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프랑크 /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 & '전주곡, 코랄과 푸가'

박연서원 2016. 10. 11. 07:16

César Auguste Franck 1822 ~1890

 

Symphonic Poem 'Le Chasseur Maudit', M.44

프랑크 /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

모네의 사냥꾼

 

 

1. La paysage paisible du dimanche (The Peacefule Sunday Landscape)
평화스런 일요일 풍경

 

Charles Münch, cond.

Boston Symphony Orchestra

 

2. La chasee (The Hunt) 사냥꾼

 

Charles Münch, cond.

Boston Symphony Orchestra

 

3. La malediction (The Curse) 저주

 

Charles Münch, cond.

Boston Symphony Orchestra

 

4. La poursuite des demons (The Demons' Chase) 악마의 추적

 

Charles Münch, cond.

Boston Symphony Orchestra

 

Michel Plasson, cond.

Orchestre du Capitole de Toulouse

 

Part 1 of 2

Scott Dunn, cond.

Long Island Youth Orchestra

May 9th, 2010 at the Tilles Center, CW Post College

 

Part 2 of 2

Scott Dunn, cond.

Long Island Youth Orchestra

May 9th, 2010 at the Tilles Center, CW Post College

 

세자르 프랑크(Cesar Franck 1822 - 1890)는 1872년부터 죽는 날까지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이 기간 중에 "교향곡 D 단조"를 비롯하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그리고 4개의 교향시 등 오늘날의 프랑크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든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4 개의 교향시 중에 현재에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저주 받은 사냥꾼" 뿐이다. 1882년 환갑의 나이에 작곡된 이곡은 그때까지도 그가 바그너 추종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Prélude, Choral et Fugue, Op.21

프랑크 / '전주곡, 코랄과 푸가'

 

1. Prelude (5:02)

2. Chorale (6:47)

3. Fugue (6:52)

Arthur Rubinstein, piano

 

Part 1 (Prelude)

 

Part 2 (Chorale)

 

Part 3 (Fugue)

Alfred Cortot, piano

Small Queen's Hall, London

1929.03.19

 

Part 1 (Prelude)

 

Part 2 (Chorale)

 

Part 3 (Fugue)

Grigory Sokolov, piano

 

Jorge Bolet, piano

Walthamstow Town Hall, London

1988.02

 

Evgeny Kissin, piano

 

Sviatoslav Richter, piano

 

Mieczyslaw Horszowski, piano

 

Prelude, Fugue and Variation in B minor, Op. 18

프랑크 / 전주곡, 푸가와 변주곡 B 단조

 

Igor Zhukov, piano

 

Vladimir Viardo, piano

 

Six Pièces pour Grand-Orgue (그랜드 오르간을 위한 6개의 소품)

Marie-Claire Alain, organ

at the Cavaille-Coll organ of the Eglise de St. François de Sales (Lyon, France)

 

한 거장이 진정으로 위대하다면 제자들은 스승의 위대함을 곁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기 마련이다. 스승에 대한 경건한 태도와 충성심으로 무장한 그들 가운데에서는 무분별한 열정이나 예언가적 기질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뱅상 댕디가 세자르 프랑크를 신성시했던 것을 이에 대한 좋은 예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시대의 폴리포니 이래로 역사는 세자르 프랑크라는 메시아를 배출하기 위해 흘러왔다.”고 주장한 댕디는 다음과 같은 예언을 남겼다.

 

“바흐와 모차르트를 거치면서 필연적인 동시에 퇴화하는 과정으로서 음악은 형식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베토벤이 등장하여 음악은 이상향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프랑크로 인해 음악은 살아남았고 견뎌낼 수 있으며 세계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예언에 굳이 편을 들기보다는 그의 진심어린 충정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면 역사적으로 프랑크의 시대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승 세자르 프랑크를 신성시했던 뱅상 댕디

 

프랑크는 평생토록 무명의 음악가로서 남에게 이용만 당하며 살았지만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가식이라고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순수한 영혼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교회의 오르간을 가까이 하며 세상의 더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오르간은 그에게 일종의 수호천사와도 같은 존재였다. 이렇게 보호받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그는 매일같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 자신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쳤다. 루카복음을 회상해보면 예수가 방문했을 때 좋은 몫을 택했다는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저 듣고만 있었지만 그의 언니인 마르타는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바로 이 마르타에 비견할 만한 ‘부지런함이라는 축복받은 습관’(마르셀 프루스트)을 통해 프랑크의 삶은 결국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은총을 받을 수 있었다.

