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Let me be there 외- Olivia Newton John

박연서원 2012. 2. 24. 11:58

Olivia Newton John

 

1. Have You Never Been Mellow (느긋해져본 일 없니?)

 

There was a time when I was

 in a hurry as you are
I was like you
내가 너 만큼이나 서두르던 시절이 있었지
난 꼭 너같았어

 

There was a day when I just

had to tell my point of view
I was like you
나의 생각은 기어코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절이 있었지
난 꼭 너같았어

 

No I don't mean to make you frown
no I just want you to slow down
네 기분 상하게 할 뜻은 없어
그냥 너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

 

Have you never been mellow
have you never tried
To find a comfort from inside you
느긋해본 적 없니
네 맘 속에서 위로를 찾으려 노력했던 적 없니

 

Have you never been happy just to hear your song
Have you never let someone else be strong
니가 노래 흥얼거리는 걸 들으면서 행복해 본 적 없니
다른 이에게 힘이 되어준 적 없니

 

Running around as you do

with your head up in the clouds

I was like you
너처럼 멍하니 공상에 잠긴채로 돌아다녔었지
난 꼭 너 같았어

 

Never had time to lay back

kick your shoes off close your eyes
I was like you
느긋하게 누워서 신발을 벗어던지고 눈을 감아본 적이 없었지
난 꼭 너 같았어

 

Now you're not hard to understand
you need someone to take your hand
이제 널 이해할 수 있어
넌 네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필요해

 

Have you never been mellow
have you never tried
To find a comfort from inside you
느긋해본 적 없니
네 맘 속에서 위로를 찾으려 노력했던 적 없니

 

Have you never been happy just to hear your song
Have you never let someone else be strong
니가 노래 흥얼거리는 걸 들으면서 행복해 본 적 없니
다른 이에게 힘이 되어준 적 없니

 

 

 

2. Let me be there

 

Wherever you go
Wherever you may wonder in your life
Well surely you know, I always wanna be there
Holding your hand
And standing by to catch you when you fall
Seeing you through, in everything you do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당신의 삶동안 헤매일 곳이라면 어디든지
글쎄요, 당신은 분명히 알겠죠, 난 언제나 그곳에 있고 싶어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이 넘어질 때면 잡아줄 수 있는 곳에 서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끝까지 지켜 보면서.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r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o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당신의 아침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밤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잘못된 거라면 뭐든지 고치고, 바르게 만들게 해주세요.
오직 우리 둘 만이 함께 할 그 놀라운 곳에 당신을 데려가게 해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 그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
 


Watching you grow
And going through the changes in your life
That's how I know, I always wanna to be there
Whenever you feel you need a friend to lean on
Here I am
Whenever you call, you know I'll be there
당신이 자라는 걸 지켜보고,
당신의 삶에 있을 변화를 경험하고,
그것이 내가 아는 방법,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고 싶어요.
당신이 기댈 친구가 필요하다 느낄 때면 언제나
내가 여기 있어요.
당신이 부를 때면 언제나, 알잖아요, 내가 거기 있을 거에요.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r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o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당신의 아침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밤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잘못된 거라면 뭐든지 고치고, 바르게 만들게 해주세요.
오직 우리 둘 만이 함께 할 그 놀라운 곳에 당신을 데려가게 해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 그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

 

Let me be there in your morning
Let me be there in your night
Let me change whatever's wrong and make it right
Let me take you to that wonderland that only two can sha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All I ask you, is let me be there
당신의 아침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당신의 밤을 함께 할 곳에 있게 해주세요.
잘못된 거라면 뭐든지 고치고, 바르게 만들게 해주세요.
오직 우리 둘 만이 함께 할 그 놀라운 곳에 당신을 데려가게 해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 그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모든 것, 그곳에 있게 해달라는 것. 

