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그 영원한 로망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시에서
"하늘이 나로 하여금 술을 마시지 않게 하려면 꽃과 버들이 피지 말도록 하여라" 라며
'신이 주신 선물'인 술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45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 유역의 고대 수메르인들이 포도주를 처음으로 만든 이래, 술은 우리 인간들에게는 최고의 음식 중의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1. 술은 소울푸드(혼이 담긴 음식)입니다
"한국인에게 술은 소울푸드다.
문화적인 미각으로 마시고 감성으로 취하는 것이다.
술을 고를 때, 중요한 건 절대적인 맛이 아니라 거기에 얽힌 추억과 향수다.
한여름 불판 앞이라도 '삼겹살에 소주가 정겹고, 비오는 날엔 어김없이 파전에 막걸리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문화적인 미각인, 소울푸드인 우리 술을 찾기 때문이다. (김종호)"
의학의 성인 히포크라테스는
"술은 음료로서 가장 가치있고
약으로서 가장 맛이 있으며
음식중에서 가장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며 술의 순기능을 예찬했습니다.
술의 미학을 깨닫는 순간
술은 더 이상 괴로움을 잊는 수단이거나 숙취로 인해 괴로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가끔씩 힘들 때 기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같은 존재로 다가올 것입니다.
2. 술은 지적(知的)입니다
심포지움하면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연상하는데
원래 심포지움이란 말은 그리스어 '함께(Sym)'와 '술을 마시다(Posium)'의 합성어로,
그리스인들이 식사후 술을 마시며 학문, 사상, 음악, 미술 등에 대해 허물없이 대화를 나눈 것을 뜻합니다.
3. 술은 사랑의 묘약(妙藥)입니다
노르웨이는 갓 결혼한 부부가 한달 내내 벌꿀 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젊은 남녀가 달콤한 술에 한 달 동안이나 취해 있었으니 사랑이 저절로 싹틈직합니다.
오늘날 신혼여행을 허니문 (honey moon)이라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4. 술은 풍류, 즉 맛과 멋으로 즐겨야 합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 옴세.
백년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조선시대의 명재상이자 청빈한 선비였던 김육이 꽃피는 날 벗을 청하여 술을 마시자는 정감이 무르익는 살가운 시입니다.
주량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술 향기와 분위기에 취해 오묘하고 신비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는게 술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그림의 정취에 스며들고 감상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낭만 넘쳐 흐르던 1950년대 중반,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 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명동백작이라 불리던 멋쟁이 시인 박인환 (1926~1956)이 죽죽 써내려간 시
<세월이 가면>은 극작가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그 자리에 있던 가수 나애심과 테너 임만섭이 불러 더 유명해졌습니다.
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면서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작곡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며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
그것은 마치 낭만적인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 밤을 잊지 못하지"
풍류를 즐길 때 술은 시가 됐고,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할 때 술은 소설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문학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5. 현대사회에서 술은 절묘한 절제의 미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술 마시지 말자 하니, 술이 절로 잔에 따라진다.
먹는 내가 잘못인가, 따라지는 술이 잘못인가.
잔 잡고 달에 묻노니,
누가 그른가 하노라."라며
금주(禁酒)하기 어려운 절절한 심정을 시로 읊기도 했지만,
술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파멸을 부르게 됩니다.
한국 속담에도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술에 취하지 마십시오.
거기에서 방탕이 나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해 지십시오."라며
술로 인한 일탈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상징주의의 거장으로 '비탄의 시인', '랭보의 연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시인 폴 베를렌 (1844~1896)을 어둠의 끝까지 몰고 간 것은 당시 유행했던 '압셍트'란 녹색 술이었습니다.
압셍트 술은 19세기 후반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열광하던 술이었습니다.
압셍트 술은 알코올 도수가 70~80도에 이르는 독한 술로, '악마의 술', '초록 요정'으로 불렸던 술입니다.
절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술의 마력이 예술적 혼을 불어넣게 됩니다.
1900년대 중반의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술을 사랑한 문인인데,
그는 '주정도 교양'임을 강조하며 술을 많이 마시기 보다는
'잘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조지훈은 수필 <주도 유단 (酒道有段)>을 통해 바둑처럼 주도 단수를 매겨 놓았습니다.
그는 등급을 18단계, 9단으로 나눕니다.
반주를 즐기는 사람은 2급, 애주의 단계에 이르면 초단,
퇴근 무렵 술 친구 전화 기다리는 사람이 2단,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은 7단,
열반주는 9단으로, 술로 인해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술은 재료에 따라 곡주, 과실주로,
제법에 따라 발효주, 증류주로 나뉩니다.
원료가 다른 만큼 맛과 향이 다르고, 마시는 목적도 다릅니다.
위스키가 취기를 느끼기 위해 마시는 술이라면,
브랜디는 잠시 향기를 간직하기 위해 마시는 술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남성들은 좋은 꼬냑이 한 병 생기면 6개월이 행복하고,
여성들은 좋은 향수를 한 병 선물 받으면 1년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이 향수 한 병을 1년동안에 걸쳐 몸에 살짝살짝 뿌리듯,
프랑스 남성들은 꼬냑 한 병을 무려 여섯달 동안에 걸쳐 홀짝홀짝 입속에 털어 넣습니다.
브랜디 술은 곧 '입속의 향수'이며,
여성을 사귈 때 '반모금쯤 혀로 굴리며 향기를 남겨두는 술'로 많이 사용됩니다.
이제 술이 남성의 전유물인양 치부하던 시대가 지났습니다.
술을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시대인 요즘, '감성' 못지않게 '기호'도 중요해졌으며,
술의 트랜드도 여심(女心)을 사로잡는 것으로 바뀐지 오래 됐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술에 취하는 것은 소극적인 행복이며 불행의 일시적인 중지'라며 술의 존재가치를 옹호합니다.
술은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기에
술을 건강하고 멋스럽게 즐길 줄 아는 지혜와 슬기가 필요합니다.
<퍼온 글>
'잡동사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0) | 2022.10.24 |
---|---|
메멘토 모리 (0) | 2022.10.19 |
한국의 위상 (0) | 2022.05.27 |
매버릭(Maverick) (0) | 2022.05.23 |
막걸리 이야기 (0) | 2022.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