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쇠뿔바위봉
기암(奇巖)과 솔섬 낙조(落照), 환상적인 콜라보!
내변산의 비경과 서해 일몰의 장엄함에 감탄하다
변산의 낙조 명소 솔섬에서 본 일몰. 소나무 자라는 외딴 섬과 어우러진 노을이 아름답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언제나 12월이 되면 등산 애호가들은 산행과 낙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정리의 시간’이 필요해서다. 특히 가족이나 산악회원들끼리 낙조산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다. 구성원들과 석양을 감상하며 송년모임까지 겸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여행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송년산행과 낙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상지는 주로 서해안에 산재해 있다. 바닷가에 인접한 산에 오르면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석양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실 서해안의 낙조 명소들은 접근성 때문에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했다. 그러나 정말 조망이 좋은 곳은 산 위다. 시야가 터진 산정에 올라 감상하는 석양은 바닷가와는 확실히 다른 감동을 준다.이 달 특집 낙조산행 대상지로 변산의 기암봉 ‘쇠뿔바위’를 선택했다. 이 내변산의 산줄기는 탐방객이 비교적 적고 호젓해 여유로운 산행이 가능하다. 사철 많은 탐방객으로 붐비는 내소사 방면과 달리 조용히 송년산행을 즐기기 좋은 환경이다. 물론 접근성은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자가용 차량이나 전세버스를 이용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어수대에서 우슬재로 이어진 계곡길의 수려한 단풍빛.
전망대에서 본 고래등 바위와 서쇠뿔바위. 등산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곳들이다.
변산 낙조는 예로부터 유명해
변산은 산과 바다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만나는 땅으로 낙조의 격이 다른 곳이라 불린다. 산세가 수려하고 해변이 아름다운 변산의 특별함은 예로부터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고려 후기 명문장가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전집> 제9권에 ‘변산은 예로부터 천부天府로 불리며 좋은 재목이 많아 동량으로 쓴다’는 내용이 나온다. 천부는 산천과 물산이 좋은 곳을 말한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변산을 ‘영주산’이라 하고, 다른 기록에는 ‘봉래산蓬萊山’이라고도 하여, 고창의 방장산, 고부의 두승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꼽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십승지의 하나로 언급했다. 그밖에도 많은 기록이 있는데, 이는 비교하기 어려운 변산의 빼어남 덕분이라 하겠다.
서해안의 산 중에 ‘낙조대’라는 이름이 붙은 명소가 적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낙조를 보기 좋은 산 속의 명당자리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변산에도 낙조대가 있다. 조선 후기에 쓰인 최초의 변산 유산록인 심광세의 <유변산록遊邊山錄>에도 낙조대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그는 산 속의 명당에 자리한 묘적암이라는 암자에서 하룻밤을 머무르며 월정대月精臺에 올랐다고 기록했다. 지금의 월명암이 묘적암 터로, 월정대가 현재 낙조대로 불리는 암봉으로 추정된다. 변산의 비경 중 하나인 월명낙조는 이렇게 오래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묶여 낙조대 답사가 불가능하다.
변산의 암봉에 올라 낙조를 볼 수는 없게 됐지만 실망할 것은 없다. 변산반도 서쪽의 여러 해변에서 만나는 일몰 풍광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와 해변의 기경이 어우러진 낙조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다. 채석강과 솔섬, 사랑의 낙조공원 등 해안을 따라 낙조명소가 흩어져 있어 산행 후 바닷가에서 일몰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지장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취재팀.
바위산 보는 즐거움이 큰 곳
내변산의 어수대御水臺에서 쇠뿔바위봉 산행을 시작했다. ‘임금의 물’이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지닌 곳이다. 평평한 바위가 깔린 동그란 연못이 병풍처럼 솟은 바위에 둘러싸인 모습 또한 특이하다. 이 어수대 위에는 왕재암과 석재암이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이곳에서 3년 동안 머무르며 왕재王在, 석재釋在, 어수御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어수대 오른쪽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섰다. 등산로 입구의 이정표에 ‘쇠뿔바위 3㎞, 청림마을 5㎞’라고 쓰여 있다. 완만한 비탈길을 따라 오르니 주변의 숲이 온통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있다. 올 가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고운 단풍빛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일 년 중 산이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마음껏 즐겼다.
