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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의 幸福한 나라 "부탄"

박연서원 2012. 3. 8. 10:37

부탄왕국 (Kingdom of Bhu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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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탄에는 17세기부터 성채 사원이 세워졌으며, 연꽃의 영광을 상징하는 오색 깃발을 볼 수 있다.

‘뇌룡의 나라’ 부탄은 도처에서 초르텐(사리탑)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밀교 탄트라의 사상을 간직한 곳이다. 때문에 부탄은 성과 속이 어우러진 왕국이며 자연에 대한 순응과 조화의 삶을 볼 수 있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다. 그레이트 히말라야의 중턱에 위치한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 북쪽 경계지대는 눈 덮인 준봉들이 줄지어 티베트를 갈라놓고 있으며, 거대한 빙하와 빙하호는 모든 하천의 발원지다.


서쪽은 시킴을 사이에 두고 네팔과 마주보고 있으며,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아 밀림에는 코끼리·사슴·호랑이 같은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한다.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 봉우리들이 인도 동북부의 구릉지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중부는 강수량이 많고 고산지대에서 흘러든 세찬 강물로 인해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평야에는 취락이 발달했고 산악지대에는 17세기부터 세워진 성채사원(城砦寺院)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남부의 초원지대에는 현재 벼농사를 짓기 위한 농경지 개간사업이 한창이다. 가느다랗게 펼쳐진 두아르스평원은 강줄기를 따라 북쪽 히말라야의 기름진 평야로 들어서는 유일한 교통로다. 국토 전체가 고산지대에 있기 때문에 온대지대보다 기온이 낮으며 여름철에는 계절풍이 산지 사면에 많은 비를 몰고 온다.
부탄이라는 명칭은 ‘티베트의 변경’을 뜻하는 산스크리스트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국민들 자신은 ‘두룩’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뇌룡의 나라’를 뜻하는 종카어에서 나온 말이다.  나라의 국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위쪽의 노란 색은 국왕의 세습적인 권위를 나타내며 아래쪽의 붉은 색은 불교의 종교적 권위를 나타낸다. 그리고 중앙은 ‘두룩’을 상징하는 뇌룡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 태초 티베트인들의 정착이 왕국의 시초

부탄 역사의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쪽으로 이주하던 티베트인들이 9세기초부터 이 지역에 정착했다는 것이 확실한 것 같다. 17세기 티베트에서 온 라마승 라파가 왕이 되어 처음으로 정치적인 통일을 이룩했다. 행정 체제는 돕계인 세톱이 다졌는데, 그의 후계자는 종교적 역할만 담당하고 정치적 권력은 대리인을 세워 행하는 이원적 통치형태를 취했다.


17세기 부탄은 세력을 확장하려는 영주들이 서로 군웅할거하고 있다가, 그중 가장 강력했던 통사의 영주가 이들을 규합해서 왕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습왕조를 수립했다.  신비에 찬 히말라야의 소왕국 부탄의 파로(Paro)공항에 내려서 하룻밤 쉬고 난 뒤, 아침부터 축제가 열리는 파로 성채사원에 갔다. 은 안뜰에는 어느새 구경꾼들이 꽉 차있었다.


이윽고 괴상한 탈바가지를 쓴 광대들이 튀어나와 중앙에 정좌한 큰스님에게 꾸벅 큰절을 올리고 난 후, 익살을 부리면서 요란스레 한바탕 탈춤을 벌인다. 이어서 화사하게 성장한 승려들이 무리를 지어 점잖은 제스처로 환상적인 승무를 펼치는데, 주민들의 표정이 너무나 밝고 진지해서 보기가 좋았다.

- 오색깃발들이 흩날리는 도출라 고개

이 땅을 밟은 지 닷새째, 어디를 가나 장관을 이루는 것이 바람에 펄럭거리는 오색의 깃발들이었는데 이것은 해발 3,200m의 도출라고개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뒷머리에서 땅과 식물과 중생, 그리고 구름과 물을 상징하는 황·녹·적·백·청색의 다섯 가지 찬란한 빛이 나왔다해서 창안하게 된 다루쵸에는 연꽃의 영광을 비는 ‘옴마니반메홈’의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장대 끝에 매달아 놓은 경문기와 그 꼭대기에서 힘차게 도는 마니차는 오직 염불과 독경을 독촉하는 바람 속의 신앙으로서, 높은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시사철 불심을 지켜주는 영혼의 파수꾼이다.
도출라 고개로부터 설산을 끼고 해발 3,425m의 페릴라고개에 이르는 고산지대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침엽수림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람이 건들지만 않았어도 나무는 이렇게 잘 자라는 것이거늘, 사람들의 손때를 타는 것이 어찌 나무들뿐이겠는가!


보은 땅에 점잖게 생긴 정이품송이 있지만, 험준한 바위산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히말라야의 거목들은 영락없는 정일품감이다. 양지 바른 경사면에는 이름 모를 풀꽃이 지천인데 그 속에 노란 민들레꽃이 하나 피어 있어서 반가웠다. 게다가 아름드리 꽃나무가 큰산을 훤하게 밝히며 매력적인 조화미를 곁들이고 있어, 이곳을 횡단하는 여행자들에게 신선한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 부탄의 한마을에서 만난 여인. 이들의 삶은 60년대 초순의 우리 삶과 무척 유사했다.

