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Op.30) - 영화 'Shine' ost.

박연서원 2013. 1. 9. 09:38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3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Op.30

Sergei Vasili'evich Rakhmaninov, 1873∼1943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1-Part 1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1-Part 2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2-Part 1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2-Part 2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3-Part 1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Mov 3-Part 2

 

전 악장 연속듣기

Rafael Orozco, piano

Edo de Waart, cond.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I. Allegro ma non tanto 

 

Vladimir Horowitz, piano

Eugene Ormandy, cond.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Part 1/2

Vladimir Horowitz (1903~1989), Piano

Zubin Metha (1936~   ), Cond.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Part 2/2

Vladimir Horowitz (1903~1989), Piano

Zubin Metha (1936~   ), Cond.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II. Intermezzo- Adagio

 

Rafael Orozco, piano

Edo de Waart, cond.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Vladimir Horowitz (1903~1989), Piano

Zubin Metha (1936~   ), Cond.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III. Finale - Alla breve

 

Vladimir Horowitz (1903~1989), Piano

Zubin Metha (1936~   ), Cond.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1악장 Allegro ma non tanto d단조 4/4박자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주부에 뒤이어 d단조의 장엄한 테마가 피아노로 나타난다. 그리고 제 2테마는 피아노 독주로 연주된다.
이것이 힘차게 다이내믹 한 연주로 고조되어 나아간다. 다시금 새로운 변화를 보여 처음 시작하는 분위기로 돌아가는데 음악은 건축적이며 간결하다. 빠른 부분에서는 변주곡으로 변주되고 이것이 절정에 이르면 카덴차로 나타난다. 얼마 후 피아노의 제 2테마의 변형이 전개되며 카덴차는 끝나는데 처음 부분의 제 1테마가 다시 나타나고 뒤이어 제 2테마가 다시 나타나고 뒤이어 제 2테마 의 동기에 의한 코다가 있은 후 웅대한 악장은 끝난다.

 

2악장 intermezzo(Adagio) 아다지오 A장조 4/4박자

간주곡(intermezzo)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2악장은 러시아의 동양적 특징을 나타내는 풍부한 음색이 나타나며, 특히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향취가 물씬 풍긴다. 여기에는 평화스런 고요 함이 있지만, 거의 끝부분에 환상이 대조되는 순간 악장의 주제가 왈츠의 형태로 다시 나타난다. 같은 주제는 인터메초 뒤에 중단없이 연주되는 화려한 종악장에서 다시 들린다. 음악은 흥분되고 극적인 카덴차와 코다에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데, 끝부분에서 피날레의 2주제가 너무나 광대하고 장려하게 울려 1주제에서 나타 났던 고통과 그리움을 말끔히 잊게 한다.

 

3악장 Alla breve - Lento d단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오보에의 독주로 이 간주곡의 주요한 멜로디가 연주되는데,
현악기는 이를 반복한다. 다시금 관악기에 새로운 테마가 계속하는데 이는 현악기의 왈츠조로 반주된다. 이렇게 전개하다가 피아노의 힘찬 화음과 화려한 음의 움직임의 연속으로 발랄하게 끝난다.

작곡가의 미국 초연 때(1909.11.28)부터 '독주자의 악명높은 난해성'으로 유명한 곡은 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Joseph Hoffmann에게 original score가 헌정되었다. 1909년 라흐마니노프는 처음 미국을 여행했는데, 프로그램에는 신작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포함되었었다. 그 작품은 그의 완전히 성숙한 멜로디 스타일, 풍부 하면서도 변화무쌍하고 식견을 갖춘 오케스트라의 사용법, 그리고 큰 스케일의 구조에 대한 대단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초연은 발터 담로쉬의 지휘로 11월 28일 뉴욕의 뉴 시어터에서 있었다.
1910년 1월 그는 다시 카네기 홀에서 연주했으며, 이번에는 말러의 지휘아래 뉴욕 필하모닉이 협연했다. 아름답고 향수를 느끼게 하는 1악장 첫 주제는 너무나 명백히 러시아적이어서 라흐마니노프가 전용한 실재 민요같이 느껴진다. "만약 이 주제는 작곡하는 데 있어 어떤 계획이 있었다면, 나는 오직 소리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가수가 멜로디를 노래하듯 피아노로 멜로디를 노래하고 싶었다. 그 주체는 인상적인 응집력과 미묘한 미묘한 주제의 절충 관계, 넓고 풍부하게 변화 하면서 카덴차에서 절정에 이르는 구성을 가진 작품으로 발전하였다.

