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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옛길 눈꽃 트레킹

박연서원 2010. 2. 19. 09:41

[김화성 전문기자의 &joy]무등산 옛길 눈꽃 트레킹

아버지 넓은 등에 눈꽃왕관이 피었습니다



16일 ‘하얀 면류관’의 무등산 서석대. 요술나라 임금님의 백설왕관. 우뚝우뚝 사각오각 육각팔각 돌기둥에 옥양목 같은 눈꽃이 눈부시게 피었다. 주저리주저리 다발로 피었다. 훤칠한 이마에 잔뜩 묻은 떡가루. 백색제국의 천년요새. 억만 년 묵은 지구의 흰 가슴뼈. 추사가 거친 갈붓으로 그려낸 수묵화. 로봇 태권브이의 우람한 허벅지. 광주사람들의 스톤헨지. 남도 사람들의 본적지. 조물주의 주사위. 턱 아래 나무숲 목도리는 벚꽃 같고, 이팝나무 꽃 같고, 배꽃 같고…. 무등산=서영수 전문기자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
여름 산()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에서)》

무등산(1187m)은 아버지의 등짝이다. 넓고 편안하다. 광주사람들은 그 잔등에서 논다. 찧고 까불며 목말을 탄다. 무등산 등성이는 평평하다. 봉우리도 ‘싸드락싸드락, 싸목싸목(느릿느릿)’ 가다 보면 닿는다. 여기저기 해찰하며 가더라도 서너 시간이면 너끈하다. 황소 되새김질 코스다. 그 흔한 ‘깔딱 고개’도 거의 없다. 어디가 등짝이고, 어디가 골짜기인지 잘 알 수 없다. 가끔 너덜겅을 만날 뿐이다. 너덜겅은 ‘작은 돌이 흩어져있는 비탈’을 말한다.

광주사람들은 날마다 무등산을 바라보며 산다. 한밤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다가 무심히 쳐다본다. 회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문득 창문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운동장에서 공을 뻥뻥 차다가 싱긋 한번 보며 웃고, 술을 퍼마시다가 글썽 젖은 눈으로 바라본다. 광주역이나 광천 고속버스터미널에선 “잘 갔다 오마”고 황망히 인사한다. ‘잘 다녀왔노라“며 배시시 웃는다.

무등산은 언제나 말없이 엎드려 있다. 밋밋한 등허리를 다 드러내놓고 황소처럼 웅크리고 있다. 꼭대기는 하늘-땅-사람(--)의 3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천왕봉()-지왕봉()-인왕봉()이 그것이다. 천왕봉이 약간 높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그만그만하다. 하늘 사람 땅이 하나다.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나지완 선수(25) 이름이 바로 지왕봉에서 딴 것이다. 홈런타자의 비밀을 알 것도 같다.



입석대∼서석대 눈밭길.
마루 끝에 기대선 아버지 등은 넓고 따뜻했습니다//그 등에 꽃밭을 그리며 놀았습니다/손가락에 발간 꽃물이 들도록’(장순금 ‘마루 끝’에서)

‘한겨울에도 파릇파릇/보리 싹이 자라고/시들던 고구마순이/힘차게 뿌리를 내리던/내 아버지 등이 언제부터 저리/쓸쓸해져 갔을까//커다란 바지게에 툭툭 떨어지도록/고구마를 담고도/그 높은 산등성이/성큼성큼 잘도 오가시던 아버지’(최옥의 ‘아버지의 등’에서)

무등산은 광주사람들의 ‘동네 공원’이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흙산이다. 삐죽한 바위들은 950m 위쪽에 있다. ‘뭉툭한 돌뿔들’이 봉우리 부근에만 솟아 있다. 누구든 맘만 먹으면 뒷짐 진 채, 논 물꼬 보듯 휑하니 다녀올 수 있다. 아무리 먼 곳도 도시 한가운데서 15km가 넘지 않는다. 무등산은 돈 받는 곳도 없다. 사방이 산문이요, 툭 터진 길이다. 무등 아래 사람 없고, 무등 위에 역시 사람 없다. 주말엔 2만여 명이 몰려든다. 서쪽 자락에 있는 증심사 입구는 늘 북새통이다.

무등산옛길은 한가하다. 출발도 호젓한 도심 뒷골목에서 한다. 산수동 무등파크맨션 건너편이 그곳이다. 거리는 무등산 높이와 똑같은 11.87km. 1구간 산수동∼원효사 7.75km. 2구간 원효사∼서석대 4.12km.

