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별장과 홍순이》
1973년 겨울, 찬 바람이 몰아치는 서부 전선 최북단 섬 말도, 보통 지도에는 흔적이 없고 큰 지도를 펼치고 자세히 보아야 표시된 작은 섬. 여객선이 없어 앞의 섬 보름도에서 내려 뗏목을 타고서야 진입할 수 있는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 DMZ 남측 한계선 안에 있는 홀로 된 작은 섬 말도.
까까머리 열여덟 애송이가 멋모르고 해병대에 지원했고, 훈련을 마치고 팔리고 팔려 그곳까지 가게 됐습니다. 620명의 동기생들이 진해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사단, 여단, 연대, 대대, 중대, 소대를 거쳐 각각의 근무지로 곤봉을 싸들고 ‘나가자 해병대’ 군가를 힘차게 부르며 나갈 때, 나 혼자 이런 무인도 같은 섬에 배치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부대원들이 열댓 명, 모두 내가 보았던 늠름한 대한민국 국군 같지 않은 시커먼 복장이었고, 마을은 민가가 서너 채 보이는데, 그야말로 만화 속에나 나오는 그런 작은 섬 말도였습니다.
해 질 녘 서해바다로 이글거리며 넘어가는 해는 정말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하얀 도화지에다 빨간 홍시를 확 터트려놓은 듯 멋지게 색칠을 하였고, 누구든 저녁노을 앞에서는 시인이 되었으며, 그래서 선배들은 그곳을 ‘황혼의 별장’이라는 기막힌 이름을 지어 붙였나 봅니다.
ㅡ‘황혼의 별장’이라는 기막힌 이름
“아! 저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하는 박재삼 시인의 애끓는 탄식 소리가 절절하게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이런 이글거리는 바다를 보고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나는 정말 어쩌란 말이냐” 하며 그 몸서리치는 아름다움에 붓을 들지 않았을까요?
내가 김포 청룡부대 여단본부에서 각 부대로 차출되기 전 조금 들은 얘기로는 말도라는 섬이 있는데, 거기는 북한 넘어가는 실미도 부대원들이 훈련하는 곳이라는 것과 거기는 해병대의 골통 특급 사고자들만 보내는 청송교도소보다 더 험한 살벌한 곳이라는 것 정도만 얼핏 들었지, 지금 내가 가는 곳이 그런 말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북한이 자기네 땅이라고 박박 우기는 함박도가 말도와 한 뼘 차이로 삐딱하게 보이는 해병대에서도 0.1%만 가볼 수 있다는 민간인 통제 지역.
나는 그곳에서 근무하며 월급날이 언제인 줄도 몰랐고, 아니 우리 같은 졸병은 월급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선임하사가 중대 다녀오면 건빵 한 봉지씩을 선심 쓰듯 주었는데 그날이 군인의 월급날인 것 같습니다. 군인의 생일이라는 국군의 날도 미역국은커녕 오래된 고추장이나 비벼 먹는, 보급품을 줄래야 줄 수도 없는 대한민국 최전선 고독한 섬 말도에서 군 생활을 보냈습니다.
가끔 모자에 별 몇 개 단 미국의 높은 분들이 헬기 타고 찾아와 기껏 주고 간다는 것이 운동 열심히 하라고 준 야구공과 야구방망이였는데, 어라! 선임들이 치라는 공은 안 치고 졸병들 엉덩이만 후려쳐 한동안 미군을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컴컴한 지하 벙커에 들어서니 월남 전쟁에서 철수한 선임병들이 줄지어 앉아 참으로 신기하다며 마치 동물원 안 원숭이를 보듯이 나를 쳐다봅니다.
ㅡ “개나리 아리랑 남포, 감 잡았다. 나오라”
해병대 시절 이강민. 5대 1의 체력 시험을 뚫고 자원 입대했다. 벙커 밖에서는 앙칼진 여자 아나운서가 떠들어대는 북한의 대남방송이 생생하게 들려오고, 벙커 안에서는 “개나리 아리랑 남포, 감 잡았다. 나오라” 하며 잡음 나는 무전 소리가 공포에 공포를 더해줍니다. 나는 너무 긴장하고 무서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수없이 외고 또 외웠습니다. 서울에서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강원도 최전방의 로켓이 평양으로 날아간다는 전자 컴퓨터 시대에 전기가 안 들어와 부대에서 호롱불을 켜고 지내는 군대가 있다니….
내가 그래도 5대 1의 체력 시험을 통과해 멋지다는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지만, 여긴 해병대가 아니라 당나라 군대다 하며 크나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군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신고합니다. 이병 이강민은…” 하는 신고식을 열댓 번 하고서야 최고 선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급은 분명 작대기 네 개 병장인데 턱에 털이 부스스하게 난, 호롱불에 희미하게 비치는 그의 얼굴은 오십 먹은 사단 주임상사쯤으로 보이고, 반바지에 팔각모를 삐딱하게 쓰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껌을 씹는 그는 대한민국 군인이 아니라, 조선인민공화국의 빨치산 부대원이었습니다. 지리산의 빨치산 부대….
