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기/섬(BAC 섬&산100+)

102. 인천강화 교동도 화개산(2021.7.4, BAC 섬&산 100 완등)

박연서원 2021. 7. 25. 06:50

교동도 [喬桐島] 화개산 [華蓋山] 259.6/269m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동로 485-13

면적 47.14㎢, 동서길이 10㎞, 남북길이 6㎞

 

교동도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달을참이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대운도(戴雲島), 고림(高林)이라고도 불렸다.

교동의 원래 이름은 대운도(戴雲島)이다. 고림(高林) 또는, 달을신(達乙新)이라고도 불렀으나,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하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고종 32년(1895)에는 읍을 폐하고 강화와 합군하였다가 다음해 7월에 다시 읍으로 하고 군수를 두었다. 그때 당시는 교동 동서남북면 4개 면과 송가면을 합쳐 5개면이었다가 국권침탈 후(1910)에 송가면은 송남면으로 개칭하고, 본도는 4개면 13개로 구획되어졌다. 합군(1914) 이후, 송남면은 삼산면에 부속되었고 교동은 화개면과 수정면, 2개면이 되었다. 1934년 이후, 화개·수정면을 합면하여 지금의 교동면이 되었으며 현재 법정리는 13개, 행정리는 17개이다.

본도는 인천광역시 서해안에 놓여 있으며 동남은 양사면, 삼산면, 서도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으로는 불과 5km 밖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군사분계선을 이르고 있어 황해도 연백군이 눈앞에 보인다. 도서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평야가 많으며 해안선은 평탄한 편이고 해저는 수심이 얕고 간만의 차가 심하다.

본래 강화 본도와 교동도를 오가는 교통수단은 매시간 1회 운영되는 배편이 유일하였는데, 2014년 7월 인천시 강화 본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연륙교가 개통되었다.

 

고도가 매우 낮은 섬으로 높이 0∼10m의 지역이 섬의 3분의 2를 이루고 있으며, 마식령산맥 서단에 해당한다. 가장 높은 산은 화개산(華蓋山, 260m)으로 이 섬의 주산을 이루며, 봉황산(75m)·율두산(89m)·고양이산(35m)·수정산(75m) 등 모두 100m 이하의 낮은 구릉들이다.

연백에 면한 동북해안은 제방을 쌓아 고구(古龜)의 관개용 저수지의 완성으로 경지확장 및 경지정리를 하였다. 해안선은 단조로우며, 연안의 저지(低地)는 이질(泥質)인 갯벌로 되어 있어서 어항의 발달은 불리하고, 간만의 차도 커서 선박의 출입도 그리 편리하지 못하다. 섬인 까닭에 한서의 차는 내륙에 비하여 작으나 언제나 해풍이 비교적 강하게 불며, 겨울에는 해안의 유빙으로 한기를 더욱더 조장한다.

내륙에 비하면 겨울이 빠르고 여름이 늦어 환절기에는 해상의 기류가 고르지 않아 때때로 소나기·회오리바람을 몰아오며, 때로는 서리나 우박이 내리는 등 날씨가 고르지 못하다. 연평균기온은 11.2℃, 연강수량은 1,390㎜이다.

상고시대에 이 섬은 개화산·율두산·수정산을 중심으로 세 개의 섬으로 되어 있었으며, 교동평야에는 언제나 조수가 흘렀고, 그것이 그 뒤 하나의 섬으로 변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개화산 중턱에서 볼 수 있는 화석이 된 조개껍질이나 현 해안선에서 내륙에 위치한 패총의 흔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또, 남쪽에 있는 석모도 상주산 사이의 바다가 육화(陸化)되어 인마가 내왕할 수 있었다가, 1578년(선조 14)경 다시 바다로 되어 간조 때 외에는 인마가 내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보아, 후빙기 이후 범세계적인 해면변동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하천의 발달도 드물고, 작은 계류가 있을 뿐이다.

 

인구는 광복 당시 8,644명이었던 것이 6·25전쟁 뒤 많은 피난민으로 1965년에는 1만2443명에 달해 최고를 이루었다. 그러나 1972년부터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 1977년부터 감소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009년 5월 현재 교동면 인구는 3,132명이고 세대수는 1,389호이다.

2006년 현재 교동면 전체 면적은 47.14㎢이고 논 25.89㎢, 밭 2.57㎡, 임야 11.45㎢이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교동토의 간척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까지 지속되었다. 이로써 형성된 저평한 평야가 넓고, 완비된 경지정리·수리시설 기계화 등으로 쌀의 생산량은 섬의 자급자족을 넘어 다른 지방으로 나가며,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감자 등과 임산물은 밤·대추·버섯 등이 생산된다.