 

 

 

 

 

3. Banks Of The Ohio (오하이오 강의 제방)

 

 

 

I asked my love to take a walk,
to take a walk, just a little walk
Down the side where the waters flow,
down by the banks of the Ohio

(chorus)
And only say that you'll be mine,
in no other's arms entwined
Down the side where the waters flow,
down by the banks of the Ohio

I held a knife against his breast,
as into my arms he pressed
He cried, "My love, don't you murder me,
I'm not prepared for eternity"

(chorus)
I wandered home 'tween twelve and one,
I cried, "My God, what have I done?
I've killed the only man I love,
he would not take me for his bride"
(chorus)
Down by the banks of the Ohio  

나는 내 사랑에게 말했죠. 산책을 하자고
산책좀 가요~~  잠시만요
개울이 흐르는 곳으로 가서
오하이오 둑 근처로요

(코러스)
그리고  당신은 내거야요 하고 말했죠
다른사람은 팔짱을 끼지 못해요
개울이 흐르는 곳
오하이오 둑방길을 따라서~

그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었죠
그가  내팔을 누르면서
그는 이런~~ 내 사랑 나를 죽이진 못할걸?
나는 미처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코러스)
나는 집근처를 12시와 한시 사이에 배회했네
나는 소리쳤네  오 신이여  어떻게 하나요
나는 내가 사랑한 사람을 죽였어요
그는 나를 자기 신부로 선택치 않았네

(코러스)
오하이오  둑밑에서 

 

  

 

 

 

 

'Banks of the Ohio'는 미국의 민요로 이 곡을 부른 가수는 많지만, 우리에게는 Olivia Newton John이 부른 노래가 많이 알려져 있다.

1976년 귀국한 조영남씨가 냈던 귀국 리사이틀의 실황 녹음 앨범에서 '내고향 충청도'라고 번안해서 우리의 귀에 많이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내고향 충청도'는 전혀 다른 내용의 가사로 되어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1948년 9월 26일 영국 Cambridge에서 1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 호주에서 자란 영국계 가수로서 할아버지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분이고 아버지는 대학 학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올리비아 뉴튼 존의 아름다움 속에는 지적인이미지가 느껴진다.

그녀는 지금 60대이지만 팬들의 가슴 속엔 발랄한 처녀의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같다. "Let Me Be There(빌보드 6위)"로 미국 컨츄리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하였을 때, 대중들에겐 신선한 청량음료같았지만 미국의 정통 컨츄리 음악 애호가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미국출신도 아닌 웬 곱상하게 생긴 처녀가 나타나서 자기네 컨튜리 음악을 한다니 당연히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초기 음악은 존 덴버(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 같은 대부분 타 가수의 곡들을 리메이크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If you love me(Let me know- 빌보드 5위)', 'I honestly love you(빌보드 정상)', 'Have you never been mellow(빌보드 정상),

'Please Mr. Please(빌보드 3위)'와 같은 곡으로 연이은 성공을 거두었다.

 

[김기덕의 팝스 비화]중에서

 

컨트리로 출발한 이색 경력

컨트리는 미국 백인의 전통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백인의 우월성을 내세우기 위해 컨트리는 의도적으로 보급됐고 흑인들이 다루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이었다. 이 금기가 깨진 건 1969년, 흑인가수 찰리 프라이드가 처음으로 컨트리를 부르면서 벽이 무너졌다. 미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가수가 컨트리를 불러 최초로 1위를 차지한 건 올리비아 뉴튼 존이 처음이다.
올리비아는 영국 태생으로 호주에서 살았다. 그녀가 외국인으로 미국의 컨트리 뮤직을 노래하게 된 이유는 존 파라라는 프로듀서의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무명시절 팻 캐롤이란 친구와 듀엣을 했었다. 그러나 곧 팻이 결혼하는 바람에 외톨이 신세가 됐다. 그런데 팻의 남편이 바로 존 파라로 그는 올리비아의 프로듀서를 자처하고 나서며 그녀의 목소리가 컨트리에 적합하다면서 컨트리 가수로 훈련시킨다. 데뷔곡이 1971년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If Not For You''였고 3년 뒤에는 기라성 같은 컨트리의 거물 여가수들을 제치고 미국 컨트리 뮤직 협회가 뽑은 그 해의 여성 보컬리스트로 선출됐다. ''I Honestly Love You''는 넘버 원을 차지했다.