“누나 있어? 누나 있냐고, 이놈이 귀가 먹었나?”
“네, 있습니다.”
아!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슴이 사자에게 쫓기다 막다른 코너에 몰리면 사자가 물지도 않았는데 제풀에 쓰러져 신음하는 것처럼, 아니 영화를 보면 고문당하는 사람이 참다 참다 못 견디어 아무 말이나 마구 해대는 것처럼 나는 공포에 짓눌려 없는 누나를 있다고 토설하는 급박한 사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ㅡ나의 소원은 내일 죽어도 오늘 제대하는 것
“있습니다” 하는 한마디에 내무실 상황은 급반전했고, 빨치산은 나에게 “앉아, 힘들지? 자식, 겁먹기는” 하며 씩 웃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성범죄자 그 모습이었습니다. TV에서 가끔 보면 흉악한 범인이 현장 검증 갈 때 수갑 차고, 씩 웃는 모습처럼. 넌 오늘부터 내 옆에서 잔다. 빨치산은 늙은 마누라를 버리고 무슨 새 첩이나 들인 것처럼 날 보고 히쭉거렸고, 내 군 생활의 출발은 거기서부터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모포를 덮었지만 잠이 올 리 있나요?
처음 온 신병이라 오늘은 보초도 안 세운다며 내 집처럼 편히 푹 자라고 하는데, 잠이 오느냐 말이에요. 벙커 밖에서는 북한 놈들의 대남방송이 윙윙거리지, 벙커 안에서는 통신병의 무전 소리가 소란스럽지….
ㅡ나보다 1개월 빠른 선임병이 겁에 겁을 더해줍니다.
“여긴 말이야, 예전부터 국방부하고 즉시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야. 적과 교전을 해도 우린 지원 못 받고 적이 침투하면 이 자리에서 모두 자폭하라고 부대 주위에 클레이모어를 벌집처럼 깔아놓았어. 그러니 함부로 밖에 나가 혼자 돌아다니지 마. 또한 저기 보이는 저곳이 북한 땅 연백이고, 저 철조망 보이는 곳이 북한 최정예 김신조가 훈련받은 124군 특수부대야. 서로 넘어와 목도 따 가는 특별한 곳이야.”
참으로 그때 나의 소원이 있다면 통일이 아니고, 내일 죽어도 오늘 제대하고 싶은 것이요, 정말 할 수만 있다면 해병대 탈영해서 동네 동사무소 가서 방위 생활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아! 내 친구 홍순이는 동네 동사무소에서 예쁜 미스들과 농담 나누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홀짝거리며 아침저녁 어머님께서 싸 주시는 달걀 덮인 도시락을 맛있게 먹으며 희희낙락 방위 생활하는데 나는 이게 뭔가? 해병대가 모양새 나서 입대한다고 동네에서 송별회 뻐근하게 하고 왔건만, 지금 여기 비참하게 떨며 자라는 잠도 못 자고 끙끙 앓고 있는 나의 모습은….
“누나 이름이 뭐야?”
빨치산이 한 단계 낮은 음으로 물었습니다. 무의식적인 공포 속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나의 말.
“네, 사촌 누나이고요. 이름은 이홍순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 대학생입니다. 예쁩니다….”
한번 거짓말에 2탄, 3탄의 거짓말이 더해지고 보태집니다. 잘은 모르지만, 스무 살이고 대학생이고 예뻐야 빨치산이 흐뭇해할 것 같아 빨치산이 다시 물어보기도 전에 미리 내가 알아서 재차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ㅡ간덩이가 부어갑니다.
다음 날, 선임이 손수 끓인 보약보다 귀한 라면을 내 허기진 배에 꾸역꾸역 밀어 넣습니다. 사람이 죽으려면 뭔 꿈을 못 꾸겠는가? 뜨끈한 국물이 있으니 독한 소주가 한 잔 생각났습니다. 독한 소주 한 잔에 오늘 이 복잡하고 정리 안 되는 상황을 모조리 잊고 싶었습니다.
‘꿀꺽’ 하고 마지막 남은 국물을 비우는데 빨치산은 회장님이 식사 마치시는 것을 공손히 기다리는 비서처럼 “여기 담배” 하며 화랑 담배 장초에 불까지 붙여 주는 것이 아닙니까?
며칠 후,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인식한 나는 휴가 가는 대원을 통해 한 통의 편지를 전보처럼 날렸습니다.
<이홍순 보아라!
너는 오늘부터 내가 제대하는 날까지 내 사촌 누나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이유는 묻지 마라. 혹시 해병대에서 너와 사귀자고 편지 가면 “야, 이 미친놈아, 나는 남자다” 하지 말고 공손하게 답장해줘라. 너희 집 주소 알려줬으니 네가 편지 보고 알아서 상황을 잘 판단하고 부디 건투와 건승을 빈다. 만약 이 모든 사실이 폭로되면 나는 발각과 동시에 동작동 국군묘지로 가니, 네가 진정 내 친구라면 우리 거기 동작동에서 절대 만나지 말자. 내가 너한테 좆도 방위 이홍순이라고 놀린 것 진심으로 사죄한다.