 

영화 'Shine' ost... 클래식이 흐르는 영화

감독 : Scott Hicks

출연 : Geoffrey Rush

           Justin Braine

           Lynn Redgrave

           Noah Taylor

              Armin Mueller Stahl

 

1946년 데이빗 헬프갓(David Helfgott)은 호주의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데이빗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은 독선적이며 엄격하다. 그는 아들을 피아니스트로 대성시키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피터가 데이빗을 피아니스트로 성공시키려고 하는 데는 피터 자신의 꿈이 피터의 아버지로 인해 좌절되었다는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아버지만 없었다면' 그는 지금쯤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이런 아버지에게 맺힌 원한은 아들 데이빗에게 또 다른 형식으로 '아버지' 강박 관념을 심어준다. 피터는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의 환영에 시달렸고, 데이빗을 대성시키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전이된 욕망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아집이 데이빗의 전도 양양한 앞길에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A. Vivaldi Nulla in Mundo Pax Sincera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칸타타RV 630

 

데이빗은 자신의 아버지와는 또 다른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유명한 여류 작가 캐더린의 아버지이다. 캐더린의 아버지는 그녀의 살부욕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끈 사람이다. 서재에 묻혀서 책과 저술에만 빠져 사는 아버지가 미워서 캐더린은 일부러 잉크를 엎질러 아버지의 원고를 망쳐 놓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는 "지금 나는 저술 중입니다."라고 응수한다. 캐더린의 아버지는 그녀를 감격스럽게 끌어안았고, 그녀는 그때부터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 대비되는 두 아버지의 상이 데이빗의 생애에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으로 존재하게 되고 그 두 선을 넘나드는 위태로운 인생이 그에게 시작된다. 데이빗의 첫 살부행위는 영국 왕립음악원 행으로 나타난다. 데이빗은 인생은 냉혹한 것이고, 음악만이 영원한 친구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 피아니스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룸에 있어서 음악은 필수적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 다양한 곡들이 삽입되었다.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칸타타RV 630 중 <세상엔 진실한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는 비발디 세속 칸타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데,한 피아니스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룸에 있어서 음악은 필수적인 것이다. 곡의 평온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일요일 아침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곡이다.

 

 

대지의 모든 사물을 깨우는 듯 한 바이올린의 선율,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프라노 성부가 자아내는 평온함에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발디의 이 곡은 기막힌 선곡이다. '아픔이 없다면,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라는 가사가 말해주듯이, 데이빗 헬프갓의 삶을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아픔이 씻어지는 느낌까지 받게 하였다. 비발디의 칸타타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의 음반은 그다지 흔한 앨범이 아니다. 하지만 엠마 커크비(E. Kirkby)의 음반은 더 이상 훌륭한 음반을 찾기 힘들만큼 뛰어나다.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은 커크비의 청아한 목소리는 작품의 평온함을 훌륭하게 살려내고 있다. 호그우드(C. Hogwood)가 이끄는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Academy of Ancient Music)의 연주 또한 일품인데,단정한 반주는 커크비의 목소리와 잘 들어맞는다.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 Op. 30).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시대까지의 정통적인 서법에 기초하여 피아노를 위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에서 거둔 업적은 생전에 작곡가로서의 확고한 지지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후기 낭만주의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비속한 센티멘탈리즘을 표현한 살롱음악 작곡가로 오랫동안 평가절하 되기도 했다. 또한 음악이 너무 보수적이라든가 시대 착오적이라는 말을 듣는 일도 적지 않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943년까지 살았지만, 작품의 경향으로는 19세기적인 낭만주의에 머무르고 있다. 2살 위인 스크랴빈(A. N. Skriabin)이나 1살 아래인 쇤베르크(A. Schonberg)와 같이 새로운 시도를 해 볼 기미도 볼 수 없다. 시종일관 흘러간 옛날의 향수를 노래하였던 것인데, 그 점이 현대 작곡가로는 보기 드문 대중성을 갖게 된 이유인 것 같다.

