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박연서원 2017. 8. 16. 08:58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Piano Concerto in G major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0세기 초반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우리에게 많은 양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남겨주었지만 라벨이 남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는 상당수가 잊어진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이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에게 인상주의 스타일을 배제하며 신고전주의 시대를 열게 된 도화선과 같은 작품으로, 음악사적인 관점에서 이 두 작품이 갖고 있는 중요성과 그 형식에서의 완전함에 비견할 만한 후대 프랑스 피아노 협주곡은 드물 정도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보들레르적인 댄디즘과 강박증에 가까운 모더니즘, 순결함과 뜨거움의 혼합이 주는 패러독스한 아름다움은 20세기 프랑스 음악 가운데 무릇 군계일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1년 사이에 작곡한 라벨이 작곡한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 즉 <피아노 협주곡 G장조>와 <왼손을 위한 협주곡 D장조>는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볼레로>를 통해 상상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된 직후 작곡가가 자신감과 의지에 넘쳐 있을 당시에 탄생했다. 이 두 작품은 그 태생부터 신고전주의적이다. 모차르트를 숭배했던 라벨은 고전주의적인 형식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신바로크적인 <쿠프랭의 무덤> 등을 작곡하여 18세기의 형식과 리듬, 음색의 잔향, 음영의 조화 등등을 20세기에 맞게 새롭게 탄생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협주곡에 이르러서 규칙적인 프레이징과 음악적 요소들의 절묘한 균형감을 통합하여 신고전주의적인 양식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결합을 비로소 완성한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G 장조"(프랑스 : Le Concerto en sol)는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말년에 작곡한 2곡의 피아노 협주곡중 하나. 라벨의 죽음 6년전(1931년)에 완성된 작품으로, 끝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1930년 완성)"의 중후함과는 대조적인 밝고 화려한 성격을 가지고 생생한 유머와 우아한 서정성이 넘치고 있다. 이 작품에는 라벨 어머니의 고향인 바스크 지방의 민요와 스페인 음악, 재즈 관용구 등 다양한 요소가 이용되고 있으나, 라벨 자신은 "모차르트와 생상스와 유사한 미의식"에 따라 작곡했다고 말하고 있다.


Martha Argerich, piano

Argerich Dutoit, cond.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Frankfurt 9 9 1990


1 Allegramente

2 Adagio assai

3 Presto

Jean-Yves Thibaudet, piano

Philippe Jordan, cond.

Gustav Mahler Jugendorchester

Live recording. London, Proms 2013


I. Allegramente (0:43)

II. Adagio assai (9:42)

III. Presto (18:57)

Hélène Grimaud, piano

Tugan Sokhiev,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1st Premier Mouvement -[00:01]
2nd Deuxième Mouvement -[08:54]
3rd Troisième Mouvement -[18:20]

백건우 Kun-Woo Paik, piano

Paavo Jarvi, cond.

Paris Orchestra

3rd,DEC,2011.Korean Art Centre Concert Hall,Seoul Korea


Leonard Bernstein, piano & cond.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세련된 신고전주의적 결정체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빠름-느림-빠름의 전형적인 고전주의적 협주곡 스타일로, 선명하고 화려한 아름다움, 스페인적인 취향과 동양적인 취미에서 기인한 개성 강한 판타지, 이국적인 리듬감과 색채감, 한층 분명하게 그 모습을 보인 재즈의 이디엄, 한층 정교해진 세공력과 이전 세기의 음악들에 대한 오마주 등등이 말년의 원숙한 라벨의 손끝에서 어우러진 독자적인 음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비르투오소적인 요소와 패러독스한 요소를 사랑했던 라벨은,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하며 리스트의 저 맹렬한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는 듯한 기분을 청중들 앞에서 발산하고자 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50대의 나이는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에 좋은 때가 아니라는 주위 친구들의 만류와 설득에 굴복하여 할 수 없이 연주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중요한 작곡가 모리스 라벨


