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드뷔시 / '목신의 오후' 전주곡

박연서원 2016. 12. 30. 07:40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L.86 

(Prelude to the afternoon of a Faun)
드뷔시 /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Claude-Achille Debussy, 1862-1918

 

(09:01)

Ernest Ansermet, cond.

L'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10:18)

Rene Leibowitz, cond.
London Festival Orchestra

 

(10:18)

Rene Leibowitz, cond.
Paris Radio Symphony Orchestra  

 


Ion Marin, cond.

DR Radiosymfoniorkestret (Danmarks Radios Symfoniorkester)

 

Charles Édouard Dutoit, cond.

L'Orchestre symphonique de Montréal

 

Julius Baker, solo flute

Leopold Stokowski, cond.

Leopold Stokowski & His Symphony Orchestra

 

Rudolf Khametovich Nureyev, dancing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드뷔시가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라는 시를 바탕으로 1892년부터 1894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 말라르메는 드뷔시보다 20년이나 연장자이면서도 그와 같은 교우를 맺었는데, 그는 말라르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시는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내용인데, 머리와 몸은 사람이고 허리부터 아래는 짐승과 같이 생긴 목신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목신의 오후'를 위해 전주곡, 간주곡, 피날레의 패러프레이즈가 계획돼 있었다 한다. 그러나 '전주곡'이 완성되었을 때 나머지 두 곡은 사라져야 했다. '전주곡'이 그만큼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1894년 12월 22일 국민음악협회가 파리 살 다르쿠르(Salle d'Harcourt)에서 초연했다. 이 때 지휘는 귀스타브 도레(Gutave Doret)가 지휘를 맡았다.
드뷔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초연 때 곡 해설에서 "나는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를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했다"고 썼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 시칠리아 숲속 그늘에서 졸고 있던 목신 판(Faune)은 아련한 꿈 속 같은 상태에서 목욕하는 요정을 발견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분할 수 없지만, 저편의 가물거리는 자태에 마음이 끌려 샘가에서 보았던 한 쌍의 요정을 떠올린다.
목신은 어떤 힘에 이끌리듯 달려가 두 요정을 그대로 품에 안아 장미 넝쿨로 뛰어들어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출 때, 몽롱한 관능적 희열이 온 몸에 퍼진다. 그러나 환상의 요정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밀려오는 권태를 망연히 바라보며 에로틱한 몽상을 해보기도 하고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을 향해 입을 벌려 넋을 잃기도 하고 갈증을 느끼며 모래 위로 쓰러진다. 그리고 목신은 또다시 오후의 고요함과 그윽한 풀냄새 속에서 잠들어버린다..."

 

드뷔시의 세심하고 절묘한 관현악은 목신의 환상 속에서 펼쳐지는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장면을 그린다. 곡은 시의 내용을 대체로 따르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 설명이라기보다는 모호하여 포착하기 힘든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꿈, 그와 같은 흐릿한 희열을 음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구름, 바람, 향기, 물과 같은 움직이는 대상의 인상을 음악에 담으려 했으며, 선율의 움직임보다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음악을 통해 나타내려고 했다. 대상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묘사하려는 움직임, 그것이 바로 드뷔시가 시도한 인상주의 음악의 본질이었다.
플루트로 주요 테마가 연주되며 계속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이를 발전시켜 하프가 가볍게 여운을 남긴다. 마치 여름 날 가벼운 미풍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분이다. 다시금 플루트와 첼로가 나오고 혼의 소리에 하아프가 조용히 이를 뒷받침하며 여러 가지 환상이 교차된다.
정열적인 멜로디가 나오는데 환상에서 욕망으로, 크라이맥스에 이르러 갑자기 환상이 꺼지는 분위기로 다시 플루트의 선율이 이어진다. 이같은 진행으로 마지막 제1테마가 현악기에 재현되며 조용하게 끝난다.  

 

Claude-Achille Debussy, 1862-1918

 

드뷔시는 어린 시절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안이었는데, 큰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고 한다. 그 집은 부유했으며, 큰어머니는 드뷔시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시인 ‘베를렌’의 양모가 되는 ‘모테’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그가 음악가가 되는 계기가 된다. 아마추어지만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모테 부인은 무상으로 드뷔시의 레슨을 해주었으며, 모테 부인을 통해 음악을 알게 된 드뷔시는 드디어 1872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의 관심은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옮겨 갔다. 파리음악원을 졸업하던 해에 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상에 칸타타 <방탕한 아들>을 응모하여 1884년 로마대상을 획득한다. 대상으로 로마로 유학의 기회가 주어졌고, 드뷔시는 거기서 새로운 음악의 견문을 넓히고 파리로 돌아온다. 이후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개척한다 


이른바 인상주의 음악의 시조인 드뷔시는 바그너로 대표되는 후기 낭만파 음악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 한계를 느끼고 바로 돌아선 그는 자신만의 음악어법에 충실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마침 그가 태어나던 당시 파리에서는 인상주의 운동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인상주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풍토 속에서 성장했던 것이다. 미술 사조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인상주의 음악은 전통적인 수법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가 받은 인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음악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드뷔시 최초의 인상파 작품으로 알려진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당시 유럽 음악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고, 프랑스 음악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피에르 블레즈는 "현대시가 보들레르의 시 안에서 확고하게 그 뿌리를 내린 것과 같이 현대음악은 이 곡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고 해도 좋다."고 평했다.

그러나 인상파 음악의 독특한 음악의 묘사는 신선하고 대담하긴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던 기존의 독일 음악계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계 음악계의 조류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음악 사조인 인상주의에 참여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작곡가로 프랑스의 ‘라벨’과 ‘댕디’, 스페인의 ‘파야’, 영국의 ‘딜리어스’, 이탈리아의 ‘레스피기’, 러시아의 ‘스크리아빈’ 등이 인상파 음악의 주류를 형성해 갔다. 따라서 이 사조를 앞장서 이끌었던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 회화와 마찬가지로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 음악의 표현 능력을 한 차원 높은 이데아로 고양시킨 것이며, 이러한 그의 음악은 근,현대 음악에서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