점차 가팔라지는 산길은 어느새 능선에 가까워졌다. 잠시 뒤 숨을 돌릴 수 있는 고갯마루는 지형도에 우슬재로 표기된 곳이었다. 이정표를 보고 능선을 따라 계속 고도를 높였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을 지나, 벽처럼 가파른 바위지대의 계단을 통과해 올라서니 비로소 시야가 터졌다.
“바로 건너편에 솟은 우금산도 잘 안 보일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하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변산을 찾으니 기분이 상쾌합니다.”
취재산행을 함께하기 위해 목포에서 올라온 임연택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이면 높고 푸른 하늘이 펼쳐지던 산자락 위에 뿌연 먼지구름이 덮여 있었다. 산행하기 좋은 날은 아니었다. 환경오염과 기후 변화가 산을 오르는 행위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마스크가 등산 필수장비가 될 날도 멀지 않을 듯하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산행을 이어갔다.
지도상의 비룡상천봉(438m)을 지나니 비교적 완만해진 능선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 주능선 위에는 묘지가 많았다. 바위산 중간의 숲이 우거진 완만한 능선에는 봉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록 높지는 않지만 풀도 자라기 힘든 험준한 바위산 위에 묘를 쓴 것이 신기했다.
지도상에 쇠뿔바위봉이라고 표기된 봉우리에 도착했다. 해발고도는 469m. 이 코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내변산 최고봉 의상봉(509m)이 바로 맞은편에 있다. 비슷한 눈높이의 그 산 정상에 세운 국가시설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봉우리는 마천대라고도 불렸는데, 신라 고승인 의상대사가 ‘의상사’라는 절을 세워 의상봉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바위산 보는 맛이 좋은 코스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소뿔처럼 솟아 있네요!”
임연택씨의 말대로, 의상봉보다는 바로 앞에 솟은 쇠뿔바위의 모습이 더 장관이었다. 우뚝하게 솟은 모습이 진안 마이산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정상 남쪽의 바위 절벽 위에 조성된 전망대에서 보면 더욱 역동적인 풍광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앞으로 뻗은 고래등 바위와 어우러진 쇠뿔바위의 날카로움이 인상적이었다. 쇠뿔바위봉 전망대에서 보는 조망이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다. 날씨만 좋으면 내변산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드는 장소다.
① 쇠뿔바위봉 코스는 수시로 아찔한 절벽을 동반한 암릉지대를 지나야 한다. ② 낙엽이 두텁게 깔린 산길을 걷고 있는 임연택씨. ③ 어수대 입구의 등산로 표지판. ④ 쇠뿔바위봉 전망대 앞에 서 있는 기암.
남창마을에서 보면 영락없는 ‘쇠뿔’
전망대를 뒤로하고 급경사 내리막 계단을 따라 고도를 낮췄다. 긴 계단을 통과해 내려서면 다시 평범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잠시 뒤 나타나는 또 하나의 바위산인 지장봉의 위엄 또한 대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장봉 남쪽의 널찍한 바위지대에서 바라보는 서쪽 뱀사골 풍광이 신비로웠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장바위’와 굽이치며 부안호로 흘러가는 아늑한 골짜기가 선계를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평화로운 산자락을 바라보며 잠시 바위에 앉아 숨을 돌렸다.
새재로 내려서는 길은 숲길이었다. 이 능선길 주변에도 묘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나지막하지만 새가 넘어간다는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별다른 특징은 없는 곳. ‘청림마을 0.3㎞↑, 쇠뿔바위 1.7㎞·어수대 4.7㎞↓’ 이정표가 붙어 있었다. 중계교로 가려면 계속 능선을 타고 3km를 더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청림마을로 하산하기로 했다. 해변에서 낙조를 감상하려면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을로 내려서는 산길은 정말 편안했다. 산책로처럼 완만한 숲길을 따라 300m 정도 내려서니 마을길이 시작됐다. 빨간 홍시가 매달린 감나무가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임연택씨의 차를 세워 둔 마을회관 부근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쇠뿔바위봉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망대가 있던 서쇠뿔바위와 그 옆의 동쇠뿔바위가 소의 두 뿔처럼 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웅장산 바위산이 정말 장관이었다.
