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기화백 초대전
전시기간 : 2016.10.13(목)-11.13(일)
전시장소 : 금호미술관 (T02-720-5114, 종로구 삼청로 18)
관람일시 : 2016년 10월20일(목) 오후5시경
'고산자'같은 민정기 화백…9년만에 금호미술관서 개인전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자 민중미술 대표 작가로 꼽히는 민정기화백(67)이 '고산자' 김정호처럼 돌아왔다.
2007년 전시후 9년만에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13일 펼친 전시에는 '옛지도를 만들 듯 답사로 그린 21세기 몽유도원도'가 가득하다.
'꿈 같은 그림'이 아니다. 몽유도원도나 고지도를 보면서 그 지역을 수백 번 찾아가 눈으로 확인했다.
민 화백은 "인간이 터를 잡아 사는 기운을 느끼려고 애썼고, 실제 그 풍경을 사실적으로 옮기기보다 땅과 인간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했다.
그는 일명 ‘이발소 그림’으로 알려진 그림을 재해석해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성을 복원하는 작업을 해왔다. 동시에 텍스트를 작품에 녹여내 '문학적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작품도 꾸준히 선보였다.
1987년, 경기도 양평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였다. 우리가 사는 환경과 역사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주변을 직접 걸어 다니면서 관찰하고, 역사적, 지리적 자료를 수집하여 해석한 시공간이 묘하게 중첩되어있는 산수풍경을 그려왔다.
이번 전시는 2004년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과 2007년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에 이후 오랜 숨 고르기 끝에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2016년 신작 위주로 27점의 회화 작품과 55점의 판화 작품을 소개한다. 신작 회화에는 개경(현재 개성)에서 남경(현재 서울)으로 이어지는 물길 위에 자리 잡은 길을 수 없이 걷고 살피며 발견한 모습이 담겨 있다.
민정기의 시선은 분단 이후 시간이 멈춘 듯한 임진나루에서 시작되어 홍지문을 지나 번화한 홍제동과 경복궁 어귀에 이른다.
- 【서울=뉴시스】백악이 보이는 서촌_2016_캔버스에 유채_130.2x192.2cm
특유의 자유로운 시점의 이동으로 만들어진 민정기의 서사적 풍경화에는 그가 인식한 현실의 모습, 아픈 분단의 역사와 개발의 흔적,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겹쳐져 있다.
오랫동안 산과 골짜기 등 자연 풍광을 그리는데 몰두했던 민정기는 이번 신작에서 도심의 공간에 집중하여, 깊숙이 들어와서 관찰하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기를 반복하며 캔버스에 옮겨냈다.
전시장은 우리가 갈 수 있는 최북단 임진나루에서부터 시작된다. 개경에서 남경으로 오는 길의 절반은 우리가 걸을 수 없는 길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 사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하 1층은 이러한 ‘분단의 현실’을 상기시키는 3점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임진강에 닿을 수 없도록 굳게 닫힌 철문과 군사구조물을 그린 '임진리 나루터'(2016)와 현재의 모습에 전통적 모습을 겹쳐 담아낸 '임진리 도솔원'(2016), 그리고 가로 폭이 4.8m에 이르는 ;임진리 나루터 정경'(2016)은 임진나루 주변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층과 2층은 임진나루에서 물길을 따라 서울로 걸어오면서 만나는 ‘개발된 도시와 전통적 모습이 혼재하는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된다.
홍제동에서 창의문으로 올라오는 길에서 보이는 정경을 담은 '북악 옛길'(2016),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길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북악산을 바라보면서 그린 '홍제동 옛길'(2016), 그리고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 시선으로 유랑하며 그려낸 '유 몽유도원도'(2016) 등이 걸렸다.
거대한 고가도로 아래쪽에 연약하게 자리한 옥천암 백불을 그린 '옥천암 백불'(2016), 곧게 뻗은 아스팔트로 마감된 지금의 사직단의 모습을 그린 '사직단'(2016) 등의 작품은 콘크리트와 건물 속에 희미하
- 【서울=뉴시스】민정기_역사의 초상-6, 1986, 석판화, 54x70cm
게 남아있는 전통의 흔적에 집중하고, 쌓여있는 역사와 시간을 재발견하게 한다.
도시를 바라보는 그의 더욱 깊어진 시선은, 옅은 수채 물감을 연상시키는 터치가 여러 겹 교차한 붓질의 짜임으로 획득한 표면의 깊이감과 어우러져 신선하게 다가온다.
- 【서울=뉴시스】민정기_세수, 1987, 에칭, 28x36.5cm
함께 전시되는 판화 작품은 사회 제도와 일상적 삶의 이면에 집중했던 1980~90년대 주요 작품들로, 2010년대의 회화 작품과 조화 혹은 대비를 이룬다.
지하 1층 안쪽 전시실에는 '한씨연대기'(1984), '숲에서'(1986), '숲을 향한 문'(1986) 등의 정치적 상황을 담은 작품과 '세수'(1987), '일터를 찾아서'(1983), '택시'(1985) 등의 당대 일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 등, 1980~1990년대를 지나오면서 작가가 직접 목격하고 겪은 사회적 모순과 혼란, 그리고 문학으로 간접 경험한 역사적 상황을 포착하여 표현한 판화 55점을 선보인다.