작곡가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모차르트와 생상스의 정신에 입각하여 작곡했으며, 특히 제2악장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5중주> 제2악장이 모델이었다고 한다. “협주곡이란 화려하고 경쾌한 마음의 음악이어야지, 어떤 극적 효과나 심오한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라는 자신의 모토를 구현하고자 했던 작곡가는, 원래 이 작품에 ‘디베르티시망’이라는 제목을 붙이고자 했다고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음색으로, 라벨은 이전 시대보다 훨씬 세련되고 풍부한 효과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드뷔시적인 인상주의 오케스트레이션의 풍부함을 거부하고자 크롬 색에 가까운 결벽증적인 음향을 추구한 것과는 대조된다. 자신의 취향을 바꾸는 것에 훌륭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라벨은 삶의 마지막까지 이질적이지만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색의 블록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쌓고 무너뜨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제1악장 알레그라멘테는 명확한 소나타 형식으로 풍부한 음악적 소재와 다채로운 악상이 극적으로 펼쳐지고, 저 유명한 제2악장 아다지오 아사이는 무반주 피아노 솔로가 우아하게 시작하는 3부 형식으로, 색채감과 분위기는 중립적이지만 그 감수성이 최고조로 고양되며 감동을 자아낸다. 제3악장은 벌레스크 풍의 화려한 프레스토로, 피아노와 타악기가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며 아이러니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 작품은 1932년 1월 14일 파리에서 열린 라무뢰 오케스트라의 라벨 특별연주회에서 작곡가의 지휘와 마르게리트 롱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다. 라벨은 마르게리트 롱 여사를 위해 이 작품을 작곡했다고 밝히며 제2악장 솔로 피아노의 피아니시모 부분에 트릴이 등장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세부적 조언을 그녀로부터 얻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 작품의 헌정자이고 초연자이자 최초 녹음자로서, 롱의 연주가 이 작품에 관한 가장 확고한 권위를 갖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페드로 데 프리타스의 지휘로 1932년 4월에 진행된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라벨은 지휘자나 피아니스트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테이크를 수십 번 이상 반복하게 해 연주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지치게끔 했다고 한다. 롱 여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새벽 3시쯤이었어요. 녹음이 끝났다고 생각해 컨트롤 룸으로 들어갔더니 라벨은 냉정한 목소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더군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죠.” 이 회고담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듯이, 라벨의 참관 하에 녹음한 롱의 레코딩은 라흐마니노프가 연주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레코딩과 더불어 일종의 해석의 출발점이자 불변의 기준으로서 그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 Allegramente


1악장 Allegramente (밝고 즐겁게), G장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채찍을 내리침으로 곡을 시작. 독주 피아노의 반주위로 피콜로가 제 1 주제를 제시하고 트럼펫이 이를 반복. 투티로 강하게 올랐다 혼과 함께 다시 가라앉음. 독주 피아노가 제 2 주제를 제시. 상행형의 동기로 제시부를 마침. 전개부는 독주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활용으로 전개. 짧은 카덴짜를 지나 재현부로 인계. 이 재현부는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많은 변용과 장식으로 진행. 독주 피아노의 카덴짜는 오른손에 트릴, 왼손에 분산화음으로 코데타의 동기를 연주. 마지막은 투티로 피아노와 함께 고조하여 종결.

 

Yuja Wang, piano

Charles Dutoit, cond.

NHK Symphony Orchestra

in Suntory Hall, Tokyo, Japan, December 17, 2014


I. Allegramente

Mi Joo Lee, piano

Marco Munith, cond.

Radio Symphony Orchestra Ljubljana


2. Adagio assai


2악장 Adagio assai (충분히 느리게), E 장조, 3/4박자, 3부 형식, 고전적 협주곡의 느린악장
악장의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부분을 피아노 독주만으로 연주되다 관현악이 가담. 고정되지 않은 조성으로 진행되다 잉글리시 혼이 주요 주제를 연주하면 E 장조로 고정.
3악장 Presto (매우 빠르게), G장조, 2/4박자


Yuja Wang, piano

Charles Dutoit, cond.

NHK Symphony Orchestra

in Suntory Hall, Tokyo, Japan, December 17, 2014


II. Adagio assai

Jean-Yves Thibaudet, piano


3. Presto


3악장 Presto (매우 빠르게), G장조, 2/4박자
투티와 유사한 금관이 주체가 된 화성적 연주 후, 작은북의 격렬한 타격. 이것을 신호로 하여 피아토가 좌, 우 교대로 5도 음정과 음력을 누르고, 그에 더하여 클라리넷, 트럼본, 피콜로가 장식. 다시 한번 화성적 강주가 오고 피아노가 병행화음의 주요주제를 제시. 현과 투티로 진행하며 전개를 이어감. 짧은 재현후 고조가 극에 달하면 종결.


Yuja Wang, piano

Charles Dutoit, cond.

NHK Symphony Orchestra

in Suntory Hall, Tokyo, Japan, December 17, 2014


II. Adagio assai-III. Presto

Mi Joo Lee, piano

Marco Munith, cond.

