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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남극 대륙

박연서원 2018. 12. 20. 09:22

행운과 불운이 눈과 얼음산에 덮인 곳… 의지의 땅이 유혹하다

조성하 전문기자 입력 2018-12-08 03:00수정 2018-12-08 03:00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남극 대륙
빙산 위에서 포효하는 바다사자 뒤로 관광객을 태운 크루즈선 오션노바호가 빙산과 섬 사이
얼음바다를 헤치고 있다. 신발끈여행사 제공

남극점 정복을 향한 로알 아문센(노르웨이)과 로버트 스콧 대령(영국 해군)의 레이스(1909∼1912년). 지난 세기 이보다 뜨거운 경쟁이 있을까 싶을 만치 드라마틱했다. 그 방아쇠를 당긴 건 아문센이었다. 그런데 애초 목표는 북극점이었다. 목표를 바꾼 건 시동도 걸기 전 날아든 비보 때문. 로버트 피어리(미국 해군 장교)의 북극점 정복(훗날 취소됨) 발표였다.  

1910년 8월 9일. 아문센의 프람호가 출항했다. 목적지는 북극. 배는 프리드쇼프 난센(북극해 횡단을 시도했던 노르웨이 탐험가)이 북극 탐험을 독려하며 준 선물이었다. 그런데 출항 시 탐험대도 남극행은 몰랐다. 공표된 건 9월 6일 마데이라 제도(포르투갈 서방 1000km)에서다. 아문센은 탐험대의 경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뱃머리를 돌렸다. 당시엔 스콧 대령도 테라노바호로 남극을 향해 항진 중이었다. 경쟁자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그러면 아문센은 왜 이런 기만책을 쓴 걸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경쟁이 알려지면 영국인의 스콧 지원이 늘어나고 조국 노르웨이도 영국과 긴장을 피하려 자신에 대한 후원을 끊을 수 있어서였다. 그건 스콧도 마찬가지였다. 남극점 156km 앞까지 갔던 섀클턴(1907년 탐험대장)에게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는 데다 미국지리학회(내셔널지오그래픽 발행처)도 피어리를 남극점에 보낸다고 발표한 마당이었으므로.  

양편의 탐험 준비는 이런 상황 속에 어렵사리 진행됐다. 서로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그런 마당에 밝혀진 아문센의 남극행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스콧의 분노와 절망감이 어땠을지 대략 상상이 된다. 그가 소식을 접한 건 호주 멜버른 기항 중(10월). 그건 스콧의 탐험을 목숨 건 경쟁으로 내몬 악마의 출발 신호탄이 됐다.  
남극점 156km 앞에서 돌아온 섀클턴 탐험대(1907~1909년)의 당시 월동기지. 로스섬 맥머도만의 로이즈곶에 있다. 2005년 에드먼드 힐러리 경(에베레스트 초등자)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숨진 섀클턴의 영혼이 따뜻하게 맞아주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밝혔었다.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그런 두 탐험대가 남극에 상륙한 건 1월. 스콧은 4일, 아문센은 그 열흘 후인데 두 팀은 서로 650km 떨어진 곳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그 여름 석 달을 중간 보급소 설치에 매달렸다. 가끔은 마주치기도 했다. 정반대로 치닫던 운명은 알지 못한 채.

4월 21일, 극야(온종일 해가 뜨지 않는 기상)의 겨울이 시작됐다. 다시 해를 본 건 8월 24일. 개 썰매에 짐을 실은 아문센 대가 먼저 출발(10월 20일)했다. 스노모빌과 몽골 조랑말에 짐을 실은 스콧 대의 출발은 11월 1일. 아문센 대의 탐험은 순조로웠다. 최종 보급소에 도착할 당시 확보 식량이 100일 치나 돼 이듬해 2월 6일까지 여유를 확보할 정도였다. 반대로 스콧 대는 고전의 연속. 스노모빌 고장에 조랑말 동사 및 크레바스 추락…. 마지막엔 대원(5명)이 짐 320kg을 썰매로 끌었다. 결국 남극점 선착은 아문센 차지(12월 4일)가 됐다.  

