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Sissel
If a picture paints a thousand words
then why I can't paint you
The words will never show
the you I've come to know
한장의 그림으로 수천 마디 말을 그려
낸다는데 왜 저는 당신을 그릴 수 없나요
제가 알게 된 당신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겁니다
If a face could launch thousand ships
then where am I to go
There's no one home but you
You're all that's left me too
있다지만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집처럼 포근한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또한 네게 남겨진 전부입니다
And when my love for life is running dry
You come and pour yourself on me
If a man could be two places at one time
I'd be with you
Tommorrow and today
beside you all the way
삶에 대한 애착이 시들어 갈때면
내게 다가와 사랑을 쏟아 주세요
사람이 동시에 두군데 있을 수 있다면
난 당신과 함께 있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If the world should stop revolving
spinning slowly down to die
I'd spend the end with you
And when the world was through
Then one by one the stars would all go out
and you and I would simply fly away
지구가 자전을 멈추고
서서히 돌다가 소멸해 갈지라도
저는 마지막을 당신과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면
별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그때 당신과 나는 그저 훨훨 날아가는 겁니다
Bread(원곡)
Bread
우리나라 Old Pop들은 '60 ~ '70년대의 그룹 "브레드(Bread)"하면 떠올리는 곡이 아마 "If"나 또는 "Aubrey"일 것이다. 이들은 미국 출신의 4인조 소프트 록 밴드로서 이들 노래의 대부분은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편이다. 이들의 멤버는 "마이크 보츠(Mike Botts)", "래리 네첼(Larry Knechtel, 기타)", "지미 그리핀(Jimmy Griffin, 기타)", "데이비드 게이츠"로 구성된 4인조 "Soft Rock Band"이다.
"브레드 (Bread)"는 1968년에 그룹을 결성하여 1969년 1집 앨범 ""Bread"를 발표하며 데뷔하였다. 그리고 바로 멤버들의 변화가 있었는데 1970년에 "마이크 보츠(Mike Botts)"를 영입하였으며 2년 뒤인 1971년도에 "롭 로이어"가 탈퇴함에 따라 같은 해에 기타를 맡은 "래리 네첼(Larry Knechtel)"을 영입하였다.
196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L.A)에서 키보드 겸 보컬을 맡은 "데이비드 게이츠(David Gates)", 기타와 보컬을 맡은 "지미 그리핀(Jimmy Griffin)"을 주축으로 결성된 소프트 록 그룹 "브레드(Bread)"는 1969년에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 "Bread"를 발표하였고 그 이듬해인 1970년에 발표한 2집 "On the waters"에서는 "Make it with You"로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If"나 "Aubrey"와 같은 명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의 그룹명을 정한 일화는 조금 우습다. 이들이 "원더 브레드 (Wonder Bread)"라는 트럭을 타고 가다가 뒤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계기로 그룹 이름을 "브레드 (Bread)"로 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룹명을 브레드로 정한 이들은 세션 드러머 "짐 고든(Jim Gorden)"을 영입해 1968년 데뷔 앨범을 내놓았으나 챠트 실적은 127위라는 초라한 실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1970년 두 번째 앨범 on the waters"를 계기로 브레드는 히트 메이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 분위기와는 다르게 멤버간의 관계는 그렇게 원만하지가 못했다. 1973년 "데이비드 게이츠(David Gates)" 못지 않은 작곡 실력을 지닌 제임스 그리핀이 자신의 곡이 싱글로 채택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두 사람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내 해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그 후 1976년 재결합을 시도하여 1977년도에는 "Lost without Your Love"라는 곡을 발표하여 앨범챠트 9위에 올려 놓으면서 전작과 다름없는 히트에 성공하였지만 결국 이 곡은 그들의 마지막 히트곡이 되고 말았다. 항상 멤버간의 관계가 불안하였던 그들의 재결합의 상태는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1977년에 다시 해체되고 말았다. 그룹 해체후 게이츠는 브레드라는 기존의 그룹 이름으로 새로운 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이어가지만 그룹명칭에 대한 공동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그리핀이 게이츠를 고소해 그룹 명칭 소유권에 관한 시비가 발생해 법정으로 이어지고 7년이나 재판을 계속했다고 한다.
1978년 "The Good Bye Girls"의 사운드 트랙으로 건재를 과시했던 Gates는 현재 Country Music Song Writer로 변신했고 Griffin은 Song Writer로 활동하면서 Dreams를 비롯한 밴드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고. 1994년 게이츠는 "Love is always Seventeen"을 발표해 오랜 만에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기 소개할 "브레드(Bread)"의 "If"는 1971년 앨범 "Manna" 에 수록된 곡으로 빌보트 챠트 2위를 기록한 명곡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곡은 영화 OST나 CF 배경음악으로 자주사용되어 팝팬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곡이다.이 곡은 2001년 노르웨이 출신 가수 "Sissel" 이 리메이크해 사랑을 받기도 했다.