1구간은 무등산 자락을 따라 휘돌아가는 길이다. 옆 동네 ‘마실 가는 길’이다. 구불구불 아늑하다. 양지쪽은 눈 녹은 물로 질퍽하다. 봄 냄새가 폴폴 난다. 흙 갈색 무등산 발톱이 언뜻언뜻 드러나 있다. 담양사람들이 소를 끌고 다니던 ‘황소걸음 길’이 나타난다. 자식들 학자금을 위해 ‘자식 같은’ 짐승을 광주시장에 내다팔러 가는 길. 주인은 말이 없다. 소도 말없이 뚜벅뚜벅 걷는다. 우보천리().

300m 간격으로 방향표지판이 서 있다. 원효사까지 26개, 서석대까지 딱 40개다. 가끔 ‘옛길에서는 쇠 지팡이가 필요 없습니다. 선조들의 길에 상처 주는 스틱 사용을 자제합시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달리는 차보다 천천히 걷는 우리가 더 행복합니다’ ‘길 위에 길이 있다’라는 ‘글 판’도 있다. 언어도단() 불립문자(). 진리는 말속에 있지 않다.

1구간은 몸을 푸는 길이다. 다리 근육을 키우는 코스다. 소나무 편백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잔솔밭을 지난다. 높고 낮은 무덤들이 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 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그뿐. 영웅호걸이 그 누구인가. 절세가인이 또 누구인가. 산새가 붉은 열매를 쫀다. 삐이∼삐이∼ 눈밭을 헤치더니 금세 포르르 날아간다.

잣고개에서 광주의 옛 성() 무진고성()을 만난다. 남북 1000m, 동서 500m, 둘레 3500m의 타원형 성곽. 청풍쉼터엔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1807∼1863)의 시비도 보인다. 그가 이곳 무등산자락 화순동복에서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삿갓이 태어난 곳은 경기 양주.

길목엔 김덕령 장군(1567∼1596)의 넋을 기리는 사당 충장사도 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던 임진왜란(1592년) 때 의병을 일으켰다가, 스물아홉 꽃다운 나이에 모함으로 죽었다.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조임금(재위 1567∼1608)은 “네가 역적무리와 결탁하여 반역을 도모한 것을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충장공은 “시()는 시()라 하고, 비()는 비()라 하는 것”이라며 굽히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충장공은 오죽 억울했으면 ‘피울음 시’를 토해냈을까. 그는 죽은 뒤 60여 년 후에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춘산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이 몸에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무등산은 김덕령의 나라이다. 곳곳에 그의 전설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김덕령 장군과 관련 지으면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김덕령 장군이 지왕봉 뜀바위에서 건너뛰며 무술을 연마했다’ ‘서석대 입석대는 김덕령 장군이 톱과 대패로 하룻밤에 만든 것이다’ ‘너덜겅은 김덕령 장군이 남은 잔돌을 깔아둔 것이다’…. 민초들은 그에 대한 안타까움을 기꺼이 ‘신화’로 만들었다.

2구간은 눈길이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3월이나 돼야 녹을까. 곳곳에 너덜겅이 나온다. 눈 사이로 푸른 산죽이 삐죽삐죽 나왔다. 오를 땐 아이젠을 사용하지 않는다. 지팡이도 보류다. “뽀드득! 싸르륵!” ‘눈 즈려밟는’ 재미가 솔솔 하다. 보드득! 곰삭은 홍어 뼈, 잇몸으로 씹는 맛이다. 맨발로 스펀지 공기방울 톡톡 터뜨리는 느낌이다. 발바닥 가운데에 은근히 부풀어오는 물렁한 촉감. 한여름 냉면 사리가 후르륵! 목구멍을 넘어가는 것 같다. 야릇하다. 눈밭을 아이젠 차림으로 걸으면 “우두둑!” 눈 허리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뭉툭하다. 토막 난 장끼 우는 소리다. 스르륵! 눈에 스치는 쇳소리. 거슬린다.

해발 850m가 넘으면 ‘눈의 나라’이다. 우뚝우뚝 바위들이 이마에 눈 모자를 쓰고 있다. 규봉암(950m) 입석대(1017m) 서석대(1100m)…. 질박하다. 추사체다. ‘서툴고 졸렬하다./지독히 못생긴 저 글씨에/내 심장 그만 멎는다./붓 천 자루가 닳아 몽당붓이 되고/벼루 열 개가 닳아 구멍이 뚫렸다’(장석주의 ‘추사’에서). 조물주는 지상 최고의 요리사다. 그 어떤 요리사도 입석대 같은 작품을 못 만든다. 무를 직사각형으로 길쭉길쭉 잘라낸 10∼16m 선돌. 오각형 육각형 칠각형 팔각형…. 입석대 서석대는 천연기념물 제465호다.

