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iry Queen
퍼셀 / 오페라 '요정 여왕'
Henry Purcell, 1659-1695
ACT onE
I. 1st music: Prelude
II. 1st music: Hornpipe
III. 2nd music: Air
IV. 2nd music: Rondeau
V. Overture
VI. Jig
ACT TWO
VII. Suite: A prelude
VIII. "A bird's Prelude"
IX. Echo
X. A Fairies Dances
XI. A dance for the Followers of Night
XII. Air
ACT THREE
XIII. Suite: Prelude "Love's a sweet passion"
XIV. Overture symphony while the swams come forward
XV. Dance for the Fairies
XVI. Dance for the Green men
XVII. Dance for the Haymakers
XVIII. Hornpipe
ACT FOUR
XIX. Symphony: Prelude, Canzona, Largo, Allegro, Adagio, Allegro
XX. Entry of Phoebus
XXI. Air
ACT FIVE
XXII. Suite: Prelude
XXIII. Entry dance
XXIV. Symphony
XXV. Monkey's dance
XXVI. Chaconne, Dance for the Chinese Man and Woman
XXVII. "Fifth act tune"
Jordi Savall, cond.
Les Concert des Nations
Lucy Crowe, soprano
Carolyn Sampson, soprano
Ed Lyon, tenor
Andrew Foster-Williams, bass guitare
Titania: Sally Dexter
Oberon: Joseph Millson
Bottom: Desmond Barrit
The Glyndebourne Choir
William Christie, cond.
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
영국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 작곡가 헨리 퍼셀은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여 런던에서 소년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여덟 살엔 이미 성악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변성기가 지난 뒤엔 왕실 악기 관리자의 조수로 일했고, 성당의 오르간 조율 감독을 거쳐 스무 살에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었다. 음악뿐 아니라 연극에도 관심이 많았던 퍼셀은 오페라 연구에 몰두하던 중 1689년 ‘영국 최초의 본격 오페라’로 음악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를 작곡했다. 짧은 작품이지만 이 안에는 춤과 합창 등 다양한 양식과 함께 삶의 환희에서 죽음의 절망에 이르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후 퍼셀은 36년의 짧은 생애 동안 <아서 왕>, <요정 여왕> 등 37편의 오페라와 극음악을 작곡했다. 그 가운데 <디도와 아이네아스>와 함께 퍼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요정 여왕>은 2014년 올해 탄생 450주년을 맞이하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1595/96)을 토대로 한 ‘세미오페라(semi-opera)’ 작품이다.
▶헨리 퍼셀 초상화
원래 영국 오페라의 기초가 된 것은 마스크(masque) 형식이라는 장르이다. 이것은 신화나 우화를 소재로 해 대사, 음악, 춤, 연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종합예술 형식으로, 프랑스에서 생겨나 16-17세기에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퍼셀은 전통적인 ‘마스크’에 기초해 1690년경에 '세미오페라'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네 개 이상의 에피소드, 노래, 춤, 기악 연주를 포함한 세미오페라에서 말로 나누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음악의 장면으로 연결된다. 연극배우들이 맡는 주인공들은 대사만 하고, 신들, 정령들, 요정들, 목동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역할이다. ‘관객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 이 장르의 목표라고 하며, 한마디로 ‘지루하면 죽는다’가 모토라고 할 수 있다.
마스크 형식을 토대로 한 세미오페라 - ‘지루하면 죽는다’
셰익스피어는 극 속에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켜 극의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맡기곤 했다. 36-37편으로 알려져 있는 셰익스피어의 극들 중 상당수는 이런 초자연적 존재를 담고 있다. <햄릿>에 나오는 혼령이나 <맥베스>의 마녀, <한여름 밤의 꿈>이나 <템페스트>에 나오는 요정이 그런 존재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영국 민속과 그리스 신화의 요소들을 합성한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fairy)들을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있다. 요정의 왕 오베론(Oberon), 요정 여왕 티타니아(Titania), 오베론의 시종 퍽(Puck)을 비롯해 콩꽃 요정, 거미집 요정, 나방 요정, 겨자씨 요정 등이 등장한다. 2막은 거의 요정의 세계를 그리고 있고, 3막에서도 시작과 끝을 요정들이 장식하며, 인간들은 오히려 요정이 장난치는 대상이 될 뿐이다. 4막 역시 요정 장면으로 시작하고, 5막에서 인간들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된 뒤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도 역시 요정들의 세계이다.
▲요셉 노엘 페이턴의 ‘오베론의 시종 퍽(puck)과 요정들’ 그림
셰익스피어의 요정들은 인간을 닮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사랑하고 질투하면서 인간의 삶에 자꾸 끼어들며, 언제나 춤과 노래를 즐기는 존재들로 그려지는 것도 특징이다.