- 해골로 목탁 삼아 염불하는 승려들

히말라야의 동쪽 끝동네인 붐탕을 돌아 통사의 타드종을 찾아 사다리를 타고 법당 안에 올라가니 나이든 승려들이 목탁을 흔들며 염불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스님들이 사용하는 목탁은 대추나무나 박달나무 토막의 속을 파내고 나무채로 치면 소리가 울리도록 한 것인데, 라마승들의 기도 바퀴는 박과 같은 둥그런 것이 양쪽에 가죽을 팽팽하게 씌우고, 흔들면 안에 든 노리뇌가 가죽끈을 때림으로써 소리가 나게 얽어져 있다.그런데 목탁의 만듦새나 치는 투가 엉뚱한 것은 제쳐두고라도 기도바퀴의 본체가 사람의 해골이란 말에 섬뜩함이 밀려왔다.


부탄에선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화장한 후, 뼛가루를 3등분해 하나는 돌가루와 버무려 탓자를 빚어 초르텐(사리탑)에 진열하고, 나머지는 땅과 강물에 뿌린다던데, 어찌하여 저기 기도바퀴의 머리뼈 임자는 죽어서도 쉬지 못하고 라마승의 손에서 흔들리는 신세가 되었을까?불교의 나라에서 화장도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느 애꿎은 사형수의 한 맺힌 해골이 아닐까!산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호텔 방에서 장작 토막에 석유찌꺼기를 찍어 난롯불을 지피면서, 문득 아까 낮에 본 기도바퀴의 몸체가 어쩌면 나 같은 방랑자의 머리뼈일지도 모른다는 초라한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목탁이나 기도바퀴는 불심을 독촉하는 효과가 있다니, 해골의 주인공이 누구든 부처님을 섬기는 불구(佛具)가 되었다는 것이 결코 불명예스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달아오르는 난로 옆에서 한참 마음을 되짚다가 함석지붕을 내려치는 히말라야의 밤비에 흠뻑 젖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옆의 전문가에게 넌지시 물었다. 뜻밖에도 티베트나 부탄에서 불구로 쓰는 기도바퀴는 만인이 우러러보는 큰스님이 입적하면 화장하지 않고 머리뼈를 기도바퀴로 쓰는 것인데, 그래야 염불이나 독경이 잘 되고, 흔들어대는 중도 신바람이 날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되묻는 바람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괜히 남의 집안 일에 마음을 끓였으니 겸연쩍을 수밖에.


통사에서 왕듀로 가는 산중턱에 아담한 여승원(女僧院)이 한 채 있는데, 널찍한 경내에는 가사를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여승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때마침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나오던 어린 사미승 둘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떠돌이와 마주치자 여린 미소로 반기며 나직이 인사를 건네고 선선히 사진도 찍게 해주어 고마웠다. 4월초라 그런지 여승원 한쪽 모퉁이에는 복사꽃이 환하게 피어 화사함마저 느끼게 해주었다. 산문을 나서면서 저들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기에 어리고 청순한 처녀들이 이 깊은 산속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궁금증에 휩싸였다.이 때문일까? 이제 히말라야를 떠나야하는 나그네의 마음은 그저 착잡하기만 하다.

 

 ◇ 파로의 성채사원인 파로드종에선 매년 4월 4일부터 8일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 여린 미소로 나그네를 반기고

다음날은 부탄의 ‘겨울 수도’였던 푸나카(Punakha)에서 심토카드종이라는 큰 사원에 들렀더니, 애티가 가시지 않은 동자승 여럿이 열심히 불경 공부를 하고 있고, 다른 승방에서는 어린 중들이 서방으로 앉아서 부처님이 실제로 증험하신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만다라를 정성스레 그리며 수행하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으론 안쓰러움이 밀려든다. 우리나라 세속을 떠나 산문에 들 때 삭발을 하는 득도식(得道式)이 있는데, 칼을 든 집도승이 “무명초(無名草)가 무성하길 몇십년이고” 하고 물으면, “마른 풀 태우듯이 남김없이 하옵소서!” 하고 대답하는데, 이때 불문에 든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사미승일 경우 울먹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사미십계(沙彌十戒)를 지킬 것을 세 번 다짐받고서 머리를 깎기 시작한다.


양산 통도사에서 존경받는 어르신네로 조실을 지냈던 구하 스님은 비구니를 지망하는 어린 사미승에게는 “오뉴월 산문에서 우는 뻐꾹새 소리 듣고 고향 생각이 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면 “뻐꾹새 우는소리 멈출 때까지 부처님께 백배, 천배하겠나이다”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히말라야의 외딴섬 여승원의 뒷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듣고 고향 생각이 나면, 그날 그때, 행색이 궁상맞은 이 나그네를 해맑은 얼굴로 반겨주던 나이 어린 사미승은 올해도 뻐꾸기 우는 소리 멈출 때까지 마냥 부처님께 백배 천배하면서, 마른 풀 태우듯이 세월을 남김없이 불사르고 있을 것인가.

장대 끝에 매달아 놓은
경문기와 그 꼭대기에서
힘차게 도는 마니차는
오직 염불과 독경을 독촉하는
바람 속의 신앙으로서,
높은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시사철 불심을
지켜주는 영혼의 파수꾼이다.
부탄은 어떤 나라인가

‘뇌룡의 나라’라고 불리는 부탄왕국은 면적이 4만6천5백㎢에 달하며 인구는 약 66만명 정도다. 북쪽은 티베트, 동쪽과 남쪽은 인도, 서쪽은 시킴을 사이에 두고 네팔과 접해 있다. 부탄은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며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2천m 이상의 산악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교통로는 강이 만들어낸 골짜기로 이 길을 이용해 마을과 마을, 성과 성의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다.기후는 아열대에 속하며 여름은 계절풍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산지는 울창한 삼림으로 덮여 2,500m 지대까지는 소나무, 전나무 등이 많고, 그 이하는 떡갈나무 등이 많다.


