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에 처한 남성...드뇌브는 왜?
[박석근 문화에디터/소설가]
오래전 인류는 모계사회였다. 진화인류학에 근거하면 인류는 처음 나무 위에서 살았다.
이 시기의 인류는 구태여 남녀의 난혼(亂婚)을 말하지 않더라도 모계혈통은 자연스럽다.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직립보행을 시작한 인류는 대면위(對面位) 성행위를
통해 수컷은 자신의 자식을 인식하였고, 비로소 부계사회로 이행되었다.
갑골문자가 기원인 한자에도 그 증표가 남아 있다. 성을
가리키는 한자어 姓(女+生)은 모계의 흔적이다.
모계사회 전통을 이은 아메리카 인디언.
부계와 모계는, 자연환경이나 풍토·문화에 따라 자연결정 혹은 선택에 따랐다. 오늘날 모계사회의 전통은 아마존이나 중국 오지의 소수민족에게서 볼 수 있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여 년 전이다. 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 인정했고, 호주는 1902년,
유럽대륙에서는 핀란드가 1906년에 최초로 여성투표권을 인정했다. 이후 미국은 1920년에, 영국에서는 1928년에 남녀에게 동등하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세계 제1차 세계대전 후 서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여성참정권을 인정하였으나, 프랑스는 1946년, 이탈리아는 1945년,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한국의 경우 1948년 제정된 헌법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였다.
시민혁명을 겪은 프랑스와 영세중립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위스가 여성참정권 인정이 가장 늦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부계사회의 전통이 무너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고 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제3차 산업혁명에서,
인공지능·빅 데이터·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변화를 꾀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과정만큼이나 빠르게 사회풍속이
변해가고 있다.
신모계사회의 특징은 이러하다. 처가를 중심으로 한 가정공동체,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남아 선호사상 약화,
부부관계의 평등, 편모가정의 증가,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1인 가구의 가파른 증가 현상이다.
최근 대한가정법률 복지상담원의
부부상담 건수를 분석한 결과, 배우자나 처가의 부당한 대우로 남성들의 상담 건수가 전년에 비해 3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처가살이하는 남자와
여성의 가계 안으로 들어간 데릴사위들이 차별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말의 쓰임새도 달라졌다. 전통사회는 장남이 본가를 상속하고
제사를 지낸다. 형제가 있는 집안은 차남과 3남이 분가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남과 차남을 가리지 않고 분가하여
일가창립(一家創立)한다. 본가라는 말은 머잖아 사어(死語)가 될 것이다.
시집간다는 말도 사라지고 있다. 시집간다는 말은
남자의 집으로 여자가 들어가 산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본가보다 처가를 더 많이 가고, 그 자식들은 아내의 혈족이나 인척을 더욱 빈번히
만난다.
성씨 또한 그러하다. 전통적으로 자녀의 성씨는 남편을 따랐다. 그러나 호적법은 여자의 성을 따라도
무방하다.
직장에서 여성 상사가 남성 부하에게 명령하는 게 자연스럽다. 산업사회에서 남성의 근육은 육체를 치장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건 마치 공작새가 꼬리부채를 펴 암컷을 유혹하는 것과 같다.
최근 기사 하나가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남성들에게 유혹할 자유를, 카트린 드뇌브 미투(Me Too) 운동에 반기를 들다” 먼저 미투 운동의 발단을 알아보자.
‘나도
이렇게 당했다’의 미투 운동은 처음에는 힘 있는 자들의 갑질 성추행 고발이 목적이었다. 미국의 거물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및
성폭행 전력에 대한 허리우드 여배우들의 폭로로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뒤이어 NBC 아침 뉴스쇼 '투데이'의 간판 앵커 맷 라우어가 여성 직원에
의해 고발되는 등 하루 만에 유명 진행자 4명이 파면되면서 확산되었고, 그 불길은 SNS상에서 공유하는 운동으로
번져나갔다.
카트린 드뇌브(Catherine Deneuve). EPA=연합뉴스
들불처럼 번지는 미투 운동에 대해 배우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 문화예술계
여성 인사들 100명이 일간 르몽드지에 '성의 자유에 필수불가결한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글은 미투 운동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나선 것으로, 성폭력은 분명 범죄지만 유혹이나 여자의 환심을 사려는 행동은 범죄가 아니며, 미투 운동이 해당 남성에게 변호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이들을 성범죄자들과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점, 친밀한 메시지를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들이 자신의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성급한 재단으로 희생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점, 남자들로 하여금 오래 전 자신의 행동을 기억하고 뉘우치기를 강요받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이는 사회에 전체주의의 기운을 심어줄 뿐이라고 크게 우려했다.
이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프랑스
여성주의 단체 '페미니즘 선언'은 성범죄 가해자들을 여성들이 옹호하고 있다며, 성명서에 서명한 여성들은 강간죄를 옹호하는 변론가들이나
다름없다면서 맹비난했다. 이탈리아 유명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는 드뇌브 등 프랑스 여성들이 자신에게 내재한 여성혐오 때문에 얼마나 멍청해졌는지
세계만방에 보여줬다고 비난에 가세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정작 남성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일에 오히려 여성들이 변론에 나섰다는 사실은, 오늘날 남성의 쪼그라든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편
국내에 상륙한 미투 운동의 물결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사회단체와 여대가 주축이 되어 성폭력 고발운동과 강연이 이어지고
있다.
성폭행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하지만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는 행동을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 유혹과 성폭행의 경계는 모호하다.
현행법상 그 경계는 여성의 주관적 감정이다. 같은 행위를 두고 어떤 남성은 성폭행이 되고, 어떤 남성은 호감행위가 된다. 이 지점에서 남녀평등은
없는 셈이다.
대다수 여성들은 성폭력과 귀찮은 유혹을 구분할 줄 안다.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도덕적 반동주의다.
요즘 대학에 신규 채용되는 강사는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승강기를 탈
때는 두 팔을 가슴에 얹을 것, 여학생과 일대일로 면담하지 말 것, 스캔들이 일어날 일말의 가능성 있는 일은 일체 만들지 말 것 등이다. 참으로
해괴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여기, 한국의 카트린 드뇌브가 있다. 시인 문정희, 그녀는 오래 전부터 시와 연설로 나약해진 남성의
분발을 촉구해왔다. 또한 여성주의 운동이 남성들을 지나치게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다시 남자를
위하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
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뛸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 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게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 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 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 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sgp@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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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근 문화 에디터
문정희(文貞姬, 1947년 5월 25일 ~ ) 시인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고려대 교수 역임.
1969년에 《월간문학》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고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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