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Aaron Copland 1900-1990
Fanfare for the Common Man
코플랜드 / 평범한 사람을 위한 팡파레
Boston Pops Orchestra
Zubin Mehta, cond.
Los Angeles Philharmonic
Houston Youth Symphony Orchestra
Sir Andrew Davis, cond.Stephen Bryant, premier violon
James Levine, cond.New York Philharmonic
Emerson, Lake & Palmer
Aaron Copland (1900-1990)의 '서민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는 1942년 미국의 신시내티 교항악단(Cincinnati Symphony) 연주회에 쓰려고 지휘자 유진 굿센(Eugene Goossens)이 몇명의 작곡가에 의뢰한 것인데 아론 코플랜드의 곡이 선정되었다. 곡의 내용은 제1차 세계대전때 희생된 많은 장병과 2차 대전중인 당시 전몰장병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었다. '서민을 위한 팡파르(Fanfare for the Common Man)'는 1943년 지휘자 유진 굿센에 의해 신시내티 교향악단에서 초연되었다. 그리고 1946년 아론 코플랜드의 교향곡 3번 4악장에서 테마로 쓰여지면서 더 친숙해진 곡이다.
Ballet for Martha 'Apalachian Spring'
(Concert Suite for Full Orchestra)
코플랜드 / 발레 모음곡 '애팔래치아의 봄'
Louis Lane, cond.Atlanta Symphony Orchestra ,1982
Thierry Fisher, cond.Ulster Orchestra
미국적인 주제의 발레를 만들려던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은 1931년 코플랜드의 피아노 변주곡으로 작품을 만든뒤 다시 공동 으로 창작하기로 하였는데, 엘리자베드 스프라그 쿨리즈 재단이 두사람에게 발레 제작을 의뢰함에 따라, 1944 년 《애팔래치아의 봄》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초연에서는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메이 오도넬(May O'Donnell),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 에릭 호킨스(Erick Hawkins) 등이 춤을 추었다.
코플랜드는 "Ballet for Martha" 라는 부제를 달아 1944년 10월에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초연하였으며, 1944 -5년 시즌에는 마사 그레이엄의 발레로 무대에 올려져 대성공을 거두게 되어 플리쳐 상과 함께 비평가 협회상을 코플랜드에게 안겨 주었다. 여기에 고무된 그는 실내악 형식으로 작곡되었던 이 곡을 오케스트라로 다시 편곡하여 모음곡으로(Suit) 발표하였다.
미국의 동부 애팔래치아 산악지방의 농민들의 생활을 묘사한 낭만적인 작품으로 맑은 리리시즘(lyricism, 서정시풍, 서정성)과 현대적인 간결한 수법, 그리고 절묘한 리듬감 등은 그 때까지의 그의 작풍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줄거리는 19세기 초엽, 아직 개척 시대의 애팔래치아 산지에 봄이 왔다. 그 중턱에 새로 지은 농가에서는 결혼식을 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며 춤을 춘다. 신랑과 신부는 새 살림에 희망과 불안한 빛마저 보인다. 나이 많은 노인들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말하면서 두 사람의 앞날을 격려하며 축복을 해 준다. 손님들이 다 가버린 후 신랑과 신부는 앞으로 힘차고 강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새로운 세계의 봄이고 끝없는 희망의 봄이기도 하며 인생의 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Aaron Copland (1900 ~ 1990)
미국의 작곡가. 두 살 연상인 거쉰과 마찬가지로 러시아계 이민의 검소한 가정의 출신으로서 14세가 되어서야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였고 후에 보수주의적 경향이 강한 루빈 골드마크 Rubin Goldmark에게 배웠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당시 폴 비달 Paul Vidal이 원장으로 있던 퐁텐블로 미국 음악원에 들어갔으나 지도에 실망하여 당시의 신진 나디아 불랑제에게 배운 뒤 불랑제의 영향으로 라벨,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미요의 작품에 몰두하게 된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프랑스에서 지냈으며 리카르도 비녜스 Ricardo Vines의 지도로 피아니스트로서의 공부를 마쳤다. 당시 그는 공식적으로는 6인조의 미학, 특히 풀랑을 상기시키는 미학을 지향했다. 즉, 바그너와 그 영향을 받은 작곡가들(쇤베르크)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드뷔시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고 면밀하지만 어느 정도는 추상적으로 작곡하도록 힘썼다(무도 교향곡 Dance Symphony[초연 1931 필라델피아], 극장을 위한 음악 Music for the Theater[1925], 오르간 반주가 있는 교향곡[N. 블랑제를 위해 작곡, 1925]).
구겐하임 장학금을 얻고 미국에 귀국한 코플랜드는 스트라빈스키에 의해서 제공된 여러 가지 음악적 가능성을 비롯하여 재즈, 다조성,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민속음악을 연구했다. 거기에서 신고전주의의 색채가 짙은 코스모폴리트(세계주의) 양식이 생겼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번(앞의 오르간 반주가 있는 교향곡의 개정판, 1928), 교향곡 제2번(짧은 교향곡 Short Symphony, 1933), 교향곡 제3번(1946), 피아노 소나타(1941), 베니 굿맨에게 헌정한 클라리넷 협주곡[현악 오케스트라, 하프, 피아노를 위한](초연 뉴욕, 1950), 그리고 존 포드 J. Ford의 생쥐와 인간 Mice and Men(1939)과 윌리엄 와일러 W. Wyler의 후계자 Heiress(1949)를 위한 영화음악들이 있으며, 또한 그의 가장 유명하고 후세에 남을 만한 네 작품, 영가인 엘 살론 멕시코 El Salon Mexico(1936)와 대서정발레곡인 빌리 더 키드 Billy the Kid(1938), 로데오 Rodeo(1942), 그리고 미국 서부의 찬가인 애팔래치아의 봄 Appalachian Spring(1944)이 있다.
1950년 이래 코플랜드는 쇤베르크보다 오히려 베베른에 끌리면서 어느 정도 음열음악을 지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피아노 환상곡 Piano Fantasy(1955~57), 관현악을 위한 내포(內包) Connotations for orchestra(196162), 위대한 도시를 위한 음악 Music for a Great City(1964 런던), 인스케이프 Inscape(관현악곡, 1967), 플루트와 피아노의 2중주곡 Duo for flute and Piano(1970~71) 등 여러 작품에 나타나 있다.
코플랜드는 현대 음악 특히 미국 현대 음악의 옹호자로서 세션즈 R. Sessions와 함께 전문콘서트협회를 창설하였고(1928~31), 이어서 뉴욕의 야크에서 아메리카 현대 음악제를 지휘했고 미국 작곡가연맹과 국제 현대 음악협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는 또 뉴욕으로 망명해 온 바르톡을 원조했으며, 탱글우드의 바크셔 음악센터에서 25년간 강의를 했고 또 논문·강연, 그리고 연주회를 통해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미국 음악의 위대한 아버지로서 인정을 받고 있는 그는 음악을 감상하는 법 What to Listen for in Music(1938 뉴욕), 음악과 상상력 Music and Imagination(1952 케임브리지) 등의 저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