 

1. Moderato (11:38)

 

2. Adagio sostenuto (12:27)

 

3. Allegro scherzando (11:22)

Vladimir Ashkenazy, piano
Leopold Stokowski, cond.
The Philadelphia Orchestra

 

라흐마니노프는 4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피아노 협주곡 2번(Piano concerto No. 2, Op. 18)과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랩소디(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Op. 43)는 영화의 주제음악과 팝으로 빈번하게 편곡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협주곡 3번은 2번에 가려 인기를 못 누리고 있었지만, 이 영화로 인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기 2년 전쯤부터 심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Rhapsody on a Theme by Paganini, Op. 43

Ekaterina Mechetina, piano
Gintaras Rinkevičius, cond.
Novosibirsk Philharmonic symphony

 

만약, 라흐마니노프의 팬이었던 정신과 의사가 없었다면 30세의 나이로 폐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내용과 일치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이 곡은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되는 부분이 많아 독주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는 난해한 곡이다. 일설에는 라흐마니노프가 2번 보다 3번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은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녹음한 음반부터 호로비츠, 베르만, 아르헤리치와 최근의 질버스타인과 키신의 연주 앨범이 있다.

 

 

하지만 밀란 호르바트(Milan Horbatt) 지휘의 코펜하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openhagen Philharmonic Orchestra)와 영화의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David Helpgott)의 연주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이 음반에 대한 평가는 양분화 되어있다. 영화 <샤인>에 의해 헬프갓은 최고 인기의 피아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정도의 극적이었던 삶만큼 화려하고 신비로운 실력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과 함께 기본을 갖춘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인 것이다. '실력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는 피아니스트'라는 평가이다. 그리고 '거품을 넘지 못한 헬프갓의 인기의 한계이다'라는 평가이다. 단적으로 말해 헬프갓의 연주는 지극히 평범하다. 영화 덕분에 우리에게 전혀 무명이던 한 피아니스트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행운이지만, 상업적인 거품을 걷어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Bernard Haitink) 지휘의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Concertgebouw Orchestra)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 음반을 좋아한다. 관현악단과의 친밀한 융화력은 떨어지지만 피아노 파트에 독자적인 개성과 자발성이 강조되어 생명력이 넘쳐흐른다. 아쉬케나지 특유의 따스한 감정의 풍부함과 느긋하게 노래하는 선율의 아름다움이 전체 악장을 지배한다.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에는 34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쇼팽(F. Chopin)의 피아노곡으로는 폴로네이즈(The Polonaise, Op. 53), 전주곡 15번(Prelude No. 15, Op. 28)

 

The Polonaise, Op. 53

Martha Argerich, piano

 

Prelude No. 15, Op. 28

Martha Argerich, piano

 

슈만(R. schumann)의 어린이 정경(Scenes from childhood)중 

'너무도 진지하게 (Almost too serious)'

 

너무도 진지하게 (Op. 10 Fast zu ernst / Almost too serious)

Nejc Lavrenčič, piano

 

리스트(F. Listz)의 피아노 곡으로는

헝가리 광시곡 2번(Hungarian Rhapsody No. 2),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와 탄식(Sospiro)

 

Hungarian Rhapsodies(6) for Orchestra No. 2  in D minor

Herbert von Karajan,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Hungarian Rhapsodies(6) for Orchestra No. 2  in D minor

Michele Campanella, piano

 

La Campanella

Yundi Li, piano

 

Un sospiro (탄식)

Valentina Lisitsa, piano

 

Un sospiro (탄식)

Marc-André Hamelin, piano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 Korsakov)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품들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데이빗 헬프갓의 해석을 재현하고, 오리지널 악보를 만드는 데에는 작곡가이자 음악감독이었던 데이빗 허쉬펠더의 역할이 매우 컸으며, 그의 곡들도 적재 적소에 삽입되어 또 다른 감동을 준다.