부탄인은 9세기경 북쪽에서 밀려온 티베트 계의 민족이 주력이며 언어는 종가어가 표준어. 국교는 라마교를 믿고 있어 도처에서 초르텐을 볼 수 있으며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하는 밀교 탄트라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부탄의 정치는 국회와 성 중심의 중앙집권적인 군주제다.산업은 농목업과 수공업이 중심으로 금속세공 분야와 장식품을 만드는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최근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팀푸의 남서쪽 파로에 국제공항이 들어섰다.

부탄은 시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특이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의 중심부에 묻혀, 스스로 몇 세기동안 다른 세계와 동떨어져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1974년부터 시작된 신중한 개방 이후 여행자들은 이 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 경이로운 풍경과건축물들,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그리고 독특하고 순수한 문화는 이 나라의 매력거리들이다. 풍부한 자연 자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부탄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대두되며 다른 나라와 달리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발전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피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옛 문화와 자연 자원, 그리고 그들의 불교식 생활 양식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부탄은, 과거와 미래에 양 발을 걸친 채 침착하게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부탄 지도(13K)

통계 자료

국명 :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
면적 : 46,620 sq km (18,182 sq mi)
인구 : 600,000
수도 : 팀푸(Thimphu, 인구 20,000)
민족 : 사르춉(Sarchops, 아삼인), 냐롱(Ngalong,부티아인, 정치 경제적 지배 민족), 롯샴파(Lhotshampa, 네팔인)
언어 : 죵카(Dzongkha)
종교 : 드룩파 카규(Drukpa Kagyu) 불교
정체 : 왕정
국왕 : 지그메 싱예 왕츅(Jigme Singye Wangchuck)
수상 : 리용포 지그미 틴리(Lyonpo Jigmi Thinley

지리 및 기후

육지로만 둘러싸인 부탄은 대략 스위스와 같은 크기이다. 북쪽과 북서쪽은 티벳과 마주하며 나머지 부분은 인도를 향해 살짝 들어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국토는 산악 지형으로 티벳 접경지역의 쿨라 강그리(Kulha Gangri)는 7554m에 이른다. 부탄은 북쪽의 높은 히말라야 산맥과 중앙의 고원과 계곡 지역, 그리고 남쪽의 기슭과 평원 지역 등 세 개의 지리적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국내의 커다란 강들도 지리적으로 두드러진 특징이며 이 강들은 부탄 경제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수력 발전의 커다란 가능성도 안고 있다.

몇세기에 걸친 쇄국주의와 적은 인구, 그리고 극단적인 지형 지세 덕택에 부탄의 생태계는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로 남겨져 있으며 풍부한 동, 식물 종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부탄 법에 따르면 60%의 국토는 언제나 숲으로 남겨지도록 되어있다. 현재는 눈에 뛸 만큼 높은 수치인 72%가 산림으로 덮여 있으며, 의약적으로 효과가 있는 300여 종을 포함해 5000여 종의 놀랍도록 많은 수목이 남겨져 있다. 또 황금 랑구르(원숭이종)나 구름표범, 적색 팬더와 같은 멸종위기나 희귀 동물을 포함해 165 종의 포유 동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덧붙여 현재까지 675종의 조류가 발견되었으며 이 중에는 멸종 위기의 검은목 두루미도 포함되어 있다.

왕국의 1/4 조금 넘는 면적이 보호되고 있는 지역인데 이 지역들은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탄은 진보적인 통합보호발전 계획(Integrated Conservation and Development Programme)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와 전체 경제적인 기반의 특징이 될 환경 보호를 조율해 나가고 있다. 국립 공원은 중요한 생태계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관광객 대상의 여행지로 개발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여행자들은 자신이 보호 지역으로 들어가거나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이다.

부탄의 기후는 남부 국경 지역의 열대 기후에서 겨우 150km 북쪽에 있는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마이애미나 카이로와 같은 위도상에 위치한 이 나라의 기후는 주로 해발 고도에 따라 달라진다. 몬순 기후의 영향도 절대적이어서 다른 어떤 히말라야 지역보다도 많은 강우량을 기록하여 때로는 1년에 5.5m까지 내릴 때도 있다..

역사

고고학적인 근거를 통해 부탄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2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불교는 전통적으로는 구루(guru)인 림포체(Rimpoche)가 8세기에 최초로 방문하면서 들어온 것으로 믿어지기는 하지만 2세기에 소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구루 림포체는 부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두번째의 부처로 여겨진다. 그의 기적적인 힘은 악귀나 나쁜 영혼을 제압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며 그의 가르침과 지혜는 테르마(terma, 감추어진 보물들)의 형태로 감추어져 나중에 테르톤(terton)으로 알려진 현명한 보물의 발견자들에 의해 드러나도록 봉해졌다고 한다. 가장 잘 알려진 이들 테르톤 중 한 명이 페마 링파(Pema Lingpa)이다. 그가 발견한 책과 유물, 그리고 그가 만든 종교적인 춤들과 예술품들은 현존하는 부탄의 유산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16세기 이전에는 수많은 부족들과 호족들이 서로 싸우거나 티벳과 대항하며 부탄 전역에 걸친 여러 계곡들을 지배했다. 이러한 상황은 1616년 티벳의 불교 학교인 드룩파 카규(Drukpa Kagyu)의 한 승려인, 냐왕 남걀(Ngawang Namgyal)의 도착으로 크게 변하게 된다. 그는 여러 지역을 돌며 가르침을 주었고 곧이어 스스로 샤브드룽 림포체(Shbdrung Rimpoche)라는 칭호를 내세워 부탄의 종교적 지배자의 자리에 올랐다. 이어 경쟁 관계의 라마와 티벳 세력의 공격을 축출하고 남쪽 계곡 지역을 통일된 국가로 변모시켜 드룩 율(Druk Yul, 용의 나라)이라고 불렀다. 그가 확립한 정치 체계는 20세기 초엽까지 유지되었으나 1705년에 샤브드룽이 죽자 이후 200여년간 부탄은 국내의 갈등과 정치적 암투가 계속되었다.

