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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허홍구 '늑대야 늑대야' 외

박연서원 2018. 9. 7. 09:11

 

 

♂️늑대야 늑대야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섭지 않아,
나는 이제 먹이감이 되지 못하거든"ㅎㅎ

이제는
더 이상 먹이감이 되지 못해
늑대가 무섭지 않다는 권여사와
아직도 늑대라며 큰소리치던 내가
늦은 밤까지 거나하게 취했지만
우리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날 권여사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아- 나는 아직도 늑대가 분명하다!


<글 (詩) : 허 홍 구>

♀️총알보다 빠르다

여자 홀리는데
날쌘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은 그를 총알이라 불렀다.

총알이 점찍어 둔 여자를
내가 낚아 챈 일이 있고부터
친구들은 나를 번개라 불렀다!

3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대폿집에 몇이 모여 옛날을
이야기 하다가...

지금도 총알보다는
번개가 더 빠르다고 강조하였다.

총알이란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우리들 보다 훨씬 더 빠른
세월이란 놈이 있다고,
우리는 벌써 일흔 고개를
넘어서고 있었다!


<글 (詩) : 허 홍 구>

♂️아지매는 할매되고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글 (詩) : 허 홍 구>

 

무서운 일

 

쌔임(선생님)요

/ 와 (왜)

 

결혼하면 마누라하고 꼭 같이 자야합니꺼?

/ 빌어먹을 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놈아 !

와, 같이 자는 게 싫은 기가 아니면 겁이 나나

 

그 기 아니고요

피곤할 때는 혼자 자는 게 훨씬 편한데....

그리고 여름엔 디기 더울텐데

 

/ 미친놈, 잠만 잘라고 결혼하나

그래, 니 말이 맞다

나도 오십이 훨신 넘어서야 알게된 일이지만

자기 싫을 때도 같이 자야하는 결혼이라면

오ㅡ 그건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무섭다

 

미친 사람이

칼 들고 있으면 무섭다

무식한 사람이

돈많은 것도 무섭고

권력을 잡으면 더 무섭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실력 있고 잘난 사람들 중에

사람이 아닌 사람은 더 무섭다

참 무섭다

언제나 웃고 있는

너그러워 보이는 탈을 벗기면

흉악한 얼굴들이 보인다

언뜻 언뜻 나의 얼굴도 보인다

몸서리치게 무섭다

 

부음을 받고

 

-먼저 간 인월스님에게

 

이른 봄날
눈부시던 목련은 기별도 없이 가고
내 동갑내기 스님 인월은
무거운 몸뚱이 벗어놓고
급히 떠났다는 전갈이다

 

분별없는 중이 되겠다며
깎은 머리도 기르고
작업복에 땀을 흘리고
때로는 세상에 취해 비틀거리기도 하더니

 

남아있는 몸뚱어리와
땅 바닥에 내려앉은 꽃은
그 흔적을 지우며
묵언법문중이다

 

내 몸이 곧 나인 줄 알았다가
그것마저 내 것이 아닌 줄 알겠네
모두 다 홀랑 벗어 던지고
가볍게 떠나야 할 때
나는 어찌 꽃잎으로 갈까

 

진흙 투성이의 맨발로

 

<글 (詩) : 허 홍 구>

 

허홍구 (許洪九) 시인

 

대구출생
국제 PEN 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회원[시집]  

 

 사랑 하나에 지옥 하나 (혜화당 96년)  
 네 눈으로 나를 본다 (도서출판 대일 98년)  
 내 니 마음 다 안다 (도서출판 솟대 2001년) 
 [수필집]  
 손을 아니 잡아도 팔이 저려옵니다 (도서출판 대일 96년)

 

<대한민국 인물시人物詩의 개척자 허홍구 시인감성화感性畵의 대가 이무성 화백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