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자골목 '재정비',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9/0420/IE001042873_STD.jpg)
"너희들도 늙어봐. 이곳 탑골공원 먹자골목처럼 밥값이 싸고 편안한 데다 노인 대접 제대로 해 주는 곳이 있나. 이곳에 오면 밥내기 장기를 둘 친구들도 많이 있고, 술내기 바둑이나 화투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칠 수가 있어. 게다가 돈 만 원만 있으면 술밥 사 먹고, 이발(컷트 3500원)까지 해도 남아."
불황이 아무리 꼬리를 세게 쳐도 눈 한번 깜짝 하지 않는 '낙원'. 딱히 오갈 곳 없는 70~80대 노인들과 아무리 일을 해도 두툼한 지갑 한 번 가져보지 못한 가난한 서민이 돈 걱정 없이 한 끼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낙원'. 그 '낙원'이 종로3가 탑골공원 옆에 서 있는 낙원상가 지하시장과 그 주변에 스티커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먹자골목이다.
종로3가 먹자골목은 크게 네 곳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먹자골목은 탑골공원 정문에서 왼쪽 담을 끼고 낙원상가를 따라걸어 올라가면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사이에 끼어 있는 허름한 '돼지골목'(2009년 3월12일자 오마이뉴스 참조)이다. 이 돼지골목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돼지머리, 수육, 순대 등 돼지고기 부속음식은 거의 다 있다. 순대국밥 2500~3500원.
두 번째 먹자골목은 낙원상가 지하시장이다. 이 지하시장에 내려가면 파전, 부추전, 감자전, 고구마전 등 여러 가지 부침개를 파는 집과 순대국, 콩나물 해장국, 백반, 칼국수 등 밥을 파는 집 등이 난전에 줄지어 쪼그리고 앉아 있다. 이곳에 들어가 막걸리 한 병(2천원)과 부침개(한 접시 5천원)를 먹고 있으면 마치 시골 장터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세 번째 먹자골목은 낙원상가 오른 편, 운현궁으로 가는 비좁은 골목에 안방마님처럼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떡집과 아귀찜, 꼼장어집이다. 특히 이곳 떡집은 20여년 앞만 하더라도 모두 30여개나 있을 정도로 빼곡이 들어차 '떡전골목'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세대 입맛에 밀려 10여개 떡집만이 궁상을 떨고 있다.
네 번째 먹자골목은 탑골공원 정문에서 오른 쪽 담을 끼고 낙원상가 쪽으로 비좁게 나 있는 길 오른 편과 종로3가 5호선 4번 출구 쪽으로 쭈욱 늘어서 있는 황태국, 선지국, 콩나물 해장국, 냉면, 가정식 백반, 칼국수 등을 파는 집들이다. 이곳 밥집들은 2500원짜리 가정식 백반에서부터 아무리 비싸봐야 3천원을 크게 웃돌지 않는다.
▲ 종로3가 먹자골목 종로3가 먹자골목은 노인들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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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타고 종로3가 4번 출구로 나가자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에 내려 4번 출구 쪽으로 나와 낙원오피스텔 가는 길목 쪽으로 20m쯤 걸어가면 길 건너 낙원장 모텔과 세느장 모텔이 있다. 이 낙원장 모텔 골목으로 들어서면 수련집과 찬미식당, 남양식당, 부산집 등 2500원짜리 가정식 백반집들이 오랜 동무처럼 다닥다닥 어깨를 끼고 있다.
이 가정식 백반집들 중 가장 오래 된 집이 부산집이다. 이 집 가정식 백반을 휘어잡는 것은 조기조림과 병어조림이다. 밑반찬으로는 갓김치, 배추김치, 콩나물, 미역무침, 김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 가정식 백반 한 상을 받으면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다. 여기에 밥과 밑반찬은 얼마든지 공짜로 더 먹을 수 있다.
이곳에 갔다면 점심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 칼국수 전문점 찬양집도 꼭 들러 볼 만한 집이다. 4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 해물칼국수(3천원) 특징은 칼국수 양이 엄청나게 많고, 바지락으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맛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재수 좋으면 낙지 한 마리가 통째 들어 있을 때도 있다.