밭에서 하는 인삼재배가 농가의 부업으로, 완초공예품은 강화도의 화문석처럼 그 이름이 높다. 완초공예품으로는 화방석·꽃삼합·광주리·손가방·화문석 등 다양하며, 그 가운데 화방석과 꽃삼합은 대도시로 팔려나가는데, 수익성이 높아 오랜 전통을 오늘날까지 지속하고 있다.

 

- 교동향교(喬桐鄕校)  인천시 유형문화재 28호 소재지 : 읍내리

충렬왕 12년(1281) 유학제거 문성공 안유(安裕)가 원(元)나라에 가서 공자상과 그 제자의 상을 모셔와 우리나라 최초로 봉안한 향교이다.

- 화개사(華蓋寺) 비지정문화재 210호 소재지 : 읍내리

화개암(華蓋庵)이라 불렀고 고려 때 목은 이색(1328-1396)선생의 독서처로 유명하다. 유물로는 부도 1 기가 있다.

- 문무정(文武井) 소재지 : 읍내리

화개산 남쪽 기슭에는 두 개의 샘이 있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은 문정(文井)이요, 서쪽에 있는 것은 무정(武井)이라고 불렀다.

이 두 샘물이 솟으면서 교동에서는 문관이나 무관이 많이 나왔고 높고 훌륭한 인재가 후세를 이어 생겼다. 어쩌다 한쪽 샘물이 많으면 한쪽은 자연히 줄어들게 되어 문정(文井)에 물이 넘치면 문관이 많이 나고 무정(武井)에 물이 넘치면 무관이 많이 생겨났었다고 전해진다.

- 화개산봉수 향토유적 제29호 소재지 : 고구리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봉수라 전해지며 강화, 통진, 김포 북성산을 거쳐 서울남산 제 5봉(烽)으로 연결된다.

- 화개산성(華蓋山城) 향토유적 제30호 소재지 : 고구리

축조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조 명종 10년(1555) 왜변을 당하여 성을 개축했다고 하며 선조24년(1591) 외성을 헐어 읍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 삼도수군 통어영지(三道水軍統禦營址) 비지정문화재 206호 소재지 : 읍내리 남산포

인조11년 (1633년) 삼도통어사를 두어 경기 황해 충청의 3도 수군을 관장하고 전함 및 수군을 배치하여 우리나라 서남쪽 해안 경비를 하였다.

- 교동읍성(喬桐邑城) 인천광역시 기념물 23호 소재지 : 읍내리

조선조 인조 7년(1629) 수영이 설치되었을 때 축조된 것으로 옹성(甕城) 세곳 치첩(雉堞) 네 곳이 있고 동,남,북에 3개 문이 있었다.

 

다을새길/강화나들길 9코스 16km (화개산 259.6m)

 

강화 교동도는 삼국시대 이래 서해안 해상교통의 요지이며 고려ㆍ 조선 왕족들의 유배지 그리고 조선 중기엔 경기ㆍ황해ㆍ충청 삼도 수군을 담당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됐던 중요 섬이다. 한강ㆍ임진강 물과 예성강 물이 합쳐지는 물길 어귀에 교동도가 있다. 드넓은 간척지, 들판과 하늘을 휩쓸고 다니는 철새떼가 몰려다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 마을과 산자락에서 옛사람들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풍년들면 교동 주민이 10년은 족히 먹을 수 있다는 풍요의 섬, 천혜의 자연과 단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않았을 것 같은 고즈넉한 숲길, 강화 속 강화다. 다을새는 교동의 예지명 가운데 하나인 달을신(達乙新)에서 왔다.

 

교동은 섬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은 어느새 노랗게 물들었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교동도는 면적 46.9㎢, 인구 3600여 명이 살아가는 작은 섬. 하지만 경작지 면적은 강화군 내에서 가장 넓다. 호당 경지면적도 군내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교동도는 조선시대부터 왕족의 유배지로 유명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을 비롯해 세종의 3남 안평대군, 선조의 첫째 서자 임해군, 인조의 동생 능창대군, 인조의 5남 숭선군, 철종의 사촌 익평군, 흥선대원군의 손자 이준용 등이 교동도로 유배당했다가 풀려나거나 사사되었다. 교동도에는 이런 역사의 흔적 외에도 우리의 발걸음을 부르는 곳이 있다. 다을새길에서 명물인 대룡시장 골목이다 1박2일 찰영지로도 유명하지만. 마치 1960년대의 영화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다

