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화성' 따라 걸으며 먹는 통닭, 만두, 칼국수
입력 : 2013.05.20 09:00
[맛있는 식탁] 수원 화성 성곽 주변 맛집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하면 으레 성산일출봉이나 한라산이 떠오르지만 이번 여행길에서는 전국적 유행이 되어버린 ‘올레길’ 걷기에 동참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주변에도 잘 찾아보면 올레길 못지않은 멋진 길이 있지 않을까? 봄의 기운과 영산홍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계절에 어울릴 만한 수도권의 ‘올레길’은 어디가 좋을까? 문득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수원 화성을 따라 걷는 길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
수원 화성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계획 도시로서 개혁적 통치자인 정조와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의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 후기 토목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97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그렇다면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성곽으로 전해지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면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충분히 걷고 보았다면 이제 먹는 즐거움이 빠지면 서운하겠다. ‘팔달문’에서 ‘장안문’ 방향으로 조금 걷다보면 그 유명한 통닭 골목이 나온다. 팔달로와 남수동을 사이에 두고 많은 집들이 성업 중이다. 그 중에 조그만 골목 사거리에 이른바 필자가 재미삼아 사대천왕이라 칭했던 집들이 있다.
남수동과 팔달로 일대에는 크고 작은 통닭집들이 몰려있다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치킨타운> 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진미> 는 닭모래집을 통닭이랑 섞어서 내주고, <장안>은 튀긴 마늘과 닭모래집을 섞어서 따로 접시에 담아 내주며, <용성>은 닭모래집 튀김과 닭발 튀김을 서비스로 내준다. 후발주자인 <치킨타운>은 닭모래집만 튀겨서 제공하는데 각기 개성이 있어서 충성도 높은 단골 고객들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원천을 따라 <남수통닭>을 비롯해서 전통의 <매향통닭> 까지 많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데 수원 화성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맥주 한잔하는 것도 무척이나 낭만적이다. 통닭에 맥주보다는 소주 한잔에 고소한 불맛이 그립다면 같은 골목 안에 있는 <입주집>도 주목할 만하다. 지글거리는 소곱창의 고소한 내음이 가는 이의 발걸음을 잡는다.
수원을 대표할 만한 분식집인 <보용만두>와 <보영만두>
뿐만 아니라 화성의 4대문 중 정문이라 볼 수 있는 ‘장안문’ 로타리에 수원을 대표할 만한 분식집이 있다. 바로 <보용만두>와 <보영만두> 인데, 말 그대로 만두가 전문인 분식집인데 분식 마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대부분의 음식이 갖춰져 있다고 보면 된다. 두 집에 얽힌 사연을 놓고 누가 원조니, 어디가 더 맛있다느니 하면서 갑론을박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 자리에 먼저 있었던 집은 <보용만두>이다. <보영만두>가 나중에 들어섰다. 그러나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두 집 다 만두와 쫄면으로 유명한데 경험해본 바로는 우열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그야말로 막상막하의 수준이다.
만두와 쫄면이 맛있는 보용만두와 보영만두
만두 전문 분식집답게 여러 가지 종류의 만두가 있다. 군만두, 김치만두, 찐만두 등이 있는데 매운 쫄면에 잘 어울리는 만두는 아무래도 군만두가 아닌가 싶다. 쫄면 역시도 매운맛, 중간맛, 안매운맛 세 개의 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자의 기호에 따라 선택하면 되겠다. 쫄면의 매운 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만들 때쯤 그 매운 맛을 군만두로 달래보자. 군만두는 만두피를 두툼하게 만들어서 바삭한 듯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있는데 두툼하고도 쫄깃한 만두가 쫄면의 매운 맛을 신기하게 중화시켜 준다. 군만두에 쫄면을 싸서 먹거나, 매콤한 양념에 찍어서 비빔 스타일로 먹는 재미 또한 별미다. 전체적으로 2천원에서 최고 비싼 메뉴가 5천원 정도로 부담없는 가격 또한 이곳을 자주 찾게되는 이유다. 그리고 팔달문에서 인쇄골목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제법 내공있어 보이는 노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춘천막국수> 인데 얼핏봐서는 영업을 하는 집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하다.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그런데 문을 열어보면 어디서들 몰려왔는지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흔히 먹는 막국수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쫄깃한 면발에 간장 양념장에 비벼먹는 그런 막국수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확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북수동에 위치한 노포 <대왕칼국수>도 주목할 만하다. 이곳 수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저마다 이집에 대한 한가지씩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허름한 골목길 안에 들어있는 대왕칼국수는 매일 손반죽을 하고 밀대로 직접 밀어서 끓여내는 손칼국수로 유명한 곳인데 칠순을 훌쩍 넘기신 어르신께서 90도 가깝게 굽어진 허리를 하고 지금도 주방에서 일을 하신다. 마치 그 옛날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가슴 한켠에는 무언지 모를 뭉클함이 일어난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40년 전통의 대왕칼국수
여기 메뉴는 참 재미있다. ‘보통’, ‘중특’, ‘특상’ ‘곱배기’ 라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특’ 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것은 날계란이 한 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이나 날계란이 들어간 ‘특’ 칼국수나 가격이 같다. 거기에 혼자서 한 그릇을 비우기가 부담스러울 만큼의 양을 담아주면서 가격은 4천원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여름철에는 콩국수가 가능하다. 아침 내 내 갈아두었다가 살얼음이 생기도록 준비해둔 콩국물은 비리지 않고 진하면서 고소하다. 여기에도 역시 차고 넘칠 정도로 푸짐한 양의 칼국수가 들어가는데 어떤 손님들은 국수는 건져내고 콩국만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키기도 한다. 역시 4천원이라는 가격은 고마우면서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여름에만 제공되는 콩국수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또 성곽 아래 <영동시장> 과 <지동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조치로서 대형마트 휴일제를 실시하고 있다지만 실제 그 효과가 재래시장으로 연결되지 않는 점은 유감이다. 아무튼 <지동시장> 안에는 전국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순대 타운’ 이 형성되어 있다. 얼큰한 순댓국 한 그릇도 좋고, 철판볶음을 주문해서 각종 채소와 순대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소주 한 잔 곁들여 보는 것도 쌓인 피로를 날려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푸른 잔디와 멋진 언덕을 배경으로 수원 화성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개혁을 꿈꾸었던 정조를 만나기도 하고 당쟁의 여파로 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기도 한다.가족과 함께, 아니면 친구 · 연인과 함께라도 좋다. 성곽을 따라 걷고, 보고, 느껴보자. 그런데 먹는 즐거움이 빠지면 조금 섭섭하다. 성곽 주변에 크고 작은 노포와 부담없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화창한 날에 조선 최고의 개혁 군주인 정조와 이 시대가 원하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의 전형인 정약용의 민본 사상을 떠올려 보며 주변 맛집까지 둘러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통닭골목>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 1가 50- <보용만두>와 <보영만두>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282-2 - <춘천막국수> 수원시 팔달구 교동 23 031) 242-6667- <대왕칼국수>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311번지 14호 031) 252-2820 글·사진 김인규(아포리아) 맛집블로거 www.cozy95.blog.me
'아포리아' 김인규씨는 네이버 맛집 파워블로거(아포의 맛집 탐방)로 맛집과 식재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추억에 근거해 풀어내는 것을 즐긴다. 허름하고 낡아도 오랜 역사력과 진정성이 묻어 있는 맛집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