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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사태도 어쩌지 못한 '백령도 냉면'

박연서원 2016. 11. 18. 08:01

천안함사태도 어쩌지 못한 '백령도 냉면'

입력 2010.08.14 14:30 수정 2010.08.14 14:30 

 

 

[한겨레] [매거진 esc] 황해도 실향민의 소박한 맛이 살아 있는 냉면집·향토음식 순례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백석의 시, '국수'의 한 구절이다. 백석이 살아 있었다면 아마 국수 대신 냉면을 읊었을지 모른다. 세상을 돌면서 맛 여행을 했던 시인이 초절정 인기 음식인 냉면을 지나쳤을 리 없다. 여름이 되면 개그맨 박명수와 소녀시대 제시카가 부른 '냉면' 노래를 귀에 달고 살지 않아도 발걸음은 저절로 냉면집으로 향한다.

냉면은 원래 겨울 음식이다. 추운 날, 찬 음식이라! 더운 날 삼계탕을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열치열, 이랭치랭'이다. 추운 북쪽지방에서 발달한 냉면은 한국전쟁 이후 남쪽으로 내려온 실향민들 때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후식으로 나오는 특별한 국물이 '일품'

해방 전에 황해도 땅이었던 백령도에는 독특한 냉면의 맛이 남아 있다. 그 냉면을 찾아 시인 백석을 대신해 길을 나섰다. 조선시대 맛 기행서 <도문대작>을 쓴 허균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떨린다.

백령도 뱃길은 험하다. 인천에서 228㎞ 떨어져 있고 배로만 4시간30분이 걸린다. 육지에서 멀다 보니 백령도는 대부분의 식재료를 자급자족한다. 냉면의 재료인 메밀도 이곳 백령도에서 재배하는 것을 사용한다. 섬 한복판에는 천일염을 생산하는 화동염전도 있다. '로컬푸드'다.

백령도에는 냉면 전문집이 약 7곳이 있다. 냉면 전문집이 아니더라도 차림표에는 냉면이 있을 정도다. 백령도 냉면의 특징은 돼지뼈로 국물을 우리고 면에 메밀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면의 색이 둔탁하다. 냉면 국물에 까나리액젓을 넣어 간을 하는 것도 특징이다. 백령도 음식에는 간장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냉면을 먹고 난 다음 치러야 할 의식이 있다. 후식으로 나오는 뜨거운 물이 그것이다. 노란 주전자에 뜨거운 물이 나오면 그 물에 냉면의 고명으로 올라갔던 달걀노른자를 푼다. 그 물에 까나리액젓을 타서 후루룩 마신다. 찬 냉면을 먹고 마지막으로 속을 다스리는 디저트다. 익숙하지 않아 꺼리는 이도 있지만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정겹다. 주민 최홍일(75)씨는 "어렸을 때 집집마다 냉면 면을 내리는 기계가 다 있었어요. 겨울날 별미였죠"라고 말한다.

사곶해변에서 가까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사곶냉면'(032-836-0559)을 뒤로하고 백령도 사람들의 단골집인 '우성냉면'(032-836-0959)을 찾았다. 점심때가 얼추 넘었는데도 냉면집 안에는 무뚝뚝한 백령도 말씨를 풍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군인들도 여러 자리 차지하고 있다. 차림표에는 냉면이 5000원, 수육이 7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옆 사람들은 "냉면 하나, 수육 하나, 반냉 하나" 주문을 한다. '반냉, 뭐지?' 말 그대로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반반씩 한 그릇에 나오는 냉면이다. 비빔냉면에 육수를 부은 모양새다. 매콤하면서 시원하다. 드디어 냉면 한 그릇이 식탁에 등장한다. 면 위에 고명이라고는 오이채와 달걀 반 개밖에 없다. 고기 한 점도 없다. 면은 씹는 순간 입안에서 요술을 부린다. 탱탱함이 조용하게 살아 있는데 뚝뚝 끊긴다. 가위가 필요 없다.

메밀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고 까나리액젓이 들어간 육수는 달달하다. 화려한 고명들이 없어도 소박한 냉면 자체의 맛이 기가 막히다.