아문센은 나흘을 머물다 텐트에 식료품과 순록털옷을 남겨두고 떠났다. 스콧 대의 물자 부족을 예견한 조처인데 당시 경쟁자는 아직도 570km 밖에서 헤매고 있었다. 비어드모어 빙하 통과 때엔 서로가 교차했다. 물론 150km나 떨어져 몰랐지만. 스콧 대가 패배를 확인한 건 도착(1월 17일) 하루 전. 개 발자국과 썰매 잔해를 통해서다. 도착한 남극점에선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꼈다. 스콧은 텐트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남긴 물건은 부담 없이 쓰고 이 편지는 노르웨이 국왕에게 부쳐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건 아문센의 남극점 정복 증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 치욕의 편지였다. 

오션노바호로 남극해의 사우스셰틀랜드제도에 당도한 여행자들이 조디악에 옮겨 타고
상륙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신발끈여행사 제공
1월 26일 아문센은 전초기지에 무사 귀환했다. 그리고 나흘 후 출항해 3월 7일 호바트(호주 태즈메이니아주)에 입항했다. 스콧 대는 귀로에 연료와 식량 부족, 부상 재발의 연속 악재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엔 식량이 바닥나 전원 동사했다. 스콧의 마지막 일기로 그날은 3월 29일로 추정됐다. 11월에 도착한 구조대는 이들이 전원 죽지 않을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스콧 등 세 명이 있던 텐트 위치가 마지막 식량 저장고에서 불과 800m 거리라는 것을 확인해서다. 일기엔 그 거리가 17.7km로 적혀 있었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회자되는 대목이다.  

수습된 스콧 등 세 명의 시신은 남극에 묻혔다. 유품은 전초기지(윈턴 캠프)에 보관했다. 현재 ‘스콧 탐험대 기념관’이 거기로 이 판잣집은 탐험대가 싣고 가 조립해 사용했던 것이다. 훗날 이 경쟁의 승패 요인은 이렇게 분석됐다. 아문센은 북극 원주민 이누이트족의 전통 방식을 배워 극지 생존에 성공한 반면 스콧 대령은 설상차 같은 첨단 기술과 이론에만 의존해 실패했다고. 물론 영국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정복보단 과학탐사 성격을 띠어 진행 속도가 느렸던 것뿐이라는 분석이다.

▼“죽은 사자보다 산 당나귀가 낫다”▼

남극 종단에 실패한 ‘성공한’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실패하고도 존경받는 이가 있다. 영국인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경(1874∼1922)이다. 그는 남극을 네 번이나 탐험했다. 처음 두 번은 남극점을 정복하기 위해, 세 번째는 남극대륙을 걸어서 가로지르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엔 미확인 섬과 미답지 자원 조사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남극점 정복의 영광은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에게 돌아갔고 섀클턴은 탐험 중에 남극의 사우스조지아섬에서 과로로 숨졌다. 이 사실만 보면 그의 남극 탐험에서 존경받을 점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실패자’라 불리며 지금까지 인류에게 기억되는 이유. 그건 그의 이 말에 담겨 있다. ‘죽은 사자보다는 살아있는 당나귀가 더 낫다.’


이건 그가 천신만고 끝에 귀환(1914년)해 부인과 해후하며 한 말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탐험에 대한 심중을 드러낸 것인데 남극점을 정복하더라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허명이란 판단이다. 그렇다. ‘위대한 실패자’란 타이틀은 비록 남극점 정복엔 실패했어도 살아서 돌아온, 그것도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전원을 가족의 품에 돌려보낸 위대한 리더에 대한 최고의 칭송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찬사에 충분한 자격을 지닌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의 최초 남극 탐험은 1901년이었다. 로버트 스콧 탐험대의 일원이었는데 대참패였다. 그는 병을 얻어 송환됐다. 두 번째는 6년 후(1907년). 이번엔 탐험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역시 실패. 악천후와 식량 부족 때문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남극점 156km 앞까지 진출인데 누구보다도 가까이 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남극점이 4년 후 아문센에게 정복돼서다. 그럼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남극점을 지나 반대편 바다까지 관통하는 탐험(1914∼1916년)이었다.