이 골목에서 나와 탑골공원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탑골공원 앞에 냉면 2천원, 김치국밥 2천원, 갈비탕 3천원 받는 비좁은 선비옥이 있다. 이 집은 식탁이 모두 8개로 점심때가 지나도 손님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손님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아버지이지만 간혹 30~40대 가난한 샐러리맨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 집 주인 배종수(48)씨는 "자주 오는 단골 손님들은 앉을 자리가 없으면 탑골공원을 한 바퀴 휘이 돌고 올 때도 많다"라며 "저희 집을 찾는 손님들은 다른 손님들이 많이 몰려들 때면 알아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아무리 재료값이 많이 올라도 음식 값을 올릴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손님들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 종로3가 먹자골목 불황이 아무리 꼬리를 세게 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낙원'이 종로3가 먹자골목이다
▲ 종로3가 먹자골목
돈 만 원만 있으면 술밥 사 먹고, 이발(컷트 3,500원)까지 해도 남아
오갈 데 없는 노인들 천국 탑골공원 먹자골목
탑골공원 먹자골목에 있는 황태식당에서 파는 황태해장국과 우거지탕은 2천원이다. 이 집은 낮은 가격을 '다다익선'으로 맞추기 위해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 집 주인 김순임(63)씨는 "이 주변 식당들이 모두 밥값을 1천~2천원 대에 맞추고 있기 때문에 값을 500원 정도 더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다"며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이 골목에 있는 '고향집'도 선지해장국과 순두부가 2천원이다. 이 집 또한 낮은 가격을 맞추기 위해 겨울과 여름에 스팀과 에어컨을 틀지 않는 등 안간힘을 다한다. 주인 박제환(40)씨는 "낮은 음식값을 맞추기 위해 여러 군데 시장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싸고 싱싱한 재료를 구입한다"며 "음식 맛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평양냉면(4천원)으로 이름 높은 유진식당은 설렁탕과 돼지머리 국밥을 2500원에 판다. 이 집 주인 문용춘(83) 할아버지는 "한 곳에서 현금으로만 오래 거래하다 보니 거래처에서 여러 가지 재료를 옛날 가격 그대로 준다"며 "경기침체로 다들 어려운 때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탑골공원 주변에 있는 부잣집 왕뼈 감자탕집과 선비옥은 냉면 한 그릇에 2천원이다. 그 곁에 있는 초원식당도 냉면 한 그릇에 2천원인데, 이 가격을 맞추기 위해 달걀을 넣지 않는다. 초원식당 콩국수 한 그릇은 1천원. 이 집 주인 이기복씨는 "1천~2천원으로 한 끼 떼우는 손님들을 바라보면 재료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격은 올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낙원상가를 끼고 있는 소문난추어탕(2008년 7월8일자 <오마이뉴스> 참조)은 가격이 맞지 않아 추어탕 대신 우거지얼큰탕(1500원)을 낸다. 소문난추어탕집을 지나 낙원상가를 끼고 탑골공원 쪽으로 들어가면 비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허름한 식당들이 이른바 돼지머리 부속고기를 파는 '돼지골목'이다.
▲ 종로3가 먹자골목 지하철 5호선 타고 종로3가 4번 출구로 나가자
▲ 탑골공원 먹자골목 손님들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아버지이지만
간혹 3~40대 가난한 셀러리맨들도 자주 눈에 띈다
"서민들과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디로 가라고..."
"요즈음 '재정비' '철거'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피맛골 철거에 들어간 서울시에서 곧 이곳 낙원상가를 철거하고, 탑골공원 주변 먹자골목 등도 재정비한다는 소문이 마구 떠돌아다니고 있어. 정말 큰일이야. 만약 이곳 탑골공원 먹자골목까지 철거되고 나면 서민들과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디로 가란 말이야."
탑골공원 왼 편 담을 따라 쭈욱 늘어선 먹자골목에서 막걸리내기 장기를 두고 있는 김아무개(73) 할아버지의 말이다. 김 할아버지는 "매일 이곳에 나와 2천~3천원짜리 점심을 사먹고 노인들과 어울리며 막걸리나 소주 한 잔 나눠먹는 게 낙"이라며 "추억과 역사가 서린 옛것을 보존하려 해야지 무조건 부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오후 4시께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도심재정비 1담당관실에 전화를 걸어 '낙원상가 및 주변일대 정비에 관한 사항'에 대해 물었다. 도심재정비 1담당관실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낙원상가 및 주변일대 정비 계획은 없다"며 "타당성 조사 용역을 했는데 주변에 탑골공원 등 문화유산이 너무 많아 규모를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처음에는 낙원상가와 그 주변 일대 정비만 할 계획이었는데, 그곳에 탑골공원이 있어 탑골공원까지 정비를 한다고 보면 3천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이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 한 뾰쪽한 수가 없다. 시에서는 시기가 너무 이른 것으로 보고 보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이러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지금 탑골공원을 중심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낙원상가와 그 일대가 곧 재정비된다고 어림짐작하고 있다. 이러한 소문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는 다름 아닌 서울시가 내놓은 도심재정비 계획에 '낙원상가 및 그 주변 일대 정비에 관한 사항'이 버젓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과 서민들이 주머니 걱정 없이 밥과 술을 느긋하게 먹을 수 있는 곳, 종로3가 '먹자골목'. 지금도 이 먹자골목에는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노인들과 가난한 서민들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60년대 오일장에서 보았던 정이 철철 흐르던 풍경, 그 가난한 사람들이 흑백필름처럼 오가고 있다. 그래. 이 살가운 풍경을 오래 간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 종로3가 먹자골목 고향집에서 먹은 콩나물 해장국
이 불황에도 가격 내린 어떤 식당들
"500원 모자라 굶는 손님 많은데… 가격 못올리겠어요"
국수 삶은 물로 설거지 '역발상 원가절감'… 손님 더 늘어
배 사장은 "원가를 아끼려고 가스레인지 위에 뚝배기를 2~3단으로 쌓아놓고, 조리하면서 생기는 열로 뚝배기를 따뜻하게 만든다"며 "500원이 모자라 밥 못 먹는 사람도 있는데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초(超) 고물가 시대, 음식 값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올 들어 한 달에 900곳씩 음식점이 문을 닫는 한계 상황에서도, 수십 년째 값을 올리지 않거나 도리어 내리는 곳도 있다.