 

Hungarian Rhapsody No. 2

 

이 영화는 호주의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다. 관객들의 기호에 맞는 스타를 발굴하기 위해 고심하던 제작자나 매니지먼트 기업들은 '신동'이라는 구경거리를 만들어 관객들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들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천재의 이야기를 찾아냈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헬프갓이다. 그의 일생에 관한 과장되었을지 모르는 영화 줄거리 덕분에 헬프갓은 하루아침에 유명해졌고, 우리 나라에서도 음반 판매량이 상당해진 인기인이 되었다. 이런 허리우드식 상술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한 눈 팔지 못하게 하는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가치를 향한 불만을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해 갈등하는 데이빗의 고뇌는 반감되어 버리고 마는 아쉬움을 남긴다. 헬프갓과 같은 예술가, 병든 이는 우리 사회에 아무런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 그의 아픔은 적자생존이라는 비정한 현대 사회의 원칙에 대해 엄숙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아버지의 포옹을 애타게 바라는 자신의 모습처럼 따스한 사랑에 굶주려 있는 우리 사회의 병을 알려주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또한 그의 삶을 접하게 되는 우리에겐 치유자인 것이다. 나약한 사람, 병든 사람은 그 사회의 병을 가장 먼저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병들어 가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예언자이다. 지금 아파하고 있다면 '아픔이 없으면 세상엔 진실한 평화 없어라'라는 비발디의 메시지를 기억하자. 오딧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와 殺父(살부)욕망은 인류 문명사에 중요한 모티브였다. 스코트 힉스 감독의 영화 <샤인>은 이러한 살부욕망의 변주된, 이미 우리들에게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이미지의 패러디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의 '아버지'는 기존의 질서, 제도, 종교, 가치규범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세상 밖으로 던져진 고독한 천재의 이야기: 스콧 힉스의 '샤인'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는 불행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아들도 불행하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지만 아들은 그 꿈을 대신 이루어줄 능력이 없거나 그와는 전혀 다른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아버지와 아들들이 바로 그랬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기어코 아들을 성공시키고자 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 속에는 바로 그가 살아왔던 시대의 좌절과 고통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이렇게 우리 아버지들은 아들을 통해 그 한을 보상받고 싶어 했지만 과연 몇 퍼센트의 아버지들이 이런 소망을 이루었을까. 과연 몇 퍼센트의 아들들이 이런 아버지의 꿈과 행복하게 조우했을까. 서로 다른 꿈을 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슬프다.

불운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샤인>은 이렇게 불행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는 이것이 정신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피아니스트의 인간승리를 그린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후 몇 번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과 세상 사이의 관계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부자지간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들이 처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지를 보았다.

영화 샤인>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갓은 호주로 건너온 폴란드계 유태인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우슈비츠에서 부모와 형제자매를 모두 잃는 불행을 겪었으며, 이렇게 아픈 기억이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과 가족에 대한 강박증적인 집착을 갖게 한다. 물론 그 집착만큼이나 아버지는 교육에도 헌신적이었다. 아들이 피아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들의 음악교육에 지극정성을 쏟는다.

사실 데이비드의 아버지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했는데, 음악을 싫어했던 아버지가 그것을 박살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박살난 바이올린과 함께 그의 꿈도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해서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희망대로 데이비드는 어려서부터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로 주목을 받는다. 심지어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으로부터 미국유학을 권유받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기뻐해야할 아버지가 이상하게도 그의 미국행을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선다. 그 후 영국 왕립음악학교로부터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도 아들의 성공을 원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가족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을 만한 거리 안에서의 성공이었다. 멀리 바다 건너 아들을 보내는 것은 그에게는 곧 사랑하는 가족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것과 똑같이 두려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애원한다. 제발 아버지와 가족들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지만 데이비드는 기어이 영국행을 택한다. 이렇게 해서 집을 떠나는 아들의 등 뒤에 아버지는 비수와 같은 한 마디를 꽂는다.

 

“지금 가면 다시는 집에 돌아올 생각 하지 말아라.”

 

영국 왕립음악학교의 세실 팍스 교수는 데이비드에게서 진정한 천재성을 발견한다. 뇌일혈로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이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어느 날 데이비드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치겠다고 하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엄청난 곡을 칠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이 곡은 데이비드가 어릴 때부터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거대한 산맥처럼 동경해 왔던 곡이다. 그런데 세실 팍스 교수가 이렇게 말하자 데이비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저는 충분히 미쳤어요.”