Radio Symphony Orchestra Ljubljana


Piano Concerto for Left Hand in D major

라벨 /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는 1차 세계대전 중에 오른손을 잃은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의 위촉으로 1930년에서 31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이다. 그는 분석철학의 대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으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빈의 대표적인 강철 재벌가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빈의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해 왔고, 음악가로는 브람스, 클라라 슈만, 말러, 발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카잘스 등이 그 혜택을 입었다. 이렇듯 풍부한 예술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여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비트겐슈타인은 오른손을 잃은 뒤에도 자신의 꿈을 접지 못했다. 왼손 피아니스트라는 새로운 존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라벨을 비롯하여 브리튼, 힌데미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게 왼손을 위한 작품을 위촉했던 것이다.


색다른 양식에 흥미를 느낀 라벨은 “양손을 위한 작품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협주곡보다 경건한 종류의 스타일에 의존했다”라고 말하며 “단일 악장 형식이며 재즈의 효과를 도입했는데, 이런 작품은 본질적으로 두 손을 위한 피아노 작품처럼 가뿐하면서도 섬세하며 치밀한 효과를 창조해 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새로운 형식에 걸맞게 새로운 내용을 담아낸 라벨의 이 혁신적인 작품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 작품의 피아노 파트를 수정하고자 작곡가와 논쟁을 벌였다. 자신의 지시에 따를 것을 강요하는 라벨에게 그는 “연주자는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하게 저항했지만, 오히려 라벨은 “연주자는 노예가 되어야만 한다”라고 강하게 응수하며 작품에 일체의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라벨은 알프레드 코르토가 이 작품을 두 손을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하자는 제안 또한 완강히 거절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최초로 레코딩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


라벨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비트겐슈타인의 성에서 피아노 파트를 두 손으로 연주해 보였는데, 후일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고 한다. “당시의 나는 그의 작품에 압도되지 않았다. 나는 짐짓 감탄하는 척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라벨은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 여러 달 동안 연습을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이 작품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둘은 독주자와 지휘자의 관계로 1933년에 짧은 영상물을 녹화할 정도로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당시 라벨은 비트겐슈타인의 몰이해에 화가 많이 났을 뿐만 아니라 비트겐슈타인의 귀족적인 태도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Jean-Efflam Bavouzet, piano

Esa-Pekka Salonen, cond.

The Philharmonia Orchestra


Vyacheslav Gryaznov, piano

Yury Simonov, cond.

Moscow Philharmonic Orchestra


Martha Argerich, piano

Argerich Dutoit, cond. 

Orchestre National De France

Frankfurt 9 9 1990


Jean-Efflam Bavouzet, piano

Esa-Pekka Salonen, cond.

Philharmonia Orchestra


Pierre-Laurent Aimard, piano

Pierre Boulez,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Berlin Philharmonie, 6 June 2009


많은 사람들은 한 손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음표를 연주하거나 다채로운 음색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엄지손가락이 멜로디를 주도하면서 라벨이 의도한 음색과 프레이징 모두를 완벽하게 구현할 뿐만 아니라, 무뚝뚝한 음향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파트의 모든 음표들조차 다른 오케스트라 파트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이 역사적인 작품은 1931년 11월 27일에 비트겐슈타인의 독주와 로베르트 헤거가 지휘하는 빈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고, 최초 레코딩의 명예는 롱보다 손이 컸던 알프레드 코르토에게 돌아가 1939년 5월 12일 샤를 뮌슈가 이끄는 파리 콘서바토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녹음되었다.


작곡가가 ‘느린 서두’라고 명명한 렌토의 첫 부분은 엄숙하고 무게 있는 분위기로 시작하며 첫 주제의 강력한 아이디어와 피아노의 표현력 높은 아이디어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발전해나간다. 2주제로 두 번째 부분이 시작하며 재즈풍의 만화경 같은 음의 세계가 펼쳐지고, 마지막 부분은 1부의 자유로운 재현과 왼손 피아노의 아름답고 긴 카덴차를 거쳐 2부의 재즈풍의 주제가 재현하는 짧은 코다와 함께 끝을 맺는다.


