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로 만든 국수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며 병충해에도 강하다.
2, 3개월이면 수확할 수 있는 메밀은
초가을이 되면 강원도 산허리를 온통 수놓곤한다.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달빛에 눈부시다.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는 메밀로 만든 국수는
대부분 여름철에 찾기 마련이지만
메밀을 수확하고 난 후 초겨울에 시식해야
제대로 메밀의 풍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막국수! 메밀국수! 모밀국수! 모밀소바!
다 똑같이 메밀로 만드는 국수 명칭이다.
춘천과 인근의 홍천, 양구에서는 막국수라고 하고,
양양등 영동지방에서는 메밀국수로 부른다.
하지만 한가지 먹는 방법은 똑같다.
혀와 치아로 시식하는 것이 아니고 목구멍으로 먹는 것이다.
목구멍으로 삼킬 때 느껴지는 메밀의 꺼끌꺼끌함!
후루룩~ 면발이 미끄러져 넘어갈 때의 간지러움!
시원한 동치미국물과 서늘한 메밀의 섬뜩한 차가움!
면발이 넘어갈 때 한두 방울 튀기는 들척지근한 국물 맛!
혀와 침으로 면발을 감아 녹이면 막국수의 맛은 금세 사라진다.
치아로 면발을 잘근잘근 씹는 순간 죽이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막국수의 맛은 면발을 목구멍까지
어떻게 온전하게 옮기느냐에 달려있다.
목구멍을 지날 때의 맛인 셈이다.
막국수란 [금방, 바로 뽑은 국수]라는 뜻이다.
또 막국수 하면 당연히 춘천이 떠오른다.
하지만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음식이고, 냉면처럼 이북 음식이다.
오리지널 막국수는 비빔장 양념에 비비고
육수를 부어 먹는 춘천식과는 다르다.
육수 대신 동치미에 말아 먹는다.
양양, 속초, 고성 등지에선 동치미 맛으로 먹는 막국수가 흔하다.
이곳은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북지역이었고
전쟁 후에는 피난민들이 많이 내려와 정착하다 보니
여전히 오리지널 막국수가 대세다.
봉평이나 다른 곳에선 아예 처음부터
비빔메밀국수와 물메밀국수를 따로 주문 받는다.
봉평은 과일국물을 많이 쓴다.
춘천식 막국수는 육수가 나온다.
춘천시내에 있는 [남부 막국수]는 돼지 뼈를 우려낸 육수를 쓴다.
40년 역사의 [원조 샘밭 막국수]는 소 뼈를 12시간가량 고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시원하기보다는 구수한 편이다.
메밀비율도 집집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도 100% 메밀국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면발이 잘 끊어지고 쫄깃쫄깃하지 않아 밀가루를 섞는 게 보통이다.
메밀과 밀가루의 비율은 7대 3 혹은 8대 2가
가장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구마전분이나 감자전분은 아예 쓰지 않는 곳도 많다.
◈ 실비막국수 (033-254-2472)
춘천 시내의 사창 고개에서 40년이 넘도록 막국수를 말아내고 있다.
주문을 받자마자 반죽을 시작해 면을 뽑는다.
면의 메밀 함량이 높아 검고 거친 느낌이 있지만 차분한 맛이다.
감초.당귀 등 한약재를 넣은 쇠고기 사골 육수를 한 국자 부어 나온다.
◈ 샘밭막국수 (033-242-1702)
동치미 국물과 사골 국물을 혼합한 육수를 따로 낸다.
메밀가루를 80%가량 사용해 색이 밝고 질기지 않다.
고명으로 삶은 달걀 반쪽과 김, 설탕, 깨소금을 듬뿍 뿌려서 낸다.
춘천에서 가장 손님이 많은 곳으로 꼽힌다.
◈ 고향막국수 (033-336-1211)
메밀 고장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주민들이 최고로 꼽는 집.
과일과 야채로 생즙을 내 봉평의 약수에 섞어 육수로 쓴다.