동물 애호가가 된 사연

올리비아 뉴튼 존은 환경 운동가인 동시에 동물 애호가이다. 그녀는 모든 아이처럼 어릴 때 동물 장난감을 좋아했다. 꼬마 때 아버지가 영국에서 호주로 이주하게 되면서 배 여행 중 블루피로 만든 장난감을 잃어버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개, 고양이 등을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그녀의 1980년 앨범 [Physical] 뮤직 비디오를 보면 동물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나온다. 특히 말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그녀가 가장 아끼는 동물로 옛 친구의 이름을 딴 '팻 캐롤'이라고. 현재 올리비아는 4에이커가 넘는 저택에 5마리의 말, 8마리의 개, 10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며 틈만 나면 동물을 돌보는데 보낸다. 그녀는 현재 <내셔널 지오그래픽>사가 제작하는 동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MC를 맡고 있다.

미모로 염문 자주 뿌려

올리비아는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를 갖고 있다. 그 덕에 영화에도 출연했다. 미인에게는 스캔들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영화 <토요일밤의 열기>로 스타덤에 오른 존 트라볼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1978년 작품 <그리스(Grease)>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상대역으로 올리비아 뉴튼 존을 직접 지명할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졌다. 이들의 호흡은 마치 연인처럼 잘 어울렸고 두 사람의 스캔들이 나돌았다. 이들은 또

다시 1980년 <재너두(Xanadu)>, 1983년 <Two Of A Kind>라는 영화에서 공연했다.
그런가 하면 한동안 비지스의 막내둥이 앤디 깁과도 뜨겁다는 염문이 나돌았고 클리프 리처드와도 듀엣곡 ''Suddenly''를 발표하며 잠시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정작 그녀가 선택한 길은 그녀의 두번째 영화 <재너두(Xanadu)>-거물배우 진 켈리와 공연함-에서 단역을 했던 연하의 매우 매트 라탄지와 전격적인 결혼으로 바람둥이(?)란 명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1984년 매트와의 이혼 이후 독신으로 살고 있다.

팝의 요정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일까?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바브바 스트라이샌드?
지금은 다르겠지만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올리비아 뉴튼 존이 당연히 1위에 뽑혔다. 당시 <2시의 데이트>라는 팸플릿을 출간했었는데 32페이지짜리 이 정기 간행물은 1달에 2번 출간되었으며 청소년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이 책자에는 <2시의 데이트>의 주요 방송내용, 팝 정보, 주요 히트곡의 가사 악보 해설, 팝계 소식, 아티스트 동정, 각종 차트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지령 280호를 넘으면서 1995년까지 출간되던 이 잡지는 팝 음악의 올바른 보급과 질서라는 근본 취지에 맞게 이 땅의 팝 문화 발전에 공헌했다. 또한 이 책자에서는 <2시의 데이트> 청취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서 발표했는데 여자가수 부문 1위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 차지했다(1983년 연말 특집호 참조).
굳이 <2시의 데이트>에서의 조사가 아니더라도 당시에 올리비아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녀의 대표곡 ''Physical''이라는 노래는 '80년부터 '81년까지 연속 10주간 1위를 차지하며 당시 여자 가수의 노래 중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넘버 원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92년 14주 동안 1위를 차지했던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에 의해 깨질 때까지 팝계의 최고 기록이었다. 이 노래 이외에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O)의 반주로 영화 <재너두>에 쓰였던 ''Magic(''80년 1위)''이라는 노래와 당시 최고의 남자 배우 존 트라볼타와 함께 부른 ''Suddenly'' 등은 그야말로 슈퍼 히트곡이었다.
특히 그녀의 청순한 이미지와 예쁜 얼굴 그리고 날씬한 몸매는 그의 인기를 더해주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다투어 그녀의 사진이 담긴 인터뷰 기사를 실었으며 FM 방송에서는 1시간이 멀다 하고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당시에는 FM 방송에서 팝 프로그램이 가요 프로보다 훨씬 많았음). <2시의 데이트>에서 특히 그녀의 노래가 많이 방송되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그녀의 인기도 인기려니와 필자 개인적으로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1982년 그녀의 두 번째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 신곡 ''Heart Attack''을 비롯해서 ''Physical'', ''Little More Love'', ''Magic'' 등 왕년의 히트곡을 모은 음반이었다. 이 앨범에는 그녀의 상반신 모습이 담긴(Bust Shot) 사진이 실려있었다. 그 사진은 올리비아의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침 이슬같이 맑고 청초한 얼굴, 지성과 야성을 겸비한 야릇한 표정, 그러면서도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정감어린 눈동자,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오똑한 코와 관능적인 입슬, 그러면서 무엇인가 갈구하는 요염한 미소, 그 미소 속에 감추어진 절제된 열정. 그녀의 미소 앞에서 모나리자의 미소는 빛을 잃을 정도였다. 그녀는 백합의 순결과 장미의 열정과 안개꽃의 신비와 들국화 같은 향기를 동시에 지닌 미의 여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과장된 표현이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재킷 사진이었지만 당시에 젊은 필자에게는 많은 감동을 준 것이 사실이다.

