의 리더쉽

박연서원 2019. 1. 8. 07:10

3인의 리더, 혼란했던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다



일본의 통일과 정치적 리더십

 

일본은 정말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여행도 많이 합니다.

그러면서도 복잡한 역사와 독도 문제로 감정의 골이 깊습니다. 오늘은 일본 전국시대 통일에

기여한 세 명의 인물과 그들이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서는 일본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 세 명의 이야기는 소설과 드라마 소재로 계속 사용되고, 그들이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과 성과를 두고 계속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존 권위를 부정하고 새 질서를 확립한 오다>

 오다 노부나가(1534~1582)는 두 살 때 현재 나고야 지역의 성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기묘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말타기, 수영, 창 대련 등으로 하루를 보내고 옷에 부싯돌

주머니 등을 주렁주렁 달고 다녔습니다. 반면 동생은 매우 총명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 후계구도를 놓고 갈등이 일어났고, 결국 전쟁을 통해 동생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오다는 전국시대 혼란을 극복하고 통일 대업을 대부분 완성한 인물입니다. 그가 통일 과정에

서 보여준 정치적 리더십의 특징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존의 권위와

세력들을 과감하게 부정했습니다. 특히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천태

종의 본산 엔랴쿠지와 잇코슈의 중심지 혼간지를 정복했습니다. 기존 불교 세력을 정복하고

탄압한 반면 예수회 선교사들은 보호했습니다. 쿄토에 교회를 세우고 이즈치의 신학교 건립을

후원했습니다.

 둘째,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미천한 가문 출신인 도요토

미를 등용하고 외국인도 자신의 군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세째, 각 방면에서 혁신적인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특히 조총을 도입해 새로운 전투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사원이 소유한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하고 광산 개발, 도로 정비, 화폐사용 등의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오다의 리더십은 '창조적 파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혼란한 시대에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창조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면 기존 질서를 파괴해야 합니다.


<평범한 백성의 아들에서 천하를 호령한 도요토미>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인물입니다. 임진왜란

을 일으켰기 때문에 싫어하는 인물이고, 그 영향으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습니다. 도요토미

는 미천한 가문 출생으로 태어난 연도가 정확하지 않고 성장 과정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도요토미는 오다 아래에서 하위직 보병으로 출발하였고, 혁혁한 공을 세워 30대 초반에는

주요 가신으로 성장했습니다. 1588년에는 오다를 배신한 아케치 미쓰히데를 공격해 처단했습

니다.

 도요토미는 오다의 정책과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먼저 농민, 수

공업자, 상인의 무기 사용 및 휴대를 금지하고 무사, 농민, 수공업자, 상인의 신분제를 엄격하

게 구분했습니다. 또 오다가 일왕이나 불교세력과 거리를 둔 반면 도요토미는 일왕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정에 접근했습니다. 일왕으로부터 높은 벼슬을 받고 전통 권력과 타협을 모색했

습니다. 또 불교 세력과 타협하고 기독교의 선교 활동을 탄압했습니다. 무엇보다 임진왜란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개인적 공명심과 함게 부하들에게 영토를 분배해야

하는 정권 구조 등으로 설명됩니다. 분명한 점은 이 전쟁이 양국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무모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도요토미는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세상에서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주군에 대한 충성심, 총명하고 민첩한 행동, 군사적 수완 등이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러나 권

력을 장악한 이후 판단력이 흐려졌고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때를 기다리며 세력을 키운 도쿠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는 세력이 약한 무사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일곱 살 때

유력한 무사 가문의 인질이 되었고, 그곳에서 결혼해 아이를 키웠습니다. 다행히 자신을

인질로 잡은 가문이 멸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영주가 되었습니다. 그는 오다와 동맹을

맺고 자신의 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세력을 키웠습니다. 또 자신보다 강력한 도요토미 히데

요시와 전쟁을 하다가 결국 충성을 맹세하고 동맹을 맺었습니다.