불안정한 정세는 우곈 왕축(Ugyen Wangchuck)이 부탄의 수장들과 주요한 라마들에 의해 세습적인 지도자로서 만장일치로 선출된 1907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첫 왕이 왕관을 쓰게 되었고 왕츅 왕조가 탄생되었다.뒤이은 80여년간은 그와 그의 계승자인 지그메 왕츅(Jigme Wangchuck) 왕에 의해 왕국 전체가 전제 군주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된다. 1947년 독립 후 인디아는 부탄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였다.

세번째 왕인 지그메 도르제 왕츅(Jigme Dorje Wangchuck)은 그가 최초로 착수하였던 개발 계획 때문에 현대 부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중국이 티벳을 침략한 이후 부탄의 완전 쇄국 정책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되자 1971년 부탄은 UN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현재의 전제 군주인 지그메 싱예(Jigme Singye)는 환경과 부탄의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통제된 발전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고 있다. 그의 통치 이념으로는 경제적인 자급자족과 ‘Gross National Happiness’라고 그가 이름 붙인 것을 들 수 있다.

 

부탄의 네팔인에 대한 박해

1974년 6월 2일에 거행된 그의 대관식에는 다른 나라 매스컴의 입국을 허용하여 세계 무대에 부탄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날로 여겨진다. 최초의 관광객 그룹은 이 해 후반에 입국하였다.

전통적으로 리용포스(lyonpos,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들)는 왕이 5년 임기로 지명한다. 리용포스는 보통 재임명되며 최근 40여년간의 경쟁이 없는 정치적 안정은 부탄이 추진하는 통제된 현대화 정책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다. 리용포 다와 체링(Lyonpo Dawa Tsering)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외무 장관을 역임한 사람으로 기네스 북에 올라있다(1972-1998). 1998년 6월의 주요한 정치 개혁에 의해 왕은 내각을 해산시키면서 자신이 임명한 전임 장관들을 공개 선거를 통해 선출되도록 선언했다.

경제

GDP: US$85 million

1인당 GDP: US$142

연 성장률 : 6.8%

인플레이션 : 7%

주요 산업 : 광업, 목재, 과일 재배, 관광, 수력 발전 수출(인디아 대상)

주요 교역국 : 인디아, 방글라데시

문화

여러 면에서 볼 때 부탄은 현대와 중세의 갈림길에서 주저하는 듯이 보인다. 승려들이 노트북을 이용해 고대의 불경을 옮겨 쓰는 모습이나, 전통적인 복장을 한 궁수들이 스테인레스 합금으로 만든 활과 화살을 사용한다든지 텔레비전도 없는 나라에서 비디오 가게가 성업 중이라는 사실 등은 이러한 부탄의 나타내주는 모습들이다. 부탄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기술되어 왔는데 이는 고대의 죵(dzong)과 사원이 아직도 현대 생활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부탄은 히말라야에서 마지막 남은 불교 왕국이지만 성결하고 금욕적이며 별세계의 승려들이 사는 나라가 아니라 활기 넘치고 유쾌하며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왕국의 모든 삶의 모습은 공식적인 종교인 드룩파 카규 불교의 윤리를 따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는 부탄을 충분히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부탄인의 예술, 무용, 연극과 음악 등은 불교와 철저히 연관되어 있다. 회화는 여행객을 위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목적에 따른 것이며 축제도 별나고 재미있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신앙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다. 또 대부분의 모든 예술과 음악, 무용도 선과 악의 대립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들은 체츄스(tsechus)라고 불리는 장대한 종교 축제에서 가장화려하게 볼 수 있다.

축제 및 행사

가장 크고 화려한 축제들(tsechus)은 구루 림포체를 기념하여 부탄의 죵(dzong)들과 승원들에서 일년에 한번 열린다. 이들 축제는 보통 봄과 가을에 열린다. 축제에는 몇세기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온 성대한 야외극과 가면춤, 종교적인 우화 연극 등이 5일간에 걸쳐 펼쳐진다. 생기 넘치는 축제와 불교적 가르침을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뿐만 아니라 축제는 거대한 사교적 모임이기도 하다. 부탄인들은 축제기간 동안 가장 좋은 옷과 보석을 차려 입고 떠들썩하고 흥겹게 즐기며, 유머와 헌신이 서로 교차하는 가운데 명랑한 분위기가 축제를 가득 메운다. 여행자들에게 축제는 부탄인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을 이해하는 이상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만약 이러한 축제에서조차 멋진 사진을 찍지 못한다면 카메라를 부셔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필름의 두 배를 사두도록 하자.