 

성당 오르간 연주자로 신의 영광을 찬미

 

어린 시절 프랑크는 음악 신동이었다. 파가니니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유럽의 천계를 밝히고 있을 무렵, 당시의 재능 있는 젊은 음악가들은 초절기교에 열광하는 ‘미노타우로스’(당시의 광적인 청중들)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오직 리스트만이 이러한 신동들의 덧없는 쓰러짐 속에서 유일하게 ‘머리 위에 원광을 두른 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초인적인 <초절기교 연습곡집>으로 인해 당시 청중들의 공격적인 칼날은 산산조각 나버리고 맹목적으로 리스트를 숭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리스트를 구원해 준 것은 이러한 청중들의 열광이 아니라 선천적인 코스모폴리탄 기질과 여행가로서의 호기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황제를 연상케 하는 귀족적인 매너, 고갈될 줄 모르는 성실함과 동료들에 대한 친절함이었다.

 

벨기에의 리에주로부터 온 소년 프랑크는 리스트의 바로 그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여행을 제외하고는 파리에서만 활동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 옛날의 바빌론에 비견할 만한 당시의 파리에서 순수하고 겸손한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입고 경직되었는지에 대해 토로한 바 있다. 프랑크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점점 건조하고 화려하지 않으며 조금은 안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성장했다. 그는 다섯 살부터 피아니스트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지만 비슷한 재능의 소유자였던 생상스 같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하지 못했다. 결국 피아노보다는 한결 경건하고 부르주아적이되 우아함은 조금 떨어지는 오르간이 프랑크의 전문 분야(그가 결코 선망하지는 않았던)가 되어버렸다. 이 매혹적이지 못한 성취감이란!

 

한때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던 프랑크는 오를레앙 음악원에서 시급을 받는 일천한 반주자로서 활동하게 되었고, 25세에 로레트 노트르담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하며 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 생-장 생 프랑수아 뒤 마레 성당의 오르간 주자(1853년)로 활동했던 프랑크는 1858년에는 생트 클로틸드 성당에 강력하고 울림이 큰 오케스트라적인 특성의 파이프 오르간을 비로소 마음대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훌륭한 악기로 신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내심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생트 클로틸드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말년에 이르러서야 걸작을 쏟아내다

 

프랑크는 아주 조금씩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1840년 전후 젊은 나이의 그가 응접실에 앉아서 작곡을 했을 초기 피아노 트리오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오라토리오 <루스>(Ruth, 1843-45)는 그의 첫 번째 오라토리오일까? 이에 대한 증거는 아주 적거나 없는 상태다. 그가 어느 정도는 웅장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이 드러나는 오라토리오인 <속죄>(Rédemption, 1874)와 사후에 전곡 연주될 수 있었던 <여덟 가지 복>(Les Béatitudes, 1869-79)을 통해 결국 어느 정도의 평판을 얻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50대의 나이에 접어든 노년기의 초입이었다.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생애 동안 실력을 성숙시킨 그는 의심할 바 없는 초인적인 모습을 갖춘 시인이자 창조자로서 마지막 걸작들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고된 명상과 격정적인 인내의 시간으로부터 자양분을 얻은 축복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말년의 걸작들은 곧 침묵의 언어에 진배 아니다.

리스트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9번 ‘하머클라비어’를 연주하여 얻은 엄청난 명성은 곧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을 듣고 공감하여 이에 박수를 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크는 바흐를 자주 연주했다. 그러나 그의 바흐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만이 자신의 연주를 들었을 뿐이다. 바흐가 그에게 숙련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연습곡집>(Clavierübung) 연습에 매진하라고 조언을 한 듯했다. 혹독함과 숙고를 감내하며 프랑크는 자신의 신념을 연습하듯이 바흐를 연습했다. 이러한 부지런함은 결국 그의 후기 작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예술적 원천이 되었다.

그가 진보의 세기인 19세기에 어울리는 새롭고 대범하며 승리에 찬 음향을 위한 형식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바흐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던 천재성 덕분이다. 바그너는 새로운 오케스트라 음향과 최신식의 기능적 전리품들로 고전주의의 왕국을 무너뜨렸지만, 프랑크는 바로크 시대의 정신과 현대적이고도 교향적인 관점 사이에 숭고하면서도 생명력이 숨을 쉬는 다리를 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오르간적인 울림과 옛 양식의 현대적인 사용, 주제들의 순환기법을 통한 구조적 통일성 등등으로 장식된 피아노 5중주, 교향적 변주곡과 교향곡 D단조,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4중주와 같은 그의 마지막 걸작들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바흐를 비롯한 옛 양식의 재해석

