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기타연습실

열애 - 윤시내

박연서원 2018. 11. 15. 09:19

열애

        작사 : 배경모, 작곡 : 최종혁, 노래 : 윤시내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생명 다하도록 이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윤시내



적우


웅산


이선희


임태경


김경호


소냐(Sonya)


세상을 바꾼 노래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윤시내 '열애' (1979)

1980년대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어떤 전형

한 순간, 모든 것을 불살라버리는 예술인들이 있다. 요즘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고 또 지금도 존재한다. ‘열애’를 부르는 윤시내가 바로 그러했다. ‘뜨거운 연애’란 제목의 의미가 강조하듯, 노래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처럼 강렬하게 타올랐으며 다분히 신파적인 분위기조차도 감싸 안으며 그 뒤로도 끊임없이 기억될 명장면을 주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1979년이 끝나갈 즈음 처음 공개된 ‘열애’는 TBC 국제가요제 한국대표를 선발하는 자리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고, 이듬해 본선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윤시내라는 이름을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명곡이다.

 

어느 곡에든 사연이 붙어 있기 마련이지만, 이 곡의 탄생비화는 그야말로 절절하다. 사실 노랫말은 투병 중이던 한 방송국 PD가 아내에게 보내는 애잔한 사랑의 서약이었다. 그가 죽은 후 아내는 작곡가 최종혁에게 노랫말을 보냈고, 그는 이 에피소드를 극적으로 포장하는 최선의 길을 알고 있었다. 세련된 팝 스타일에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 선율이 부가된 희대의 노래는 그렇게 태어났다.

 

기실 윤시내의 분출은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모든 것엔 전조가 있기 마련이니까. 1978년 제2회 국제가요제에서 열창했던 ‘공연히’가 그 곡이었다. 날 바짝 선 사이키델릭과 재즈 록의 연주 사이를 뚫고 나오는 그녀의 불길한 목소리는 미래의 어느 날을 예고하는 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그것이었다. ‘열애’를 부를 때의 창법과는 사뭇 다른 인상이다. 하지만,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영화 [별들의 고향]에 삽입된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를 불렀던 그녀를 떠올려보자. 세상에서 가장 순진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모두의 예측을 비웃듯 반대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와 ‘열애’를 동일인의 노래라 상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노래마다에 제각각의 색깔을 부여한 윤시내의 해석력이 돋보이는 측면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열애’에서 윤시내가 토해낸 ‘인생의 순간’은 1980년대 드라마틱한 구조의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용과 이은하와 정수라를 비롯한 숱한 가수들이 ‘열애’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잊혀진 계절’을 비롯한 1980년대 초중반의 어덜트 컨템포러리는 ‘열애’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단순한 순애보로 그칠 수도 있었던 노래는 기대 이상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가요계의 텃밭을 풍성하게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다.

 

‘열애’는 가요사에 새겨진 가장 애절하고 비범한 사랑 노래다. 나직하게 손을 뻗는 도입부의 내레이션, 서서히 감정이입을 촉구하는 중단부, 치밀하게 계산된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전성기 윤시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적 제스처까지. 한 편의 연극무대와도 같은 장엄한 구성은 동시대 주류 가요가 해낼 수 있는 극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녀가 선보인 신비롭고 진지한 무대 연출 덕분에, 갑작스런 그녀의 사라짐 역시 그 연출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로도 윤시내는 ‘공부합시다’, ‘DJ에게’, ‘그대에게 벗어나고파’ 등 많은 히트곡을 배출하며 1980년대의 한 시점을 풍미했다. 그러나 후속곡들 중 어느 곡도 ‘계절의 폭풍’을 몰고 오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열애’의 충격이 대단했던 탓이었으리라.

 

이제 그녀의 노래들은 방송에서 들을 수 없다. 그녀가 운영하는 서울 근교의 카페를 우연히 방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녀가 활동하던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녀에 대한 후일담은 지금 예능 프로에서나 간혹 모창이라는 명목하에 근근이 재생되고 있을 뿐이다(최근 부활과 함께 한 ‘이별에서 영원으로’라는 곡이 나오긴 했다). 그러나, 세월의 풍화작용도 ‘열애’가 남긴 자취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의 보편적 화두인 사랑은 위대하고, 사랑의 노래는 그보다 더 위대하므로. ‘열애’는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으로 여기 이렇게 남아있다.

 

-100비트 | 이경준 (100비트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잡지 [오이뮤직], [프라우드], [브뤼트]의 필자로 있었고 현재는 웹진 '100비트' 편집위원, '보다', 매거진 [독서평설], [유레카]의 필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