여행자 정보

비자 :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오해와는 다르게 비자를 얻기 위해 특별한 연줄이 필요하거나 여행객수의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탄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위협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부탄 정부는 엄한 규칙을 세워놓고 있어서 여행자는 미리 계획한 여정에 맞추어 여행해야 하며 모든 비용이 포함된 특권을 위해서는 하룻밤당 US$200을 내야 한다(자세한 것은 대사관을 통해 확인할 것). 이외의 다른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다. 모든 비자 신청은 투어 오퍼레이터를 선정하여 부탄 관광국(Tourism Authority of Bhutan ,TAB)을 통하도록 해야 한다. 비자는 입국 승인 통지와 대금 완료 영수증을 가지고 입국시에 받게 된다. 이러한 절차는 사실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10일 정도면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보건 위생 : 고산병, 서러사, 간염 A, 말라리아(저지대만)
시간대 : 한국보다 3시간 늦음
전압 : 230V, 50Hz
도량형 :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 뉼트럼(Ngultrum, NU)
일반 경비 :
저렴한 식사: US$1-2
중간 가격대 레스토랑: US$2-4
고급 레스토랑: US$10
저렴한 숙소: US$1-3
중급 호텔: US$5-7
고급 호텔: US$150-200

 

여행자에게 부과되는 여행세는 호텔에서 묵든 트레킹을 떠나든 US$200이다. 이 금액은 모든 숙소와 음식, 부탄 내의 육로 교통 수단, 가이드, 포터, 짐 나르는 동물, 그리고 문화 프로그램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이 금액은 위치, 계절, 그리고 요구하거나 제공된 그 어떠한 숙소 형태와도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이 말은 즉, 여행자가 예약한 멋진 호텔에서 쫓겨나도 –성수기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 금액이 반환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네 명 미만의 여행자의 경우는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가령 3명 그룹은 US$20, 혼자 여행할 경우는 US$40까지 더 내야 한다. 이 금액에는 모든 여행 경비가 포함되지만 음료수나 세탁, 또는 전통적인 부탄의 목욕탕 등의 문화적인 사치의 비용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부탄에는 두개의 은행이 있는데 전국에 걸쳐 지점이 있다. 모든 은행과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여행자 수표로 지불이 가능하지만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등의 잘 알려진 이름만 받아 준다. 신용 카드를 쓰겠다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부탄에는 현금 인출기가 없다.부탄에서의 팁은 예절상 필요한 것이 아니다 - 직원들은 팁을 받으면 당황해 하지만 호의에 감사해 한다. 여행자들이 같은 가이드나 운전사와 계속해서 여행을 계속할 경우 그들에게 팁을 주어야 한다. 가이드에게는 하루 US$2-3 정도, 운전사에게는 그보다 조금 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레킹 가이드는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바라는데 적어도 위 금액의 두 배 정도이다. 흥정은 부탄인들의 전통이 아니다. 아무리 잘 깎는 사람이라도 여기서는 그리 효력이 없을 것이다.

여행 시기

가장 좋은 여행 시기는 10월에서 11월과 주요 축제가 열리는 동안이다. 기후는 9월 하순에서 11월 하순까지의 가을이 가장 좋아서 하늘은 청명하며 높은 산의 정상도 보인다. 이 때는 트레킹을 위해 이상적인 때이면서 부탄 전역을 여행하는 데 가장 좋은 시기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흠뻑 젖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6월에서 8월 사이의 몬순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 때는 팀푸에서 평균 50cm의 비가 쏟아져 내리며 동부 고원에서는 1m나 되는 비가 퍼부어진다.

주의 사항

동부 부탄으로 가는 길은 길고 험하며 어려운 고행의 길이다. 늙어 죽기 전에 돌아오기 위해서, 많은 부탄인들은 일단 평원을 건너 인도로 건너가 다시 페운트숄링(Pheuntsholing)을 통해 부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아삼 연합 자유전선(United Liberation Front of Assam, ULFA) 같은 인도의 분리 세력에 의해 발생하는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아삼(Assam)을 여행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주요 여행지

팀푸(Thimphu)

수도인 팀푸는 아름답고 울창한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팀푸 강(Thimphu Chhu) 뚝의 언덕에 널리 퍼져 있다. 이 도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이 없는 수도이다. 하나가 몇 년 전에 설치되었으나 주민들이 신호등이 인간미가 없다고 불평하는 바람에 며칠 뒤 곧 없애고 말았다. 최근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팀푸는 여전히 그 매력을 보존하고 있으며 밝게 칠하고 정성들여 조각한 많은 건물들은 이 도시를 매혹적이고 중세적인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팀푸는 수많은 구경거리들과 즐길만한 것들로 넘쳐흐르는 부탄 문화의 풍요를 상징하는 도시이다. 시 바로 위의 언덕에서 눈길을 끄는 인상적인 트라쉬 쵸 죵(Trashi Chhoe Dzong, 영광스런 종교의 성채)은 1960년대에 완전히 보수되어 수도의 상징이 되었다. 현재는 국왕의 집무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 승려단도 이곳에 있다. 대부분의 투어에서는 죵 아래 층에 있는 미술 공예 학교(School of Arts & Crafts)를 같이 방문하도록 계획한다. 이 학교에서는 전국의 재능있는 어린아이들을 모아 전통적인 기법을 전수하며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이 아이들의 놀랄만한 작품들을 적당한 가격에 판다. 시내로 돌아와 가장 눈에 띄는 불교 건축물은 쵸르텐 기념관(Memorial Chorten)으로 많은 불교 성화와 밀교상을 전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은 매일같이 기도를 드리는 곳이며 하루 종일 쵸르텐 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팀푸의 중심부에서 열리는 주말시장은 시골 사람들이 부유한 팀푸 주민을 제치고 열심히 흥정을 하는 곳으로 도시와 시골의 조화를 경험하기 가장 이상적이다. 근처의 챵리미탕(Changlimithang) 경기장은 국립 궁술 경기장으로, 전통적인 복장을 하고 화려한 동작과 즐거운 의식을 치르며 부탄의 국기인 궁술에 참가한 궁수들이 실력을 겨룬다. 국립 전통 의학원은 300 종이 넘는 식물로 약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는 재미있는 기관이다.