-전방에서 조국을 지키는 둘도 없는 너의 친구 강민>
빨치산은 신이 났습니다. 홍순이가 보내온 답장을 보고 희희낙락 역시 대학생 문장력은 다르다며, 오늘부터 어느 놈이 이강민이 건드렸다가는 여기서 살아서 못 나간다고 소대에 지침까지 내려놓았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녀석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는지, 아니면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자기 모습이라고 사진 한 장을 턱 보내왔는데 그 사진 때문에 지하 벙커 안 소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점잖으신 소대장님까지 편지 속 사진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모습에 이건 사건이 보통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ㅡ지하 벙커 안 소대가 발칵 뒤집혀
아! 드디어 이홍순 이놈이 동네 친구 이강민이를 여기서 죽이는구나. 이놈이 동사무소에서 여자들과 시시덕거리더니 해병대 선임병 알기를 예비군 중대 선임 정도로 아나 보다 하고 분을 삼켰습니다.
녀석이 보내온 사진을 보고 나는 경악을 했습니다. 그 사진 속 여자는 녀석이 지갑에 꽂고 다니며 자기 스타일이라고 늘 엉큼스럽게 훔쳐보던 일본 여자 배우 사진으로, 반나체 자세로 입을 헤벌쭉하고 찍은 사진을 자기라고 보냈으니 벙커가 뒤집힐 수밖에요.
시간은 그렇게 그렇게 지나 사건은 상상의 수준을 넘어 소설 속의 꼬이고 엉킨 지경에까지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다 하고 수사반장 최불암이가 밝혀내듯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 비극의 사건이 한 발자국씩 먹구름처럼 내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빨치산이 말년 휴가를 간다며 휴가 가서 홍순씨를 만나고 온다는 것입니다. 휴가 가서 이홍순이를 만난다? 아! 드디어 내가 국립묘지 갈 날도 멀지 않았구나. 도대체 이 참사를 어쩐다나? 만약 사실이 폭로되면 선임은 이홍순이는 물론, 동사무소 방위병들까지 월남에서 베트콩 잡듯이 모조리 짓뭉개고 올 텐데 밥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았습니다. 잠이 올 리 있나요? 아! 선임이 휴가 가기 전 목을 길게 내려놓고 “잘못했습니다” 죽일 테면 죽이라고 이실직고해야 했는데 그만한 배짱도 없고, 선임이 휴가 간 일주일은 내 군 생활 36개월보다 길었고, 솔직히 에라, 전쟁이나 터지라고 자포자기했으니까요.
ㅡ이실직고해야 했는데 그만한 배짱도 없고…
며칠 후! 선임이 말년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나는 속으로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며 장례 찬송을 불렀는데, 선임은 신기하게도 웃었습니다.
부대에 오자마자 ‘야, 이 기합 빠진 졸병이 선임을 가지고 놀아?’ 하며 곡괭이 자루를 집어 들어야 순서가 맞는데, 선임이 웃으며 잘 있었느냐고 어깨까지 두드려주다니, 아! 이게 어찌 된 사건인가?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습니다. 선임이 홍순이 집을 찾아갔습니다. 우리의 홍순이는 선임이 휴가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작전에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동네 해병대 출신 선배 몇 분에게 이러쿵저러쿵 잘못하면 이강민이가 선임 손에 맞아 제대도 못 하고 죽는다는 것을 설명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한 다음, 자기 집을 찾은 선임을 만나 술 한잔하자고 유인한 뒤, 자기는 홍순이 오빠인데 홍순이는 이미 약혼자가 있으니 포기하라며, 자기 동생이 편지를 쓴 이유는 강민이가 군대 생활 좀 편하게 하도록 하려고 그런 거라며, 다른 여자 소개해준다는 약속으로 기분 좋게 헤어졌다 이겁니다.
선배 말이라면 껌벅 죽는 해병대에서 동네 선배들이 빙 둘러앉아 얘기하는데, 거기서 그래도 나는 기어이 홍순씨 만나고 가야겠노라고 반항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아 선임도 웃으며, 홍순씨 결혼해서 잘 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왔다는 거죠.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과 내 친구 홍순이의 작전과 용병술은 이순신 장군의 노량대첩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전역한 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몇 년 전 선임의 소식을 알았습니다. 태국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한다는 선배님. 선배님, 그때 그 시절 제가 빨치산으로 부른 것 죄송합니다. 선배님, 홍순이보다 더 멋진 형수님과 잘 사시리라 믿습니다.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홍순이는 지금도 늘 내 옆에 남아 나의 든든한 나무가 되어 잘 지내고 있습니다.
ㅡ이강민 수필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