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문화, 미식… 예술로 물든 방콕[수토기행]
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입력 2023-07-15 03:00업데이트 2023-07-15 03:00
태국 방콕 ‘아트투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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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함께 예술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태국 방콕의 짜오프라야 강변. 석양이 질 무렵 사원 등 건물들이 물빛과 어우러져 예술 작품을 연출하는 듯하다.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데스티네이션 호텔(Destination hotel)’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데스티네이션 호텔은 고급스러운 시설과 서비스 등을 누리는 공간인 호텔이 여행의 중심이 되고, 부수적으로 주변 관광 명소를 즐기는 트렌드를 가리킨다. 특히 국가보다는 특정 테마를 내세운 해외 호텔을 더 선호하는 현상은 MZ세대를 중심으로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다. 태국의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은 예술 및 문화 여행을 테마로 내세운 데스티네이션 호텔로 유명하다.》
호텔 ‘137 필라스’의 로비에 걸린 미술작품. 직원들의 유니폼에도 이 작품이 새겨져 있다.
방콕 시내 중심가 수쿰윗에 있는 호텔로 들어서니 로비 한쪽 벽면에 전시된 대형 그림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해와 달, 연꽃 및 랏차프륵(태국 국화)을 연상시키는 화초들, 창(태국 코끼리) 등 신령스러운 동물을 묘사한 그림은 마치 한국의 십장생도를 보는 듯하다. ‘상서로운 길(Auspicious Path)’이라는 제목의 이 대형 그림은 2014년에 태국의 ‘국가 예술가’로 선정된 빠냐 위친타나산의 작품이다. 우주의 순환과 영속성,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호텔 투어를 안내하는 직원들의 유니폼에도 이 그림이 새겨져 있다. 예술을 강조하는 ‘137 필라스 스위트 & 레지던스 방콕’을 상징하는 듯하다.
호텔 로비뿐만 아니다. 태국 현지 예술가들의 그림과 조각품 등이 호텔 내 이곳저곳에 걸려 있다. 이처럼 호텔을 태국 작가들의 작품 전시 공간처럼 꾸민 데는 이유가 있다. 호텔의 총지배인인 니다 웡판렛(30)은 “예술을 통한 감정 정화 및 건강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투숙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히면서 “민관 협력 사업으로 호텔 주도의 ‘방콕 아트투어’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먹고 자는 데만 그치던 호텔이 진화해 예술과 문화라는 매개를 통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트투어는 오전 10시∼오후 4시, 호텔의 의전 차량 ‘루이’를 타고 진행된다. 온통 파란색으로 무장한 ‘루이’는 빈티지 런던캡(택시)을 연상시킨다. 캡을 이용한 시내 투어인 만큼 커플 또는 가족 단위의 소수 인원(최대 4명)으로만 진행된다. 태국 문화 예술 전문 가이드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맞춤형 투어 주제(미술, 문화, 미식, 웰빙, 카페 등)를 정한 후 직접 현장을 안내한다. 민관 협력으로 진행되는 아트투어이기에 호텔 고객이 아닌 일반 여행자도 신청을 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다음은 루이를 이용한 아트투어 명소들이다.
●방콕 현대미술에서 태국인을 읽다
방콕은 현재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국제 관광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예술과 문화가 필수라는 인식에서다. 2008년 방콕시의 주도로 시암스퀘어에 설치한 ‘방콕예술문화센터(BACC)’가 그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시암스퀘어의 방콕예술문화센터는 현대 예술과 관련한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1년 내내 개최한다.
