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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박사의 길 위의 밥집, 평창으로 가는 길

박연서원 2012. 8. 15. 21:07

석박사의 길 위의 밥집, 평창으로 가는 길



‘평창은 강원도의 배꼽이다.‘
그 한적했던 산골 마을이 요즘 무척 소란하다. 거국적이고도 글로벌한 잔치 준비로 평창 뿐 아니라 온 강원도가 들썩이는 것이다.  비록 두 번이나 실패를 했었지만, 강원도 특유의 은근과 끈기로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확정되고 나서부터 평창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거기에 더하여, 매년 여름에 대관령 국제 음악제까지 용평에서 펼쳐진다니 위치만 강원도의 중심이 아니고 문화와 체육의 중심지가 된 느낌이다. 평창군의 구호는 ´해피 700´이다. 사람이 가장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높이가 해발 700m라는데 평창군의 평균이 대략 그 언저리란다. 이런 천혜의 조건에 더하여 평창은 바다와 인접한 고냉지대여서 대관령 황태 덕장이 있고, 횡계한우를 비롯하여 오대산을 중심으로 각종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렸으며, 송어 양식에 최초로 성공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원도 음식은 대체 무슨 맛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강원도 특유의 정서와 비슷한 중도(中道)의 맛이자 무미(無味)의 맛이 아닐까. 메밀을 비롯하여,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은 요즘에야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예전에 먹을거리가 없을 때 효자노릇을 하던 구황작물이었다. 그런 음식들이 입에 착착 감기고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감자옹심이, 콧등치기국수, 올챙이국수, 꼴두국수 등도 그저 추억의 맛일 뿐이다. 


 
막국수도 그렇다.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양념이 많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막국수가 맛있다고 알려진 집들은 대개 깨범벅에 양념이 지나치게 강하며 심지어 달기까지 하다.
마침 슬로시티, 슬로푸드처럼 ´슬로´가 들어간 단어가 유행이다. 강원도는 ´슬로´라는 단어가 제법 어울리는 지역이고, 그곳의 음식들도 슬로푸드의 대명사들이다. 손으로 일일이 치대야 제맛이 나는 메밀 음식들이 그렇고, 덕장에서 한 겨울을 나야 하는 황태가 대표 선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슬로푸드를 제대로 느끼려면 그걸 맛보러 가는 길도 ´슬로로드´여야 어울리는 법이다.
이번 여름 휴가에는 샛길따라 느린 마음으로 강원도 평창으로 가보자. 도중에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맛집을 찾는다면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히는 소나기보다 더한 청량감을 맛볼 것이다.   

1. 문막 일호집


영동고속도로의 강원도 첫 관문은 문막이다. 일호집은 톨게이트에서 매우 가까운 문막읍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잠시 들러 머나 먼 강원도 여행길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두기엔 안성마춤인 고깃집이다. 횡성한우 암소를 참나무숯불과 재래식 석쇠 위에 올려 구워 먹는 것도 일품이거니와 큰 멸치가 둥둥 떠다니는 강원도 스타일 된장찌개의 보글거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주인장 내외의 소박한 친절도 그렇지만, 식당 주변 들판에서 캐와 바로 무쳐서 내오는 나물들이 열악하고 좁은 식당 분위기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인근의 여러 골프장 손님들이 느닷없이 몰리는 경우에 대비해 아예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전화로 예약을 하는 편이다.   "오늘 고기 좋아요? 제 와인잔 좀 부탁합니다."
033-735-7610 /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문막리 278-2 / 한우암소 모듬구이, 소면, 된장찌개 