주인 조혜자(40)씨는 "우리 집은 통밀을 집에서 직접 빻아서 사용하고 메밀과 밀가루를 섞는데 메밀이 70% 이상 들어간"다고 말한다. 육수는 뽀얀 누이의 얼굴처럼 곱다.

수육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돼지 삼겹살을 적은 양의 물에 2시간 정도 삶은 것이다. 맛은 부드럽기가 비단결 같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수육은 빨리 떨어진다. "손님께 드린 것이 마지막이네요." 조씨가 말한다. 돼지 수육이 맛난 이유는 백령도에서 키우는 돼지로 만들기 때문이다. 백령도에 재배하는 사료를 먹고 바닷바람을 한껏 맞은 돼지들이다.

메밀을 삶았던 뜨거운 물이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먹지 않고 남겼던 노른자를 풀고 까나리액젓을 타서 먹었다. 조씨는 "백령도 냉면 드실 줄 아네요. 외지 분들은 잘 모르는데" 하면서 웃는다. 이 섬의 냉면집들은 집집마다 손맛이 달라 미묘하게 다른 맛을 자랑한다. 냉면 마니아라면 한번쯤 이 섬의 냉면집 순례를 해도 좋다.

백령도에는 냉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육지와 고립된 적이 많아 신기한 향토음식들이 많다. 짠지떡이 대표적이다. 짠지는 김치를 말한다. 모양은 손바닥만한 만두와 비슷하다. 찹쌀가루와 메밀가루를 적당히 버무려 떡의 겉을 만들고 그 안에 송송 썬 묵은 김장김치와 굴과 홍합을 넣어 익혔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발라 낸다. 이 떡도 겨울 음식이다. 먹고살기가 힘든 시절, 백령도에는 집집마다 김장김치가 가득했고 바다에는 굴과 홍합이 풍성했다. 구하기 쉬운 식재료로 뚝딱 만들어서 배를 채웠다. 12년 전 '시골칼국수'(032-836-1270)를 연 박형화(48)씨는 "시집왔는데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짠지떡과 메밀칼국수, 메밀묵"이 너무 맛있었다. 이 집의 짠지떡은 밀가루가 조금 들어가고 홍합이 빠져 있다. "손님상에 내다 보니 홍합이 익는 시간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메밀칼국수는 부드러운 메밀 면 위에 백령도 굴이 흥건하게 올라가 있다. 백령도 굴은 아래 지방 굴보다 크기가 잘다. 양식이 없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 "널려 있는 것이 굴"이라고 박씨는 말한다. 순두부 위에 굴을 넉넉하게 얹어 내는 '돼지네'(032-836-0257)도 가볼 만하다. 이 집은 간수로 바닷물을 쓴다.

 

짠지떡·팔랭이찜 등 향토음식도 많아

백령도는 생선회도 양식이 없다고 한다. 포구에서 가까운 '부두회식당'(032-836-0008)의 주인, 조숙자(71)씨와 딸 김선경(48)씨는 "육지에서 양식한 생선 가져오는 비용이 더 비싸요. 바다에서 많이 잡히니깐 굳이 양식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집에는 '팔랭이찜'이 있다. 이 음식도 백령도 향토음식이다. 팔랭이는 간자미를 말한다. 수족관에선 '팔랭팔랭' 움직여서 백령도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다. 잡은 간자미에 양념을 얹어 적은 양의 물을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굵은 뼈는 먹기 불편하지만 얇은 뼈는 통째로 씹는 맛이 있다. 백령도 두무진에는 약 10개의 횟집들이 모여 있다. 제주도에서 이곳 백령도가 좋아 눌러앉은 해녀가 운영하는 집도 있다. 바닷바람 쐬면서 먹는 회 맛은 일품이다. 백령도는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눌러산 동네이기도 하다.

천안함 침몰사고 이후 백령도 여름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백령도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이수경(50·가명)씨는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손님이 3분의 2가량 줄었어요. 거의 빈 택시로 운행해요. 군사훈련을 해도 관광하는 데 별문제가 없는데 사람들이 찾지 않네요"라며 관광객들이 다시 찾기를 기대했다.

백령도=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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