작가가 포착한 1980~1990년대 사회 전반에 깔린 어두운 정서는 2016년 여전히 가로막혀있는 우리의 분단 현실을 상기시킨다.
전통과 현대가 혼재하는 풍경은 기록화이고, 사실화다. 작품에 담은 건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거나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기억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공간들이다. 단지 바라보기 좋은 곳만이 아니고 우리의 삶과 여전히 연결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품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려준다. 전시는 11월 13일까지.
약력
출생 1949년, 경기도 안성시
학력 서울대 서양화과
서울 중, 고등학교
서울 남대문초등학교
경력 1995 광주비엔날레
1994 민중미술 15년 평가전
1993 Silk Road 미술기행전
- 연극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왕자 출연
수상 2006 제18회 이중섭 미술상
민정기 화백을 찾아서
캔버스에 봄이 오는 소리
봄은 겨울 가지에 매달린 꽃망울에서가 아니라
캔버스를 수놓는 화가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하의 소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처럼
화가의 노고는 겨우내 쉴 틈이 없습니다.
하얀 캔버스를 대하는 눈빛이나 손놀림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난 주말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민정기 선생님의 작업실에 다녀왔습니다.
문간까지 마중 나오신 선생님의 머리에는 어느덧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습니다.
“날이 너무 좋지요. 이제 정말 봄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북두칠성을 그려 넣으신 도자기에 차를 따라 주시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봄날 아지랑이 같은 미소가 번졌습니다. 화가도 시인처럼 숨죽여 봄을 기다리나 봅니다.
민정기 화백님은 수 십 년 동안의 삶이 담긴
양수리 서종면 언덕배기 블록을 쌓아 만든 작업실에서
경기도 장흥에 있는 작업실로 1년 전 무대를 옮기셨습니다.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냉난방에 신경 쓸 것도 없고 주위환경이 좋아서 산책하거나 식사하기도 좋아서 무엇보다 많은 시간 창작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작업실 한쪽에는 연두색이 가득 칠해진 캔버스가 벽을 채우고 있고
다른 쪽 벽면에는 두 개의 큰 그림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자연을 주로 그렸는데
요즘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시네요.
“지금 그리고 있는 두 작품은 경기도 <여주>와 <안산>을 표현한 것인데
유유히 흐르던 강물 주위에 아파트와 건물이 올라가고
이포보 같은 인공물이 생겨나 자연에 큰 변화를 주고 있지요.
안산만 하더라도 과거 언덕에 동헌(東軒)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지금은 고층건물이 세워지고 인근에 다리와 터널이 생기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고 새로운 안산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거지요.”
말씀을 듣고 보니 과거에 그림에는 산과 강, 나무, 꽃과 같은 소재였는데
어느 순간엔가 자연 안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삶과
사람들이 만든 건축물들이 캔버스에 담겨져 있습니다.
▲ 초기작품<세수>-왼쪽위, <소나무>-오른쪽위, <양수리>-아래쪽
정치적 탄압과 경제발전이라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던 1980년대, 민정기 선생님은 민중미술운동을 주도하면서 <포옹>, <세수>, <이발소> 같은 민중의 삶을 표현한 그림을 주로 그렸습니다. 붓을 통해 정치적 억압을 고발하고 소비사회로의 진행을 비판했습니다.
그 후 20여 년 전 양수리로 거처를 옮긴 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 땅을 지켜온 산과 강물, 나무의 풍경화에 천착했던 작가는 ‘머어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달관된 눈으로 바라보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연륜과 안목이 쌓여서 2006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예로운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셨는지 모릅니다.
그에게 올해 계획을 물었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생각하고 붓질하고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거지. 뭐 특별한 것이 있나요.”하고 웃었습니다. 웃으시는 모습이 10년은 더 젊어 보였습니다.
작업실 한복판에 있는 큰 유리병에는 선생님이 쓰시는 붓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색색가지 물감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연금술사인 선생님의 손길을 거쳐 물감들은 새로운 마술을 부리겠지요. 새롭게 탄생할 작품을 기대하면서 선생님과 푸르메재단의 인연을 생각해봤습니다.
2006년 9월. 민정기 선생님은 푸르메재단이 건립되고 첫 걸음을 뗄 무렵 <채송화>와 <연못>등 당신의 판화 40점을 앞으로 재활병원을 짓는 데 사용해 달라고 기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7월 종로구 효자동에 있는 푸르메재활센터가 건립될 때 가로 3.3미터, 세로 2.5미터의 대작, 설악면에 봄이 오는 풍경을 그린 <묵안리의 봄>을 재활센터 1층 로비에 그려 주셨어요.
▲ <묵안리의 봄> 앞에 선 민정기 선생님 부부
이곳을 찾는 많은 분들은 선생님의 대작이 1층 로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에 놀라고 다음에는 그 작품의 아름다움에 반한다고 합니다.
푸르메재단과 민정기 화백님의 아름다운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기대합니다.
▲ 2006년 판화 기부식
*글, 사진= 백경학 상임이사 (푸르메재단)
△민정기화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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