국물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메밀가루만으로 반죽해 만든 순모밀국수도 맛볼 수 있다.
◈ 실로암막국수 (033-671-5547)
옛 속초 비행장 뒤편 외딴 마을에 위치.
막국수에는 양념장을 듬뿍 얹어 대접에 담아주고,
동치미 국물은 대야 같은 그릇에 큰 바가지와 함께 준다.
비벼먹을 수도 있고, 말아먹을 수도 있다.
◈ 천서리 막국수
경기도 여주 이포대교 주변에 형성된 막국수촌.
메밀 알곡을 껍질째 빻아 거친 맛이 난다.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국물에 말아 시원하게 먹는다.
강계봉진막국수(031-882-8300)/천서리막국수(031-883-9799)/
홍원막국수(031-882-8259)/봉천막국수(031-884-0471)등이 유명하다.
소박하고 거친 막국수 맛도 좋지만
일본식의 모밀소바의 맛도 각별하다.
서울에서 입소문이 난 모밀소바집이다.
◈ [미진] / 종로구 종로 1가(55년, 02-730-6198)
◈ [송옥] / 중구 북창동(45년, 02-752-3297)
◈ [유림] / 중구 서소문(50년, 02-755-0659)
서울의 메밀국수 맛집
메밀국수. 후텁지근한 여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별미다. 오돌오돌한 국수를 차가운 장국에 찍어 '후루룩' 호쾌하게 넘기면, 쌉쌀하면서도 고소한 메밀 향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코까지 서늘하다. 더위를 잠시 잊는다. 서울에서 메밀국수로 이름난 식당을 찾아가 맛을 비교해봤다.
- ▲ 제남 '모리소바' / 조선영상미디어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제남
쫄깃한 면발과 흥건한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 입에 맞는 '한국형 메밀국수'의 한 형태를 완성했다. 이 집의 메밀국수는 메밀가루와 밀가루 비율이 7대3이다. 일본의 8대2보단 메밀 함량이 낮지만 다른 식당들보다는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면발이 부드럽고 매끈하고 딱딱하지 않고 쫄깃하다. 주인 할머니는 "반죽을 잘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장국은 멸치와 다시마 우린 육수에 간장과 설탕만 조금 넣는다. 맑고 옅고 달착지근하다. 훌훌 마셔도 좋을 정도. 메밀국수와 섬세하게 어울린다. 80여년 전 서울 통의동에서 일본인과 동업으로 문 열었고, 1990년 창업자의 아들·며느리이자 현재 주인인 노부부가 지금 자리로 옮겼다. '모리소바', 장국에 메밀국수를 냉면처럼 말아 내는 '냉모밀국수' 6000원. 직접 면을 뽑아 쓰는 '제남우동'(6000원)이나 '유부초밥'(3000원)도 맛나다.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옆 GS칼텍스 주유소 골목. (02)3482-8316
●혜교
또 다른 한국형 메밀국수에 도전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가져온 메밀가루와 감자전분을 반죽해 면을 뽑는다. 전분을 사용하기 때문인지 메밀 함량이 높은데도 국수가 차지다. 혈압 안정에 좋다는 루틴 성분을 함유했다는 메밀싹과 김가루를 메밀국수에 얹어 낸다. 메밀 향이 희한하게 강하다. 다 먹고 나서 가게를 나와도 입안에 여운이 남는다. 일반 메밀국수인 '교면'(9000원)을 먹을 것. 메밀국수를 냉면처럼 쇠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에 말아 내는 '청면'(9000원)은 국물의 완성도가 국수만 못하다. 새콤하면서도 이상하게 밍밍한 육수가 메밀 향을 가린다. 강남구 삼성동 강남보건소 옆. (02)518-9077·9055
●오무라안(大村庵)
