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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도 넘은 지도 반출 요구

박연서원 2025. 4. 23. 08:21

 

한국일보

구글의 도 넘은 지도 반출 요구   [기고]

2025.04.02.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3월, 구글의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는 16개 국가에서 '코로나19 뉴스 섹션'을 신설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한 가짜 뉴스의 유포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한국은 확진자 수가 8,000명을 넘었고,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가짜 뉴스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유튜브의 조치는 한국에서도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유튜브가 지정한 미국, 일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16개국에 한국은 없었고, 한국이 빠진데 대한 설명도 없었다.

 

구글의 '한국 홀대'는 앱 마켓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한국에선 코로나맵, 코맵 등 민간 앱들이 확산 방지에 기여하고 있었으나, 구글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국내 코로나 관련 앱들을 삭제하거나 검색이 되지 않도록 차단했다.

 

반면,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국내 플랫폼은 달랐다. 네이버는 확산 초기인 2020년 1월 28일 검색창 하단에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하는 코로나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11월, 정부에서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는 약국의 정보를 공개하자 즉각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 등 지도 서비스에서도 마스크 재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긴급한 재난 상황, 국가·사회적 위기 상황 등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협업해 왔다. 일례로 2024년 의료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선 네이버, 카카오가 응급의료시설과 명절기간 운영하는 병원 등의 정부 데이터를 받아서 이용자들에게 제공했다. 2023년 홍수로 인한 지하차도 사고 이후에는 정부 데이터를 제공받아서 홍수경보 발령시 우회도로 안내 등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코로나19, 의료공백, 홍수 등 국가·사회적 위기 및 재난 상황은 '정보주권'과 '자국 플랫폼'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네이버,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의 발 빠른 대처는 한국에선 돈벌이만 하고 정작 국가 위기 상황에선 한국을 외면하는 구글, 유튜브 등 해외 플랫폼의 행태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국가·사회적 위기 및 재난 상황에서의 교훈은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글은 2016년 우리나라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요구했다가 우리 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구글코리아는 한국 소비자에게 최고의 지도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고 세부 데이터의 해외 반출은 이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9년이 지난 2025년 2월, 구글은 다시 고정밀 지도의 해외 반출을 국토지리정보원에 요청했다. 이번 신청서에는 구글이 한발 양보해 2016년 한국 정부가 제시한 수용 조건인 국내 보안 시설의 위치 흐리게(블러) 처리 등 안보 조항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을 홀대하고 외면한 구글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정밀지도 반출을 허용하면 군사, 보안시설 위치 등 자국 내 주요 지리정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독도, 동해 표기 등 국제사회 내에서 민감한 지명 이슈가 발생할 때, 구글 측 표기 방식에 대한 수정 요구 반영이 어려울 수 있다. 해외 사업자들에 대해선 한국 정부의 규제·관리 역량이 미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밀지도 반출은 사실상 한국의 ‘정보주권’을 담보로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구글이 반출을 원하는 1대 5,000 고정밀 지도는 오차가 3.5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정교하다. 정밀지도는 단순한 길 찾기 도구나 산업적 가치를 넘어서, 국가 안보, 치안, 재난관리, 군사 전략 관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 전략 자산이다. 이 같은 정밀지도가 글로벌 빅테크의 손에 넘어갈 경우,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디지털 종속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구글 등 해외 빅테크들이 전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본적인 납세 의무조차 소홀히 하는 해외 빅테크가 국가 전략자산인 정밀지도를 반출한 뒤, 수익 창출에만 신경 쓰고 한국 정부 또는 여론을 외면하거나 홀대할 때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국가 경쟁력 차원은 물론, 재해·재난 시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정보주권'을 지키며 '자국 플랫폼'을 육성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요청에 대한 정부의 결정은, 구글이 주장하는 관광 활성화 차원을 넘어 주권국가로서‘정보주권’을 지킬 수 있을 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