모든 호텔이 완전히 차버리는 가을의 팀푸 체츄(축제)동안 여행하려는 계획만 아니라면 여행자들은 대개 시내의 고급 호텔 중 한곳에 예약되어진다. 축제 기간 중 호텔이 다 차버리면 게스트 하우스나 다른 사람의 집, 아니면 심지어 텐트에서 자게 될 수도 있다 – 그렇다고 해도 그냥 그러러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사실 최고급 호텔에 대한 상상도 바꾸는 것이 나을 것이다 – 부탄의 최고급 호텔이란 20년 전 인도의 호텔과 같은 정도지만 서비스와 시설은 일반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숙소가 아무리 간소하다 하더라도 방은 대개 부탄 스타일로 야단스럽게 장식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아마 침실에 들어왔다기 보다는 수도원에 안내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파로(Paro)

만약 비행기로 부탄에 가면 파로에 착륙하게 될 것이다. 서부 부탄은 드룩파(Drukpa)인의 심장부로 이곳에서 왕국의 가장 크고 오래었으며 장대한 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로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에 왔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게 된다. 파로 마을은 풍부하고 비옥한 파로 계곡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경관과 전망좋은 마을, 그리고 역사적이 건축물들이 사방 몇 킬로미터 안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중심부에서 가까운 국립 박물관은 부탄의 문화에 가장 쉽게 근접할 수 있는 곳이며 건물 자체도 1656년에 완성된 것이다.

1998년 4월에 계곡 기슭 위의 절벽(900m)에 걸쳐 있던, 부탄에서 아마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진에등장하였을 탁챵(Taktshang) 사원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곳은 또한 8세기에 구루 림포체가 암호랑이의 등에 타고 왔다고 전해지면서 ‘호랑이의 보금자리’로 알려졌던 곳이다. 사원은 왕국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길일이 택해지면 원형 그대로 복원될 것이다.파로 공항은 파로 마을에서 7km, 팀푸에서 53km 떨어져 있다. 택시는 거의 없으므로 사전에 마중 나올 교통편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붐탕(Bumthang)

이름은 마치 미국 남부의 블루스바 이름처럼 들리지만 붐탕은 부탄의 정신적인 중심부이며 가장 오래되고 귀중한 불교 유적이 있는 곳이다(이곳에서는 담배의 판매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피울 담배를 미리 사두어야 한다). 부탄의 중심에 위치한 붐탕은 네개의 주요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중 중심이 되는 쵸스코르(Choskhor)는 가장 중요한 죵들과 사원, 궁전들이 있는 곳이다. 자카르(Jakar)는 쵸스코르 아래에 있으며 출발기지가 될 만한 곳이다. 자카르 죵은 1500m가 넘는 둘레로 부탄에서 가장 크며, 1549년에 세워졌다. 왕디춀링(Wangdichholing) 궁은 우곈 왕츅 왕의 작은 숙소였던 곳이다.

쵸스코르 계곡을 따라 더 가면 659년 세워진 잠베이 라캉(Jambey Lhakhang) 사원이 나오는데 10월에 잠베이 라캉 드룹(Jambey Lhakhang Drup)이라고 하는 부탄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 중 하나가 열리는 곳이다. 쿠르제이 라캉(Kurjey Lhakhang)은 1652년 건립된 세개의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 안의 동굴에 보관된 구루 림포체의 흔적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만약 죵을 보는데 질렸다거나 오래되고 성스러운 건축물은 다 보았다고 생각된다면 시골로 나가보도록 하자. 여기는 부탄인의 대부분이 가진 그대로 수천 년 동안 살아 온 곳이다.붐탕 지역에서 출발기지로 삼기 가장 좋은 곳은 자파르(Japar)로 팀푸에서 150km 조금 넘는 곳에 있다. 다른 부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도착하려면 바퀴가 달린 그 어떠한 수단이든 빌리거나 얻어 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지 않고는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포브지카(Phobjika) 계곡

포브지카는 검은 산맥(Black Mountains)의 서쪽 기슭에 있는 빙하 계곡으로, 검은 산맥 국립공원의 경계에 살짝 들어가 있는 지정 보호 구역이다. 이곳은 희귀 멸종 동물인 검은목 두루미가 겨울을 지내는 곳으로 부탄에서 가장 중요한 야생 동물 보호 지역 중 한곳이다. 이 새는 부탄의 민간 전승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새들이 부탄을 떠나 티벳으로 돌아갈 때를 아쉬워하는 민요는 가장 널리 퍼진 노래 중 하나이다. 여행자들은 팀푸에 있는 자연 보호부처의 허가를 얻어 두루미의 보금자리를 구경할 수 있다. 밤을 보내기 위해 석양 무렵 계곡 전체에서 이 새들이 모여드는 광경은 놀라운 장관이다. 이 계곡에 사는 동물 중에는 또한 문트작(muntjaks, 짖는 사슴)이나멧돼지, 삼바(sambar, 사슴의 일종), 히말라야 검은 곰, 표범, 붉은 여우 등이 있다. WWF는 포브지카 계곡 기슭 가까이에 케베탕(Khebethang) 자연 연구 센터를 설립하도록 보조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검은 산맥 국립 공원은 아직도 자연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광대한 지역이다. 공원 안에는 수많은 식물 종들이 있으며 발견되고 있는 동물들 중에는 호랑이나 히말라야 검은 곰, 표범, 적색 팬더, 고랄(goral, 영양의 일종), 세로우(serow), 삼바,멧돼지, 황금 랑구르 등이 있다.포브지카에 가기 위해서는 왕기(Wangi)로 가는 큰 길을 따라가다가 험한 비포장 도로로 내려가 13km를 더 간다. 팀푸에서 포브지카까지는 94km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트라쉬강(Trashigang)