 도쿠가와 정책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도요토미가 일본 남서부의 다이묘들을

정복하고 오사카성을 건설한 반면 그는 일본 동북쪽으로 진출했습니다. 특히 한적한 어촌이었

던 에도(현재의 도쿄)에 자신의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자신의 정예부대는 영지 외곽과 주요 도

로에 배치하고 약한 군대는 에도 가까이에 두었습니다.

 둘째, 농업 생산력 향상과 백성의 생활 안정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토지 조사를 실시해 공정하

게 세금을 물렸습니다. 자신이 건설한 도시에 수공업자와 상인을 불러 모았고, 주민들의식수 공

급을 위해 토목공사를 벌였습니다. 셋째, 임진왜란에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도요토미의 부하들은

임진왜란에 참전하였으나 자신의 부하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행정의 효율성 높이고 농업 생산력을 

높이도록 했습니다. 그는 도요토미가 죽자 자신의 세력을 거느리고 천하를 평정하고 에도 막부를

건설했습니다.

 도쿠가와는 2인자가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려줍니다. 때를 기다리며 자신의 기반을 차분히 다진

후 기회가 왔을 때 경쟁자를 제거했습니다. 보통 오다는 '창업자 유형', 도쿠가와는 '후계자 유형'

이라고 평가합니다.

 어느 시대나 국가와 기업은 리더십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은 세 명 중 어떤 리더십이 마음 에

드나요?   여러분도 이들의 리더십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의 태도와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환영 서울 용산고 교사)


ㅡ 2018년 12월 26일 수요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일본 전국시대 3인의 리더십

- 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창업과 수성 그리고 도약의 리더십과 관련하여 일본 전국시대 3인의 리더십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오다’와 ‘도요토미’ 그리고 ‘도꾸가와’가 그들이다. 이 세 사람은 전국시대 일본 통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풍운아 오다 노부나가가 ‘파괴의 영웅’으로 기존의 일본이라는 집을 부수고 통일 일본이라는 집을 지을 터를 마련한 군인, 전략가형이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집 지을 터를 닦은 인물로 전쟁시 수상 재목이었던데 반해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그 위에 일본통일이라는 집을 완성한 인물로 평화시의 수상감으로 비유된다. 또한, 현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에 비유한다면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오다는 창업기 기업에 적합하며, 쾌활하고 총명한 도요토미는 성장기의 기업에 적합하고, 인고와 영원을 향한 에너지를 가진 도꾸가와는 성숙기에 적합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격 또한 제각기여서 오다는 불같은 성격에 배짱과 추진력이 강했으나, 도요토미는 지략에 능하면서 노력형이었고, 도꾸가와는 때를 기다리고 묵묵히 준비하는 대기만성형이었다. 세 사람의 성격과 관련하여 ‘손안의 새가 울지 않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짐작한 가정이 있다. 다혈질에 성격이 급한 오다는 ‘울지 않는 새는 가치가 없다’고 새를 즉시 죽여 버리는데 반해 꾀가 많은 도요토미는 어떻게든 새가 울도록 재주를 부리고 느긋한 성격의 도꾸가와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들의 장점을 보면 오다는 독선적이다 싶을 만큼 사람을 위압했지만 객관성과 인간미를 갖추고 있어서 존경받았다. 그는 모든 사람의 독특한 능력을 중시했고 어떤 경우이든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과감한 실행력과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만 권력을 과시하며 부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구상을 통해서 그야말로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 과감한 개방성을 갖추고 있었다.

 

도요토미는 작은 체구와 못생긴 얼굴로 어릴 때부터 원숭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추운 겨울 노부나가의 신발을 가슴에 품어 감격시킬 정도의 명석한 두뇌와 마음먹은 것은 꼭 실천하고야 마는 집념이 있었다. 출신이 미천했기 때문에 글을 읽지 못하고 교양이 없는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혼자 공부하여 시를 지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하며 선사인 센 리큐에게서 다도를 열심히 배워 종종 다도회를 베풀고 솜씨를 자랑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전쟁에서 늘 모범을 보이고 먼저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아랫사람이 스스로 따르도록 하였다.