 

피아니스트에게 난공불락의 고지로 여겨지고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 그야말로 엄청난 에너지와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이다. 말이 협주곡이지 사실 이 곡은 피아니스트에게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엄청난 테크닉과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하는 데에 석탄 100톤을 삽으로 퍼 나르는 것과 같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아마 이 곡을 연습하면서 데이비드의 신경줄에 손상이 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함께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그 엄청난 에너지에 너무나 가슴이 벅차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듣는 사람이 이 정도니 직접 연주하는 사람은 어떨까. 이 곡을 연주하면서 데이비드는 어쩌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청춘의 힘과 정열을 모두 소진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1악장의 낭만적인 주제 선율이 후반부의 카덴차에 이르러 거대한 폭풍으로 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3악장의 도입부에서부터 그의 신경줄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의 나약한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 과도한 열정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손가락이 미친 듯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고 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곧 이어 완벽한 정적이 찾아온다. 들리는 것은 온전한 세상과 마지막으로 소통하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 뿐. 이 짧은 정적은 곧 단말마적인 비명을 지르며 폭발할 3악장의 피날레를 예고하고 있다. 곧 비극적 종말이 펼쳐질 예정이니 관객 여러분은 부디 박수칠 준비를 하시길.

드디어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린 데이비드는 그 자리에 쓰러져 이 세상과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만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언젠가 책에서 읽은 집시 노파의 말이 생각났다. 온 몸과 마음의 열정을 다 바쳐 노래를 부르고 나면 입 안에 피가 고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아! 나는 이 기분을 알 것 같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그것이 가져다주는 감동이 너무 엄청나서 내 가슴이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해버린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거의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감동도 너무 지나치면 고통이 되는 법이다.

정신분열증으로 무대에서 쓰러진 데이비드는 그 후 세상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채 거의 12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바꾸어놓을 사람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데, 상대는 그보다 15살이나 나이가 많은 길리언이라는 점성술사였다. 영화에서 데이비드가 운명의 짝인 길리언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Nulla in mundo pax sincera>가 나온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데이비드는 트램폴린 위에서 벌거벗은 몸에 외투 하나만 달랑 걸친 채 허공을 뛰어오르고 있다. 벌써 한 시간 째 그러고 있는 중이다. 세속의 가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공중을 향해 무한한 자유의 몸짓을 하고 있는 데이비드.

 

"이 세상에 고통 없는 진정한 평화는 없어라.
자비로운 예수, 당신 안에 있는 참되고 순수한 평화
형벌과 고문 속에서도
순수한 사랑의 빛이 비칠 때
내 영혼이 비로소 위안을 얻게 된다네"

 

영화에서 이 노래를 부른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는 옛 음악을 주로 부르는 고음악 전문가수이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고음악을 부르는 가수들은 목소리에 과도하게 감정을 싣지 않는다. 낭만시대 오페라를 부르는 것처럼 바이브레이션을 사용하거나 드라마틱하고 과장된 창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인간이 갖고 있는 순수한 목소리, 자연스러운 목소리, 천사의 음성처럼 맑고 청아한 목소리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데이비드가 허공을 오를 때마다 무한한 자유와 평화의 기운이 허공을 향해 퍼진다. 이 노래의 가사처럼 이 세상에 대가없이 저절로 얻어지는 평화는 없다. 저절로 얻어지는 자유도 없다. 데이비드의 삶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자유는 오랜 세월 동안의 외로움과 고통이 가져다 준 선물인 것이다. 그는 이제 그 깊은 어두움을 뚫고 다시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막 손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허공 위에서 세속의 가식과 때를 모두 벗어던진 채 완벽한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가 발산하는 효과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그 후 데이비드는 길리언과 결혼한다. 그리고 결혼 후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지금도 데이비드 헬프갓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에게 영화의 감동을 재현하고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아마 데이비드 헬프갓의 인생 드라마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본 후 데이비드 아버지의 뒷모습이 영 마음에 걸려 떠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처럼 무거운 어깨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끝내 아들이 재기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바로 어제 7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데이비드 헬프갓의 연주를 직접 들었다. 이번 연주회에서 그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와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 등 귀에 익은 곡들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다소 낯설었다. 예상을 뒤엎는 특이한 템포와 박자, 강약법 때문에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 때도 많았다. 어쩌면 이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바로 이것이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인 것을. 데이비드 헬프갓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이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Andrei Gavrilov, 1955~   )