예쁘고 활기 찬 마을인 트라쉬강은 부탄의 동부 자연을 보기 위해 뛰어들 만한 곳이다. 소수의 여행자들만이 이곳에 들어오지만 일단 비교적 편안한 팀푸나 파로를 뒤로하고 이 궁벽한 산지 마을을 탐험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트라쉬강은 부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지만 또한 가장 오지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술에 퍼 마시고는 도로변에서 누워 자면서 술에서 깨어나는 모습은 그리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니다. 죵으로 향하는 길에서 곌트쉔(Gyeltshen) 바가 매일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판에는 ‘bar’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한편에는 카우보이의 사진이, 그리고 다른 편에는 현지 화가가 그린 재미있는 도날드 덕의 그림이 있다. 이 곳은 부탄의 아라(arra)를 시음하고 현지 분위기에 젖어들기에 가장 이상적인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성스러운 날들인 부탄 달력의 매월 1일, 10일, 15일에 찾아 온다. 가져온 물건을 팔고 나서 주민들이 아라를 마시며 불그레한 얼굴로 변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는 모습들이다.

주의! 현지 지프 운전사들에 따르면 트라시강을 새벽 3시반에 출발할 경우 팀푸에 도착하는 것은 저녁 8시 반이 되어서야 가능하다고 한다. 600km를 지나는 이 고난의 17시간은 언덕을 오르고 계곡을 내려가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여정이다.

 

삭텡(Sakteng) 야생동물 보호구역

650평방km에 이르는 이 구역은 왕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독특한 지역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탄에서는 미고이(migoi, 강한 사람)로 알려진 예티(yeti)의 거주 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 미고이는 다른 히말라야 지역에서 발견된(아니면 거짓으로 발견된) 예티들과는 다르다. 몸은 붉은 색을 띤 갈색에서 검은색 털로 덮여있지만 얼굴에는 털이 없다. 상당히 분명하게 악취를 내뿜으며 자신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보기 힘든 이 털북숭이 설인이 추적에서 벗아날 수 있도록 만드는 또 다른 특징은 대부분의 예티의 발이 뒤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추적자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한다.

삭텡의 마을, 또는 고엠바(goemba)는 야생 동물 보호구역의 황야에 뛰어들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트라쉬강으로 향해 가서 다시 60km를 더 운전해 동부 부탄의 경계까지 가야하며 팀푸에서는 총거리로 660km 떨어져 있다.

 

라야(Laya)

부탄의 가장 북서쪽에 있는 라야는 왕국에서 가장 높은 마을 (3,700m) 중 하나로 마사강(Masagang)의 위압적인 정상 아래에 있다. 이곳에는 800여명으로 이루어진 라얍(Layap)이라는 부족이 그들만의 언어와 풍습, 의복을 지키며 살고 있다. 마을 여인들은 뾰족한 대나무 못을 꼭대기에 매달아 구슬박은 끈으로 묶은 독특한 원뿔형 대나무 모자를 쓴 발랄한 모습이다. 의복은 검은 모직 재킷에 은색장식을 달았으며 자연스런 흙색으로 줄무늬가 그려진 긴 모직 치마를 입는다. 장식은 스스로 많은 은세공품을 많이 이용하는데 때로는 찻숟갈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때도 있다. 마을 여인들은 종종 저녁에 모여 라얍의 전통적인 노래에 맞춰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헬리콥터를 타지 않고 라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걷는 것이다. 라야-가사(Gasa) 노선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설인 트렉(Snowman Trek) 중 일부이다.

부탄으로 가는 길

부탄으로 들어오는 장소는 두곳으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파로를 통해 비행기로 도착하며 몇몇은 인도와의 남부 접경인 푸엔트숄링(Phuentsholing)을 통해 육로로 도착한다. 출입국은 어떤 경우라도 모두 부탄의 국가 항공사인 드룩에어 (Druk Air)로만 가능하다. 드룩에어는 다른 항공사와의 제휴 관계가 없으며 부탄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항공사이므로 여행자들은 드룩에어가 취항하는 곳에서 스스로 비행기표를 사야만 한다. 카트만두에서 파로로 출발하는 비행편에서는 어떤 비행기라도 히말라야 산맥의 가장 극적인 장관을 볼 수 있다. 가장 큰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는 왼쪽 좌석에 않을 수 있도록 하자.드룩에어는 TAB에서 발행한 비자 관계 서류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경쟁사가 없는 관계로 비행기표의 가격은 비싸다. 파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직원은 출입국 허가서를 찾아 내어 비자를 발급해 주고 공항에서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파로공항은 팀푸에서 두시간 조금 못 미치는 거리이다. 미리 수배해둔 차량은 아마 직접 공항에서 팀푸까지 태워 줄 것이다. 파로에서 부과하는 출국세는 대략 US$7이다육로를 통해 입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카트만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아마 다르질링(Darjeeling)이나 시킴(Sikkim)을 가는 길에 지날 것이다.