‘위대한 실패’는 거기서 태어났다. 1914년 12월 사우스조지아섬을 출발한 탐험선 인듀어런스호가 이듬해 1월 웨들해(海) 빙산에 갇혔다. 그런 상황은 9개월이나 지속됐고 결국 배는 침몰했다. 빙붕(氷棚·바다로 떨어진 남극대륙 얼음이 서로 평평하게 붙은 것)에 피신한 탐험대는 이때부터 얼음바다를 전전했다.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생환 길을 모색하며 바다에 표류하고 섬에서 지내기를 다시 9개월.

마침내 이들은 구조됐다. 사우스조지아섬을 찾아 대원 2명만 데리고 떠난 섀클턴 대장이 구조대를 데리고 넉 달 만에 돌아온 것이다. 그는 거친 남극해를 풀잎 같은 보트로 1300km를 헤쳐 후스빅(유인 포경 기지)에 기어코 당도했다. 대원 28명 전원 생환. 그건 섀클턴 리더십의 승리다. 포기하지 않고 초인적 의지로 자신의 책임을 완수한 인간 승리의 드라마였다.  

그 감동의 현장은 멀다. 하지만 그걸 공유할 곳은 가까이에 있다. 부산 국립해양박물관(관장 주강현)의 ‘남극―정물·궤적·유산’ 전시(내년 3월 3일까지)다. 여기엔 섀클턴과 스콧 탐험대의 부츠, 고글 등 원정 유품(뉴질랜드 캔터베리박물관 소장품)이 있다. 남극해의 로스섬에서 제인 어셔(뉴질랜드)가 촬영한 사진 등 영상물도 기다린다. 우리 남극 탐험 역사도 있다. 1985년 한국해양소년단 탐험부터 1988년 세종기지 설립까지. 탐험대 이동화 씨의 일기와 장비도 본다. 이 전시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메시지 그 자체다. 남극이 처한 위기가 곧 지구와 인류의 그것이란 인식 공유다.  

주 관장은 “남극은 인류 시련의 상징으로 다가왔다”며 “탐험의 궤적을 되짚으며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획한 전시”라고 밝혔다.


●남극 여행 GUIDE

남극 여행은 남반구 여름철인 11월∼3월 중순(4개월 반)에만 가능하다. 최고 시즌은 1월. 최근엔 국내에도 남극 여행 상품이 등장했다. 신발끈 여행사의 남미(아르헨티나) 경유 프로그램으로 전 일정 한국인이 인솔한다. 대표 상품은 ‘남극 크루즈&플라이트 11일’(899만 원).



산티아고(칠레)에서 우수아이아(아르헨티나)로 이동해 크루즈배로 드레이크해협을 횡단해 남극해 셰틀랜드 제도를 찾는다. 이후엔 배에서 숙식하며 사우스셰틀랜드제도 섬과 남극해를 주유한다. 남극조약은 여행자의 상륙은 허가하지만 잠을 자는 것은 불허. 섬 이동 시엔 조디악(고무보트)으로 갈아탄다. 섬의 관광 포인트는 턱끈펭귄 젠투펭귄 바다코끼리 물범의 서식지.  

선상 여행을 마치면 킹조지섬에서 항공기로 푼타아레나스(칠레)로 이동해 귀로에 오른다. 산티아고와 미국 경유 항로. 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 관광이 포함된 13일(1009만 원부터), 파타고니아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의 W-트렉 트레킹이 포함된 17일 일정(1199만 원부터)도 있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