입장료 없이 둘러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미술, 음악, 디자인, 영화, 사진 등 태국의 현대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1년 내내 열린다. 특히 이곳의 얼리 이어스 프로젝트(Early Years Project)는 태국 청년 아티스트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인데, 그들의 예술적 도전 정신을 감상할 수 있다. 태국인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들은 현대 태국인들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원기둥형 자연채광 구조로 조성된 센터 내부에는 전시 공간 외에 카페 및 레스토랑, 디자인 숍, 예술 도서관 등 부대 시설도 마련돼 있다. 예술인들에게는 아지트로,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히 쉬어가면서 현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빨간색 외벽이 인상적인 ‘짐 톰프슨 하우스 뮤지엄’
방콕예술문화센터와 함께 대표적 예술 문화 공간인 ‘짐 톰프슨 하우스 뮤지엄’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태국 문화에 심취해 태국 실크 산업을 전 세계에 알린 컬렉터이자 건축가인 짐 톰프슨(1906∼1967·실종)을 기리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심이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열대우림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이 인상적이다. 1959년에 완공된 짐 톰프슨 하우스는 태국 전통인 아유타야 양식으로 지어진 지붕과 붉은색 건물 외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톰프슨은 집을 짓는 과정에서 태국의 전통적인 종교의식을 그대로 행했고 심지어 길일을 점쳐 입주하는 등 태국의 고유 풍속을 지켰다. 또한 그는 완공 이후 자신의 집과 함께 동남아 전역에서 수집한 예술작품들을 일반에 공개한 뒤 여기서 생기는 수익금을 태국 내 자선단체 및 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했다. 박물관 바로 옆으로는 ‘짐 톰프슨 아트 센터(JTAC)’가 있다. 텍스타일 디자인을 소개하는 동시에 다양한 현대미술 전시회 및 워크숍이 열리는 공간이다.
●태국 전통문화의 산실, 왓포 사원
두 거인 석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왓포 사원.
태국의 전통문화에서 불교는 깊숙한 뿌리쯤에 해당한다. 이러한 태국 불교 문화를 상징하는 명소 중 하나가 ‘왓포 사원’이다. 왕궁 뒤편에 자리한 이 사원은 방콕에서 규모가 제일 크고 오래된 왕실 사원이다.
이 사원은 16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가 버마의 침략으로 무너진 후 태국의 현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창시자 라마 1세(1737∼1809)에 의해 복원됐다고 전해진다. 1832년에는 라마 3세가 이곳에 거대한 와불상을 설치하면서 왕실 사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부처가 열반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와불상은 길이 46m, 높이 15m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불상의 발바닥은 자개로 정교하게 세공돼 있고, 발바닥 중앙에는 차크라를 상징하는 문양이 인상적이다. 와불이 워낙 크다 보니 발바닥 쪽에서 머리 쪽을 바라보아야만 거대한 와불상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불상 옆에는 인간이 겪는 108번뇌를 의미하는 108개의 청동 그릇이 놓여 있다. 여기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왓포 사원은 라마 1세가 태국에서 최초로 지은 공공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전통 타이 마사지가 시작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한데, 현재는 전통의학센터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사원 동쪽 끝 별관에 있는 전통 마사지 스쿨은 예약 표를 받고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많다.
한편 왓포 사원 경내에는 퀸 시리낏 섬유 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태국 전 국왕(라마 9세)의 아내이자 현 국왕 마하의 어머니인 시리낏 여왕(91)이 대외 행사 때 입고 다녔던 드레스들이 전시된 곳으로 유명하다. 젊은 시절 빼어난 미모로도 인기를 끌었던 시리낏 여왕은 태국 전통 옷감에 관심을 기울여온 패션 예술가이기도 하다.
●맛으로 무장한 호텔 미식 문화
방콕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 ‘137 필라스’의 루프톱 인피니티풀. 투숙객들은 수영하면서 시티뷰를 즐길 수 있다.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루이 투어’를 마친 후 137 필라스에서 고급스러운 호텔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호텔은 34개 객실 모두가 최상층부에 위치한 스위트룸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 도심의 특급호텔보다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럭셔리와 아트에 초점을 맞춘 인테리어, 응접실과 널찍한 발코니 등을 갖춘 공간, 그리고 방콕 도심을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루프톱 인피니티풀 등으로 인스타그램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텔에서는 맛 문화도 최고급으로 즐길 수 있다. 이 호텔의 대표적인 미식 요리 코너인 ‘반 보르네오 클럽’, 칵테일 만들기 체험과 페어링 음식을 제공하는 ‘잭 베인스 바’, 제철 요리를 제공하는 고급 레스토랑 ‘니미트르’ 등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호텔이 아닌 방콕의 전통 맛집 프로그램도 호텔 측에서 준비하고 있으니 먹거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방콕 도시가 건설되던 라마 1세 시대에 조성된 클롱옹앙(옹앙 운하). 서울의 청계천처럼 친환경 하천으로 거듭난 곳이다.
이 외에도 호텔에서는 음악, 휴양과 휴식, 역사 유적, 클롱옹앙(옹앙 운하) 같은 환경과 자연을 아우르는 명소 등 다양한 주제의 아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방콕 호텔의 야심찬 아트투어는 관광 여행업계에도 새 바람을 일으킬 것 같다.
글·사진=안영배 기자·철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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