Joseph Maurice Ravel, 1875-1937

작곡가 사진


라벨은 프랑스의 생장드뤼 근교의 마을에서 스위스인 아버지와 바스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예술적이고 교양이 풍부했으며, 어려서부터 라벨이 음악가로서의 재능을 보이자 그의 아버지는 가능한 모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889년 14세 때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1905년까지 다녔다. 이 기간 동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현악 4중주〉 등 잘 알려진 작품들을 작곡했다. 이들 작품들, 특히 뒤의 2개의 작품은 평생동안 그의 작품에 품질 보증과 같이 따라다니는 완성된 양식과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초기의 작품이 완숙기의 작품보다 완성도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몇 안되는 작곡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파리 음악원 재학 당시 3번의 시도 끝에 로마 작곡 대상에서 낙선한 사건(음악학자·소설가인 로맹 롤랑을 비롯한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음악가와 저술가들은 라벨을 지지했고, 그가 제출한 작품은 심사원들 중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에게 너무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되었음)은 일대 파문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파리 음악원 원장 테오도르 뒤부아는 사임하고 그 자리는 라벨에게 작곡을 가르쳤던 가브리엘 포레가 맡게 되었다.

그러나 라벨은 결코 혁신적인 작곡가는 아니었다. 그는 조성(調性)에 기초한 당시의 형식적·화성적 기존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 작품들을 주로 썼다. 그러나 전통 음악 양식에 대한 그의 조작과 적용은 너무나 개성적이어서 바흐나 쇼팽 등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음악 언어를 창조해냈다.

그의 선율은 거의 언제나 선법적(즉 서구의 전통적인 장·단 온음계가 아니라 옛날 그리스의 프리지아와 도리아 선법에 근거함)인 데 반해, 그의 화성은 '부가음'과 아포자투라를 화성적으로 해결시키지 않음으로써 신선한 맛을 풍긴다. 그는 초기의 〈물의 유희 Jeux d'eau〉(1901 완성)에서부터 〈밤의 가스파르 Gaspard de la nuit〉(1908)·〈쿠프랭의 무덤 Le Tombeau de Couperin〉(1917), 2개의 피아노 협주곡(1931)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걸작들을 통해 피아노 문헌을 풍부하게 확장시켰다.

협주용이 아닌 순수한 관현악 작품 가운데 〈스페인 광시곡〉과 〈볼레로〉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것들은 관현악법의 완벽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활동의 절정은 러시아의 안무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프랑스의 작가 콜레트와의 공동작업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일 것이다. 라벨은 디아길레프의 발레를 위해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작곡했고, 그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은 콜레트의 대본에 의한 작품이다.

〈어린이와 마술〉에서 라벨은 개구쟁이 소년이 등장하는 마법·마술 이야기 속에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사물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등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 기회를 가졌다. 그외의 오페라로는 풍자적 내용을 담은 〈스페인의 한때 L'Heure espagnole〉(1911 초연)뿐이었다.

가곡 작곡가로서 라벨은 〈자연의 역사 Histoires naturelles〉·〈스테판 말라르메의 3편의 시 Trois poémes de Stéphane Mallarmé〉·〈샹송 마데카스 Chansons madécasses〉 등의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으로 위대한 개성을 성취했다.

라벨의 생애는 대체로 평이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몇몇 친구들과의 사교 모임을 즐겼지만 파리 근교 랑부예 숲의 몽포르라모리에 은둔하다시피 지냈다. 제1차 세계대전중에는 잠시 전선에서 트럭 운전병으로 복무했는데 허약한 체질로는 감당하기에 벅차 1917년 육군에서 제대했다.

1928년 4개월 동안 캐나다와 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같은 해 영국을 방문하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명예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해에는 독창적인 형식의 〈볼레로〉가 이다 루빈슈테인의 주역으로 발레 작품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죽기 전 마지막 5년 간은 실어증에 시달렸다.

이 병으로 인해 언어력을 상실했으며, 단 한 줄의 음악도 더이상 작곡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조차 서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진짜 비극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의 음악적 상상력이 다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뇌로 통하는 혈관의 폐색(閉塞) 제거 수술은 성공하지 못했고, 스트라빈스키와 다른 음악가들과 작곡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살았던 파리 교외의 르발루아 공동묘지에 묻혔다.

라벨에게 있어서 음악은 신비한 제식(祭式)과도 같아서, 높은 장벽 뒤에서 작용해 외부세계로부터 감춰져 있으며 부당한 침입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독자적 법칙을 가졌다.

동시대인인 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을 '가장 완벽한 스위스의 시계제조업자'에 비유했다. 스트라빈스키는 사실 이 비유를 통해 그 스스로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복잡성과 정확성을 강조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