제목에 나오는 ‘한여름 밤’이란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 전날 밤을 가리킨다. 축제와 패싸움으로 광란의 밤을 보내는 ‘성 요한 축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교와 이교 문화가 혼합된 현상의 하나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요정들은 아테네의 티시어스(테세우스) 공작과 아마존 여왕 히폴리타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다. 당시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여왕 히폴리타를 등장시켰다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득한 옛날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숲에 사는 요정들(오베론, 티타니아, 퍽 등), 엇갈려 사랑에 빠진 남녀 두 커플(허미아-라이샌더, 헬레나-디미트리어스), 티시어스 공작과 히폴리타 여왕 및 공작의 결혼 축하 연극을 준비하는 직공들(당나귀로 변하는 보텀과 그 친구들), 이 세 차원의 이야기를 서로 얽히게 만들어 놓고 매듭을 풀어 나간다.
오페라에서 티타니아 여왕(페니 도니)이 당나귀 보텀(크리스토퍼 벤자민)과 사랑에 빠지는 장면.
2014년 글라인드본 무대. 조너선 켄트 연출, 로렌스 커밍스 지휘
연극 속에 노래와 춤을 혼합한 종합예술 작품
아테네의 티시어스 공작은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타와 결혼하기로 약속한다. 공작은 히폴리타에게 빠져 있지만 여왕은 결혼하기까지는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들 앞에 공작의 신하 한 사람이 딸 허미아를 데리고 나타난다. 디미트리어스라는 훌륭한 신랑감을 추천했는데도 딸이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자 라이샌더와 결혼하려 한다면서, 공작에게 문제의 해결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한편 요정의 왕 오베론은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가 인도에서 데려온 어린 시종을 탐내고 있다. 하지만 티타니아가 시종을 넘겨주지 않자 심술이 난 오베론은 요정 퍽(Puck)을 시켜 잠든 티타니아의 눈에 마법의 꽃 즙을 뿌린다.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숲으로 야반도주한다. 그러자 디미트리어스는 허미아를 쫓아 숲으로 가고, 원래 디미트리어스의 연인이었다가 그의 사랑을 잃은 헬레나는 디미트리어스를 뒤따라간다. 그런데 요정 퍽이 실수로 디미트리어스의 눈에 뿌릴 마법의 꽃 즙을 잠든 라이샌더의 눈에 뿌리고 라이샌더가 잠에서 깨자마자 헬레나를 보게 되는 바람에, 연인 관계는 갑자기 달라진다. 함께 허미아를 두고 싸우던 두 남자는 이제 헬레나의 마음을 얻으려고 싸운다.
티시어스 공작과 히폴리타의 결혼식에서 공연할 연극을 연습하기 위해 보텀을 비롯한 직공들은 숲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보텀은 퍽의 장난에 의해 당나귀로 변하고, 오베론의 장난으로 꽃 즙을 눈에 뿌린 티타니아는 당나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그와 꿈결 같은 밤을 보내게 된다.
결국 오베론과 퍽에 의해 혼란스런 상황은 정리되고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연인들은 원래의 짝과 하나가 되고 모두는 화해하게 된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 보텀은 친구들을 만나 함께 공작의 결혼식 피로연 축하공연을 갖고, 요정들도 모두 공작의 성으로 와서 자기들끼리 멋진 무도회를 즐긴다.
▶존 시몬스, <허미아와 라이샌더>, 1870
원작 그대로 5막으로 이루어진 퍼셀의 <요정 여왕>에는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속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허미아, 라이샌더, 디미트리어스, 티시어스 공작, 허미아 아버지, 오베론, 티타니아, 퍽, 아마존 아이, 직공들 등 셰익스피어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지 않는 대사 배역이다. 이 극의 장면 사이사이에는 노래와 춤이 등장하는데, 여기 참여하는 인물들은 성악가이거나 무용수들이다. 노래를 부르는 배역들은 시인(베이스), 산책하는 사람들(소프라노, 베이스), 새들의 왕(테너), 요정 1, 2, 밤, 신비, 목가적인 사랑, 사랑의 탄식(소프라노), 침묵(알토), 목동(바리톤), 잠(베이스), 아폴론(테너), 봄(소프라노), 여름(알토), 가을(테너), 겨울(베이스) 등이다.
퍼셀 특유의 전아(典雅)하고 서정적인 또는 유쾌하고 쾌활한 멜로디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특히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를 비롯해 여러 가수들의 노래로 유명한 명곡 <오, 울게 내버려 두세요(O, let me weep)> 같은 절절한 슬픔의 노래가 있는가 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천 가지 방법(A thousand ways we’ll find to entertain the hours)> 같은 활달하고 코믹한 노래도 들어 있다.
