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트레킹)/걷기 정보

김유정 실레이야기길(춘천)

박연서원 2011. 11. 12. 13:49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을 아시는가

 

관광수도 기반 `산소길(O2)길 강원 3000리'

춘천 실레이야기길에서 김유정을 만나다


5.2km 금병산 자락에 걸쳐 조성
봄·봄, 만무방 등 주옥같은 작품 녹아있어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노총각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문학에 얽힌 16마당 이야기에 `흠뻑'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의 춘천읍에서 한 20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래야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되는 촌락이다.” - 김유정, 내가 그리는 신록향중.

실레이야기길에서 춘천이 낳은 문인 김유정(1908년 2월~1937년 3월)을 만난다. 유정이 발표한 30여편의 소설 가운데 12편이 자신의 고향, 춘천시 신동면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했다. 1930년부터 2년간 고향에 내려와 겪은 필부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봄·봄,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솥, 소낙비, 만무방 등 주옥같은 작품 하나하나가 이 실레이야기길에 숨어 있다. 수줍음을 잘 타던 유정이 금방이라도 금병산 자락의 실레길에 나타나 손을 건넬 것만 같은 그 곳. `우리 함께 걸을까요.'

실레길의 기획자이자 오랫동안 김유정 문학의 재발견과 기념사업에 천착해온 전상국(전 강원대국문학과교수) 김유정문학촌장과 함께 그 길을 걸었다.

“실레마을에 얽힌 김유정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들병이와 만무방, 따라지 등 기층민들입니다.”

병에다 술을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몸을 팔던 들병이. 체면도 염치도 없이 막돼먹은 만무방, 따라지. 그 인생들이 뒤섞여 지나고 또 살아가던 곳이 실레이고, 금병산 자락이었다. 그래서 소설의 역사적 배경이었던 1930년대 일제감정기의 실레마을을 이해하는 것은 김유정과 그의 문학, 또 실레길의 이해와 동일어다.

“춘천 주변의 인제, 홍천 주민들이 서울 가는 길목이 금병산입니다. 시내로 가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원창고개를 넘어 이곳을 지났죠.”

“먹고살기 힘들어 서울을 가는데, 돈도 없고 양식도 없었던 거죠. 아내를 들병이로 내보내고, 서로 짜고 아내를 팔아넘기고 장가 못 간 실레마을 노총각들과 얽힌 그런 만무방, 들병이, 따라지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서 펼쳐진 거죠.”

실레길은 5.2km의 금병산 자락에 걸쳐 조성된 길이다. 등산로보다는 산책로에 가깝다. 경사가 높지 않고 편안한 산길에 시골 마을 길을 두루 아우르는 것이 실레 이야기길이다. 김유정 소설의 이야기를 뽑아내 스토리텔링화 한 16마당 이야기길이 실레길이다. 길 중간중간에 김유정 문학에 얽힌 16마당의 푯말과 설명이 있다.

김유정문학촌을 접어들어 첫번째 만나는 길이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이다. 길의 초입새이며 주 길목이다. 서로간 눈웃음이 넘치는 그런 의미다.

두번째로 만나는 길이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마을에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자 좋지 않다고 해서 주민들이 날개를 잘라 버렸고,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아픈 전설이 있는 길이다.

길 위편으로 바위가 있는데 지금도 가끔씩 무속인들이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유정이 야학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야외 수업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세번째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동백꽃하면 우리는 남쪽의 화려한 빨간색 동백꽃을 연상하는데, 김유정의 `동백꽃'은 그것이 아니다. 생강나무이다.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난다'는 유정의 표현대로다. 금병산 이야기길 곳곳에 그렇게 생강나무가 참 많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혹은 산동백이라 불렀습니다. 정선아리랑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의 동박이 바로 생강나무입니다. 대중가요 `소양강 처녀'의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의 동백꽃도 바로 그것입니다.”

네번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소설 `산골 나그네'에서 노총각 덕돌이가 드디어 결혼한다며 즐거워 뛰던 곳이다. 하지만 그 신부는 병든 남편을 물레방앗간에 몰래 숨겨놓고 위장결혼했다가 도망친다.