제남·혜교와 대척점에 있다. 일본 정통 소바 맛을 고수한다. 메밀 함량 높은 면발은 뚝뚝 끊기고,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와 사바부시(고등어포)를 섞은 장국은 진하다. 한국에서 흔히 먹듯 메밀국수를 장국에 전부 담갔다가는 짜고 달아서 먹지 못할 정도다. 국수 끝만 살짝 찍어 먹는다. 1950년 도쿄에서 시작한 이자카야로, 2001년 서울에 분점을 냈다. 모리소바 7000원, 덴푸라(일본식 튀김)을 얹은 덴모리소바 1만원. 가케우동(7000원), 나베야키우동(1만원), 사시미돈(1만원), 가쓰돈(8000원) 등 다른 메뉴도 일본 본토 맛을 유지하려 애쓴다. 강남구 역삼동 목화웨딩문화원 옆 골목. (02)569-8610
●유림면
메밀국수에 미세한 갈색 점이 박혀 있다. 메밀 껍질을 벗기지 않고 함께 빻아서 국수를 뽑으면 이렇게 된다. 까끌까끌한 감촉이 별로라는 사람도 있지만, 대신 메밀 향이 무척 짙다. 평양 물냉면과 강원도 막국수의 차이랄까. 면발이 단단하달 정도로 탄력이 강하다. 장국이 짜고 달다. 특히 뒤끝이 아릿할 만큼 강한 단맛 때문에 그냥 마시기 버거울 정도다. 그런데 이 강한 장국과 강한 메밀국수가 만나면 조화를 이룬다. 장국이 메밀에 밀리지 않는다. 서로의 맛을 밀어올리는 상승작용을 한다. '메밀국수' 6000원, '비빔메밀' 7000원, 덕수궁 돌담길 옆 골목. (02)755-0659.
●동경
유림면과 비슷한, 껍질째 빻아 뽑은 메밀국수다. 장국은 다르다. 가쓰오부시와 멸치, 표고버섯, 무 등을 넣고 우린 국물이 짜지도 달지도 않다. 국수의 메밀향을 밑에서 받쳐준달까, 밀린달까. '모밀(소바)국수' 7000원, '소바정식' 8500원, '냉모밀콩국수' 7000원, 신사동 압구정역 근처. (02)548-8384
●송옥
가쓰오부시와 멸치를 섞어 뽑은 육수가 가득 담긴 주전자와 커다란 통에 담긴 무즙, 파채가 따라나온다. 전형적인 한국의 메밀국수집 풍경이다. 그만큼 맛도 익숙하다. 장국은 간장 짠맛이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 달착지근하다. 굵게 뽑은 면발을 적당히 삶아 탱탱하고 매끄럽다. 항상 줄이 길다. 평일에도 오후 2시 넘어 가야 기다리지 않고 자리 잡을 정도다. '메밀국수'·'메밀비빔국수' 6000원. '튀김우동'(5000원), '돌냄비우동'(6000원) 등 우동도 면발이 탱탱하다. 중구 남대문로4가(북창동 유흥가). (02)752-3297
●미진
메밀국수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집'. 광화문 교보빌딩 뒤를 오래 지키다 최근 재개발로 르메이에르종로타운 빌딩으로 옮겨 성업 중이다. 달착지근한 국물에 무즙과 파채를 듬뿍 넣고 훌훌 마시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전만 못해졌다는 지적도 꽤 있다. 그다지 붐비지 않는 저녁식사 시간 두 번을 가서 맛봤을 때, 모두 면발이 퍼지고 엉겨 나왔다. '메밀국수', '비빔메밀', '온메밀' 각 6000원. 김치와 두부 따위를 얹어 돌돌 만 '메밀전병'(5000원)은 괜찮다. (02)732-1954
●스시조
가장 일본 정통에 가까운 메밀국수를 맛보고 싶다면.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으로, 주말마다 손님 앞에서 메밀국수와 초밥을 만들어 주는 '라이브 스시와 소바'를 한다.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8대2로 섞어 뽑은 국수와 전채, 샐러드, 초밥, 후식 따위로 구성된 점심 세트메뉴 6만·8만원, 저녁 세트메뉴 10만·12만원. 부가세·세금 별도. (02)317-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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