"O, let me weep (오, 울게 내버려 두세요)"
Sylvia McNair, soprano
Alfred Deller
Emma Kirkby
Jennifer Vyvyan
Catherine Bott
Kym Amps
Nancy Argenta
Nikolaus Harnoncourt, cond.
Vienna Concentus Musicus
"O, let me weep (오, 울게 내버려 두세요)"
"If love's a sweet passion (만일 사랑이 달콤한 열정이라면)"
Veronique Gens, soprano
William Christie, cond.
Les artes florissants
"If love's a sweet passion (만일 사랑이 달콤한 열정이라면)"
"Come all ye songsters (하늘의 요정이여 모두 오라)"
"Come all ye songsters (하늘의 요정이여 모두 오라)"
Robin Doveton, tenor
The Scholars Baroque Ensemble
런던에서 1692년에 <요정 여왕>을 초연한 뒤 3년 만에 퍼셀은 세상을 떠났고 그때 악보가 소실되었다. 1703년에 20기니를 상금으로 걸고 악보를 찾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행히 19세기 말에 거의 완전한 악보가 왕실 음악아카데미에서 발견되었고, 1903년에 퍼셀 협회가 창립되면서 그때부터 이 작품은 다시 고음악 페스티벌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지휘자 윌리엄 크리스티는 루시 크로우, 캐롤린 샘슨 등의 뛰어난 가수들 및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글라인드본 합창단을 이끌고 이 작품을 2009년 글라인드본 무대에 올렸다. 당시 연주 수준도 탁월했지만, 조너선 켄트가 연출을 맡았는데 색채와 형태가 눈부시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장면 전환이 변화무쌍하고, 유머 감각까지 가득한 프로덕션이었다.
2009 글라인드본 페스티벌 공연 <요정 여왕>에서 티타니아 역을 맡아 열연한 샐리 덱스터
헨리 퍼셀의 다른 작품
Chacony for Strings (Chaconne) in G minor, Z.730 (샤콘 G단조)
Pinchas Zukerman, cond.
St. Paul Chamber Orchestra
Music for the Funeral of Queen Mary (Funeral Sentences) Z. 860
Funeral March
Mark Bennet, Flatt Trumpet
Crispian Steele-Perkins, Slide Trumpet
Michael Laird, Slide Trumpet
Ron Bryans, Sackbut
Robert Howes, Percussion
Baroque Brass of London
Trumpet Tune & Air
Diane Bish, organ
Henry Purcell, 1659-1695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하면 바흐와 헨델, 비발디 정도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헨리 퍼셀이라는 작곡가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 중 바흐와 헨델은 독일인이고, 비발디는 이탈리아 인, 헨리 퍼셀은 영국인이다.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음악의 종주국은 독일과 이탈리아였다.
영국은 변방 국가에 불과했는데, 헨리 퍼셀의 이름이 낯선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헨리 퍼셀은 바로크 시대에 영국에서 꽤 잘 나가는 작곡가였다. ‘영국의 오르페우스’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그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사실 퍼셀이 등장하지 전까지만 해도 영국은 음악 분야에 있어서 독일, 이탈리아에 비해 까마득하게 뒤쳐져 있던 나라였다. 음악의 거장들을 줄줄이 배출한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 비해 내세울만한 작곡가가 없었다. 퍼셀은 이런 척박한 토양에 한 줄기 빛을 비춘 작곡가였다. 그의 등장으로 영국은 비로소 음악사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등장으로 영국 음악이 비로소 서양음악사에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퍼셀은 1659년경,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곡가, 어머니는 성악가인 음악가 집안이었다. 10살 때인 1669년, 그는 왕실교회 소년 성가대에 들어갔다. 그때 왕실 성가대장 쿠크와 P. 험프리로부터 유럽의 새로운 음악양식에 대해 배웠다.
퍼셀은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음악의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래서 종종 후대에 등장한 모차르트에 비견되곤 한다. 일찍부터 작곡을 시작했는데, 8살 때 지은 가곡이 플레이 포드 출판사가 발간하는 <음악의 벗>이라는 잡지에 실릴 정도였다.
1673년, 다른 아이들보다 일찍 변성기를 맞은 퍼셀은 소년 성가대에서 나와 왕립악단 악기관리인이던 존 힌제스턴의 조수가 되었다. 보수를 받지 않는 일이었지만 퍼셀은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보다 하프시코드를 조율하거나 오보에를 닦는 일이 훨씬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조수가 된지 1년도 안 되어 오르간 조율사 겸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악보 필경사로 임명되는 행운을 누렸다.