 

도꾸가와는 어린 나이에 인질로 끌려갔던 기억과 자식을 도요토미에게 인질로 보냈던 굴욕 그리고 수차례 생명을 잃을 뻔했던 경험 때문인지 인내와 자기성찰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의 인생은 피와 땀투성이였다. 그는 남이 견디지 못할 일을 참고 남이 하지 못할 일을 인내로 일관하는 지속력을 보였다. 또한, 그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의외성이 있었다. 그의 행동이면에는 이중 삼중의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행동은 진폭이 크기 때문에 하나의 잣대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이 당면한 상황은 이념의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의 가중 그리고 세대간·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국민 모두의 각성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도자들의 완성도 높은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도자가 어떤 사고방식,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서 국민들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이 결집되어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고 분산되거나 사장되어 무기력증에 빠질 수도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난세라고 할 수 있는 일본 전국시대에 통일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3인의 지도자 때문이다.

 

국민적 통합이 어느 때 보다도 기대되는 요즈음 정치지도자들의 결단과 지략 그리고 인내로 창조적 전환기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지도자들의 실리적이고 혁신적인 역량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시대 3인의 리더쉽(울지 않는새) :

- 글쓴 이 : 渽悅(재열) 

 

내 용 : 일본의 방송, 영화 속에서 우리는 쉽게 일본의 천하 지배자 3인의 이름을 듣는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의 리더십 형태가 너무도 달라서인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그 성격 자체가 극적인 리더들에게서 지금의 난세는 많은 시사점을 얻는다. 일본의 시인 하이쿠에서는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게 만드는 3인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 오다 노부나가 : 칼로 새의 목을 친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 : 어떻게든 새가 울게 만든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 울 때까지 기다린다.

 

이러한 모습이 일본의 각 분야의 철학적 기반을 만든다. 오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새는 필요가 없으므로 과감하게 목을 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노부나가 스타일은 사무라이와 일본 군대의 기강으로 이어져 한 축의 철학적 기반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든 울게 만드는 것은 꽤돌이 원숭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이다. 임진왜란때 우리를 울게 만들었던 히데요시 스타일은 현재 일본의 정치, 외교의 방법론의 근간을 만든 것이다.

 

세 번째 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바로 참을 인자를 평생의 모토로 삼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스타일이다. 최후의 패권을 차지한 이에야스의 스타일이 지금 일본기업들이 끈질기게 전략과 기술개발을 형성하는 모태가 된 것이다.

 

영웅 3인의 리더십 유형 :

 

3인의 모습을 리더십 유형으로 나누면 노부나가는 독단적 전제 군주형으로, 덤프 트럭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히데요시는 사람들의 융화를 존중하고 현장의 사기 증진을 도모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관철하는 유형이다.

 

이에 반해 이에야스는 조직의 질서와 체계를 중요시한다. 끈기 있게 구성원의 의식과 능력을 이끌어 내면서 교묘하게 통제하는 것이 바로 이에야스의 스타일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

 

그럼 먼저 일본 천하통일을 완성시키고 260년 도쿠가와 막부를 연 이에야스부터 살펴보자.

이에야스는 힘없는 미카와 (三河)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18년이란 세월을 아명 다케치요(竹千代)라는 이름으로 순푸에서 볼모로 자랐다. 이때 그를 돌봐준 것이 바로 노부나가이다. 어린 시절 오랜 기간의 볼모생활은 그에게 참을 인(忍)의 철학을 가지게 해준 것이다.

 

1560년 오케하자마의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도가 전사하자 영지인 오카자키(岡崎城)를 회복해 자립했다. 그리고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어 이마가와의 잔존세력을 몰아내고 미카와를 재통일했다. 미카타가하라의 싸움을 비롯해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본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노부나가가 혼노사에서 죽고 히데요시가 그 뒤를 잊자 히데요시와 협력해 전국을 통일했고, 히데요시의 사후 그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賴)를 대신해 섭정을 했다.

 

어린 시절 볼모생활에서 배운 기다림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17년이나 기다린 끝에 마침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천하의 떡은 통째로 도투가와 이에야스의 입안에 떨어졌던 것이다.