에피소드 1

1983년 5월 어느날(정동 MBC 스튜디오). 날짜는 정확치 않지만 필자는 여느 때처럼 <2시의 데이트>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안 콘솔 옆에는 올리비아의 새 앨범(문제의 사진이 담긴 [Olvia Greatest Vol.2])이 놓여 있었다.
당시에는 CD라는 것이 없었다(CD는 '90년대 초에 보급됐으며 '94년부터 대중화됨). 한 곡의 노래를 방송하기 위해(틀기 위해) 음반(LP판; 지금은 이 음반을 비닐 레코드 또는 블랙 디스크라 부름)을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카트리지에 꽂혀 있는 바늘로 곡목을 맞추어 놓고 곡목을 소개하면서 턴테이블을 작동시켜야 했다(초창기에는 출발 시점에서 턴테이블이 제 속도를 내지 못했기 대문에 턴테이블을 작동시킨 후 음반은 손으로 잡고 있었음). 필요한 곡목을 얼마나 신속하게 맞추는가에 따라 그리고 얼마나 믹싱을 잘 하느냐에 따라(음악과 말) DJ의 능력이 평가되던 시절이었다(지금도 필자는 DJ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올리비아의 ''Magic''이라는 노래를 방송하기 위해 숙련된 손길로 노래를 맞추고 여유있는 목소리로 곡목을 소개했다.

이어서 들으실 곡은 금세기 최고의 여성 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의 ''Magic''입니다.

좀 과장된 목소리로 곡목을 소개하고 턴테이블을 작동했다. 그리고 음악이 나가는 동안 그 음반의 표지에 실린 여주인공을 감상하고 있었다. 30초쯤 지났을까, 밖에 있던 엔지니어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그 노래가 아니라는 사인을 보냈다. 노래가 잘못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눈치챈 필자는 빠른 동작으로 노래의 볼륨을 줄이고 마이크를 열어 사과방송을 했다.

죄송합니다. 노래가 잘못 나갔네요. 다시 방송해 드리겠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진짜 ''Magic''입니다.

약간의 너스레와 함께 재빨리 바늘을 들어 ''Magic''에 맞추고 턴테이블의 볼륨을 올렸다. 이런 일은 당시에 아주 흔한 일이었다. DJ가 생방송 도중 곡목을 잘못 소개하거나 곡목을 잘못 맞추어 노래가 잘못 방송되는 경우는 상기한 아날로그식 방송 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수는 청취자들이 용서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사과 방송을 하고 느긋하게 앉아 다시 문제의 재킷을 감상하고 있는 순간, 이번에는 엔지니어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당황한 엔지니어의 말이, 전화가 계속 오는데 또 그 노래(''Magic'')가 아니라는 것이다. 확인해보니 정말 ''Magic''이 아니었다. 청취자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다시 사과방송을 했다.

아휴,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또 실수를 했네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정말 확실히 올리비아 뉴튼 존의 ''Magic''입니다.

이 말과 함께 재빨리 카트리지를 ''Magic''이 있는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러나 잠시 후 5층 사무실에 있던 FM 부장이 뛰어올라왔다(정동 MBC에서는 6층에 스튜디오가, 5층에 사무실이 있었음). 스튜디오 문을 열어젖힌 담당 부장은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소리쳤다.

당신 방송을 어떻게 하는 거야! 장난이야! 사무실에 항의전화가 계속 오고 있어, 노래가 잘못 나간다고.

확인해 보니 또 다시 ''Magic''이 방송되지 않고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됐다. 사태가 이쯤 되자 느긋하기로 이름난 필자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사고였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사과방송을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무엇에 씌인 모양입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번엔 정말, 분명히 ''Magic''입니다.