1677년, M. 록이 사망하자 퍼셀은 그 후임으로 18세의 나이로 왕실 현악합주단의 상임작곡가가 되었다. 이때 그는 가곡과 환상곡을 작곡했는데, 특히 대위법으로 쓰여진 그의 환상곡은 바로크 시대 최고의 환상곡으로 꼽히고 있다.
1679년, 퍼셀은 존 블로의 뒤를 이어 양관의 나이에 웨스트민스터사원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가 되었다. 이 직책을 맡음으로써 퍼셀은 안정된 급료를 받으며 마음껏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었다.
이 때 그는 성 랜스 가에 있는 사택도 함께 받았는데, 생을 마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안정된 직장을 얻은 퍼셀은 그로부터 1년 후 결혼을 했다. 결혼으로 두 명의 자식을 얻었는데, 이 중 에드워드는 나중에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가 되었다.
이 후 몇 년간, 퍼셀은 눈부신 활동을 벌였다. 영국 왕 찰스 2세는 퍼셀에게 많은 임무를 맡겼으며, 그의 뒤를 이어 왕 위에 오른 제임스 2세와 월리엄 3세, 메리 여왕도 계속해서 그에게 일을 주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르간 제작과 궁정의 악기관리였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곡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영국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종류의 종교의식을 비롯해 중요한 국가행사, 기념일이나 축일, 그 밖의 공적인 행사에서 연주할 음악을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여기에 더해서 왕립 바이올린악단을 위한 곡도 계속 써주어야 했고, 늘어나는 가곡에 대한 수요도 채워야 했다. 퍼셀이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퍼셀의 작품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특징으로 한다. 그는 왕실 바이올린 악단의 상임 작곡가로 일하고 있을 때 기악을 위한 환상곡을 많이 썼는데, 그의 환상곡은 오늘날까지 이 분야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여러 장르의 음악 중에서 퍼셀이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는 성악이었다. 그는 영국 왕실 행사와 왕실교회의 예배를 위한 합창음악에서부터 극장용 음악, 오페라, 간단한 가곡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성악곡을 썼다. 그의 성악곡은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구사하는 영어 가사 붙이기와 감동적인 선율,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밝고 화사한 화음과 정교한 감정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인 가곡인 <오! 고독이여! O! Solitude>는 1687년 경 작품으로 캐더린 필립스가 1667년 쓴 서정시 노트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이 곡은 교회음악은 아니지만 종교적 영감이 묻어나는 고독의 찬가이다. “오! 고독이여! 나의 가장 달콤한 선택. 밤에게 바쳐진 곳, 소란과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 고독 속에서 내 분주한 상념들이 얼마나 깊은 위안을 얻었던가!” 이런 가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멜로디는 아주 단순하고 감상적이다. 단순함 속에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퍼셀 가곡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곡이다.
퍼셀은 왕실 음악가로 일하던 1689년, 친구가 운영하는 첼시 여학교 학생들을 위해 <디도와 아에네아스>라는 오페라를 썼는데, 나중에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퍼셀의 오페라 작품은 다른 장르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그의 유일한 오페라인 <디도와 아에네아스>는 단번에 영국 오페라 수준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용은 고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것인데,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선율과 강렬한 극적 표현, 기악파트의 눈부신 색채감을 자랑하는 바로크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힌다. 특히 3막에서 디도가 죽기 직전에 부르는 비가(Lament)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는 서양음악사상 최고의 비가로 꼽히고 있다.
“내가 땅에 묻힐 때 내 잘못이 당신에게 더 이상 해가 되지 않기를.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아! 하지만 나의 이 운명만은 잊어주세요.”
이런 아리아가 시작되기 전에 8마디에 걸쳐 낭송조의 레치타티보가 나오는데, 7도 음정을 순차적으로 하행시키며 죽어가는 디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아리아는 아련한 슬픔을 담은 바로크 비가의 격조 높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밖에 극음악 작품으로는 1692년 경에 작곡한 세미 오페라 <요정여왕 Fairy Queen>이 있다. 이 작품은 세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 밤의 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 중간에 전체적인 이야기 줄거리와 상관없는 춤곡 장면이 많이 삽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지만 요정 여왕 티타니아가 부르는 <오! 나를 울게 해주오. Oh! Let me weep>처럼 슬픈 노래도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앤썸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세속노래 <술 마시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트럼펫과 현악을 위한 소나타> 영국교횔,위한 예배음악 <메리 여왕의 장례> 극음악 <오이디푸스> 세미 오페라 <인도의 여왕> 등이 있다.
퍼셀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다가 과로로 쓰러진 그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1695년에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오르간이 있는 사원의 북쪽 측랑에 묻혔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를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에 비견해 ‘영국의 모차르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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