 

"노부나가는 쌀을 찧고, 히데요시는 천하의 떡을 빚고, 도쿠가와는 혼자 떡을 먹는다"

 

1600년 세키가하라(關ケ原)에서 서군을 이겨 지지기반을 굳히고, 1603년 세이이 대장군(征夷大將軍)에 임명되어 에도(江戶) 막부를 열고, 1615년 오사카성을 공격하여 도요토미씨를 멸망시켰다. 천하를 통일한 것이다.

 

마냥 기다림으로써 천하를 통일했을까? 경영의 한 요소로서 [인간 관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데, 이에야스는 사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 경영의 첫 번째는 한사람에게 꽃 (권력)과 열매 (금전적 대가)를 함께 쥐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간의 견제와 균형을 두어 상호견제성에 의해 주권이 경영자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할 줄 안 사람이 이에야스였다.

 

두 번째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략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 (측근)과는 적절한 선을 유지하여 형평성, 보편성을 통해 경영자 자신의 객관성을 부각시키는 인간 경영의 전략을 실천한 것이다.

 

어쩌면 약게 보이는 인간 경영과 인의 철학으로 이에야스는 천하를 움켜쥐는 리더십을 가르쳐 주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인(忍) :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부자유를 일상사로 생각하면 그리 부족한 것은 없는 법.

 

마음에 욕망이 샘솟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할지어다. 참고 견딤은 無事長久의 근원이요, 노여움은 적이라 생각하라.

 

이기는 것만을 알고 지는 일을 모르면 해가 그 몸에 미치는 법, 미치지 못하는 것이 지나친 것보다 나으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임진왜란의 적장으로 각인되어 있다. 히데요시의 원래 이름은 기노시타 도쿠치로(木下藤吉郞)로 어렸을 때는 히요시(日吉)라고 불렸다. 오와리 나카무라 마을의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전국시대의 다른 영웅들과는 다르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즉 그는 신분의 급상승을 이룬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지와 재치가 노부나가의 눈에 들어 중용되어 나중에는 일본전국을 지배하는 간파쿠 (關白)가 된 인물이다. 놀라울 정도의 기지가 있으며 노부나가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부하였다.

 

생김새가 원숭이 같았다하여 사루 (원숭이)란 별명이 있으며, 사람을 포섭하는 재주가 뛰어나 많은 노부나가가 패권을 잡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같은 노부나가의 측근이자 친구이기도 했던 미쓰히데가 혼노사에서 노부나가를 죽이자 군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고 노부나가의 패권을 이어 받아 일본전국을 통일했다.

 

나중에 조정으로부터 도요토미(豊臣)라는 성을 하사받아 이름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개명한다. 말년에는 조선과 명(明)에 세력을 넓히고자 조선에 두 차례 병력을 보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그 자신 또한 전쟁 중 죽고 말았다.

 

30가지 리더십의 역행 요소 :

 

1. 구성원들의 융화만 존중할 뿐 엄한 지도력과 통솔력을 갖추지 못했다.

2. 실패했을 때의 상황에 신경을 쓰고 돌다리를 두드리기만 할뿐 건너려 하지 않는다.

3. 공과 사를 혼동하여 조직의 목적과 개인적인 사정을 구별하지 않는다.

4. 대외적인 절충과정에서 상대의 의견에 따라가기만 할 뿐 관철시켜야 할 문제를 주장할 줄 모른다.

5. 가까운 미래에 어떤 사태가 전개될 것인지 전망을 할 줄 모른다.

6. 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그 가능성을 제시할 줄 모른다.

7. 업무 파악에 게을러서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부하에게 물어본다.

8. 부하가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일상적인 문제로 말을 건다.

9. 명령을 내릴 때, 단호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10. 과장은 계장에게 명령해야 하는데, 한 단계 건너 담당자에게 직접 명령한다.

 

11. 금전에 인색하여 생각하는 스케일이 작다.

12. 함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것으로 업무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한다.

13. 사소한 문제만 지적하고 기본적인 문제를 간과한다.

14. 외부에서 어려운 문제를 요청할 때, 즉시 변경이나 철회를 요구하지 않는다.

15. 자신의 질병을 적극적으로 밝히는 것으로 무능함을 보완하려 한다.