이들 '가격 파괴' 식당의 놀라운 경쟁력의 비밀은 무얼까. 치열한 원가(原價) 절감 노력, 그리고 단골 고객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음식점 주인들의 정(情)과 의리였다.
◆"단골 배신 못해요… 우리가 아껴야죠"
탑골공원 근처 '부자촌 왕뼈 수제비 감자탕'은 올해 초 냉면 값을 3000원에서 2000원으로, 콩국수 값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내렸다. 전영길(61)사장은 "불황 때 물가를 따라 음식 값을 올리면 손님들이 안 오신다. 값을 내리니 손님이 1.5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콩국수와 냉면은 음식이 나온 뒤 보통 5분 만에 먹고 일어나기 때문에 테이블 회전이 빠르다. 가격을 내려도 손님이 더 찾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었다.
'선비옥'도 올 초 갈비탕 값을 5000원에서 3000원으로 냉면 값은 4000원에서 2000원으로 내렸다. 배 사장은 "가격을 내리니 손님이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인근의 '초원식당'은 콩국수 가격을 15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췄다. 냉면은 2000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면발을 싼 제품으로 바꾸고, 계란을 뺐다. 이기복 사장은 "원래 3000원짜리 메뉴가 많았지만, 1000원짜리 드시는 분들이 자존심 상할까봐 하나만 빼고 다 없앴다"고 말했다.
▲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3가‘소문난 해장국’에서 손님들이 1500원짜리
‘우거지 얼큰탕’을 먹고 있다. 이 음식점 권영희 사장은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손님들 덕분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영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더 싼 재료 찾아 경매시장으로
서울 동대문의 '짱가짜장'은 자장면이 1500원이다. 이 식당은 면을 삶고 씻은 물을 그릇 설거지에 쓴다. 한 종업원은 "면을 삶을 때 쓴 물은 뜨거워서 설거지가 잘 된다. 세제와 물을 동시에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료비를 아끼려 양배추 등은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를 받아오고, 기름 값 들어가는 배달 주문은 안받는다. 이 식당에선 모든 것이 셀프 서비스다.
종로3가 '황태식당'의 황태해장국과 우거지탕은 2000원이다. 김순임(62) 사장은 "2000원 없어서 굶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값을 올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식당은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식당이 문을 열기 전인 오전 5~10시 사이에 문을 열어 아침 손님을 받는다.
탑골공원 인근의 '고향집' 식당에선 선지해장국과 순두부가 2000원이다. 노인들이 끼니를 거를까 싶어 값을 올리지 못했다. 박제환(39) 사장은 "최근에 방앗간을 옮겨 원래 2만원 하던 들깻가루를 1만6000원에 들여온다"며 "작년에는 에어컨을 틀었지만 올해에는 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과 의리로 영업
종로3가 '유진식당'의 문용춘(82) 사장은 "20~30년간 한 거래처와 현금으로만 거래하면서 생긴 의리로 녹두·메밀·야채 등 주요 재료는 옛날 가격 그대로 공급받고 있다"며 "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집의 설렁탕과 국밥 값은 2500원에 고정돼 있다.
인근 '소문난해장국'의 우거지얼큰탕 값은 여전히 1500원이다. 권영희 사장은 "가게가 내 집이라 임대료를 안 낸다"며 "꾸준히 찾는 단골손님이 워낙 많아 낮은 가격에도 장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격을 올려도 학생과 군인에게는 할인해주는 곳이 있다. 남대문시장의 '한순자 칼국수'는 3개월 전에 각 메뉴의 가격을 500원씩 올렸다. 한순자 사장은 "재료 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이 올렸지만, 학생·군인·전경에게는 여전히 일반 판매가보다 싼 3000원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집은 칼국수를 먹든, 보리밥을 먹든 냉면을 공짜로 끼워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광화문 '송백부대찌개'는 최근 1인분에 5000원하던 부대찌개 값을 10년 만에 6000원으로 올렸다. 이 집은 라면과 밥이 무제한 서비스되는 집이다. 양국자(57) 사장은 "촛불집회 때 시위 막으러 온 전경에게는 5000원만 받았다"며 "배고픈 전경들이 밥 2공기에, 라면 3개씩을 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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