 

프랑크는 피아노 작품에서도 위대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전주곡, 코랄, 푸가>에서 그는 바흐의 대위법적인 방법을 통해 베토벤, 더 나아가 리스트를 연상시키는 새로운 음향을 탄생시켰다. 특히 생트 클로틸드 성당의 오르간을 오랜 시간 연주한 결과 습득할 수 있었던 격정적인 우아함과 고귀함은 코랄 파트에 중세적 침묵을 흩뿌려 놓았다. 작곡가로서 그에게 빛나는 명성을 안겨준 이 작품은 1884년, 그의 나이 62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탄생했고, 1885년 1월 24일 국민음악협회에서 초연되었다. 초연 이후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에 의해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은 10곡의 피아노 곡 가운데 하나”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오르간을 연주하는 세자르 프랑크

 

옛 양식의 엄격한 형식을 재정립하고자 한 의도를 담고 있는 3악장 형식의 이 작품은 코랄의 강력한 힘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곡이 전개되면서 점차 신앙적인 믿음과 부활에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듯한 모습은 어느 정도는 리스트적인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프랑크만의 독특한 양식과 매력이 포함되어 있다.

첫 전주곡에서는 16분 음표의 리듬의 주제로 시작되면서 바흐에 대한 찬미와 풍부한 조바꿈, 순환동기를 갖춘 제2주제와 현저한 대조를 통해 탐미적인 고통스러움을 극적으로 표현해낸다. 가운데 악장에 해당하는 코랄은 서정적이되 아직은 불안한 선율이 제시된 뒤 아르페지오에 의한 넓은 분산화음으로 변형되며 저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한 정화적 차원에서의 준비를 한다. 마지막 푸가는 지금까지의 모든 주제와 정신적 고행들을 통합하여 구축적이면서도 응축적인 에너지를 숨 막히게 집약한 뒤 피날레에서는 승천하는 듯한 넘치는 기쁨을 터뜨리며 장대한 끝을 맺는다.

 

Fugue (푸가)

푸가는 단지 순환적 구성의 음악형식이라고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다. 바흐는 푸가를 주로 마지막(finale)에 놓고 3악장의 곡을 시도했었으나, 만족하지는 못했다. 라인베르거는 그의 소나타들에서 푸가를 사용해 곡들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의 푸가는 매우 훌륭하지만 소나타 한 곡 전체를 한자리에서 들을 때 일반적으로 ‘이제 푸가가 나오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작의 곡들은 대부분 곡의 처음 반 이상에서 모든 것이 나오는 것이지 뒷부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작곡가들이 오르간 푸가의 전통적 기법, 사상 등에서 멀어지면 좀 쉬워질 수 있다. 왜냐면 현재일 수록 언어나 표현의 가능성을 더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 생상의 E장조, B장조, D단조나, 두프레 의 F단조, 스탠포 의 브람스적인 D단조 등)

프랑크는 푸가를 주로 중간 악장에서 사용하는 시도를 했고,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이 곡은; (1부분)말이 없는 3성부의 진정한 노래이며, (2부분)짧은 4성부의 푸가는 (1부분)의 칸타빌레보다 속도가 느리고, 아주 섬세하면서도 덜 표현적이고, (3부분)Prelude의 반복으로,Variation라고 할 수 있으나, 이 Variation은 반주 역할로만 한정할 수 있다. 이 세부분의 구조는, 9마디로 된 ‘Lento’부분을 생략한 것으로, 이 Lento부분은 Prelude와 Fugue를 연결(link)시키고 있으나, 푸가주제를 기대하고 있는데, 갑자기 Lento부분이 나와서 세차례 정도의 곡 전체에 갑작스러운 정지를 주고 있어, 장황한 흐름의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트리오 연주와, 프레이징이 선명한 멜로디 그리고 산뜻한 푸가 기법 등의 조합의 이 아름다운 곡은 분명 연구할 가치가 높다. 소형 매뉴얼 오르간을 위한 곡들과 별 다름없는 간단함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음색선택(Registration)의 문제가 없다. Prelude와 Variation에서 유일한 음색변화는 베이스로 사용된 16마디에 처음 나타나는 상행도약 부분에서 페달스탑에 8’, 4’을 추가해주는 것이다. 이 음색변화의 부분은 또한 곡이 너무 밋밋하지 않도록 프레이징을 잘 해줘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활을 사용하는 악기를 상상하면서 연주한다면 아마 도움이 될 듯 싶다. Variation부분에서는 왼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때때로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