16. 배신자를 너그럽게 봐주고 돌아오면 기꺼이 받아준다.

17. 조직이나 자신, 부하에 대해 상승지향적인 태도를 제시하지 못한다.

18. 취미에만 몰두하여 그 방면의 성취도를 직장에서 과시한다.

19. 호언장담이나 연설, 잡담을 좋아하여 무슨 일만 있으면 즉시 그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20. 자신을 위해 조직을 이용할 생각만 하고 조직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

 

명장 오다 노부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독본 (歷史讀本)]이라는 잡지에서 일본 전국시대 인물들에 대한 인기투표 결과는 1위가 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 2위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는 5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다 노부나가의 매력은 무엇인가? 일본의 천하통일을 한 것은 도쿠가와 막부가 아니라, 오히려 오다 노부나가가 95%이상 이루어 둔 것을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노부나가의 리더십과 업적이다.

 

노부나가의 리더십은 카리스마 경영이다. 그의 매력은 '결단력이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과감하게 실행한다, 사리사욕이 없고 배짱이 있다, 능력을 존중한다, 머리가 좋다, 말보다는 실천을 하는 지도자이다'라는 평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낭만성, 시인의 품성, 자유, 개방성 때문이라고 한다.

 

경영자가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와 난관에 부딪혔을 때 가장 필요한 점을 결단력이다. 흔히 전략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략 결정은 포기이다. 왜냐면 포기한 대안에 대한 미련이 경영자가 결정을 내리는데 발목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략결정에서 대안들을 계속 비교만 하고 의사결정을 미룬다면 타이밍을 놓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노부나가는 바로 이 결단력을 갖춘 인물인 것이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아명은 기찌보시(吉法師)였다. 오와리(尾長)의 대명(大名)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의 세자인 그는 전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지만, 그의 행동은 어떤 이에게는 거의 영웅적으로 또는 미치광이로 묘사되어 있다.

 

노부나가의 성격은 질풍노도와도 같아서 일단 머리 속에서 결정을 내리면 실행에 옮기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고 사람을 위압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지만 엄청날 정도로 독선적이기도 하여 절 하나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일본의 패자의 자리에 거의 오를 무렵 혼노사 (本能寺)에서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반란으로 죽고 말아 그의 꿈인 천하포무(天下布武)가 무너져 내렸다. 인간 관리에서는 이에야스에게서 배워야 하나?

 

그러나 노부나가는 3인 중의 리더, 즉 장군 중의 장군이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의 정책은 대부분 영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정책을 계승했고,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정책을 계승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노부나가가 동란에 휩싸인 전국시대의 일본에서 강력한 리더였다고 평가되는 이유는 암흑기를 타파하고 백성들을 긴 터널에서 탈출시켜 밝은 하늘 아래 마음껏 도약할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사회 샐러리맨, 그리고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외적으로는 자기가 속한 회사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내적으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긍지와 우월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리더에게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할 것, 인정에 좌우되지 않는 합리성을 가질 것, 결단력을 가질 것, 실행력을 가질 것, 조직원들이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이 될 것, 조직원들이 두려워하는 인물이 될 것, 유머 감각이 풍부할 것, 업무에 즐거움을 부여할 수 있을 것, 인간적일 것 등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의 영웅들에게서 배우는 리더십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웅들은 모두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다는 특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판단이 빠르다는 의미의 결단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결단을 내리려면 그 전에 선택방법이 정리되어야 한다. 즉, 결단을 내리는 전제조건은 정보이고, 그 정보 안에 있는 문제점이며, 문제점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이다 . 그리고서는 한번 선택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결론은 정보수집을 통한 미래 장악과 결단력을 통한 실천 능력이다. 기업을 위한 경영에는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적 자원의 활용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의 완성도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또 한 가지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경영자의 자질이다.

 

경영자가 어떤 사고방식, 어떤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사원들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도 있고, 사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더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

 

난세를 헤쳐 나가, 미래를 꿈꾸고 싶은가. 그렇다면 역사의 영웅들에게서 특히, 카리스마 리더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한 수 배워봄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