2. 횡성 삼군리 메밀촌


이 식당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다녀 원형의 맛을 기억하는 곳으로, 최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었고 비포장 산길이 깔끔하게 포장까지 되어 손님들이 무척 많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100% 순메밀막국수가 과연 맛있는 것인가 아니면 80% 메밀함량이 최상인가라는 논란도 있지만, 이 식당의 장점은 순도 100% 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주인 내외의 정성 가득한 음식이 삼군리메밀촌의 핵심인 것이다. 메밀묵이나 메밀전도 다른 식당에서 맛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주인공 격인 메밀국수 역시 지금껏 맛 본 것 중에서 가장 심심하며 메밀향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양념은 스스로 알아서 넣는 DIY 방식인데, 먼저 비빔 형식으로 먹다가 잘 익은 동치미 국물을 부어 물막국수를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삼군리 메밀촌 가는 길도 강원도 산골인지라 과연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덕분에 이름모를 산새 소리와 들꽃 감상은 덤이다. 기왕 슬로푸드를 맛보러 멀리까지 왔는데, 손님이 몰려 조금 길어진 대기 시간이 뭔 대수일까?
033-342-3872 /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부창리 67 / 메밀국수, 메밀묵, 메밀무침 

3. 봉평 현대막국수


봉평은 이효석의 고향이다. 그가 쓴 ´메밀꽃 필 무렵´은 주인공 허생원이 달빛 가득한 밤,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메밀꽃이 소금처럼 흩뿌려진  칠십리 길을 행여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동이와 동행하는 과정을 묘사한 소설이다. 이런 내용을 알면서도 봉평까지 와서 메밀 막국수를 맛보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평양에 가서 냉면 한그릇 먹지 않고 오는 것과 진배가 없는 일이다. 현대막국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봉평 최고의 막국수집이다. 동네 약방에서 피로회복제 한 병을 사면서 귀동냥으로 얻은 맛집 정보였는데, 이 즈음이 큰 아이를 자동차 카시트에 묶고 다닐 때였으니 족히 이십년은 넘었으리라. 봉평 인근에는 펜션들이 집중되어 있고, 전국의 맛집과 여행 블로거들이 성지순례 코스처럼 여기는 곳인지라 주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이고, 손님들의 낙서로 벽이 어지러운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막국수만으로는 쉬 배가 꺼지기 때문에 돼지고기 수육에 메밀동동주 한 사발 정도는 기본 옵션이다.
033-335-0314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384-4 / 메밀국수, 수육, 메밀전병, 메밀묵무침 

4. 용평회관


스키는 정말로 무섭기 짝이 없는 운동이다. 주변에 스키를 즐겼던 사람 중에 깁스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드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평에 자주 들르는 이유는 스키나 보드 때문이 아니고 오로지 용평회관의 한우등심 때문이다. 요즘은 스키가 대중적 스포츠지만 예전엔 귀족 스포츠의 하나였고 천혜의 골프장까지 있으니, 횡계에는 자연스럽게 고급 식당들이 생겼을 것이다. 그런 고급 한우 전문 식당들의 정점에 용평회관이 있다. 아주 오래 전, 낮에는 스키를 즐기고 밤에는 한우 등심을 안주 삼아 집에서 들고 온 와인을 마시는 유명인을 용평회관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꽤 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용평회관은 대관령 등지에서 키운 한우도 특별하지만, 각종 밑반찬의 공력 또한 서울에서도 맛보기 힘든 수준이다. 식사로는 사람 얼굴만큼 큼직한 두부가 들어간 생태찌개가 압권이다. 모든 것이 서울 최고 수준의 식당과 필적하는 만큼 밥값도 그에 상응하는 점이 걸리긴 하지만 말이다.
033-335-5217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325-16 / 한우 등심, 차돌박이, 주물럭, 생태찌개 

5. 납작식당


식당 이름이 독특하여 알아보았더니, 예전에 계단의 천장이 낮아 납작 수그리고 올라가야 한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를 한문으로 작명을 하면서 좋은 의미를 부여했는데, ‘드릴 납, 벼슬 작’으로 이 식당에 오면 벼슬을 드린다 혹은 벼슬을 얻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식당 벽에 걸어 둔 가훈 또한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은근하고 소박하게 살자’가 그것인데 강원도의 풋풋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납작식당은 오삼불고기의 원조라 알려진 곳이다. 바다가 가까우니 생물 오징어를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메뉴지만 원조 오삼불고기 맛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오삼불고기로 배를 채우고 생태찌개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정석 코스다. 이제는 납작 숙이고 올라갈 정도도 아니고, 실내도 많이 개선은 되었지만 손님들의 눈높이에 아직 미치지 못한다.
033-335-5477  /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325-7  / 오삼불고기, 더덕구이, 생태찌개, 알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