다섯번째 산국농장 금병도원길. 실레이야길의 일부가 개인 땅이다. 근처에서 산국농장을 하는 시인 김희목씨가 기꺼이 허락했다. 다시 길을 걸으면 여섯번째 길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이 나온다. 소설 가을에서 소장수 황거풍한테 매매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은뒤 덕냉이로 도망치던 고갯길. 길 옆으로 개국화라고 불리는 산국이 많이 폈다.

일곱번째 춘호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응칠이가 송이 따 먹던 송림길. 응오가 자기 논의 벼 훔치던 수아리길까지 아홉번째 길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봄·봄, 동백꽃보다는 만무방을 김유정 문학의 최고작으로 꼽습니다. 농촌 사람들의 가혹한 삶입니다. 원주인의 땅을 마름집이 관리하고, 이를 다시 소작 주다보면 맨 아래 소작농들은 남는 게 없습니다. 때문에 밤에 자기 논의 벼를 자기 스스로 훔칠수밖에 없던 거겠죠.”

열번째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 수아리길 갈림길에서 저수지쪽으로 가다보면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경유해 가길 권하는 코스이다. 약간 가파르지만 오름 길은 멋들어진 낙엽송이, 산신각을 지나 내림막길 코스는 아름드리 잣나무림이 일품이다. 숨을 크게 들여마시면 폐 속까지 신선한 공기가 들어차는 기분이 그만이다. 이전까지 활엽수의 아기자기한 길이었다면 이 구간은 침엽수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낙엽송이나 잣나무 30~40년은 족히된 것으로 수고도 30~40m로 잘 뻗었다.

현재의 산신각은 1999년 다시 축조한 것이다. 송전탑이 세워지며 작고 허름했던 것을 옆자리에 새롭게 지었다. 매년 3월 마을 주민들이 산신제를 올리는데, 제주로 술이 아닌 감주를 올린다. 금병산이 남산이 아니라 여산(女山)이라는 판단에 예전부터 그렇게 지내왔다.

열한번째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 석숭이가 투정 섞어 사랑을 고백하던 낭만이 있는 곳이다. 산길은 여기에서 끝나고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들어선다.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계숙이란 들병이의 꼬임에 빠져 자기 집 솥까지 훔쳐 나오던 장면이 그려지던, 근식이네 집이 있던 곳이다.

금병의숙 느티나무길이 열네번째 길이다. “김유정이 2년간 머무르며 야학, 금병의숙을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 농촌계몽운동의 현장입니다. 휘문고를 거쳐 연희전문대에 입학했지만, 당대의 명창 박녹주를 흠모하게 되고, 결석으로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사랑도 이루지 못한 뒤 고향에 내려와 야학당을 세운 것이죠.” 지금 그 자리에는 금병복지회관 겸 증1리 경로당이 있다. 야학당을 처음 세울때 기념수로 심은 느티나무는 지금도 우뚝 서있다. “1930년대 이후 실레마을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느티나무입니다.” 이 말은 웃음을 머금게하는 농이면서 동시에 진담이다.

지금도 여전히 슬레이트와 기와지붕을 얹고 사는 농촌 마을의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돌을 쌓아 올린 야트막한 담장 길이나 폐가옥, 한창 익어가는 논, 이제는 가을걷이를 끝낸 밭 사이에 실레길은 놓였다.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점순이, 봉필영감, 동내면 학곡리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살다 장가가기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온 최씨 등 모두 실제로 있었던 소설 봄·봄의 그 현장이 있다.

마지막 열여섯번째 길은 김유정이 코다리찌개 먹던 주막길이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가면 지금은 폐가인 집 한채가 나온다. 김유정이 실제 자주 찾아 코다리찌개로 막걸이를 먹던 주막집 자리이다.

“남들이 뛰어가는 큰길 위에서 그들에게 뒤질세라 따라 뛰다보면, 자기가 왜 그 길 위에 있는가를 모르게 마련입니다. 실레길은 내가, 우리가 새로이 걸어야 할 길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그런 길입니다. 김유정이 우리에게 준 큰 선물입니다.”

류재일기자/강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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