리더겸 작곡의 핵심이었던 "데이비드 게이츠(David Gates)"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멤버들간의 불화로 해체와 재결합. 그리고 재해체의 과정을 밟았지만 데뷔년도인 1969년부터 1977년 그룹 해체시까지의 마지막 앨범 "Lost without Your Love"까지 8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곡 "Make it with You", "Everything I Own", "IF", "Diary", "Aubrey" 등은 아직 팝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곡으로 남아있다.
Sissel
본명은 [Sissel Kirkjebo(시셀 슈샤바)]이고 노르웨이어로 '교회의 언덕'이라는 뜻의 [Ofma] 대신 세계시장을 겨냥해 [Sisse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1969년 6월 24일 노르웨이의 [Bergen]에서 태어났다.
이 곳에서 그녀는 아버지 [Erling], 어머니 [Laila] 그리고 두 오빠 [Eirik]과 [Bjon]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는 등산을 취미로 했고 거친 자연은 그녀의 인생에서의 자연스런 부분이었다. 9살때부터 교회의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그녀는 10살때 탤런트 경연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며 11살에는 입상의 영광을 안았다. 14살이 된 [Sissel]은 NRK 방송국의 [Halv Sju]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TV에 나왔는데 같은해 [Sissel]은 NRK의 다른 프로그램 [Syng Med Oss(Sing With Us)]에서 NRK 합창단의 일원으로 노래하였다. 또한, 15살때 노르웨이 방송에서 [Barbra Streisand]의 [You Don't Bring Me Flowers Anymore]를 영어로 불러 가수로서의 재능을 확실히 인정 받았다고 한다.
집중적인 음악 교육은 없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재능은 그녀를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장소로 이끌었으며 티없이 맑은 목소리는 그때부터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Sissel]만의 자랑거리 였다. 17살 때 첫 앨범 [Sissel(86)]을 발표, 노르웨이에서 3십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깜찍한 10대 가수로서 출발을 알렸다. 그리고 1987년에는 노르웨이에서만 5십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크리스마스 앨범 [Glade Jul]을 발표했으며 1988년에는 뮤지컬 [The Sound Of Music]의 [Maria Von Trapp]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하여 극찬을 받은 [Sissel]은 세번째 앨범 [Soria Moria(89)]를 발표해 또 한번의 놀라운 찬사를 받았다. 1992년 [Gift Of Love], 1994년 [Innerst I Sjelen]을 발표한 그녀는 이후 6년동안 음반 작업을 하지않다가 세계 무대로 도약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1994년 노르웨이의 릴리 함메르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과 1997년 참여했던 영화 [Titanic]의 O.S.T 작업이었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공식 주제가 [Fire in your heart]를 세계 3대 테너의 한명인 [Placido Domingo(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부르며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르웨이의 종달새, 천사의 목소리라는 별명에서 느껴지듯 청아하며 맑고 투명한 영혼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듯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Sissel]의 풍부한 감성과 탁월한 창법, 개성적 가능성은 세계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녀의 레퍼터리 범위는 노르웨이의 [Edvard Grieg]의 음악에서 부터 뮤지컬 노래들,가스펠,컨템퍼러리, 팝 뮤직까지 다양하다.
그녀의 편곡들은 [Folk] 음악과 [New Age] 그리고 [Jazz]의 사운드들과도 어울린다. 노르웨이에서 그녀의 레코딩은 국가적인 이벤트가 되어왔다. 대부분 자료들은 [Sissel Kyrkjebo], [Sissel]만 표기 하였다. 1984년 [Sissel]은 [Bergen]의 [Greighallen]에서 찍은 [Syng Med Oss]에서 합창단으로서가 아닌 솔로로서의 데뷔였다.
그때 [Ung Laug Gjekk i Bj0keskog(Jansen & Fuglem의 Love Song)]과 [A Vestland], [Vestland]를 불렀다. 또한, 훗날 [Sissel]의 매니저가 되는 [Rune Larsen]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이 해에 [Sissel]은 또 다른 프로그램 [Husker Du(Do You Remember)]에서 노래를 했는데 다음 해 [Sissel]은 노르웨이에서 서서히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Sissel]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Bergen]에서 열린 국제 대회 [European Song Contest]에서였다.
녹화를 위해 [Steinar Ofsdal]의 플룻 반주에 맞추어 어떤 [Bergen] 전래의 노래를 불렀고 이것을 전 유럽의 시청자와 [Grieghallen]의 사람들이 TV를 통해서 [Sissel]을 알게 되었다. 1986년 10월 21일 그녀의 이름을 딴 첫 앨범 [Sissel]을 [Release]하여 70만장(1987년말의 공식적인 판매고는 360,405 카피)이 나갔다. 이제 [Sissel]은 노르웨이 최고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12월 노르웨이 신문 [Dagbladet]은 [Sissel]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1987년 2월에 [Sissel]은 [Ets Spillemann]이라는 노르웨이판 그래미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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