산행길잡이
변산의 쇠뿔바위봉 탐방로는 아찔한 암릉 구간이 많지만 시설이 잘되어 있어 중급자 코스로 분류된다. 어수대 초입 부분 경사진 탐방로를 30분 정도 올라가면 능선이 나온다. 능선을 따라 1시간 정도 산행을 하면 쇠뿔바위가 나온다. 쇠뿔바위를 지나가는 탐방로는 암벽에 설치된 난간을 잡고 올라가는 탐방로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겨울철 산행 시 주의가 필요하며 등산용 스틱과 아이젠 등 안전장비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또한 쇠뿔바위 정상 부근 탐방로는 암릉 구간으로 탐방 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어수대에서 출발해 쇠뿔바위봉과 지장봉을 거쳐 새재에서 청림마을로 하산하면 총 5km 거리로 산행만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계속 능선을 타고 중계교까지 이어지는 총 8km 산행도 가능하다. 자세한 정보는 변산반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 홈페이지(http://byeonsan.knps.or.kr)에서 얻을 수 있다. 문의 변산반도 국립공원사무소(063-582-7808).
교통
서울에서 승용차로 출발하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부안IC나 줄포IC로 나와 부안으로 진입하면 된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부안행 고속버스는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하루 17차례 왕복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2시간 50분.
부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변산으로 진입하는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부안에서 어수대 입구인 남산 정류장과 중계교로 가는 사자동 방면 농어촌 버스는 6시 30분, 8시 20분, 10시 25분, 13시 20분, 15시 40분, 17시 45분, 19시 40분 하루 6차례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50분가량. 사자동 내변산에서 부안행 버스는 들어온 버스가 5차례만 나간다.
숙박
쇠뿔바위봉 인근의 내변산에는 숙박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격포나 변산해수욕장 등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고사포해수욕장이나 변산해수욕장, 상록해변 등 낙조가 좋은 해변에 캠핑장이 산재해 있어 야영을 즐기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사포해변의 사설 캠핑장은 겨울철에도 운영한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는 구역은 내년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맛집(지역번호 063)
부안의 대표적 먹거리는 바지락죽이다. 변산온천 인근의 김인경바지락죽집(583-9763), 원조바지락죽명가(584-4874)가 있고, 고사포해변 근처에 자리한 변산명인바지락죽(584-7171)도 잘 한다.
■변산의 낙조 명소들
변산은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산 위의 낙조명소인 월명암 낙조대는 이제 갈 수 없지만, 여전히 바닷가에는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특히 변산반도 북쪽의 굽이진 해안을 따라 좋은 포인트들이 포진해 있다. 송년산행을 마치고 찾아가기 좋은 변산의 해넘이 명소들을 소개한다.
변산 솔섬
변산 도청리의 솔섬은 노을과 바위섬의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압권이다.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바위섬과 그 위에 자라난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어 그림 같은 광경을 연출한다. 전북 학생해양수련원 안쪽의 작은 자갈들이 깔린 해변 너머로 보이는 섬이 바로 솔섬이다. 사진 동호인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해, 일몰 시각이 가까워지면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 솔섬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솔섬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강렬한 노을을 만날 수 있다.
채석강 해변과 닭이봉
변산반도의 대표적 명승지 채석강은 낙조도 멋지다. 채석강 해안절벽을 품고 있는 닭이봉전망대에 오르면 격포 일대가 한눈에 든다. 북쪽으로는 적벽강과 격포해변이 펼쳐진다. 탁 트인 풍광에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이곳은 몇 해 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10대 일출일몰 명소 중 하나로 꼽은 곳이다. 격포 주차장에서 약 800m 떨어진 닭이봉은 걸어서 15분이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산에 오르기 힘들면 격포 방파제나 해변도 좋은 노을 감상 포인트다. 채석강의 기묘한 바위와 어우러진 낙조가 훨씬 낫다는 사람들도 많다.
변산해수욕장 사랑의 낙조공원
변산해수욕장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한 ‘사랑의 낙조공원’은 부안군이 주최하는 해넘이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하얀 백사장이 인상적인 변산해변과 멀리 보이는 하섬이 아름답게 조화되는 낙조가 인상적이다.
원래 전망대 용도로 사용하던 팔각정만 있었는데,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과 관련된 여러 종류의 조형물을 세워 소공원으로 단장했다.
사랑의 낙조공원답게 여기 저기 ‘하트’ 형태의 시설물을 조성해 두었다. 도로 변에 차를 세울 공간이 부족하지만, 변산해수욕장에서 공원까지 데크길이 연결되어 있어 걸어 갈 수 있다.
동아지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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