 

러시아 태생의 피아니스트. 1955년 러시아(舊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어릴적부터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겐리크 네이가우스(Heinrich Neuhaus)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던 어머니로 부터 피아노를 공부했다. 그후 알렉산더 골덴바이저(Alexander Borisovich Goldenweiser,1875-1961)의 제자로서 니콜라이 페트로프와 엘레나 쿠츠네로바의 스승이었던 타티아나 케스트너(Tatiana Kestner)로부터 피아노를 사사했다.

 

이어 제자를 잘 두지 않던 위대한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Sviatoslav Richter)에게도 사사했다. 1974년,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당시 2위는 한국의 정명훈), 그 해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초대됨으로써 화려하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가브릴로프가 초대된 것은 당초 출연예정이었던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갑작스러운 유고 때문에 대신 불려간 것이었는데 그 연주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이후 가브릴로프는 그야말로 가장 눈부신 스타의 길을 걸었다.

1976년엔 런던에 데뷔했고,1978년엔 베를린 필하모니커와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이듬해 겨울,베를린 필과 함께 하기로 했던 공연이 갑자기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무려 5년간이나 그는 국제무대에서 사라진다. 소련정부에 의한 5년간의 감금생활. 외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련정부를 공공연히 비판한 게 화근이었다.

 

1979년 12월 6일 베를린의 필하모니 홀에는 지휘자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러시아로부터 날아올 피아니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밤 연주와,이어질 녹음을 앞두고 피아니스트를 기다리던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무려 4시간이나 그를 기다리다 결국 그날 연주를 취소했다.

피아니스트 이름은 23세 안드레이 가브릴로프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옛 소련 당국은 연주차 출국을 앞둔 가브릴로프의 여권을 압수하고 전화를 끊었다. 가브릴로프가 예전 외국연주 때 언론을 통해 소련 당국을 여러차례 비판한게 화근이었다. 그로부터 5년간 가브릴로프는 외부와 격리됐다.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감내하던 가브릴로프는 1984년 고르바초프에게 서방 여행을 허가해줄 것을 편지로 요청했다. 고르바초프가 이를 수용하였고, 가브릴로프는 그해 런던에서 연주하고 녹음할 수 있었다. 1985년,고르바쵸프에 의해 해금된 가브릴로프는 미국 카네기홀에 데뷔하면서 성공적으로 재기하였다.

당시 뉴욕 연주 때 뉴욕 타임스가 그에게 보낸 격찬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가브릴로프는 미국의 주요 도시들과 유럽에서 활발환 연주활동을 펼쳤다. 뉴욕을 비록하여 시카고, 필라델피아, 몬트리올, 런던, 비엔나, 파리, 베를린, 뮌헨, 암스테르담, 도쿄 등지를 순회연주 하였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하이팅크, 리카르도 무티, 세이지 오자와, 스베틀라나, 텐슈테드 등의 지휘자들과 협연하였다.

1989년, 가브릴로프는 독일로 망명하였고,그것은 그동안의 `자유와 저항'의 종착점이자 좀 더 높은 비상을 위한 출발점이었다. 음반은 EMI 레이블로 발표하고 있다. '그라모폰 상'을 비롯한 유수한 음반상들을 받았고,1998년엔 필립스(Philips)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0년, 도이치 그라모폰과 음반계약을 하면서 EMI를 떠났고, 쇼팽, 프로코피에프, 슈베르트, 바흐, 그리그의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음표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가브릴로프의 탄력있는 연주법은 특히 리스트와 러시아 작품 연주에서 눈부신 빛을 발한다. 같은 세대 피아니스트 가운데서도 기량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지난 2003년 3월 7일 내한하여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바흐 "프랑스 모음곡" 전6곡을 연주하였다. 현재 국적은 독일이며 2001년 이후로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