잠시 후 다시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성난 부장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신 장난치는 거야! 방송이 장난인 줄 알아!

그 노래는 또 ''Magic''이 아니었다.
나는 이 노래를 수십 번 방송했고 그래서 너무나 잘 아는 곡이었다. 헤드폰을 꽂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 나가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일<노래를 맞추고 턴테이블을 작동시키는 일>을 10년이상 했기에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음반의 1면에 5곡이 수록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더 많은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면 더 틀렸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무엇인가에 씌인 것이다. 아니 홀린 것이다. 올리비아의 미소에 혼이 빠진 것이다. 그것도 실물이 아닌 재킷에서...
이와 같은 해프닝은 노래의 제목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제목이 ''마술'' 아닌가(?). 분명히 필자는 마술에 걸려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을 호주에서 쓸쓸히 여생을 보내고 있는 올리비아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그렇게 엄청난 실수를 한 필자의 방송을 들어주시고 격려해주신 청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10년 후 1993년 필자는 FM 부장을 맡게 되었다. 부장이 된 후 부원들에게 한 첫 마디.
방송 실수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직무유기다. 그 후 필자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방송이 경직되고 재미가 없어졌다. 결국 슬럼프에 빠졌다. 어느 날 청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기덕씨 방송이 왜 그래요. 실수를 안 하니까 재미도 없고, 옛날로 돌아갈 수 없어요?
사실 필자가 DJ가 된 것도 실수였다. 필자가 아나운서 신인 시절 프로그램을 배당하는 분의 실수로 DJ 프로그램의 대타로 배당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DJ가 되었으니까?

양면성과 변신의 매력을 지닌 최고의 여가수

올리비아 뉴튼 존의 음악적인 변화를 보며 여성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내지는 여성의 양면성에 대해 느낀 것이다. 그녀는 컨트리 뮤직으로 데뷔했다. 데뷔곡 ''If Not For You''나 ''Let Me Be There''에서 그녀는 촌색시처럼 얌전하고 조심스럽게 노래했다. 그녀의 최초의 넘버원 히트곡 ''I Honestly I Love You''에서 그녀는 더욱 더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어서 '75년에 나온 두 번째 넘버원 곡 ''Have You Never Been Mellow''에서도 소박하고 절제된 창법으로 그의 청순한 이미지를 굳혔다.
1978년 그녀는 뮤지컬 영화 <그리스>에 배우로 처음 출연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함께 출연했던 존 트라볼타와 함께 부른 ''You're The One That I Want(''78년 No.1)''에서 성숙한 여인의 이미지와 함께 댄스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80년 뮤지컬 영화 <재너두>에서는 ELO의 반주에 의한 ''Magic''과 타이틀 송 ''Xanadu''를 통해 화려하고 환상적인 스테이지 매너로 대형 가수로서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1980년 최고의 걸작 [Physical]에서는 선정적인 창법과 비디오 뮤직을 통한 야성적이면서 섹시한 제스처로 음악 팬들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앨범의 전곡이 뮤직 비디오로 레이저 디스크에 실려 판매됨). 이미 이 때는 데뷔 당시 소박함이나 청순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1982년 그녀는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그것은 록 뮤직에의 도전이었다. 그녀의 앨범에서 ''Heart Attack''이라는 뉴 웨이브 계열의 노래를 통해 과격하리만큼(?) 강렬한 창법으로 록 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하면 좀 부담스러울 정도의 과감한 변신이었다.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열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사실을 그녀는 입증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이러한 그녀의 변신이 그녀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더 이상의 변신은 불가능했으며 따라서 팬들에게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84년, 연하의 남성 매트 라탄지와의 결혼과 이혼 등은 그녀의 음악 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1985년 [Soul Kiss]와 [The Roumor]라는 앨범을 발표했지만 왕년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1992년 설상가상으로 그녀에게 다가온 병마(유방암)는 그녀에게 가수로서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다. 그 후 그녀는 고향 호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지금은 동물애호가로 자연보호 운동을 펼치며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다.
팝의 요정, 변신의 천재, 한 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성 가수였으며 지성과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던 올리비아 뉴튼 존. 그리고 필자에게 씻을 수 없는 결정적 실수의 원인을 제공했던 여인. 그녀는 이 땅에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진정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글.김기덕(방송인) oimusic 2001년 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