 

산행코스

1)화개사 입구 버스정류장-화개사-문무정-창원황씨묘-갈림길삼거리-봉수대-암각화-

화개산정상(인증)-갈림길-효자묘-산성터-화개약수-연산군유배지-교동면사무소앞-대룡시장-

교동면사무소주차장 [5.18km, 2시간30분]

2)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선착장-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석천당-대룡시장-공영주차장

[약12km, 4시간 30분]

3)월선포구-갈대숲 제방길-동진포-교동읍성-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연산군유배지-대룡시장-

교동읍성-동진포-갈대숲 제방길-월선포구 [다을새길/강화나들길 9코스 약13km]

4)월선포선착장-(3.5)-교동향교-(0.8)-화개사-(1.5)-화개사정상-(2.3)-석천당-(1.1)-대룡시장-(2.8)-

남산포-(1.0)-교동읍성-(0.7)-동진포-(2.3)-월선포선착장 [다을새길 16km, 6시간]

   

대중교통

강화여객터미날 5번탑승구에서 강화선진버스 교동 70(18번으로 변경) 군내버스 탑승

강화터미날-신봉리-인화리-봉소리-대룡리-상용리(월선포) 1일 11회 운횅

강화터미널 - 강화군청 - 강화서문 - 송해삼거리 - 하점공단 - 강화역사박물관(고인돌) - 하점초교 - 신봉삼거리 - 인화성입구 - 교동면사무소입구 - 대룡시장 - 읍내리 – 월선포

  

산행기

 

코스 : 월선포선착장-연산군유배지-화개산-화개사-대룡시장

일자 : 2021.7.4(일) BAC 섬&산 100 완등 축하산행

동행 : (산천사)알리향, 윤문옥, 쟁이, 가을향기, 고전, 야호, 야호1, 예원, 청솔, 우로, 방가,

                  한나, 바람따라, 빠삐용, 수아, 깨소금박사, 덕장, 나 18명

        (고교동기)김성민, 김윤겸, 김준호, 김풍오, 송 혁, 임영빈 6명

        (대학동기)고영철+1, 이상일+1, 4명

        총 28명 (버스 탑승 24명, 청솔, 빠삐용, 수아, 고영철1, 별도 차량 이용)

교통편 : 44인승 버스

 

동암역07:34-(급행)-영등포역08:03/08:06-영등포소방서08:12/08:36-교동대교09:44/09:45-월선포선착장(≒26/26.7/26.1)09:58/10:15-고구저수지11:16/11:32-석천당(石泉堂)11:56-고구리조선시대한증막12:04-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소,교동유배문화관12:16/13:02(중식)-이정표(→화개산정상0.5,↓연산군유배지0.5)13:07-화개약수,화개산성(↑화개산정상0.2,효자묘자리50m,↓교동면사무소1.4)13:15/13:16-화개산(259.6,≒268/267.5/270.5, 7.26/7.139/.6)13:24/13:44-화개산 청동기암각화13:46-봉수대13:52-삼거리(←화개사0.75,↑연산군유배지0.55,↓화개산정상0.65)14:01-이정표(↑화개사0.5,↓화개산정상0.9)14:06-화개사(華蓋寺, ≒78/76.2/78.3, 8.55/8.388/9.2)14:13/15:04-교동중고등학교15:33-대룡시장입구15:44-교동초등학교 지석분교장15:45-초원식당15:46/17:20(중식:젓국갈비)-대룡시장 주차장17:25/17:38-영등포역23:08-인천역24:00/24:07-(택시)-간석동24:20

[산행거리 8.6/8.39/9.2+α(화개사-대룡시장)km, 산행시간 총5시간31분, 순4시간22분/3시간48분/45분,

 평균속도 2.5/2.81/3.1km/h, 최고고도 268/267m, 시작고도/최저고도 27/25m]

 

버스내에서 인사말
원추리

 

▼고구저수지

고구저수지

 

고령정(개인주택내)

 

▼연산군 유배지

연산군 유배지,위리안치소,교동유배문화관

 

 

▼화개산 정상

고교동기
대학동기
산천사 여성회원
산천사 카페지기와 자문위원
산천사 친우들
고교동기

 

 

▼화개사

화개사

 

화개사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으나 여의치 않아 도보로 대룡시장 이동
풍접초

 

▼대룡시장

대룡시장내 초원식당에서 젓국갈비로 식사
고교동기 김윤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