‘천만년 비바람에 깎이고 떨어지고/늙도록 젊은 모양이 죽은 듯 살아있는 모양이/찌르면 끓는 피 한 줄 솟아날 듯 하여라’(이은상 ‘입석대’에서)

서석대는 하얀 면류관의 수정병풍이다. 눈가루를 뒤집어쓴 이마. 은발. 발아래 나무마다 눈꽃이 다발로 피었다. 햇빛이 눈부시다. 눈꽃덩어리가 스르르 통째로 진다. 눈 낙숫물이다. 모가지가 툭 꺾이는 동백꽃 같다.

무등()은 불교의 ‘무유등등()’에서 나왔다. ‘부처는 이 세상 모든 중생과 처음부터 아예 견줄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 모든 생명은 부처다. 우주보다 더 크고 존귀하다. 무등산은 모든 생명을 품는다. 평평하면서 크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북쪽자락엔 정자-정원 줄줄이▼



송강 정철(1536∼1593)은 한양 장의동에서 태어났다. 1545년 을사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아버지 뿌리인 전남 담양에 내려가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송강을 거목으로 키운 것은 김윤제(1510∼1572).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무등산 기슭에 환벽당()이란 정자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었다. 환벽당이란 ‘사방이 푸름으로 둘러싸인 집’이라는 뜻. ‘대숲이나 소나무로 둘러싸였던 집’이라고 헤아릴 수 있다. 김윤제는 정철이 장원급제(1561년)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고, 외손녀와 혼인까지 맺어줬다.

정철은 환벽당에서 처 외당숙인 김성원(1525∼1597)과 같이 공부했다. 김성원은 정철보다 열한 살이나 많았지만 죽이 잘 맞았다. 1560년 김성원은 담양 성산(별뫼)에 식영정()을 세웠다. 김성원 정철 임억령(1496∼1568) 고경명(1533∼1592)은 ‘식영정의 네 신선’으로 불릴 정도로 그곳에서 풍류를 즐기며 붙어살았다. 대학자 김인후(1510∼1560) 기대승(1527∼1572)도 가끔 그들과 어울리며 학문을 가르쳤다. 당시 스물넷 정철은 식영정과 김성원을 칭송하는 ‘성산별곡’을 썼다. 식영정은 장자()에 나오는 말로 ‘그림자를 쉬게 한다 혹은 그림자를 지운다’는 뜻. 인간의 몸은 조물주의 그림자나 같다. 그런 ‘그림자 끈’을 끊어버려야 비로소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

1585년 송강은 대사헌을 지내다 당쟁으로 물러났다. 곧바로 낙향에 이곳에 송강정()을 짓고, 선조임금을 그리는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썼다. 송강은 이곳을 흐르는 죽록천()의 다른 이름. 송강정도 원래 죽록정이었다.

가사문학관이 있는 지실마을은 송강이 유년시절 살았던 동네이다. 지금도 영일 정씨들의 집성촌이다. 동네 전체가 허리∼어깨 정도 높이의 돌담길(사진)로 이뤄졌다. 소박하다. 대문이 거의 없으며, 있더라도 열려있다. 죽순붕어찜 전문점으로 소문난 ‘울림산장’(061-383-0779)도 이 동네에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1503∼1557)가 스승 조광조의 죽음을 보고, 정치에 진저리를 치며 자연과 더불어 산 곳. 1533년 송순(1493∼1582)이 세운 면앙정도 빼놓을 수 없다. 면앙(면)은 ‘땅을 내려보고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 당당하게 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트레킹 정보|



◇무등산옛길 가는 길

▽광천고속버스터미널=1187번 시내버스(번호가 무등산 높이와 같음) 25분 간격. 1000원. 토 일요일엔 1187-1번(산수오거리∼원효사) 셔틀버스 운행. 광천터미널∼신세계백화점∼서구보건소∼그린파크∼신안사거리∼광주역∼롯데백화점∼금남로5가역∼금남로4가역∼법원입구∼신수오거리(옛길 1구간 입구)∼산수무등파크전망대∼충장사∼원효사(옛길 2구간 입구)

▽광주공항=1000번 시내버스(무등산관광호텔행) 타고 가다가 신수오거리 하차. 20분 간격 1000원. 광주공항∼상무쇼핑∼광천터미널∼도청∼동구청∼조대입구∼지산사거리∼산수오거리∼무등산관광호텔

▽산수오거리행 시내버스=1, 15, 27, 28, 74, 80, 187, 1000, 1187번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062-368-1187, 062-365-1187

▽먹을거리=귀향정(062-522-2743) 한식코스요리, 해물샤부샤부, 생선조림. 북구 풍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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