국내 교통편

부탄에는 국내선 항공편이 없고 헬리콥터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한발자욱도 철로가 깔린 곳이 없으므로 여러 곳을 둘러보는 유일한 방법은 걷거나 아니면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만약 일반 관광 비자를 받았다면 투어 오퍼레이터가 모든 교통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정부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사람이거나 인도 국적이라면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것은 대중교통뿐이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공공 버스는 혼잡하며 거칠고 험한 도로로 인해 더욱더 불편하다. 만약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차량을 얻지 못한 경우에는 여행사를 통해 운전사가 딸린 차를 빌릴 수 있다. TAB는 부탄에서 산악 자전거를 권장하고 있으며 팀푸나 파로 계곡 주위에서는 특히 이 방법이 좋은 탐험 방법이다. 잘만 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자전거를 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동안에 이용할 수 있는 택시는 미터기를 달고 있지 않았으며 요금은 거의 완전히 흥정해야만 하는데 때로는 착취에 가까울 만큼 받아먹는다. 

 

 

 

생산 공장도 찌든 공해도 찾아 보기 힘든 [지구상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불리는 자연 그대로 보존된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8번째 아시아 에서는 첫번재로 행복한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2006년10월11일자 비즈니스위크에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The World's Happiest Countries]을 뽑아 소개한 내용 中에서 발취)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험준한 지형을 자랑하는 나라 중 하나로, 산 속에서 많은 주거생활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약80%인 대다수가 농경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산악지대인 만큼 경작 가능한 땅은 전체 국토의 2.3%에 불과하다.

 

 

 

남부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사이 히말라야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 
1907년 영국의 인정으로 군주제가 성립되었고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함에 따라 1949년 영국에 합병되었던 인도-부탄 지역을 돌려받는 대신 인도에 국방과 외교권을 위임하고 독립하였다.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하며 면적은47,000㎢로 수도는 팀부 Thimphu, 인구 682,321명 (2008), 
정식명칭은 부탄왕국(Kingdom of Bhutan)이다.

 

 

 

부탄 왕국은 히말라야의 동쪽에, 북으로는 티베트와 남으로는 인도의 아삼 주 및 벵갈 서부지방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 히말라야 산맥이 위치하고 산들로 둘러싸인 내륙 국가이다.

 

 

 

7,300미터에 이르는 히말라야 산맥의 티베트 고원과 경계를 이루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높이가 낮아지면서 비옥한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계절풍(몬순)은 이 지역에 산림을 풍성하게 했으며 높은 곳에는 산악인들이 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경작이 가능한 중부와 히말라야 언덕에 인구가 밀집해 있다. 남쪽의 Daurs 평원은 히말라야 산맥 보다 고도가 낮아 아열대 숲과 열대 초원(사바나),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져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평야가 거의 없다 .
최근까지 인도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고 티베트와 같이 쇄국정책을 써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는 부탄과의 국경선에 여행 금지선을 설정하여 현재까지 외국인 입국자가 가장 적은 
비경(秘境)으로 존재한다.

 

 

 

오래 전에 사라진 탄트라(tantra)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1971년 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구(dzongkhag)로 이루어져 있다. 

 

 

 

부탄의 옛 기록은 화재와 지진으로 소멸되어 신비에 싸여 있다. 8세기경에 Guru Padma Sambhava가 비호를 타고 티벳에서 부탄으로 날아와 타루 벨리에 있는 호랑이의 거처인 탁상 Taktsang에 왔다는 전설이 있다.

 

 

 

 

 

 

탁상(Taktshang)사원은 해발 3120m 산에 자리잡은 보금자리 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부탄의 탁상(Taktshang) 사원은 파로 골짜기 300m의 절벽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듯 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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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드마 삼바바가 호랑이를 타고 온 장소라는 전설이 내려오며 부탄의 국민들에게 이곳은 최대의 성지다
1692년에 세워졌으며,1998년4월 19일 원인 불명의 대화재를 겪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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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16세기부터 푸나카 사원의 대승정(大僧正) 다르마 라자의 지배를 받았고, 
행정의 실무는 데프 라자(副王)가 행하므로 승·속(僧俗)의 이중 통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의 군(郡)에는 토후(土侯)가 있어서 그 지배력이 강하였다.

1907년 중부에 있던 통사군의 군수(郡守) 우겐 왕추크가 왕위(마하라자)를 선고하고

영국에 의해 유일한 왕조로 인정받음으로써 부탄에 군주제가 성립되었다.

 

 

이후 인도와 조약을 맺어 인도에 외교권을 위임하였고 1949년 8월 8일 독립하였다.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추크는 개화된 통치자로서 전통적 가치 보존과 함께 국가의 발전을 추구하려 하였다.

 

 

전(前) 국왕 지그메 싱예 왕추크는 제4대 왕으로 1972년에 16세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 후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이 Jigme Khesar Namgyel Wangchuk 2006년 즉위했으며, 
2008년 입헌 군주제 수립을 위해 의회 선거가 2008년 3월 24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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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집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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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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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장(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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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농사를 짓은 것을 아침 시장(market)에 가지고 와서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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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고유의 춤을 추는 부탄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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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고유의 춤을 추는 부탄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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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고유의 춤을 구경하는 관광객들과 부탄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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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왕국의 수도 팀부(Timphu)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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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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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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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Paro)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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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Paro)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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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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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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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팀푸(Timphu)의 관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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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팀푸(Timphu)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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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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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길(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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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시냇물 - 식수로 사용해도 좋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