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팔자를 고친, 역사적 베팅■
사주(四柱)라고도 하는 팔자(八字)는 흔히 타고난 운명이나 숙명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삶의 조건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기도 한다.
이 조건이 운명이자 숙명이기는 하겠지만, 절대 바뀔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사람만이 아니라 나라에도 운명이나 숙명과 같은 팔자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팔자가 가장 사나운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 같은 대륙 세력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당했다. 일본 같은 해양 세력에서 본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큰 전쟁만 50여 차례 당했다.
중국이 김일성과 모의한 6•25 남침은 한 사례일 뿐이다.
왜구 정도의 침략은 헤아릴 수도 없다. 나라를 통째로 들어 이사를 갈 수 있다면 정말 이사 가고 싶은 숙명을 안고 살아온 것이 우리다.
그 숙명 중에 가장 가혹했던 것은 "중국이라는 존재였다."
육지로 바로 연결된 중국은, 수천 년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조선은 생존 전략으로 사실상 무력을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들어갔다. 그에 따른 피해나 수모도 전쟁 못지않게 고통스러웠다. 처녀들을 바치라, 금을 바치라, 은을 바치라, 사냥용 매를 바치라, 말을 바치라는 등 조공 요구는 끝이 없었다.
바치라는 단위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안 그래도 물산이 부족한 나라가 거덜날 지경일 때도 있었다. 이 가혹한 조공을 피하고자 조선은 중국 조정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생존수단이 됐고, 그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글도 읽은 적이 있다.
뇌물로 조선에 가는 사신이 된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금과 은을 내놓으라며 부린 행패는 끔찍한 재앙이었다.
중국이 러시아의 연해주 진입을 막는다고 조선군 부대 파병을 요구하고선 조선군이 총을 잘 쏘자 조선군 총을 다 뺏고 무장 해제한 일을 다룬 내용도 읽었다.
조선이 미국에 외교관을 파견하자, 가로막고 미국 대통령도 만나지 못하게 방해했다.
20대 중국 애송이가 조선에 와 대신들을 때리고 조선 왕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중국이라는 숙명 속에서 우리는 한 순간도 빛나는 순간을 누리지 못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 때, 구한말 한국에 와 뼈를 묻은 미국 선교사들을 언급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과 같은 분들은 환생한 예수가 아닐까 느낀 적도 많다.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왜, 무엇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가장 더럽고, 가장 희망 없는 나라에 와서 자신과 가족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했을까.
이들이 세운 학교와 병원은 지금 우리나라의 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
"로제타 홀" 여사는 가족 전체가 한국에서 봉사하다 전염병으로 남편과 딸을 잃었다. 둘을 한국 땅에 묻고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서 더 일할 수 있게 해달라.” 고 기도했다. 고대 병원, 이대 병원을 세우는 등 43년간 봉사하다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죽으면 한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지금 서울 양화진엔 홀 여사와 아들 부부까지 5명이 묻혀 있다. 고개가 숙여지고 목이 멘다.
조선일보가 홀 여사를 보도했더니 한 분이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중국과 2000년 이상 관계를 맺어왔지만 미국 선교사들과 같은 도움을 준 중국인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지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 명 없습니다."
그들의 억압과 행패만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과 100여 년 관계를 맺은 미국은 세계 변방의 이 나라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피 흘려 싸우고, 식량을 주고, 돈을 주고, 미국으로 불러 가르쳤습니다.
미국 세계 전략의 한 부분이기도 했겠지만, 중국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 10위권 국가가 된 것은 우리 지도자들과 우리 국민의 노력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마침내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을 만났다는 우리의 역사적 선택과 행운이 있습니다.
한국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나라가 됐지만, 중국은 한국과 맺은 관계를 과거 조선과 맺었던 관계로 고착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 특사를 중국 지방 장관이 앉는 자리에 앉혔다.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 고 했다.
주한 중국 대사는 계속 부국장급 정도의 하급 관리를 보내고 있다. 모두 의도하고 계산한 행동이다.
그 중국 대사가 얼마 전 “한국이 중국에 베팅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이라고 했다.
한국은 앞으로 중국과 정상적이고 대등한 우호 관계를 맺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특히 중공(중국 공산당)에 ‘베팅’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에 베팅한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한국과 미국 모두 같은 베팅을 했다.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한 베팅이다.
이 베팅으로 한국은 팔자를 고쳤다. 2000년 악몽을 벗어났다. 중국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꿈을 깨야 한다.
<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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